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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세대 쏘나타를 시작으로 5세대 동안 국내최고 브랜드로 성장한 6세대 쏘나타가 17일 신차발표회에서 베일을 벗었다. 기존 쏘나타 시리즈에서 볼 수 없었던 젊은 감각의 진취적인 스타일을 앞세워 세계 중형세단 시장의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키겠다는 게 현대자동차의 포부다.
▲ 베일 벗은 6세대 YF쏘나타 1985년 1세대 쏘나타를 시작으로 5세대 동안 국내최고 브랜드로 성장한 6세대 쏘나타가 17일 신차발표회에서 베일을 벗었다. 기존 쏘나타 시리즈에서 볼 수 없었던 젊은 감각의 진취적인 스타일을 앞세워 세계 중형세단 시장의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키겠다는 게 현대자동차의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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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의 6세대 쏘나타 'YF'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지난 2일부터 예약접수를 시작해 18일 현재 2만6000명이 사전계약을 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올해 6만대를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이미 예약판매로만 절반 가까이 달성한 것이다. 월 2만대 생산이 가능한 상황에서 예약접수 급증으로 초기 고객은 신차를 받기까지 길게는 한 달 반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YF쏘나타에 대한 높은 관심은 출시 이전부터 유별났다. 인터넷에 떠돌기 시작한 스파이샷(시판되지 않은 차량들을 찍은 사진) 몇 장에도 사람들은 흥분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5년 첫 출시 이후 1세대부터 6세대까지 25년간 그 열기는 식지 않고 이어져 국내 중형차시장의 밀리언셀러 시대를 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간판차종으로 쏘나타를 가장 많이 꼽는다.

사람들이 쏘나타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필수 대림대(자동차학) 교수는 "중대형차를 갖고 싶지만 돈이 없는 중서민층에게 쏘나타는 가장 이상적인 차였다"며 "초기 쏘나타는 중형차라고 하기엔 말도 안 되는 배기량으로 차체만 넓혔지만 서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현대차의 마케팅 전략이 먹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90년대 말, 쏘나타 엠블럼 'S'자가 사라진 까닭은?

'쏘나타' 차명은 어떻게 탄생했나?
1988년 3000억원이라는 큰 개발비를 들여 출시한 Y2쏘나타는 당초 현대차 사원들을 대상으로 차명을 공모햤다. 그 결과 120여 개가 제시됐고, 그 가운데 엘란트라(Elantra), 쾌스트라(Questra), 쏘나타(Sonata) 등 6가지 이름이 최종 후보로 올라왔다.

이후 현대차는 Y2쏘나타가 수출전략형 중형차라는 점에서 미국 현지법인(HMA) 및 240여 개의 딜러들에게 의견을 모았고,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좋다'는 이유로 쏘나타가 지목됐다. 국내 딜러들로부터는 반발이 거셌지만, 결국 미국시장의 의견을 존중한 것이다.

현대차측은 "'쏘나타'는 고도의 연주기술이 요구되는 강한 개성을 지닌 4악장 형식의 악곡으로 혁신적인 성능·기술·가격을 이룩하는 종합예술 '쏘나타'의 이미지와 부합되는 가장 조화로운 승용차임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쏘나타는 포니, 스텔라, 엑셀에 이은 현대자동차의 4번째 고유모델로, 단일 브랜드로는 국내 최장수 모델이다.

1995년 5월 단일 모델로는 처음으로 100만대 생산을 돌파했고, 2000년 8월 200만대 생산, 2003년 2월에 다시 최단 기간인 2년 8개월 만에 250만대 생산을 돌파하는 등 기록 갱신을 이어갔다. 또한 2007년 7월 전세계에서 누적 판매대수 500만대를 넘겼고, 미국시장에서만 100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세계 시장에 한국 대표차종으로서의 이미지를 각인 시켰다.

출발부터 대박을 터뜨린 것은 아니다. 1985년 첫 선을 보인 쏘나타는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기본 스텔라 베이스 위에 옵션을 얹어 쏘나타(Y1)라는 이름으로 출시 됐지만, 소비자들의 눈에는 '스텔라를 호화스럽게 꾸민 차'에 불과했다. 결국 쏘나타(Y1)는 '럭셔리'로 상징되는 대우 로얄 시리즈에 밀려,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시장으로부터 외면 당했다.

