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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금자리주택이 무늬만 서민정책이라는 지적이 많다. 사진은 28일 보금자리주택 일반공급 청약 현장인 서울 등촌동 KBS 88체육관의 모습.
 보금자리주택이 무늬만 서민정책이라는 지적이 많다. 사진은 28일 보금자리주택 일반공급 청약 현장인 서울 등촌동 KBS 88체육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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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미사·고양 원흥지구에 청약할 이유가 없죠. 돈을 조금만 더 내서 서울 강남 세곡·서초 우면 지구에 청약해서 당첨되면 '로또' 당첨되는 거랑 마찬가진데."

28일 오전 서울 등촌동 KBS 88체육관에 마련된 보금자리주택 일반공급 청약현장에서 만난 김종석(가명·60)씨는 씁쓸하게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강남권 청약이 끝난 줄 모르고 이곳을 찾았다가 발걸음을 돌리는 길이었다.

김씨의 모습은 보금자리주택 청약의 양극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서울 강남권은 일반공급 청약 첫날인 26일 치열한 경쟁률을 기록하며 접수가 모두 마감됐다. 시세차익을 기대하는 청약자들이 몰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반면, 미사·원흥 지구는 청약 물량이 많이 남아 이날도 청약 접수가 이어졌다. 서민들은 돈이 없어서 청약을 포기하고, 여유가 있는 사람은 관심을 두지 않은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결국 서민을 위한다는 보금자리주택에는 서민은 없고 시세차익을 향한 과열만 남은 셈이다.

청약 양극화... 강남권은 하루에 청약완료, 하남은 3일째 미달

지난 6월 22일 하남 미사지구 보금자리주택 환경영향평가서(초안) 주민설명회에서 지역 주민들이 '서민은 죽는다' 등의 펼침막을 들고 보금자리주택 사업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6월 22일 하남 미사지구 보금자리주택 환경영향평가서(초안) 주민설명회에서 지역 주민들이 '서민은 죽는다' 등의 펼침막을 들고 보금자리주택 사업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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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대1, 0.1대1

보금자리주택 일반공급(6072가구) 청약이 시작된 지난 26일 서울 강남 세곡지구와 고양 원흥지구의 청약 경쟁률이다. 560가구를 모집하는 세곡지구에는 1812명이 몰렸다. 특히, 115명을 뽑는 A1단지 84㎡(전용면적)형에만 632명이 몰려 5.5대1의 최고경쟁률을 기록했다. 이곳의 분양가는 4억 원이다.

세곡지구는 2.4대1의 경쟁률을 기록한 우면지구와 함께 이날 청약을 마감했다. 이날 청약 기준(청약저축 1200만 원 이상 납입·5년 이상 무주택자)을 충족한 이들이 많지 않은 숫자임을 감안하면, 서울 강남권의 경쟁률은 과열 수준으로 뜨거웠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반면, 1114가구를 모집하는 원흥지구에는 불과 145명만이 지원했다. 11채가 배정된 A4단지 74㎡(전용면적)형에는 신청자가 한 명도 없었다.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 물량의 66%를 차지하는 하남 미사지구 역시 0.1대1의 저조한 경쟁률을 기록했다.

원흥·미사지구는 청약기준을 '청약저축 800만 원 이상·5년 이상 무주택자'로 대폭 낮춘 이튿날에도 각각 243가구와 1034가구의 미달 물량을 남겼다. 미사지구는 청약 3일째인 28일에도 313가구가 미달돼 청약 완료에 실패했다.

서울 강남권과 나머지 지역의 청약 양극화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일부터 3일간 실시된 생애최초 특별공급(2852가구) 청약에서 세곡지구는 24.9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지만, 미사지구는 21가구가 미달된 바 있다.

청약 양극화의 가장 큰 이유가 시세 차익이라는 데 전문가들의 이견은 없다. 박상언 유앤알컨실팅 대표는 "강남권에는 시세차익에 대한 기대와 월등한 입지조건 등으로 청약자들이 몰렸다"며 "다른 지역은 그렇지 않으니 미달이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청약 현장에서도 청약자들은 시세 차익이 아파트를 고르는 가장 큰 기준이라고 밝혔다. 26일 세곡지구에 청약을 한 김종현(가명·47)씨는 "이번에 떨어지면 보금자리주택 2차 때도 강남 쪽에 쓸 예정"이라며 "강남이 아니면 이득 될 게 없다"고 말했다.

최진수(가명·55)씨는 "세곡·우면지구의 3.3㎡당 분양가가 1030만~1150만 원으로 이는 주변 시세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며 "분양만 받으면 수억 원을 벌 수 있으니 대단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보금자리주택, 무늬만 친서민

'청약 양극화'는 "보금자리주택은 무늬만 서민"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윤순철 경제정의시민실천연합 시민감시국장은 "싸지 않은 분양가 탓에 서민들의 청약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강남권에 몰렸다는 것은 결국은 시세차익을 따라 투기꾼들이 움직였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실제 미사·원흥지구의 3.3㎡당 분양가는 대부분 970만 원이다. 보금자리주택 중 가장 저렴한 원흥지구의 59㎡(전용면적)형의 분양가는 1억9600만 원으로 서민들에겐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최고가인 우면지구의 84㎡(전용면적)형의 분양가는 무려 4억350만 원이다.

청약자들도 "미사·원흥지구의 분양가는 주변 시세와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라며 "결코 싼 분양가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앞으로 해당지역 토지주들과의 분쟁 결과에 따라, 최종 확정되는 분양가는 현 수준보다 더 높아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청약자 최수진(가명)씨는 "현재 살고 있는 주택의 전세금과 저축해 놓은 돈을 합치더라도 1억 원이 안 된다"며 "분양가의 반 이상은 대출을 받아야 한다. 보금자리주택 때문에 빚쟁이가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청약한 사람 중에 서민이 많지 않을 것"이라며 "보금자리주택은 서민을 위한 주택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또한 청약자 진동수(가명)씨는 "판교신도시에 있는 76㎡형 공공임대주택은 보증금이 5000만 원이고, 월임대료가 20만 원 정도"라며 "보금자리주택도 진짜 서민을 위하는 것이었다면, 분양주택 위주로 공급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순철 국장은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뜯어보면, 강남 투기꾼들을 부추긴 사업에 불과하다"며 "시세차익을 정부가 회수하고 임대주택을 늘리지 않으면, 보금자리주택 사업은 무늬만 친서민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태그:#보금자리주택, #청약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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