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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6/4) 반가운 문자를 받았어요. 이랜드일반노조 홍윤경 사무국장님이 보내준 거죠.

 

"쑥스럽지만 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다큐가 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됩니다.^^ 시간 되시면 오셔서 함께 보시고 뒤풀이도 하시죠. 이번 토욜(6/6) 저녁 7시 50분 청계광장입니다."

 

그동안 홍 사무국장님께는 이랜드 노조 해고자복직투쟁에 연대해 달라는 문자만 받았는데(평일 낮 시간대가 많아서 대부분 가보지는 못했어요.) 이 문자는 조금 색달라서 관심이 가더군요. 그래서 바로 축하 문자를 드렸어요. 그 영화가 이랜드 투쟁을 다룬 영화를 말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답 문자가 왔죠.

 

 

"아닙니다. '효순씨 윤경씨 노동자로 만나다'라는 영화죠. 그런데 청계광장 장소 사용 취소 통보가 와서 어찌될지 모르겠어요. 다시 연락드릴게요."

 

금요일(6/5) 오후에 다시 문자가 왔어요.

 

"다행히도 내일 인권영화제 청계광장 사용이 다시 가능하게 되었답니다.^^ 내일 뵈면 좋겠네요. ^*^"

 

문자만 봐도 홍 사무국장님이 참 기분 좋으시구나, 하고 상상이 됐어요. 왜냐하면, 홍 사무국장님이 평소에 문자 보낼 때 이모티콘 같은 거 잘 안 쓰시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이모티콘을 연달아 쓰신 걸 보니 그런 생각이 절로 든 거죠. 

 

이랜드 투쟁할 때 밝게 웃는 얼굴로 자주 만난 홍 사무국장님. 홈에버 상암점 천막 농성장에서는 하룻밤을 같이 보낸 적도 있어요. 그 밤에 나눈 이야기들 덕분에 홍 사무국장님 마음에 담겨 있을 힘듦과 아픔들을 얕게나마 느낄 수 있었죠. 하룻밤에 풀기엔 너무 모자랐을 아이, 남편, 그리고 투쟁 이야기들…. 이랜드 투쟁에서 죽 만난 것도 있지만 그렇게 하룻밤 같이 보낸 뒤로는 홍 사무국장님이 무척 가깝게 느껴져서 마음으로는 늘 '언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한 번도 직접 '언니'라고 불러 본 적은 없지만.

 

 

어제(6/5) 인권운동사랑방이 준비한 '인권영화제'에 다녀왔어요.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 갖고 산다면서도, 인권영화제 소식은 잘 몰랐어요. 홍 사무국장님 문자가 아니었으면 특별히 모르고 지나갔을 것도 같아요. 청계광장에 도착하니 규모도 꽤 크고 사람들도 무척 많았어요. 벌써 13회째라고 하던데 인권영화제에 가본 건 처음이네요. 그동안 이 영화제를 잘 모르고 지낸 시간이 부끄러워졌어요.

 

드디어 '효순씨 윤경씨 노동자로 만나다'가 시작됐어요. 영화에는 홍 사무국장님 남편 분도 나오셨어요. 부부가 함께 출연한 영화가 된 거죠. 남편분이 영화에서 어찌나 재미있게 말씀을 잘 하셨는지 몰라요.

 

"부인이 감옥에 있을 때가 오히려 좋았어요. 왜냐하면 그 전에는 얼굴 한 번 보기도 너무 어려웠지만 감옥에서는 내가 면회하러 가면 나만 기다려주고 곧바로 만날 수 있으니까요."

 

"크게 바라는 건 없어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만 같이 저녁식사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부인이 그럴 수 없는 형편이었고, 또 내가 그러자고 주장해서도 안 되는 걸 잘 알고 있죠."

 

 

편안하게 하신 말씀이지만, 그리고 그 말씀 끝에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저도 웃음을 흘렸지만, 그 웃음에는 저절로 아픔이 묻어났어요. 집회하는 곳에서 자주 보았던 홍 사무국장님 따님 이야기도 귀에 쏙 들어왔지요. 홍 사무국장님이 감옥에 있을 때 남편분이 '엄마, 미국에 갔다'고 살짝 거짓말을 한 뒤였나 봐요. 딸아이한테 이렇게 말했데요.

 

"너 엄마 미국에 간 거 아니라는 거 알지?"

그랬더니 아이가 "응, 알아" 그랬대요.

남편분이 아이한테 다시 물었데요. "실은 엄마 감옥에 있는데, 괜찮아?" 하고.

다시 아이가 "응, 괜찮아. 엄만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 하고 대답했대요.

 

이 짤막한 이야기들이야말로, 살아있는 드라마이자 영화가 아닐까요. 홍 사무국장님이 상암 홈에버에서 잡혀가던 모습도, 그때 외치던 그 질기고 절절한 구호들도….

