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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이 밝았다. 사람들은 새로운 계획을 세우며 새해를 축하하기 바쁘지만, 현재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구직자들은 새해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취업원서에 기재해야 하는 나이는 현실적으로 어릴수록 유리하며, 나이를 먹었다는 건 그만큼 젊은 경쟁자들이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여성 구직자의 경우에는 그 한 살이 더욱 야속하다. 남성들은 그나마 나이에 대한 차별을 덜 받는 편이지만, 여성은 결혼과 육아가 맞물려 취업에 영향을 끼친다. 게다가 나이를 먹을수록 달라지는 외모는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이 사회에서 취업을 방해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여성의 외모는 선시장에서뿐만 아니라 취업시장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설마 아직까지 우리 사회의 여성취업률이 여성의 나이와 외모에 좌우되느냐고? 비극적이지만 사실이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어리고 예뻐야 하며, 미혼이면 더 좋다. 못 믿겠다고? 그럼 다음의 사례들을 보자.

이직 위해 이력서 내자, 돌아온 대답 "혹시 임신 중인가요?"

아이를 안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여성(자료사진)
 아이를 안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여성(자료사진)
ⓒ 박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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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 기혼여성인 A씨는 제약회사 근무 10년 차다. 첫째 출산 후 3개월의 출산 휴가를 쓴 후, 서울에서 3시간 반이 걸리는 지방에 있는 친정에 아이를 맡기고 복직했다. 매주 아이를 보러 친정에 다니며 고단한 회사 생활을 1년 넘게 하고 있다.

그렇게 지내다가, 얼마 전에 같은 직종의 외국계 회사에 이력서를 냈다. 소식이 없어 포기하던 차, 면접을 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지금 회사보다 좋은 조건에 무엇보다 집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면접 전 인사담당자와 전화로 일정을 조정하던 중 다음과 같은 물음이 전해졌다.

"그런데 혹시 임신 중인가요?"
"네, 그런데요·…."
"아, 네…. 본사와 협의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A씨는 현재 둘째 임신 5개월이었다. 임신 사실을 말하지 말까 잠시 고민했지만, 면접에서 부른 배를 숨길 방법이 없어 사실대로 말해야 했다. 얼마 후 다시 연락이 왔다.

"A씨와 꼭 일을 같이 하고 싶은데, 지금 저희 회사에 출산 휴가를 낸 직원이 몇 명 있어 본사에서 임신 여성 채용은 안 된다고 연락이 왔네요. 출산 후 다시 한 번 연락 주십시오."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외국계 회사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했던 일말의 희망이 무너졌다. A씨는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지하철을 세 번이나 갈아타고 고단한 퇴근을 해야 했다.

A씨는 제약회사에서 임상을 담당하고 있다. 거래처와 1:1로 일을 진행하는 업무특성상 담당직원이 출산으로 자리를 비울 경우 회사 내에 대체할 인력이 없고, 그 기간만을 대신할 누군가를 새로 채용하기엔 문제가 많은 현실이다. 이런 본인 업무의 특성을 잘 알기에 A씨는 임신으로 인한 면접 거절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현 직장에 출산 휴가를 쓴 후, 집에서 가까운 회사를 알아볼 계획이다.

30대 여성에게 날아든 질문, "혹시 남자친구 있나요?"

기간제교사로 근무 중인 B씨는 30대 초반의 미혼 여성이다. 기간제 교사로 근무한 지 7년째다. 교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나이가 들어도, 여성이라 할지라도, 매해 경력이 쌓여 면접에서 크게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30대에 진입하면서 B씨는 그동안 면접에서 듣지 못하던 질문을 받아야만 했다.

"혹시 남자친구는 있나요?"
"아뇨, 없는데요."

<하이킥3-짧은다리의 역습> 중 영어면접 장면 일부.
 <하이킥3-짧은다리의 역습> 중 영어면접 장면 일부.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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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관은 왜 B씨에게 이런 질문을 했을까? 남자친구 유무가 교사 자질을 평가하는 새로운 항목으로 추가됐나? 설마 면접관이 B씨를 며느릿감으로 찍었던 걸까?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교사 채용 후 결혼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는지 가늠해 보기 위한 질문이다.

