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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미수혐의'냐 아니면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위반혐의(이하 폭처법)'냐.

지난 15일 신촌에서 군용무기를 휘둘러 20대 시민에게 중상을 입힌 미군병사에 대한 경찰 초동수사가 소홀했다며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가해 미군에 대한 처벌조항 적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피해자 박흥식(27·회사원)씨는 18일 입원 중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하 평통사)' 관계자들에게 미군병사에게 흉기에 찔리는 상황을 재연했다. 또한 필담(筆談)을 통해 미군의 행위는 우발적 행위가 아닌 살인의도를 지닌 범죄라며 엄중한 처벌을 요구했다.

박씨는 직접 쓴 글에서 가해 미군이 "군용대검을 소지하고 다니는 것 자체가 언제 어디서든 살인을 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 같다"며 자신은 "칼(로 위협 당해) 반항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밝혔다. 또한 가해 미군이 자신의 뒤에서 목을 팔로 감아 흉기로 위협하면서 턱을 칼등의 톱날로 그은 뒤 목을 찔렀다고 당시 상황을 재연했다.

평통사는 18일 "박씨가 재연한 모습을 보면 가해미군은 마치 인질을 잡은 듯 박씨를 위협했으며 시민들이 말리는데도 칼을 돌려 목을 찌르고 달아났다"며 "20일 경찰의 미군조사를 예의 주시할 것이다. 이번 사건은 고의성이 분명한 살인미수"라고 주장했다.

'미군행위는 자기방어다?' 경찰 발언 둘러싸고 서대문서 비난여론 폭주

▲ 박씨가 메모지에 적은 글. 박씨와 가족들은 한국 정부가 가해미군에 대한 재판권을 행사해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평통사
일부 언론이 경찰의 초동수사를 문제 삼으면서 수사 관계자가 가해미군을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고 보도한 가운데 관련 경찰서 자유게시판에 비난 여론이 쏟아지는 등 파문이 커지고 있다.

한국일보는 지난 18일 '미군범죄에 또 솜방망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박씨를 칼로 찌른 주한미군 사건을 수사 중인 서대문경찰서 외사계 담당자가 "미군들은 나름대로 축제를 즐기고 있는데 한국 사람들이 우르르 덤벼드니까 자기 방어를 위해 칼을 휘두른 겁니다. 그걸 왜 이해를 못하죠?"라고 미군 공보관처럼 범인을 두둔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또한 "칼을 꺼내 든 것은 자기방어를 위한 것이고 C일병(가해미군)이 찔렀다기보다는 박씨가 옥신각신하다 찔렸다"는 등 경찰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또한 "영화속 인질극의 한 장면처럼 칼을 꺼내 박씨의 목을 대고 위협하다 사람들이 접근하자 왼쪽 목을 찔렀다는 게 사실이라면 살인미수 피의자에 해당돼 SOFA에 따라 경찰이 신병을 확보할 수 있다"고 비판 보도했다.

이 같은 보도 이후 서대문경찰서 홈페이지에는 비난 글들이 폭주하고 있다.

시민 이원상씨는 19일 "미국에서는 술 마시고 길을 막거나, 모르는 사람 앞에서 윗옷을 올렸다 내렸다 하거나, 남의 차를 두드리는 행위를 축제라고 부른다"며 "그들은 그러한 행위를 방해받았을 때는 칼을 뽑기도 한다. 누구나 축제를 즐길 자유가 있으므로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고 역설적 표현으로 경찰 발언을 문제삼았다.

