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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의 대변인이 되고 싶습니다. 청소 노동자들의 희망이 되고 싶고요. 이 당은 노동자이자 비정규직이자 청소 노동자인 저에게 비례대표 1번을 줬습니다. 이게 진보신당이 다른 당과 다른 점입니다."

 

영락없는 '울산 아지메'인 김순자 진보신당 비례대표 후보에게서는 '정치가'다운 결의가 묻어났다. 18일 오후 진보신당 당사에서 만난 김 후보는 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를 할 때마다 손을 힘껏 움켜쥐었다. 지난 10년의 '청소노동자' 생활 속에서, 울산과학대 비정규직 노조를 만든 후 발생한 계약해지에 맞선 싸움 속에서 갖게 된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는 '배제된 자의 서사'를 비례대표 전략으로 내세운 진보신당의 1번 카드다. 그의 서사는 역시나 비정규직으로서 '김순자'의 인생이다. 정규직의 1/3인 60만 원밖에 받지 못하는 임금, 쉴 공간 하나 없는 일터, 점심밥조차 주지 않는 비인간적 대우에 김 후보는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비정규직 노조를 결성했다. 결과는 계약해지였다.

 

8명의 조합원은 "근로기준법 준수라는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데 이게 안 먹히면 사회 정의는 무너지고 없는 거야, 내가 나가는 한이 있어도 책임질게, 함께 가자"는 김 후보의 설득에 마음을 다졌다.

 

"단식을 우에 하노~" 방법도 몰랐던 아줌마들, 청국장으로 투쟁

 

그러나 투쟁 방법조차 몰랐다. 남성들만 가득한 다른 노조에 물으니 '단식, 삭발 아니면 목을 매라' 세 가지 방법만 알려주더란다.

 

"단식을 우에 하노, 여자가 머리를 우에 깎노~."

 

손사래 친 조합원들은 아줌마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학교 본관 앞에서 청국장을 지지고 젓국을 끓이며 '냄새'로 그들의 목소리를 알렸다. 학교를 점거하다가 알몸으로 쫓겨나는 일까지 겪었다.

 

해도 해도 안 되니 조합원들은 울산과학대 이사장인 정몽준 의원 사무실 점거에까지 나섰다. 선글라스와 모자로 위장을 해도 쫓겨나기를 여러 차례, 아예 사무실 건물 밖에서 노숙 농성 자리를 깔았다. 천연덕스럽게 라면을 끓여 먹고 진을 치는 이들에게 두 손 든 정 의원 측은 학교 측과의 교섭 자리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7번의 지리한 교섭 끝에, 조합원들은 재고용 약속을 받아냈다. 76일 투쟁의 성과였다. 이제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은 당직비도 받고 점심밥도 제공받는다. 휴일도 보장받게 됐다.

 

국회에 입성해서 하고 싶은 것도, 투쟁을 통해 일궈낸 것과 다를 바 없다. 김 후보는 "청소노동자들이 잠시라도 쉴 수 있는 휴게 공간을 만들고 싶다"며 "관공서 건물을 지을 때부터 휴게 공간이 마련되도록 건축법상의 조항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것이 그의 1번 공약이다. '노동자에게 따뜻한 점심밥 먹이기'도 해내고 싶은 일 중 하나다.

 

김 후보는 "비정규직의 60% 가량이 여성이다, 이들이 지금 통곡을 하며 울부짖고 있다"며 "여성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김 후보가 의원이 되려면 진보신당이 3% 이상의 정당 지지율을 획득해야 하는 상황. 김 후보는 "국민들이 이번 공천에 관심이 많은데, 결과를 보면 누가 진짜 진보인지 판가름 날 것"이라며 "통합진보당은 정치는 자기들이 다하고 비정규직은 들러리 세우더라, 통합진보당의 '노동자가 배제된 공천' 등의 모습을 알리면 진보신당의 지지율도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진보신당은 김 후보 외에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 이명희 평택교육생협 이사, 희망버스로 구속됐던 정진우 진보신당 비정규노동실장, 장혜옥 전 전교조 위원장,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박은지 진보신당 대변인 순으로 비례대표를 배치했다. 진보신당의 '배제된 자의 서사' 전략이 얼만큼 대중 속에 스며들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른 진보 정당들 '노동자정치 한다'며 뭐했나, 장난치지 말라"

 

다음은 김순자 후보와 나눈 일문일답 전문이다.

 

- 비례대표로 정치에 도전했다. 어떤 마음에서 출마를 결심하게 됐나.

"비정규직의 대변인이 되고 싶다. 청소 노동자들의 희망이 되고 싶다. 그래서 출마를 결심 하게 됐다. 사람들은 왜 하필 진보신당이냐고 묻는다. 다른 당은 나를 불러주지 않았다. 정치는 자기들이 다 하고 비정규직은 들러리 세우더라.

 

울산과학대 밑에 시장이 있는데 통합진보당이 비정규직들을 방송차 앞에 세워놓고 유세를 하더라. 이런 게 들러리다. 노동자들 데리고 장난치지 말라. 공천을 봐도 그렇다. 통합진보당은 말로만 '노동자를 위한 정치를 한다'면서 비례대표나 지역구 후보로 노동자를 전면에 내세웠나. 말과 행동이 다르다. 이 당은 노동자이자 비정규직이자 청소노동자인 내게 비례대표 1번을 줬다. 이게 다르다."

 

-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

"열흘 정도 고민했다. 딸은 '엄마 멋있다'며 지지해줬다. 지역의 조합원들과도 많이 상의를 했는데 '해봐라' 하기도 하고 '아이고 마소' 하기도 하더라. 조합원들의 걱정은 '언니가 없으면 학교에서 탄압 들어올 텐데'였다. 그런데 내가 의원이 되면 오히려 더 함부로 못할 것이다.

