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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 에너지 법안 자료.
 클린 에너지 법안 자료.
ⓒ 호주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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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기상 이변으로 인한 재해가 한국을 강타했다. 기후 변화의 심각성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호주에서도 몇 년 전에는 모진 가뭄이, 재작년에는 호된 산불이, 작년에는 처참한 홍수가 국민들을 울렸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나라별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한 교토의정서 이후에도 각국 정부는 이래저래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세금 문제와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금은 정권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고, 눈앞의 경제 상황과 정권의 인기는 내일의 기후 변화보다 확실하게 다가온다.

자국 상공에 커다란 오존홀이 뚫려 있기에 환경 문제에 민감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호주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전 총리인 케빈 러드(현 외교부 장관)는 세금 문제로 총리 자리에서 밀려났다. 케빈 러드는 광산업체에 환경 관련 세금을 부과하려다 역풍을 맞고 지지율이 하락한 상황에서, 줄리아 길러드에게 총리와 노동당 대표 자리를 내줬다.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 탄소세 문제

줄리아 길러드 총리는 지난해 취임 직후 "재임 중 탄소세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올해 7월 태도를 바꿔, 내년 7월부터 탄소 배출량이 많은 기업을 대상으로 탄소세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줄리아 길러드 총리는 물론 집권 노동당 자체가 위태로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탄소세 도입은 지지율 급락으로 고민하던 줄리아 길러드 총리가 던진 정치적 승부수였다.

그러나 탄소세 도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만만찮았다. 7월 10일(이하 현지 시각) 이 법안이 처음 공시됐을 때 여론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야당인 자유당의 당수 토니 애보트는 '다른 나라들은 탄소세를 도입하지 않았는데 왜 호주가 먼저 탄소세를 도입해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려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호주 경제의 쌍두마차인 광산업·관광업계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의 대한항공에 해당하는 국적항공사 콴타스는 탄소세가 도입되면 자사의 추가 부담액이 연간 1억1500만 호주달러에 이를 것이며, 이에 따라 승객들이 국내선 편도 기준으로 약 3.5호주달러를 더 부담해야 할 것이라 주장했다.

철강 재벌인 행콕 프로스펙팅의 회장 지나 라인하트를 위시한 광산업계 관계자들도 호주 지하자원의 경쟁력 저하를 우려했다. 존 페글러 호주석탄협회 회장은 정부가 탄소세의 부정적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존 페글러 회장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경제성장 속도가 둔화돼 호주의 석탄 수출이 3분의 1 정도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견한 점을 들어, 클린 에너지 정책 시행 시점이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반대론자들은 탄소세를 도입하면 에너지 관련 비용이 늘고, 기업이 소비자에게 그 비용을 전가해 물가가 오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각 가정이 부담해야 하는 전기세와 교통비도 늘어날 것이며, 기업의 비용 부담이 증가하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가 탄소세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직후 호주의 한 뉴스 사이트(news.com.au)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2만4000여 명의 응답자 중 69퍼센트가 새로운 세금에 반대했다. 또한 응답자의 67퍼센트는 탄소세에 찬성하는 노동당이나 녹색당이 아닌 다른 정당에 투표할 것이라고 답했다.

시드니 하이드파크에서 열린 탄소세 도입 반대 시위.
 시드니 하이드파크에서 열린 탄소세 도입 반대 시위.
ⓒ www.news.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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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세 법안 하원 표결을 승리로 이끈 포괄적 정책 접근

노동당은 탄소세를 포함한 클린 에너지 법안의 하원 통과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현직 수상 줄리아 길라드는 물론 전직 수상 케빈 러드까지 나서 캠페인을 벌였다. 호주의 유명 배우인 케이트 블란쳇도 이 캠페인에 동참했다.