시민 정태우씨는 19일 "대한민국 국민이 미군이 저지른 범죄행위와 같은 행위를 했다면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 묻고 싶다"며 "소파협정이나 외교적인 관계 등 일선 경찰서의 입장을 십분 이해는 하더라도 국민정서에 대한 일말의 고려는 왜 하지 않는지, 법적인 판단은 이후에 하더라도 행위 자체만으로 구속수사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경찰 "살인미수범이 되려면 살인에 고의가 있어야 한다"

▲ 서대문경찰서 외사계 입구 벽에 걸린 '베스트 수사반' 간판.
ⓒ 오마이뉴스 조호진
서대문경찰서 외사계 관계자는 19일 <오마이뉴스>에게 "한국일보 기자에게 그러한 발언을 한 적이 없다. 현장에 나오지도 않고 전화로만 취재해 썼다"며 "미군들이 외사계 사무실에서 '우리는 방어만 했을 뿐이다'라고 말한 내용을 기자가 조합하여 기사화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살인미수죄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충분하게 법률검토를 하여 폭처법 위반(흉기·상해)으로 의율(擬律-헤아려 법을 적용했다)한 것"이라며 "미군의 신원진술, 목격자 진술, 현장 사진, 증거품 확보 등 빠진 게 없이 기초조사를 했다"며 초동수사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에 대해 반박했다.

외사계 김모 계장은 시민단체 등에 보낸 해명 글에서 "살인미수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피의자 조사도 하지 않았는데 거론될 여지가 없다. 살인죄의 미수범이 되려면 살인에 고의가 있어야 한다"며 "20일 존 일병이 출두하면 살인미수 여부에 대하여 충분히 조사할 것이며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면 살인미수죄로 입건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계장은 또한 "SOFA 22조의 살인, 강간 등 중대한 범죄에 대하여는 대한민국이 재판권을 행사할 1차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 구금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며 "중대 범죄라 하더라도 SOFA에는 미군당국의 신병 요청시 인도하게 되어있으며 예비조사만 하도록 되어 있다"고 거듭 밝혔다.

서대문경찰서 관계자의 왜곡보도 주장에 대해 기사를 쓴 한국일보 신재연 기자는 19일 "경찰이 미군의 행위가 정당방위였다고 설명하면서 소매치기에게 손톱 깍기 칼을 휘두른 미군의 정당방위 판례까지 사례로 들었다"며 "경찰의 발언을 그대로 보도한 것이며 기사에 대해서는 책임질 자신이 있다"며 경찰의 반론보도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평통사는 19일 "비 공무 중 사건에 대해 한국이 1차적 재판권을 가지고 있다"며 "12개 중대범죄의 경우 재판절차가 종결되는 시점이 아니라 기소와 동시에 구금을 할 수 있다. (외사계)책임자가 이 정도도 몰라서야 어떻게…. 부끄럽고 분통이 터진다"고 경찰 관계자가 SOFA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존 일병 구금되지 않았다. 주한미군 처사는 국민분노 무시한 것"

▲ 평통사 사고 현장 주변에 플래카드를 걸어 목격자, 사진, 동영상 등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
ⓒ 평통사
평통사는 미8군이 흉기를 휘두른 존 일병을 구금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 단체는 18일 미8군에 전화를 한 결과, 존 일병은 유치장에 구금되지 않았으며 부대 밖 출입만 제한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는 부대 관계자의 답변을 들었다고 밝히며 분통을 터트렸다.

평통사는 "존 일병에 대한 주한미군의 처사는 신촌 미군 칼부림 난동사건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라며 "미국당국은 진심어린 사과나 재발방지 약속, SOFA전면개정 의사도 없이 가족들에게 위로금을 건네며 합의를 종요하고 의례적인 유감표명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반발하며 존 일병 구속처벌과 SOFA전면개정을 촉구했다.

평통사는 또한 "한국경찰이 이번 사건에 대해 수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상해죄로 단정짓는 등 축소·은폐를 기도하고 있는 데 대해 강력히 싸워나갈 것"이라며 "목격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증언을 수집하여 진상규명을 하고 존 일병 등 미군들에 대해 엄중 처벌할 근거를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마이뉴스>는 존 일병 상황과 대책을 확인하기 위해 미8군 담당자에게 수 차례 전화를 걸어 음성 메시지를 남겼으나 통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미군은 보도자료 배포를 통해 한 차례 유감을 표명하고 가족들에게 위로금 200만원을 전달했다.