1985년 첫 선을 보인 쏘나타 (Y1). 이른바 '스텔라 쏘나타'라고도 불렸다. 화려한 외장을 과시했지만, 시장에서는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85년 첫 선을 보인 쏘나타 (Y1). 이른바 '스텔라 쏘나타'라고도 불렸다. 화려한 외장을 과시했지만, 시장에서는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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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한국 대표차'의 명맥을 잇게 만든 1세대 쏘나타의 원조는 1988년 생산된 Y2쏘나타라고 봐야 한다. 수출전략형 중형차인 Y2쏘나타는 기존의 직선적인 디자인 대신 모서리를 둥글린 유선형 스타일과 인체공학적 실내 디자인 등으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스텔라나 로얄 등이 뒷바퀴 굴림(FR) 방식인 상황에서 국산 중형차로는 처음으로 앞바퀴 굴림(FF)을 써서 넓은 실내공간을 확보했다. 또 엔진룸과 트렁크를 짧게 만든 대신 실내를 최대한 넓힌 덕분에 최고급 모델 그랜저보다 실내공간이 더 컸다. 여러 사람이 타는 패밀리카의 장점을 살리는 동시에 '이왕이면 큰 것'을 좋아하는 국내 소비자의 취향을 공략한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국산차는 유럽 취향의 딱딱한 서스펜션을 썼지만 쏘나타는 미국차처럼 부드러운 서스펜션으로 승차감을 살렸다. 쏘나타는 나온 지 한 달여 만에 1만여 대의 계약고를 올려 대히트를 예고했으며 이듬해부터 국내 히트상품에 단골로 선정되기 시작했다.

쏘나타는 데뷔 2년 6개월만인 91년 2월에 부분 변경 모델이 나왔다. 앞뒤 램프를 손보고 그릴을 가늘게 바꾸었다. 또한 주행안정성과 승차감을 개선했다. 이즈음 쏘나타는 오너용 고급차로 완전히 자리를 굳히면서 인기를 더해 갔다. 또한 7월에는 2.0 모델에 DOHC 137마력 엔진을 추가한 '골드' 모델을 발표, 대형차에만 달리던 고급사양까지 갖췄다.

쏘나타는 당시 금장 칠이 된 'GOLD' 마크를 애프터 마켓에서 구해 붙이는 유행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또한 카페골목 등에서 헌팅을 즐기던 '오렌지족'들이 가장 많이 타고 다녔던 차 역시 흰색 쏘나타였다.

90년대 말에는 쏘나타의 'S'자 엠블럼이 서울대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대학입시를 앞둔 고교생들에게 집중적인 표적이 되기도 했다. 이에 따른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자, 현대차는 엠블럼을 교환해주기 위해 대대적인 무상점검 서비스를 실시해야 했다.

중형차의 대중화를 선도한 1세대 쏘나타는 93년 5월 Y3 프로젝트로 개발된 풀 체인지 모델 쏘나타Ⅱ에 자리를 물려준다. 현대차는 이를 계기로 과거 대우 로얄 시리즈에게 당했던 수모를 갚고, 동급차량인 대우 프린스까지 밀어내면서 베스트셀러카의 발판을 마련한다.

형만한 아우 없다? 성능 논란 많았던 NF쏘나타

쏘나타 시리즈는 1996년 2월 쏘나타Ⅲ, 1998년 3월 EF쏘나타로 이어졌고, 2004년 9월 5세대 NF쏘나타와 2009년 YF쏘나타로 이어지면서 베스트셀러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쏘쓰'라는 약칭으로도 불린 쏘나타Ⅲ는 사실 쏘나타Ⅱ의 부분 변경 모델이었음에도 소비자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경쟁차인 기아 크레도스, 대우 레간자가 공격적 마케팅을 모두 제치고, 동급 판매 1위 차량으로 발돋움했다.

4세대 모델인 EF쏘나타는 기술적으로 완전한 독립을 이뤘다는 점에서 이전 모델과 차별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독자 개발한 고성능 델타 V6엔진, 신경제어망이란 신개념을 적용한 자동변속기, 자체 설계로 승차감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서스펜션 등이 특징이다.

