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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심야 통행금지가 해제되면서, 새벽까지 술에 취해 돌아다니는 미군들이 부쩍 많아졌다. 한 번은 가게 앞에 오줌을 누는 걸 보고 나무랐더니, 주먹으로 때리려고 해 깜짝 놀랐다."

"영외 거주하는 미군들이 파티를 한다고 음악을 틀어 놓고 밤새도록 시끄럽게 굴어 항의했더니, 욕설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놀리더라. 경찰에 신고 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한국 군인들이 부대 밖에서 밤새 술먹고 민간인들에게 행패를 부린다고 상상할 수 있나? 그런데 이곳에서 미군들은 매일 같이 그런 짓거리들을 하고 있다." 

지난 24일 새벽 동두천시 지행동의 한 고시텔에서 일어난 주한 미군의 10대 여성 성폭행 사건을 대하는 동두천 시민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그동안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는 반응이었다.

미 제 2사단 소속 잭슨(21) 이병은 지난 24일 새벽 4시경 술에 취한 채 고시텔에 들어가 TV를 시청하던 A(18)양을 흉기로 위협한 뒤 성폭행하고 5000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범행 당시 잭슨 이병은 흉기로 A양을 위협하고 4시간 동안 수차례 성폭행했다. A양은 반항하는 과정에서 오른손 엄지와 검지 사이가 약 2cm 정도 찢어지는 상처를 입었다.

경찰은 24일 오전 8시 50분께 A양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고시텔 인근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으로 잭슨 이병의 신원을 확인한 뒤, 미군 쪽에 통보해 26일 출석하도록 해 조사했다. 잭슨 이병은 경찰 조사에서 "술에 취해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고시텔에 들어가 범행을 저지른 것 같다"며 범행을 시인했다.

보산동의 '캠프 케이시'로부터 직선거리로 2.5Km 가량 떨어져 있는 지행동은 아파트 단지와 상가가 밀집한 신도시 지역이다. 이곳에 있는 고시텔들은 상가 건물의 1~2개 층을 임대해 입주해 있다. 술집과 노래방, 당구장, 모텔 등 유흥업소들이 밀집해 있어 미군들도 지하철로 두 정거장 떨어진 이곳까지 놀러 오는 일이 많다고 주민들은 말했다.

범행이 벌어진 고시텔도 상가 건물 4층에 있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A양은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월세 25만 원을 내고 고시텔 생활을 하고 있었다.

A양이 4시간이나 성폭행을 당했는데, 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시텔 관계자는 "원룸식 구조인데다가 월세를 내고 한달 단위로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다 보니 어느 방에 누가 있는지 알기 힘들다"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미군 심야 통행금지 해제 이후 미군범죄 증가세

지난 24일 새벽 미군 병사에 의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난 동두천시 지행동 일대 상가 모습. (사진 속의 고시텔은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음)
▲ 동두천시 지행동 지난 24일 새벽 미군 병사에 의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난 동두천시 지행동 일대 상가 모습. (사진 속의 고시텔은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음)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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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은 9·11테러가 발생한 지난 2001년 9월부터 미군 장병들에 대해 자정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영외활동을 금지하는 심야 통행금지를 실시해 왔다. 하지만 주한 미군 사령부는 지난해 7월 2일자로 이 조치를 해제했다.

"한국은 주한미군 장병 가족들이 생활하기에 안전한 곳이고 우리가 근무정상화를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 통금을 해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 월터 샤프 당시 주한 미군사령관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통행금지 해제조치 이후 동두천과 의정부, 이태원 등지에서 미군들의 행패가 늘어나고 있어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물론 통금 해제 조치 이전에도 미군에 의한 강력범죄는 계속 발생했지만 미군의 범죄율은 통행금지 해제 조치 이후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경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통금이 실시되던 지난해 1월부터 6월까지 미군이 저지른 강도, 강간, 절도, 폭력, 지능 범죄는 93건이었지만 통금이 해제된 7월 이후 12월까지는 103건으로 6개월 사이에 10% 이상 늘었다. 또 이 기간 폭력을 제외한 강도와 성폭행, 절도, 지능범죄 등 주요 범죄도 모두 늘었다.

올 2월 26일에는 미 2사단 소속 L이병이 동두천시 보산동의 한 가정집에 침입해 70대 노부부를 폭행하고 부인을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휴대전화를 빼앗아 달아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야간 통행금지 조치가 해제된 후 일어난 이 사건 당시 L이병은 부대 밖에서 밤새 술을 마시고 오전 9시경 범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은 지난 4월 L이병에게 징역 7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30일 낮 경기북부진보연대 회원들이 동두천시 보산동 '캠프 케이시' 정문 앞에서 주한미군에 의한 10대 여성 성폭행 사건과 관련, 범인의 구속수사와 불평등한 SOFA 협정 개정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불평등한 SOFA 개정 촉구 기자회견 30일 낮 경기북부진보연대 회원들이 동두천시 보산동 '캠프 케이시' 정문 앞에서 주한미군에 의한 10대 여성 성폭행 사건과 관련, 범인의 구속수사와 불평등한 SOFA 협정 개정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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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미군 통행금지 다시 실시해야"

한편 경기북부진보연대(아래 진보연대)는 30일 낮 동두천시 보산동 '캠프 케이시'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잭슨 이병의 즉각적인 구속수사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공식 사과, 불평등한 SOFA 전면 개정, 이에 대한 재발방지대책으로 미군 야간통행 금지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했다.

진보연대는 "70대 노부부를 둔기로 폭행한 사건이 지워지기도 전에 이번에는 10대 여학생을 성폭행한 미군 범죄가 발생했다"며 미국 대통령의 공개 사과를 촉구했다.

이어 진보연대는 이번 사건이 "주거공간에 새벽에 침입해서 청소년을 성폭행한 최고의 악질범죄로서 한국 사법당국은 범죄자를 법정 최고형으로 구속 수사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이들은 불평등한 SOFA 규정이 미군 범죄를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주한미군이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현행범이 아닌 경우 미군 측에서 신병 인도 요청을 하면 SOFA 규정에 따라 넘겨줘야 하는 규정 때문에 미군들은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부대 안으로 들어가면 죄를 피할 수 있다고 여긴다는 것.

진보연대는 "주한미군의 야간 통행금지 전면 해제와 더불어 미군 범죄가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미군 당국은 야간통행금지 정책을 즉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정부지검은 이날 오후 5시 55분경 이번 사건이 사회적으로 중대한 사안이며 도주 우려와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잭슨 이병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영장실질심사는 10월 1일 오후 3시 의정부지법 8호법정에서 열릴 예정이다.


태그:#SOFA, #미군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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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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