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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인 1935년 '목포의 눈물'을 부른 여가수 이난영(1916~1965, 목포출신)의 유해가 사후 41년 만에 고향 목포의 품에 안겼다.

1965년 이난영(당시 49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묘는 경기도 파주의 한 공동묘지에 안치되었는데,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그동안 묘소 관리가 제대로 안 됐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목포시민들은 이난영의 묘를 고향으로 옮겨올 것을 제안하면서 2005년 '이난영기념사업회'를 발족시켰고 이후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유가족들과 묘소이전, 유품기증 등에 대한 사항을 전격적으로 합의하게 되면서 묘소 이전 문제가 성사되었다.

차남인 김영일(김브라더스 멤버)씨는 "유가족들은 일가친척 하나 없는 경기도 파주에 어머니 묘소가 있어 관리에 많은 애로를 겪어 한때는 어머니의 유해를 미국으로 옮겨오는 방안까지 검토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고향 목포에서 어머니를 잊지 않고 묘소이전과 각종 기념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되어 너무나 감격스러웠다"며 "모든 자녀들이 어머니 묘소를 고향인 목포로 옮기는데 적극 찬성했다"고 전했다.

▲ 이난영의 유해가 안장된 삼학도 이난영 나무. 삼학도 복원화 사업과 함께 이 일대가 이난영 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 최성환
이와 관련 지난 3월25일 목포 삼학도에서 묘소 이전식이 거행됐다. 이난영의 묘소는 유해를 화장한 뒤 그가 불렀던 '목포의 눈물'에 등장하는 삼학도에 새롭게 자리하게 되었는데, 합의사항에 따라 봉분을 만들지 않고 '이난영 나무(백일홍)' 아래 화장한 유골을 묻는 수목장 형태로 안장되었다.

이날 이전식에는 이난영의 귀향을 환영하는 수많은 목포시민들과 목포출신의 후배 가수 남진, 이수미, 최유나 등이 함께 참여하였다.

더불어 목포에서는 지난 한 주(3월 22일~25일, 이난영 추모기간) 동안 이난영 묘소 목포이전을 축하하기 위한 각종 기념행사(유가족의 이난영 생가터 방문, 학술심포지엄, 이난영 유성기 음악 복원 발매, 유품전시회, 축하공연 등)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특히 이번 행사 기간 동안에는 그동안 미국에 거주하고 있던 유가족(김숙자, 김영일, 김태성) 세 사람이 함께 참석했고 고향 목포 시민들에게 멋진 공연까지 선사해 그 의미를 더했다. 추모사업 기간 열렸던 각종 기념사업의 이모저모를 생생한 사진과 함께 전달한다.

▲ 이난영 생가터(목포시 양동)에 조성된 어머니의 흉상을 살펴보는 유가족 딸 김숙자(김시스터스)와 막내 김태성(김브라더스)
ⓒ 최성환
▲ 처음으로 어머니 생가터를 방문한 이난영 유가족들 모습, 가수 이난영 동상앞에서
ⓒ 최성환
▲ 이난영이 미국에서 공연할 때 입었던 옷. 김숙자씨가 소장하고 있던 유품(의상, 신발, 악기 등)을 목포시에 기증하였다. 현재 이난영 유품과 음반 자료 등이 목포 자연사박물관 기획 전시실에서 특별 전시되고 있다.
ⓒ 최성환
▲ 지난 3월 24일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에서 개최된 이난영 추모공연에 출연한 슈앤킴 브라더스(이난영의 자녀들로 구성되어 미국에서 활동한 보컬그룹) 공연 모습.
ⓒ 최성환
▲ 41년만에 화장한 어머니 이난영의 유해를 들고 있는 유가족 모습. 왼쪽부터 막내 김태성(김브라더스 멤버로 활동), 딸 김숙자(김시스터스 멤버로 활동), 유해를 들고 있는 사람이 차남 김영일(김브라더스 멤버로 활동, 현재 교회 장로로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 최성환
▲ 이난영의 히트곡 '목포의 눈물' 노래 가사에 나오는 삼학도의 양지 바른 곳에 어머니를 묻고 따뜻한 흙을 덮고 있는 모습.
ⓒ 최성환
▲ 이제 어머니의 고향에서 편안히 잠들기를 기도하며 눈물 흘리는 가족들.
ⓒ 최성환
▲ 수목장 안장식이 끝난 후 이난영 나무에 조문하고, 가족들을 위로하는 목포 시민들. 목포를 널리 알린 가수 이난영의 묘가 어디있는 줄도 모르는 경기도의 한 공동묘지에 외롭게 있었다는 사실이 늘 안타까웠다는 지역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 최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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