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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말 모처럼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이기가 닿지 않는 곳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한편으로는 모니터 안의 속세(?)의 일에 마음이 가기도 했지만 계곡의 물소리, 바람소리에 몇 일이 금세 가버렸다.

휴가를 끝내고 돌아온 내 앞에 놓인 일상은 그렇게 녹록한 것은 아니었다. 계속해야 할 논쟁도 있었고 밀린 글도 있었다. 그러나 다시 뛰어든 어지러운 일상에 한줄기 계곡바람처럼 후련한 소식이 있었으니 그것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유시민의 '시민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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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병 들고 바리케이드로… 노무현에 대한 반칙 응징하겠다"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드로"라는 제목이 달린 그 인터뷰는 곳곳에 비장함이 묻어나 있었다. "노무현 지지자"라고 당당히 밝힌 그는 "노무현을 낙마시키려는 민주당 내의 반노·비노 그룹의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 사기행위에 대해 규탄하고 항의하는 시민, 지식인 사회의 목소리를 조직하겠다"며 그러기 위해 "한가하게 칼럼을 쓰고 있지 않을 것이며 반칙이 벌어지는 운동장에 룰을 세우기 위해 뛰어들겠다"는 말로 '절필선언'을 한 것이다.

우리의 정당사 최초로 역사적인 국민경선에 의해 뽑힌 민주당 후보를 지지도가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당 안팎에서 흔들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 유시민으로서는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드' 쳐진 곳으로 뛰어들어야 할 만큼 절박하게 다가왔음에 틀림없다. 한 행동하는 지식인의 배수진 앞에서의 이 선언은 휴가를 아직 갔다오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서늘한 계곡바람을 몰고 오지 않았을까.

한나라당은 그렇다치더라도, 수구언론은 왜 그토록 야비한가. 전체 신문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는, 소위 조·중·동으로 불리는 수구언론은 언론 본연의 사명은 내팽긴 채 사실왜곡과 교묘한 조작, 그리고 감정적 보도로 노무현 후보를 깎아 내리는 데 혈안이 되어왔다. 거기에 지식인 친위부대까지 동원하여 총체적인 '노무현 죽이기'로까지 나선 상황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민주당 내부에서는 도와주기는커녕 노 후보를 주저앉히기 위해 갖은 술수가 동원되고 있다. 정말 너무한 것 아닌가. 이런 상황이라면 비단 '노무현 지지자'뿐만 아니라 누구든 공분에 찬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노무현이 가는 곳마다 외면당하고, 모욕당하고, 냉대 받는 이런 터무니없는 상황에서 "옳고 그름의 잣대로 이 상황을 보려 하지 않는 지식인들"에게 향한 유시민의 문제제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특히 "옳고 그름의 잣대"라는 그의 말은 나에게 비수처럼 다가온다. 내가 그처럼 예리하게 사태를 직시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반성한다. 그는 노무현 지지자로서 노무현이 터무니없는 불공정게임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보다못해 나섰지만, 사실 이 문제는 어떤 후보를 지지하느냐의 문제를 떠나 정의감과 양심에 관련된 문제다.

사람들은 자기의 성향과 판단에 따라 누구든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의 잣대' 또는 '양심의 잣대'는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운동장에서 백태클하는 선수에게는 모든 관중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야유를 보내는 것처럼. 그러니 설사 나의 마음에 드는 후보가 아니라 하더라도 운동장에서 뛸 수 없을 정도로 파렴치한 반칙을 당한다면 휘슬을 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노무현이 아무런 타당한 이유 없이 곳곳에서 해코지 당하는 것을 보고도 그냥 모른 체하고 있는 것은 정의의 상실이며 비겁한 짓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황판단도 못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던 우리의 시민, 지식인 사회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끔 해준 그의 절필선언은 이 시대가 기다리던 그런 선언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나는 절필할 것도 없으니, 아무래도 그저 기꺼이 지지한다는 말은 해야할 것 같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작은 역할마저 포기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대선 게임이 어느 누구도 승복할 수 있는 공정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해 시민, 지식인사회는 눈 부릅뜨고 감시해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그 "반칙하는 선수를 규탄하는 관중" 속에 기꺼이 나의 작은 몸을 옮겨놓고 싶다.

유시민의 절필선언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하니리포터'에도 전송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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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철 기자는 카이스트의 감사와 연구교수를 지냈습니다. 친일청산에 관심이 많아 오래 민족문제연구소 지부장을 지내고, 운영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지금은 장준하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장준하부활시민연대'의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출강하면서 '코칭으로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와 '에듀코칭'을 통한 학교교육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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