10월 12일, 하원에서 클린 에너지 법안 표결이 이뤄졌다. 74대 72. 줄리아 길러드 총리의 승리였다. 패배한 반대론자들은 탄소세 표결 승리 직후 총리가 연설할 때 몇 번이나 말을 가로막는 등 격한 반응을 보였다. 자유당 당수 토니 애보트는 탄소세 관련 법안을 무효화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지만 탄소세 입법 전망은 낙관적이다. 상원 비준 절차가 남긴 했지만, 탄소세에 찬성하는 노동당(31석)과 녹색당(9석) 의석을 합하면 상원 전체 의석(76)의 절반을 넘기 때문이다.

법안이 실행되면 탄소 배출 상위 500개 기업은 내년 7월 1일부터 3년간 톤당 23호주달러의 탄소세를 납세해야 한다. 그 후 탄소세 금액은 시장 상황에 맞춰 조정된다. 석탄을 이용한 발전 비율이 80%에 이르는 호주는 현재 매년 5억 톤의 탄소를 배출하고 있고, 1인당 배출량은 미국보다 많다. 정부는 탄소세 정책을 통해 2050년에는 2000년 탄소 배출량의 80%까지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대가 적지 않았음에도 탄소세 법안이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은 포괄적인 정책적 접근 덕분으로 보인다. 호주 정부는 탄소세 도입을 클린 에너지 법안이라는 패키지의 하나로 소개했다. 이 패키지는 탄소세라는 쓴 약을 일자리 유지, 자원 관련 업계 지원책, 가정에 대한 보조금 증가와 세제 개혁 등으로 잘 포장해 내놓았다.

여기에서 증가된 세수입을 단기적으로는 충격 완화에, 장기적으로는 화석연료 수출국인 호주를 친환경 에너지 기술 선진국으로 구조 조정하는 데 쓰겠다는 호주 정부의 야심을 엿볼 수 있다. 그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전문가들의 탄소세 비용 계산 → 기업의 탄소세 납부 → 가정 및 환경 친화적 에너지 개발 작업에 비용 지원 → 환경 부문 일자리 창출 및 환경 보호.

이 중 산업 부문과 관련해 정부는 석탄 산업, 국제 경쟁력 유지가 필요한 자원 사업, 제조업 등을 지원 산업으로 정의하고 다음과 같이 일자리 유지, 친환경 기술 개발, 장비 개선 등을 지원한다.

▲ 경쟁력 유지가 필요한 자원 사업으로 철강, 콘크리트, 시멘트와 아연 가공 산업을 지정 : 해당 산업은 탄소세 납부로 비용 상승이 불가피하다. 그 비용을 즉각적으로 반영하면 세계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약해진다. 이를 감안해 법안 실행 후 첫 3년 동안 92억 호주달러를 지원한다. 환경 친화적으로 생산 과정을 재정비할 유보 기간을 부여한 셈이다.
▲ 철강·석탄 부문 추가 지원 및 탄광촌 일자리 보존을 위한 지원책 마련.
▲ 환경 기술 개발 및 설비 업그레이드를 포괄적으로 지원 : 탄소 배출 산업의 친환경화, 친환경 에너지 산업 육성, 일자리 창출.

참고로, 법안을 반대하던 지나 라인하트는 법안이 통과된 후인 10월 27일, 상승한 비용을 상쇄하기 위해 광산업계에 탐사비 인센티브를 부여하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태도를 바꿨다.


또한 개인 및 가정 경제와 관련해 호주 정부는 중산층과 저소득층, 연금 생활자 등에 대한 지원 및 세제 개선책을 발표했다. 1년 수입이 10만 호주달러이고 10대 자녀를 두 명 둔 가정이 탄소세 도입 후 평균 653호주달러를 추가로 지출할 것으로 추산했을 때, 이 가정에 대한 지원금과 환급하는 세금을 합하면 총 679호주달러가 된다는 것. 즉 26호주달러의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 정부의 분석이다.