 

청계광장에서 인권영화제를 상영하는 건 참 좋은 생각인 거 같아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많이 쳐다봤거든요. 특히, 홍 사무국장님 연행되는 장면이 나올 땐 제가 다 뿌듯했어요. 저 가슴시린 장면을 이렇게 열린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한테 '영화'를 빌려 보여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화가 끝나고, 감독님과 홍 사무국장님 인사 말씀이 있었어요. 홍 사무국장님은 한참 투쟁할 때 이런 소원이 있었데요. 딱 6개월만 오로지 아이들만 챙기는 시간 가져보았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지금 그 시간들을 갖고 있대요. 지난해 홈에버가 홈플러스로 넘어가면서 반쪽짜리 승리이긴 해도 이랜드 투쟁이 마무리되었으니까요. 물론 지금 이랜드일반노조 해복투 투쟁은 그대로 하고 있지만, 그때만큼 많이 움직이지 않고 있어서 그 소원을 저절로 이루었다고요.

 

지금 이랜드일반노조 사무실이 따로 없어서, 그리고 아이들하고 지내면서 일을 해야 하니까 아예 홍 사무국장님 집에서 노조 일을 하고 있답니다. 해고자 복직 투쟁이라는 게 정말 외로운 싸움이잖아요, 끝도 잘 안 보이고…. 그럼에도 어제도 여전히 밝은 얼굴로 그 투쟁을 지금처럼 죽 이어가겠노라고 말씀하시는 걸 듣자니 안타까우면서도 참 든든했어요. 그 투쟁을 이어가는 길에 뭐라도 꼭 보태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만큼.

 

거리로 나온 인권영화제의 여러 프로그램들을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인권영화제는 인권이 없는 인권 영화제구나. 외국에서 벌어진 이야기는 그냥 두고라도 콜트콜텍이며, 재개발이며, 기륭이며, 이랜드며 다들 인권을 조금도 존중받지 못하는 분들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정말 마음이 불편했어요. 세상에 인권이 없는 것처럼 취급받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기만 한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들의 짓밟힌 인권을 되찾아줄 수 있을지.

 

 

'효순씨, 윤경씨 노동자로 만나다' 영화가 끝나고 홍 사무국장님과 감독님을 비롯하여 아마도 홍 사무국장님 연락을 받고 왔을 몇몇 사람들이 청계광장 근처 길바닥에 앉아 술과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인권영화제도 거리로 나왔지만 이랜드 투쟁을, 그리고 홍 사무국장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함께 나누는 술자리도 거리로 나온 거였죠.

 

거리에서 마신 술이 준 힘인지, 영화제가 준 힘인지 어제 저도 소원 하나 이루었어요. 홍윤경 사무국장님께 꼭 한 번 묻고 싶던, 일 년도 넘게 마음에만 담아둔 채 차마 꺼내지 못했던 그 말을 드디어 했거든요. 조금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저…,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결론은? 고맙게도 좋다고 하셨어요. 오히려 사람들이 자기를 사무적으로 느끼고 대하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쉬울 때가 있다는 말씀을 해주시네요. 하긴 홍 사무국장님, 여린 몸에서 저절로 묻어나는 그 기운을 만나면 저부터 왠지 '언니'보다는 '사무국장님'이라고 꼭 불러드려야 할 것만 같았어요. 그러니까 저도 이랜드 투쟁을 일 년 넘게 함께 겪으면서도 다른 이랜드 조합원 분들한테는 처음부터 언니라고 불러놓고는 홍 사무국장님한테만은 차마 '언니'라고 부를 용기를 못 냈겠지요.

 

그렇게 '언니'를 '언니'라고 부르지 못해 안타까웠던 저, 어제 드디어 '윤경이 언니'를 '윤경이 언니'라고 불러보았답니다. "홍윤경 사무국장님!"하고 길게 부를 때랑 "언니!" 하고 짧게 부를 때랑은 그저 낱말 수만 달라진 건 아니에요. 둘 사이에 있던 뭔지 모를 벽 하나가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었어요. 기쁜 마음에 '효순씨, 윤경씨 노동자로 만나다'라는 영화 제목을 살짝 비틀고까지 싶어지네요. 바로 이렇게요.

 

'윤경씨, 혜원씨 언니 동생으로 만나다.'

 

오늘부터 저는 이랜드일반노조 '홍윤경 사무국장님'보다는 '윤경이 언니'를 좋아하고, 또 '윤경이 언니'가 걸어가는 길을 열심히 응원할 거예요. '윤경이 언니'야말로 인권영화제가 저한테 안겨 준 가장 큰 선물인 것도 같아요.

 

벌써부터 윤경이 언니가 스스럼없이 저한테 말 놓을 수 있게 되는 그날이 손꼽아 기다려지네요. 언제부턴가 이랜드(지금은 홈플러스) 조합원 언니들이 '혜원씨'에서 '혜원아!'하고, 저를 어린 동생 대하듯이 부르게 된 것처럼 말이죠. 그러려면 지금보다는 윤경이 언니랑 더 자주 만나고 이야기 나누어야 되겠죠?


태그:#인권, #인권영화제, #홍윤경, #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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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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