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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가 들른 작은 동네에서 자전거 가게나 자전거 숍이 아닌 '자전거포'를 만나면 왠지 정겨워 볼일이 없어도 한 번 들어가게 되고 그 동네가 더 정답게 느껴지곤 한다. 도시에서처럼 고급 자전거들도 세련된 인테리어도 갖추지 못한 자전거포에 정이 가는 건, 자전거에 담긴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구독하는 자전거 잡지에 서울에도 그런 자전거포가 있다는 글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찾아갔다. 수도권 전철 2호선 합정역에서 내려 찾아가도 되는데 그냥 가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애마 자전거를 대동하고서 한강 가를 달렸다.

아담한 카페들이 들어선 한적한 가로수길인 합정동 토정로를 지나다보면, 한눈에 그 자전거포를 발견할 수가 있다. 재미있게도 외벽에 손으로 그린 듯한 자전거 그림과 공구를 한 손에 쥔 곰 한마리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 토정로를 지나가다보면 벽에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가게가 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 토정로를 지나가다보면 벽에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가게가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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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근한 곰을 닮은 자전거포 사장님은 청년

건물 벽에 그려진 말풍선 속에 가게 이름이 적혀 있는데, 그 이름은 '두부공'. 외벽의 그림들만큼이나 흥미롭다. 이거 보통 자전거포가 아니구나 싶다. 그러나 안이 다 들여다보이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 마주친 주인장은 평범한, 벽에 그려진 푸근한 곰을 닮은 젊은이가 아닌가. 순간 주인장이 아닌 직원인가 싶었지만 서른 살이 채 안된 이 청년이 자전거포 사장님이다.

자전거 수리나 튜닝은 기본이고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수제 자전거를 만든다고 하면 보통 연륜과 경륜이 풍부한 주인장 아저씨이겠거니, 했던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게다가 그는 그냥 자전거를 좋아했을 뿐 세칭 자전거 마니아도 아니었단다.

대학 때 집에서 학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녔던 정도. 하지만 자전거 정비 및 제작 기술을 배우기 위해 국내는 물론 일본으로 견학을 가고, 미국의 자전거 학교인 'UBI(United Bicycle Institute)'에서 체계적인 자전거 정비 및 산소용접, 전기용접, 프레임 제작 등을 배운 걸 보면, 좋아하는 것 이상임은 분명하겠다(자동차의 나라 미국에 자전거 스쿨이 있다니 의외다).

스펙과 취업, 각종 고시에 매달려야 하는 요즘 젊은 청년답지 않은 이력이다. 푸근한 인상의 사장님 다운 어릴 적 별명 두부에 장인 공(工)자를 붙여 '두부공'이라는 재미있고 정겨운 가게 이름이 탄생했다. 느긋한 여유와 품성이 느껴지는 그지만, 2층 작업실에 올라간 후 얼마 안 있어 들려오는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튀기는 불꽃사이로 치열한 장인의 열망이 엿보인다.

동네 주민들이 자전거를 맡기러 와서 말을 나누는 모습이 편안해 보이는 자전거포 '두부공'
 동네 주민들이 자전거를 맡기러 와서 말을 나누는 모습이 편안해 보이는 자전거포 '두부공'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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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수제공방을 꿈꾸는 동네 자전거포

보통 자전거 판매가 먼저고 자전거 수리는 부수적으로 하는 자전거숍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에서 핸드 메이드 자전거 공방을 내세우는 두부공은 그래서 이색적이고 호기심 가는 가게다. 이곳에 오면 자전거는 공산품이 아닌 수공업품이 된다. 나도 그렇지만 아직까지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자전거를 미처 상상하지 못한 동네 사람들이 자전거 수리를 문의하러 오거나 기성 자전거를 구입하기 위해 들른다.   

자전거 수제공방이라니 이거야 말로 21세기형 자전거포가 아닌가. 처음부터 고급 수제 자전거 숍으로 장사를 했다면 돈도 좀 벌었을 텐데, 두부공은 체인이 녹슬고 빠져버린 손님의 생활 자전거 수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장갑도 안 끼고 맨손으로 체인이며 바퀴살을 만지느라 두터운 손이 새카맣다. 장갑도 끼고 뭔가 장인 같은 냄새가 나는 앞치마 작업복도 좀 하라는 내 충고에 특유의 수수한 웃음만 짓는다. 여행길에서 만난 자전거포 느낌이 물씬 풍겨오는 순간이다.

그가 두부공에서 하고 싶은 일은 '자전거포에서 만드는 나만의 자전거'다. 물론 자전거 선수나 마니아들의 것이 아닌 일반 대중들을 위한 자전거. 손으로 직접 설계도를 그리고, 거기에 맞춰 바퀴살을 짜고, 알맞은 부품을 고르고, 프레임을 만든다. 타는 사람의 몸과 성향에 꼭 맞는 맞춤형 수제 자전거. 나도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지만 기성품에 익숙했던지라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픽시, 미니벨로, 로드··· 요즘처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다양해질 수록 내 체형과 습관에 맞는 오직 자신만을 위한 자전거를 가지고 싶어 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임을 생각해보면 그의 꿈이 상상속의 것만도 아니다.

또한 그는 두부공이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아지트 혹은 사랑방 같은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소통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끈끈한 유대를 만들어 주기도 하는 자전거인지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작업하는 사이 동네 주민들이 끌고 오는 자전거의 사소한 수리 의뢰에도 스스럼 없이 말을 나누는 그의 친근하고 편안한 태도를 보니 어릴 적 보았던 그 자전거포로 돌아간 듯싶었다.

자전거 제작 기술을 배우러 외국에 유학까지 다녀왔다는 두부공 주인장은 서른살도 안된 청년이다.
 자전거 제작 기술을 배우러 외국에 유학까지 다녀왔다는 두부공 주인장은 서른살도 안된 청년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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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으러 왔다가, 유행하는 자전거 구경 좀 하려고 들어 왔다가 '나도 내 자전거 한 번 만들어 볼까!' 꿈을 꾸게 한다. 두부공에선 수제 자전거를 만드는 일이 어렵지 않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평소에 꿈꾸었던 착착 접으면 등에 멘 가방에 쏙 들어가는 콤팩트 자전거를 만들어 달라고 의뢰해볼 요량이다.

얼마 전엔 배우고 익힌 기술을 나누고파 민들레 대안학교 학생들에게 자전거 리폼, 정비 수업을 했다는데 나도 내 자전거만큼은 손보고 고칠 수 있는 정비를 꼭 배우고 싶었다. 자전거는 단순히 이동수단 이상의 의미가 있다. 때문에 같이 달렸던 길과 추억과 이야기가 깃든 까닭에 낡았다고 쉽게 새 자전거로 바꾸기가 어렵다.

'두부공'은 한강 자전거 도로에서 가깝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 가를 신나게 달리다 들르고 싶은 곳이 또 한 곳 생겼다.

덧붙이는 글 | 자전거 수제 공방 '두부공' 누리집 : www.dooboogong.com



태그:#두부공, #김두범, #수제자전거, #자전거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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