남자친구가 있다고 대답하면 연이어 결혼 계획을 물어본다고 한다. 결혼을 하면 결혼휴가를 쓸 것이고, 그러다 임신을 하면 입덧이 심할 경우 병가도 쓸 것이고, 머지않아 출산휴가까지 쓸 게 뻔하기 때문이다.

남자친구 없는 것도 서러운데, 면접에서 이런 질문까지 받아야 하는 애인 없는 30대 초반의 B씨. 억울하면 임용시험에 붙어 당당하게 공립학교에서 정교사로 근무하면 되겠지만, 어느새 고시가 된 교사 임용시험의 문은 좁기만 하다.

간호사 면접장에서 울려퍼진 질문, "혹시 몇 ㎏인가요?"

간호전문대학을 졸업한 C씨는 20대 후반의 기혼여성이다. 졸업성적과 간호사국가고시 성적 모두 우수했다. 하지만 원하는 병원 취업은 힘들기만 했다. 서류는 어디든 가볍게 합격했지만, 면접에서 늘 쓴잔을 맛봐야 했다.

"혹시 몇 Kg인가요?"
"……."

그렇다. C는 통통한 편이다. '통통하다'고 썼지만, 많은 이들이 '뚱뚱하다'라고 읽을 것이다. 단지 이 이유만으로 병원 측에서 C씨를 거절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그녀가 희망하는 병원의 간호사를 보니 한결같이 빼어난 미인들이었다.

나중에 다른 병원에서 선배 간호사들에게 물어보니 아마도 간호사로서 민첩하지 않다는 이유가 아니라 '민첩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낙방의 이유였을 거란다. 그동안 각 병원마다 선호하는 간호사 스타일이 있다는 얘기는 심심찮게 들어왔지만, C씨의 실제 경험을 듣고 나니 씁쓸하기만 하다.

면접에서 벌어지는 성차별은 언제쯤 없어질까?

2011년 11월 30일 오후 코엑스에서 개막한 '코스닥 상장기업 취업 박람회'를 찾은 취업 준비생들이 각 업체 부스에 상담 및 면접을 보고 있다.
 2011년 11월 30일 오후 코엑스에서 개막한 '코스닥 상장기업 취업 박람회'를 찾은 취업 준비생들이 각 업체 부스에 상담 및 면접을 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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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은 지난해 12월 13일 '맞벌이가구 및 경력단절여성 통계 집계 결과' 자료를 통해 "지난 6월 현재 결혼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전국 1162만 가구를 조사한 결과 맞벌이가구는 507만 가구로 홑벌이 가구(491만가구)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2009년만 해도 전체 가구의 40.1%였던 맞벌이 가구가 2년 만에 43.6%로(홀벌이 42.3%, 기타-노인 부부처럼 부부 모두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가구 14.1%) 우위를 차지한 것이다. 물론 통계청은 조사방식과 표본이 달라 직접 비교가 어렵다고 설명했지만, 분명한 건 이제 맞벌이가구가 시대적인 대세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맞벌이 가구 수의 증가는 올바른 현상일까? 이는 결국 여성의 취업률이 늘었다는 것과 일맥상통할진대, 문제는 그것이 여성의 자아실현 기회가 높아졌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현재의 여성 취업률 증가는 여성의 자아실현보다 부부가 함께 돈을 벌지 않고서는 이 사회에서 생활하기 빠듯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부의 맞벌이가 이제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이다.

부부 중 한 명이 특출나게 돈을 벌지 않는 이상, 부부가 함께 벌어야 먹고 살 수 있는 사회. 따라서 여성의 취업권과 노동권의 보장은 매우 시급하다. 이제 더 이상 여성의 취업에 있어서 출산이나 육아, 혹은 외모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결국 사회구성원들의 생존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가계와 사회 모두가 여성의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몫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으로 해결할 문제다.

아직까지도 여성들은 미혼에 어리고 예뻐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당장 주위를 둘러보시라. 지금 우리 사회는 당신들의 투정을 받아줄 여유가 없다.


태그:#면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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