 

우리 조합도 중요하지만 좀 더 크게 활동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서 얘기해 보며,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다. 비정규직 여성들 대부분이 가장이다. 절박한 얘기 들으면 눈물이 핑 돈다. 나 역시 가장이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항상 고민해왔다."

 

- 청소노동자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1993년에 남편을 잃고 갖고 있던 집을 세놔 그걸 가지고 생활했다. 그러다 딸아이가 대학을 가니 그걸로 버티지 못하고 빚을 지게 되더라. 결국 나이 50이 다 돼서 일을 하려다 보니 청소밖에 할 게 없더라. 2003년부터 울산과학대에서 60만 원 받고 일했다."

 

- 노조 가입은 어떻게 하게 됐나.

"주간 청소를 하게 되니 관리자가 많아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반장 말 잘 들어라' 하는 얘기를 점심 때마다 들었다. 학교에도 같은 일을 하는 직영 정규직 근로자들이 있었는데, 월급이 250만 원에 보너스를 1000% 받더라. 우리에겐 당직비도 안 줬다. 휴가는 물론 없었고 밥도 주지 않았다. 형무소도 밥을 주는데 청소 노동자에게는 왜 밥을 안 주나. 우리를 무시하는 거다. 쉴 공간 한 평조차 없었다. 점점 분노가 쌓였다.

 

그러다가 정규직 노조가 가입을 권했다. 나는 비정규직은 노조 가입도 안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노조에 가입해야 노동조건이 좋아지겠더라. 함께 청소하는 11명 중에 8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이후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었는데 회사에서는 일방적으로 계약해지해 버렸다. 다른 조합원들에게 '믿고 함께 가자. 근로기준법 준수라는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데 이게 안 되면 우리 사회 정의는 무너지고 없는 것이다. 우리가 뭘 잘못했나. 내가 나가는 한이 있어도 책임질게, 함께 가자'고 설득했다.

 

막상 투쟁을 시작하려니 나이 오십 넘은 아줌마들이 투쟁 방법을 알았겠나. 현대중공업 노조에 방법을 물어보니 딱 세 가지 알려주더라. '단식을 해라, 머리를 깎아라, 목을 매라.' 조합원들은 '단식을 우에 하노, 여자가 머리를 우에 깎노, 할 수 있는 걸로 하자'더라.

 

학교 본관 앞에서 청국장을 지지고 젓국을 끓여서 냄새를 피워 투쟁했다. 학교에서 감당이 안 되나 보더라. 그러다가 학교 이사장인 정몽준 의원 사무실로 가자고 결의가 모아졌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의원실 밖에서 노숙 투쟁을 하게 됐다. 라면 끓여 먹고 거기서 진을 치니까 그 때부터 교섭이 좀 되더라.

 

7차 교섭 끝에 '연대 노조 조합원은 고용한다'는 조항을 받아냈다. 그날 생각을 하면 지금도 기분이 좋다. 목숨 걸고 덤비면 겁을 내더라. 다부지게 죽기 아니고 살기로 덤비면 되더라."

 

"청소 노동자들이 잠시라도 쉴 수 있는 휴게 공간 만들고 싶어"

 

- 의원이 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청소노동자들이 잠시라도 쉴 수 있는 휴게 공간을 만들고 싶다. 한 사람이 쓰는 학장실은 20평인데 청소노동자들이 쉴 단 한 평도 없는 게 말이 되나. 관공서 건물을 지을 때부터 휴게 공간이 마련되도록 건축법상의 조항을 만들고 싶다. 노동자에게 따뜻한 점심밥을 먹이는 것 꼭 하고 싶다. 노동법에 해당 조항을 마련하고 싶다.

 

정규직들의 비정규직 외면도 공론화 하고 싶다. 현대중공업의 한 비정규직은 '회사보다 정규직이 더 밉다'고 하더라. 오죽 하면 그렇겠나. 정규직은 자기들이 배부르니까 현재 상황에 대해 크게 답답한 게 없는 것 같다.

 

우리 학교 정규직들도 보너스를 1000% 받으면서 우리한테 10원 한 푼 안 줬다. 낮은 곳을 보는 것이 노조 아닌가. 그럴 거면 노조 조끼를 입고 다니지도 말아야 한다. 오히려 비정규직을 탄압하고 밀어내려 한다. 앞으로 정규직들이 정년을 채우고 떠나면 비정규직밖에 안 남을 것이다. 내 자식들도 다 비정규직으로 갈 것이다. 비정규직이 노동운동의 핵심이다.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고 싶다."

 

- 비례대표 의원이 되려면, 진보신당이 3% 이상의 지지율을 얻어야 한다. 이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전국에 청소노동자가 정말 많다. 대학과 병원을 찾아다니면서 '청소노동자도 국회의원 될 수 있다, 청소노동자 의원이 되면 이런 걸 하겠다'고 알리겠다. 국민들이 공천에도 관심이 많지 않나. 이번 공천 결과를 보며 누가 진보인지 판가름 날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노동자가 배제된 공천' 등의 모습을 알려내면 진보신당의 지지율도 올라갈 것이다."

 

- 마직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비정규직의 60% 가량이 여성이다. 이들이 지금 통곡을 하면서 울부짖고 있다. 여성들이 울고 있으면 이 나라가 바로 되겠냐. 여성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더불어 언론에서 우리한테 너무 관심이 없는 것 같더라. 며칠 전에 울산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해도 관심이 없더라. 기자들이 많이 와서 7시, 9시 뉴스 나올 줄 알았는데 TV에도 안 나오더라. 기자들도 청소 아줌마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 안 되지 않겠나."


태그:#진보신당 , #비례대표 , #김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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