호주 정부는 이번 법안 발표 전부터 다양한 방식을 통해 각 가정이 환경 친화적인 시스템을 갖추도록 독려해 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2010년에 시작한 태양열 온수 시스템 리베이트다. 탄소 발생을 줄이는 해당 온수 시스템을 설치하는 가정에 설치비 일부를 리베이트 형식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물을 덥히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탄소는 가정에서 방출하는 전체 탄소의 약 23%를 차지하는 가장 큰 환경 오염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호주 정부는 '클라이밋 스마트 홈(Climate Smart Home)' 캠페인을 통해 일반 가정에 전기 기술자를 파견해 50호주달러에 각 가정의 에너지 소비량 점검 서비스를 실시하고 물 절약 샤워기, 고효율 형광등 등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했다. 이처럼 호주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끊임없이 각 개인에게 자원 절약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탄소세에 대한 호주 국민들의 반응은 아직 미지근하다. 그러나 호주 국민들은 에너지 절약 독려 정책에 대해서는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많은 가정은 태양열 온수 시스템 리베이트 실시 후 지붕에 태양열 전지를 설치했다. 약 3개월 전 태양열 온수 시스템과 함께 태양열 발전 전지도 설치한 마일즈씨는 설치 후 집에서 만든 전기량이 사용한 전기량보다 많아 전기세를 전혀 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200여 호주달러를 전기회사에서 받게 됐다고 말했다.

태양열 전지와 태양열 온수 시스템을 설치한 주택.
 태양열 전지와 태양열 온수 시스템을 설치한 주택.
ⓒ 강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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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세가 필요한 이유

화석연료는 유한하다. 생태계도 유한하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나라는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화석연료를 펑펑 쓰고 있다. 환경세에 찬성하는 경제학자이자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은 환경세의 당위성을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설명한다.

"자유 시장 체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진정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는 한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효율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환경 문제는 행위에 대한 개인적인 비용이 진정한 사회적 비용을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을 포함하고 있다. 한 기업이 강물을 오염시키는 것은 그 기업이 석탄을 태울 때만큼이나 똑같이 확실하게 사회자원의 일부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기업이 석탄 값은 내면서도 맑은 물을 쓰는 값은 내지 않는다면, 그 기업의 경영은 석탄을 쓰는 데는 경제적이지만 물을 쓰는 데는 낭비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폴 크루그먼은 또한 공해세를 신설하고 세제를 적절히 개편하면 국내총생산(GDP)을 소폭 상승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 4월 27일 한국에서 열린 국제 포럼 '환경 친화적 조세, 재정정책과 녹색 성장'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탄소세 등 환경 세제를 강화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성장에 힘을 실어주는 정책이라 언급했다. 

탄소 배출권과 그 교환 시장이라는 새로운 국제 시스템 역시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호주에서 클린 에너지 법안이 통과된 10월 12일, <가디언> 칼럼니스트 브리오니 워싱턴은 탄소 시장에 먼저 진입한 유럽에서 런던이 유럽 탄소 시장의 중심이 된 것을 예로 들며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보다 탄소 배출권 시장에 먼저 진입한 호주가 이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호주 정부는 클린 에너지 법안 도입 배경의 하나로 '기후 변화를 저지하는 비용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드는 비용보다 적다'는 것을 제시했다. 이 말에는 호주 정부 차원의 치밀한 계산이 숨어 있는 듯하다. 다름이 아니라 환경·에너지 산업 선진국으로 구조 조정하고, 탄소 배출권 시장에 먼저 진입하며, 청정한 환경을 보존해 주요 관광국으로서 지위를 유지한다는 의도다.

호주는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풍광이 아름다워 "행운의 나라(Lucky Country)"로 불려왔다. 클린 에너지 법안에 담긴 정부의 의도가 적중한다면 호주는 앞으로도 "행운의 나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탄소세 정책의 결과는 아직 장담할 수 없으나, 주요 수입원인 화석연료 수출 및 관련 대기업 지원이라는 편한 길을 버리고 먼저 변화의 길로 뛰어든 줄리아 길러드 정부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태그:#탄소세, #기후 변화,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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