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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학습 진단평가가 실시된 31일 오전 서울 창덕여중에서 학생들이 시험문제를 풀고 있다.
 교과학습 진단평가가 실시된 31일 오전 서울 창덕여중에서 학생들이 시험문제를 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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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생 - "시험 왜 보는지 모르겠어요"

"시험이요? 왜 보는지 모르겠어요."

서울 창덕여중 3학년 A양은 이 한마디를 남기고 교실을 향해 뛰었다. 곁에 있던 친구들도 웃으며 함께 뛰었다. 불쑥 나타나 "시험 봐야 하는데 기분이 어떠냐"는 낯선 기자의 질문에 당혹감을 느낀 듯했다. 이번엔 교실로 향하던 B양이 고개를 휙 돌리며 묻는다.

"근데, 아저씨 기자 맞아요? 좀 이상한데... 우리 시험 보기 싫다고 써주세요! 안 써주기만 해봐.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찾아볼 거예요!"

전국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고사(교과학습 진단평가)가 실시된 31일 오전 8시 30분께 서울 창덕여중을 찾았다. 시험을 앞두고도 학생들은 밝았다. 사실 예상했던 긴장감보다 발랄함이 훨씬 넘쳤다.

하지만 학생들은 "시험 보기 싫다"는 의견을 명확히 밝혔다. 2학년 C양은 "시험 보는 것 좋아하는 학생은 없겠지만, 1학년 때 배운 걸 왜 지금 평가하는지 모르겠다"며 "(평가) 범위가 너무 넓어 시험공부 하기도 답답했었는데,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학년 교실 앞에는 누군가 생일을 맞았는지 초코파이가 케이크 모양으로 쌓여 있었다. 칠판에는 낙서처럼 어지럽게 생일 축하 글이 적혀 있었다. 한 학생은 "3월에 생일 있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 이거뜨라~(개그콘서트 '분장실의 강선생님' 유행어)"라고 적었다.

학생들의 왁자지껄한 모습을 '제압'한 건 오전 9시께 일제고사 준비를 알리는 종이었다. 시험이 시작되자 학생들은 책상에 고개를 숙이고 시험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몇몇 교실에는 교육청에서 배포한 일제고사 홍보물이 부착돼 있었다.

학생들이 교사의 지시로 시험지 배포를 기다리며 눈을 감고 있다.
 학생들이 교사의 지시로 시험지 배포를 기다리며 눈을 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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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교사 - "우리 학교는 시험 거부 학생 없어요, 교육청이랑 가깝잖아요"

"우리 학교는 시험 거부 학생 한 명도 없어요! 교육청이 바로 코앞에 있잖아요. 코앞에서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죠."

A교사는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2학년의 한 반에서는 결석 학생이 두 명 있었다. 기자가 "결석 사유가 뭐냐?"고 묻자 그는 당황해 하며 해당 교실로 바삐 들어갔다.

담임교사와 이야기를 마치고 나온 A교사는 "한 명은 장기 결석 학생이고, 한 명은 몸이 아파 못 나왔다네요"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는 "우리 학교는 100% 시험 응시합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날 창덕여중에서는 각 교실마다 시험 감독으로 교사 두 명씩 배치됐다. '객원 감독'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시험 감독에 나선 학부모도 있었다.

2학년 한 반의 시험 감독을 맡은 한 교사는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학생들의 책상 검사를 했다. 혹시 무언가를 써놓지 않았나를 검사한 것이다. 이 교사는 책상을 일일이 점검하며 "그거 뭐니?", "그건 지워"라며 학생들을 '지도'했다.

#3. 기자 - "시험 보는 척 고개 숙이고 있어봐"

학생들이 시험지 배포를 기다리고 있다.
 학생들이 시험지 배포를 기다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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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시 시험 과목 국어의 첫 문제는 듣기 평가였다. 시험 시작 종과 함께 교실마다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방송이 흘러 나왔다. 하지만 어떤 교실에서는 채 시험지가 배포되기도 전이었다.

듣기 평가가 시작되고 한 5분이 흘렀을까. 1층 교무실에서 한 선생님이 올라왔다. 그는 듣기 평가 방송을 다시 틀겠다고 외쳤다.

"기자님들이 자꾸 돌아다녀 복도 삐걱대는 소리가 너무 커요! 학생들이 잘 못 들었으니까,방송을 다시 하겠습니다. 기자님들 움직이지 말아주세요!"

결국 창덕여중에서는 국어 듣기 평가가 잠시 중단됐다. 학생들은 긴장을 풀고 다시 방송이 나오길 기다렸다. 이 때 모 방송국 카메라 기자는 학생들에게 '연기'를 요청했다.

"아저씨 좀 찍게 시험 보는 척 고개 좀 숙이고 있어봐."

이 말에 시험 감독 중이던 교사는 "잠시 고개 숙이고 문제 푸는 척 해!"라고 학생들에게 말했다. 학생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시험 보는 '연기'를 했다.

2009년 3월 31일 오전. 학생들은 왜 보는지 모르는 시험을 치르면서 연기까지 했다. 교사는 "시험 거부자가 없다"고 자랑했다. 그리고 기자들은 시험 방해 세력으로 몰리면서도 학생들에게 연기까지 주문했다.


태그:#일제고사, #창덕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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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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