북미시장에서 '한국도 제대로 된 차를 만든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도 EF쏘나타의 공이었다. 미국에서만 볼 수 있기는 했지만, 현대차는 당시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을 앞세워 EF쏘나타의 광고를 찍는 등 공격적 마케팅을 펼쳤다.

NF쏘나타로 불렸던 5세대 쏘나타는 세계 유명메이커와의 본격 경쟁을 위해 독자 개발한 최첨단 세타엔진을 장착하고, 쏘나타로서는 최초로 '월드 클래스 프리미엄'을 표방했던 중형 세단이었다. 또한 안대를 한 외국 여성을 등장시켜 에로틱한 분위기를 연출한 광고로 남성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하지만 '형만한 아우 없다'고 했던가. NF쏘나타는 엔진 성능 등을 두고 논란이 많았던 모델이기도 하다. 결국 출시 초기에 시동 꺼짐 때문에 리콜 조치가 시행됐고, 아직도 동호회 게시판에는 '시동 꺼짐을 겪었다'는 글들이 종종 올라오고 있다.

이번에 출시된 6세대 모델 YF쏘나타는 지난 2005년 프로젝트명 'YF'로 개발에 착수, 4년여의 연구개발 기간 동안 총 4500억 원을 투입했다. 외관 디자인은 강렬하고 세련된 라인이 하나의 선을 그은 듯 조화를 이뤄 볼륨감과 개성미를 강조했으며, 내장 디자인은 역동적이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를 담았다.

1988년 새롭게 출시된 Y2쏘나타.
 1988년 새롭게 출시된 Y2쏘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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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의 중형차 소유욕 충족시킨 쏘나타의 진화

쏘나타는 계속 진화했고, 출시 때마다 소비자들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김필수 교수는 소비자들이 쏘나타에 열광하는 이유를 '눈속임 현상'에서 찾았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럽과 달리 자동차를 이동수단이라는 실용적인 측면보다 부동산 다음으로 가는 재산 가치로 봤고, 사회적 지위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며 "중형차를 갖고 싶은 서민들의 꿈을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구현하기 어려웠는데, 쏘나타가 실현시켜 줬다"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외국에서는 소형으로 분류되는 2000CC급 쏘나타를 중대형차로 보이기 위해 차체를 키우고, 실내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따라서 서민층들도 중대형차를 몰수 있다는 이상을 갖게 되며 높은 관심을 보였고, 이런 이유로 현대차가 쏘나타를 전략차로 키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배기량은 낮으면서 차체가 큰 자동차는 움직임이 굼뜰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초기 쏘나타나 스텔라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도 안 나간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컸다"며 "일종의 눈속임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국내 시장에서 쏘나타를 대적할 마땅한 경쟁차가 없었다는 점도 '쏘나타 열기'에 한몫 했다. 일각에서는 '쏘나타가 국내 중형차 시장에서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싹쓸이를 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런 상황이 전개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일본 도요타 캠리가 오는 10월 한국에 상륙, 미국 시장에서 보다 앞서서 한국 시장에서 전초전을 벌이게 됐다. 여기에 이미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혼다 어코드도 신형 쏘나타가 넘어야 할 힘겨운 상대다.

김필수 교수는 "쏘나타는 이제 캠리 등 수입차와 경쟁해야 한다"며 "지난 2~3년 사이 쏘나타의 품질이 예전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향상돼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고, 배기량도 높아졌다. 아무리 캠리가 세계 베스트셀러카이지만, 쏘나타에게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도요타 캠리는 자동차 가격을 대폭 인하해, 아예 쏘나타 고객층을 타겟으로 삼을 만큼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반면 쏘나타는 지난 10여년간 출시 때마다 자동차 가격을 올렸고, 이번 YF쏘나타도 기존 EF쏘나타에 비해 200만원 가량 비싸다. 그동안 경쟁차 없이 승승장구 해온 쏘나타가 수입차들의 거센 공격 속에서도 '한국 대표차'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태그:#YF쏘나타, #도요타 캠리, #베스트셀러카, #혼다 어코드, #현대자동차, #자동차는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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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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