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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2일 중국 최대 일간지 중에 하나인 진완빠오(今晩報)에 사과문이 하나 실렸다. 사고(啓事)의 내용은 "본간 11월 16일자에 수록된 '전설과 국민성'은 글쓴이의 완전히 작가적 관점일 뿐입니다. 만약에 한국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면, 우리 신문은 유감과 사의를 표시합니다."

정확히 살펴, 논리적인 오류가 아니면 사과문을 싣지 않는 중국 신문이 자사의 기자가 아니라 일반 기고문에 대해 사과문을 실은 이유는 무엇일까.

진완빠오는 스스로 밝히듯 11월 16일자 10면에 <전설과 국민성>이라는 칼럼을 실었다. 필자는 한국에서 우편으로 기고한 이화여대 객원교수 쿵칭동(孔慶東)이었다.

이 칼럼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한국인들은 습관적으로 매일 매일 거짓말을 하고 그런 습관이 든 원인은 거짓말(꾀)을 통해 위기를 모면하는 토끼를 옹호하는 '별주부전' 등 전설이 거짓말하는 것을 옹호하는 데서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민족성을 고치기 위해서는 충절과 정절을 중시하는 중국민족을 배우라는 것이다.(아래의 글 전문 참조)

칼럼인 만큼 필자의 자유권한이 있지만, 이 글은 스스로의 편견과 선입견을 드러내고 있고 심하게 보면 인종주의자의 모습까지 들어 있었다. 문제는 필자에게도 있지만 이런 글을 수록한 진완빠오 편집진에게도 어느 정도 문제가 없지 않다.

필자로서는 이 칼럼의 문제를 방관할 수 없었다. 갈수록 추락하는 한국인의 위상도 위상이지만, 한국에 대한 중국 지식인들의 관점이 변모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곧바로 편집을 책임지고 있는 중국 발행 주간 한글신문 '중국경제(www.chinaeconomy.co.kr)'에 원문과 더불어 <'한국인의 국민성은 교활함' 필자의 큰 오만>이라는 칼럼을 12월 1일자(80호)에 실었다.

관련기사: 중국 한글신문 '중국경제'에 발표한 반박 칼럼

적게는 수만에서 유동인구로 수십만에 달하는 한국인들의 자존심에 호소해서 이런 상황을 바로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물론 중국 유수의 매체에게 언론의 기능으로 허가받지 않은 한글신문이 그런 모험을 한다는 것은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칼럼을 묵과하는 것은 자존심뿐만 아니라, 추락하는 한국인의 위상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의 한국관에 곧바로 작용할 거라는 이유 때문이다.

유학생은 물론이고 기업가 등 많은 이들이 이 글을 읽고 분노를 표시했다. 하지만 직접적인 행동에 있어서는 냉담하기 그지 없었다. 이런 현상은 기자가 다양하게 활동하는 한국의 여론공간에서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은 우리의 잘못도 있으니 그러려니 넘어가자는 것이었다.

예상밖의 무반응에 혼란스러웠지만, 다음호에 생각을 같이 하는 톈진한국유학생회 이병필 회장에게 보내는 글과 더불어 반응이 없이 한국인들과 단체들에 대한 비판글을 썼다. 그 결과, 유학생회가 공안국과 신문측에 접촉하면서, 톈진의 가장 큰 한국인 단체라고 할 수 있는 톈진한국상회가 이 문제에 적극성을 띄기 시작했다.

15일에는 한국상회 등의 임원진과 진완빠오 부사장이나 공안당국 관련간부가 모여 문제를 숙의했고, 이 자리에서 어렵게 사과문 게재와 담당 편집차장의 인사조치를 약속했다. 22일 발행된 신문에 작지만 관련된 사과글을 실었다.

하지만 글을 쓴 쿵칭동 교수는 진완빠오에 보낸 해명서에서 사과의 의사를 표시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약속시간에 늦는 '코리안 타임'이라는 단어 등을 들어가며 분명한 사과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반면 그는 이화여대에서 객원교수로 활동하면서, 지난 15~16일 서울대에서 있었던 한국중국현대문학학회의 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석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베이징대학 학생회장이었으며, 지금은 베이징대학 교수로도 활동 중인 엘리트다. 그 오만한 글 속에 나타난 한국에 대한 멸시가 어떻게 변모할지 자못 걱정스럽다.

덧붙이는 글 | 진완빠오의 문제 칼럼 번역문

(진완빠오는 인구 천만의 톈진에서 발행하는 신문으로 전국지입니다. 톈진에서 최대부수를 자랑할 뿐만 아니라 중국 전역에서도 알려진 신문입니다.)