가해미군 존 일병은 20일 낮 2시 서대문경찰서에 출두한다. 또한 평통사는 한 시간 전인 낮 1시 서대문경찰서에서 '신촌 칼부림난동 주한미군 규탄 기자회견'을 갖는다.

'살인미수죄'냐 '상해죄'냐에 신병확보 및 처벌 달라
평통사의 '신촌 미군난동' 사건 한미SOFA 적용 해석

평통사는 '신촌 미군난동' 사건과 관련해, 사건의 재판권을 한국이 행사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한미SOFA' 관련 조항을 해석하며 경찰수사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① [한미소파 본협정 제22조 3항 (나)]는 "(공무중 범죄가 아닌)기타 범죄에 관하여는 한국이 재판권을 행사할 제1차적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공무중 미군범죄가 아닌 이번 사건에 대한 1차적 재판권은 한국이 갖는다.

② [한미소파 양해사항 제22조 제5항 (다) 1.]는 "한국은 적절히 임명된 미국 대표의 입회하에 미국 군대 구성원·군속 또는 가족을 신문할 수 있으며 체포 후 신병을 미군당국에 인도하기 전에 사건에 대하여 예비수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의거하여 한국경찰은 사건현장에서 체포한 존 이병 등 미군들을 미군당국에 인도하기 전에 예비수사를 진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름과 소속을 확인하는 것 이상의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예비수사는 통상 체포한 범죄자의 범죄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기본적인 사항에 대한 수사를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경찰은 이번 사건의 증거인멸을 막고 엄중 처벌을 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할 수 있는 예비수사를 하지 않음으로써 직무를 유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③ [한미소파 합의의사록 제22조 제5항 (다)에 관하여 10.]은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미군당국의 구금하에 있는 경우 미 당국은 어느 때든지 한국 당국에 구금을 인도할 수 있다. ..."고 규정하고 있다. 또 같은 11.은 "미군 당국은 특정한 사건에 있어서 대한민국 당국이 구금 인도를 요청하는 어떠한 경우에도 호의적으로 고려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었던 흉악한 범죄사건으로 온 국민들에게 깊은 분노와 충격을 준 중대사건인 만큼 한국경찰이 존 이병 등 미군들을 구속수사해야 마땅하다. 따라서 한국사법당국은 위 규정에 의거하여 존 이병 등 미군들의 신병인도를 미군당국에 요청해야 한다. 미군당국도 이번 사건으로 인한 피해자 가족과 한국민의 분노와 충격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재발방지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이들의 신병을 한국에 즉시 인도하여야 할 것이다.

④ [한미소파 합의의사록 제22조 제5항 (다)에 관하여 3.]은 "...아래 유형의 범죄에 해당하고, 그 같은 구금의 상당한 이유와 필요가 있는 경우, 미군당국은 한국당국에 구금을 인도한다. (가) 살인, (나) 강간, (다) 석방대가금 취득 목적의 약취·유인, (라) 불법 마약거래, (마) 유통 목적의 불법 마약제조, (바) 방화, (사) 흉기 강도, (아) 위의 범죄의 미수, (자) 폭행치사 및 상해치사, (차)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사망 초래, (카) 교통사고로 사망 초래 후 도주, (타) 위의 범죄의 하나이상을 포함하는 보다 중한 범죄."고 규정하고 있다.

즉, 미국이 ③과 같은 한국의 신병인도 요청에 응하지 않는 한 12개 중대범죄에 대해서만 기소와 동시에 신병인도를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한국경찰이 이번 사건에 대해 상해죄를 적용할 경우 존 이병 등 미군들에 대한 신병인도는 재판종결 후에나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살인미수 의혹이 짙은 이번 사건에 대해 상해죄를 적용할 것인지, 아니면 살인미수죄를 적용할 것인지에 따라 존 이병 등 미군들에 대한 신병인도 시점 등 처벌정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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