2000년 11월 16일 진완빠오(今晩報 ) - 今晩副刊
제목: 전설과 국민성(傳說與國民性)  글쓴이: 쿵칭둥(孔慶東)

한국사람들과 자주 거래하는 사람들에게 제일 골치아픈 일 중의 하나는 그들이 신용을 지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약속에 늦는다든가 약속을 아예 지키지 않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며, 자기가 금방 한 말도 얼마 안 가서 나몰라라하는 식이다.

아침에 한말 저녁이면 바꾸고 마음이 수시로 변하여 식언하는 일은 그들에게 있어서 마치 하루세끼 밥먹고 잠자는 것과도 같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들이 이렇게 한데는 특별한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며 단지 일종의 습관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들도 때로는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안그러냐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그후에도 여전히 마찬가지여서 정말로 울 지도 웃지도 못할 지경이다.

일본인들은 이를 과장하여 "매일매일 거짓말하는 민족"이라 일컫는다. 한국에 가있는 어느 한 중국단체는 처음 한국에 온 중국사람들에게 맨 먼저 권하는 말이 "한국사람들이 승인한 말을 진실이라 믿지 말라"는 것이다. 한국민족이 이러한 인상을 다른나라 사람들에게 주었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 아닌가! 그러나 하나의 습관이 보편적인 국민성으로 자릴 잡혔다는 것은 이 민족의 역사와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한국의 전설에서 그 원인을 얼마간 엿볼 수 있다.

'자라와 토끼이야기'이다. 백제가 신라를 침공하므로 신라는 김춘추를 고구려에 파견해 원조를 청한다. 고구려왕은 도와주는 대가로 신라땅 일부를 줄 것을 요구했고, 김춘추는 거절함으로써 감금당하여 죽음을 앞두게 된다.

이때 김 춘추는 고구려의 한 신하를 매수하였고, 그를 통해 '자라와 토끼이야기'를 듣게 된다. 동해의 용녀가 병이들어 토끼간이 약으로 필요했다. 자라가 육지에 올라와 토끼를 만나자 토끼에게 바다 속에 아름다운 신선섬(仙島)이 있으니 구경가 보자고 속여, 토끼를 데리고 깊은 바다속에 들어와 실정을 털어 놓는다.

토끼는 이 말을 듣고 놀라 꾀를 내, 자기는 신선토끼이기 때문에 간이 없어도 살 수 있으며, 지금 간을 꺼내 씻어 바다위에 말리고 있으니 가서 가져오겠노라 하고, 육지에 올라와 도망가 버렸다는 내용이다.

김춘추는 이 이야기를 듣고 꾀를 내어 고구려의 요구를 들어주겠노라 하고 풀려나 국경을 넘자마자 자신이 한 약속은 지킬 수 없으며 단지 살기 위해서 한 말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후 김춘추는 당나라에 원조를 청했고 당의 도움으로 백제, 고구려를 멸하고, 삼국을 통일시켰으며 제29대 통일신라국왕이 되었다.

한국인들은 이 전설이야기를 '지혜'의 상징으로 세세대대로 전해 왔으며, 이에 관한 '별주 부전'과 같은 판소리형식의 책자까지도 나와있다.

그들은 이 이야기속에 내포된 또 다른 의미는 간과하고 있다. 이 전설에는 위험한 논리가 깃들어 있다. 생존을 위해서는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라와 토끼이야기'와 같이 고구려왕과 김춘추는 모두 믿음성보다는 생존을 중요시했는데, 그들간의 차이는 지력(智力)에 있을 뿐, 도덕적 측면에서 볼 때 똑같은 '실용 기회주의'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이와 비교해 볼 때, 중국의 전설은 대게 '믿음은 생명이상'이라는 주제가 대다수다. 승낙한 일에 대해서는 아무리 큰 희생이 있더라도 꼭 약속을 지킨다는 것이다.

미생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다리기둥을 붙잡고 죽은 이야기, 상앙 이 신용을 지키기 위해 일목백금탄 이야기, 항우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므로 천하를 잃은 이야기, 진세미가 불법으로 재혼하여 머리를 잘린 이야기들은 역대 진, 한, 당(秦漢唐) 에서 신중국에 이르기까지 신용과 의리로써 나라를 세우는 것이 중화민족의 근본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중국이 대국으로서 인의가 두터운 왕자품격으로 형성된 것은 이러한 역사에 의해서일 것이다. 한국은 자고로 깊은 고난과 역경속에서 이루어진 나라이고 강대국의 틈새에서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려야 했던 것쯤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경제적으로 세계20위의 자리를 차지 하고 있으며 스스로가 "세계에서 제일 우수한 한국문화"라고 부르짖지 않는가! 21세기의 배경에서 좀더 시야를 넓혀 '자라와 토끼'의 잔머리는 버리고, 기러기나 백조를 본 받아 높이 날아야 할 것이라고 본다.

이는 한국민족의 이미지 개선이나 한국민족 지위의 향상을 위해, 나아가 동남아 전세계의 단결과 협력에 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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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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