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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의 공통된 소망 중의 하나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다. 그러나 아주 흔한 감기에서부터 사망을 초래하는 질병까지 내일을 예측할 수 없다. 특히 노동자들은 작업장의 각종 위험 요인으로부터 노출돼 있고, 이런 위험으로부터 각종 사고와 질병이 발생하고 있다.

그럼 이런 모든 사고와 질병은 산재가 아닌가? 맞다! 그러면 당연히 산재가 승인되고 이로 인해 치료와 보상을 받으면 되는 일이 아닌가? 그것도 맞다! 그러나 산재로 승인되고 치료받기까지 수많은 장벽들이 존재하고 있다. 승인 기준도 문제지만, 신청 과정상 장벽들이 무엇인지 직시할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일수록 질병이 산재인 줄 모른다

2011년 4월 28일, 국제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시민위원회 공동 기자회견 당시
 2011년 4월 28일, 국제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시민위원회 공동 기자회견 당시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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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문제점은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질병이 '산재'인지 아닌지 모른다는 것이다. 근무 중 넘어지거나 추락하는 등 '사고성 재해'일 경우에는 쉽게 알 수 있다. 지난해 한 노동자가 상담을 받으러 왔다. 그는 2000년대 초반에 약 2년 동안 주물공장에서 일했다가 만성폐쇄성폐질환에 걸렸다. 주물공장은 규사를 사용하는데, 이로 인해 실리카(slica)라는 1급 발암물질에 노출돼 진폐증 등이 생길 수 있다. 자신이 사용한 물질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그로 인해 질병이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까지 10년의 세월이 걸린 것이다. 다행히 산재로 승인됐다.

예전에 소송사건을 담당했던 한 철도노동자의 경우에도 자신의 폐암이 왜 발생했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저 담배를 피워서 그런 것인 줄 알았단다. 이 노동자의 경우 용접작업을 통해 니켈, 크롬이라는 발암물질에 노출된 사실이 인정돼 산재로 승인됐다(서울고법 2007누1899판결).

그럼 이런 직업성 암만이 문제일까? 최근 우리 사무실에서 진행하고 있는 '수면장애' 노동자 사건(서울행법 2010구단4400판결)만 보더라도 이런 문제를 알 수 있다. 2011년도 금속노조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야간 교대 근무를 하는 제조업 사업장 3/4 이상의 노동자들이 불면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안에 대해 산재 신청을 한 경우는 1건이며, 그나마 이 노동자의 열의와 주위의 도움으로 1심에서 산재로 판정됐다. 이 판정이 나기까지 아무도 수면장애가 직업병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근골격계 질환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근골 질환은 특별한 사고 없이도 발생할 수 있다. 외상이나 사고가 없이 발생한 경우 자신의 질환이 산재라고 인식하기 어렵다. 비정규직, 외국인 노동자일수록 자신의 질병이 산재라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장님의 침묵은 노동자의 죽음을 부른다

삼성전자 노동자 고 김주현씨의 장례식
 삼성전자 노동자 고 김주현씨의 장례식
ⓒ 반올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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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장벽은 더 높다. 사업주의 방해와 묵살행위가 바로 그것. 일단 현재 산재 신청서류에는 사업주의 도장을 받는 난이 있다. 대부분 노동자들이 사업주가 승인해야 가능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사업주가 날인을 해주지 않으면 공단에서 별도로 사업주의 의견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업주는 업무 관련성이 없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예전 소송을 담당했던 H조선 사건에서는 신청 과정에서 사업주가 노무사를 선임해 업무관련성이 없다는 이유서와 각종 증거자료를 100페이지 정도 제출해 불승인됐다.

그리고 산재가 승인되더라도 사업주가 공단의 승인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또한 불승인 처분에 대해 노동자가 소송으로 다투면 오히려 사업주가 난리다. 즉 공단과 한편이 돼 불승인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이를 피고보조참가행위라 한다). 최근 내가 담당한 S전자 노동자의 우울증 사건도 회사가 적극적으로 소송에 개입해 있고, 위 수면장애 소송은 회사가 2개의 로펌을 선임해 다투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산재법상 회사가 산재신청을 도와줄 것을 규정하고 있지만, 위반해도 처벌규정이 없다. 사업주는 각종 영업비밀 등을 이유로 도와주지 않는다. 2011년 1월 11일, 삼성전자 LCD사업부 노동자 고 김주현(당시 26세)씨는 우울증 및 스트레스로 인해 기숙사 13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과로요인을 분석하기 위한 기초 자료인 취업규칙과 급여명세서조차 공개하기를 거부한 바 있다.

현장의 산재은폐행위는 정말로 심각하다. 건설업의 경우, 2001년 노동부조사에서도 59.5%, 2003년도 노동건강연대 조사에서는 75.4%의 은폐행위가 드러났다. 대부분 건설사업장이 입찰제도(PQ제도)에 영향을 주는 재해율에 민감하기 때문에 산재은폐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문제가 됐던 한국타이어의 경우에도 이를 알 수 있다. 2008년도 5월 이후 20명의 노동자가 폐암, 급성심근경색, 작업 중 사고 등으로 인해 사망했지만, 산재를 신청한 경우는 5건에 불과하다. 또한 회사와의 합의서 등을 통해 산재 내용 자체를 외부에 발설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산재은폐행위로 볼 수 있는 공상처리도 문제다. 이는 건설업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업장에 만연하고 있다. 공상처리는 공단에 산재신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주가 임의로 치료비를 지급하거나 휴업처리를 해서 치료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공상처리 비율이 소기업사업장 뿐만 아니라 강력한 노조가 있는 대기업 사업장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공상처리는 임의제도로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재 발생신고를 해야 함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이다. 명백한 법률위반 행위다. 나중에 재발하거나 악화되더라도 이를 산재로 신청할 수 있지만, 공단은 기존에 이미 발생한 질병이라고 보고 불승인을 남발한다. 결국 불이익은 모두 노동자의 책임이다.

변호사도 헷갈리는 산재신청... 전문가 아니면 어렵다

세 번째 장벽은 산재 신청행위의 주체가 '(피해) 노동자와 그 가족'이라는 것이다. 산재 신청서류를 작성한 경험이 없으면 변호사도 막히기 마련이다. 지난해 민주노총 법률원에서 함께 일했던 한 변호사가 "산재신청을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물어왔다. 소송은 해봤어도 신청서류를 직접 꾸려 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변호사가 이 정도인데, 일반 노동자는 말할 것도 없다. 서류를 보면 일단 '사업장관리번호'가 나온다. 산재보험성립신고번호를 의미하는 것인데, 배우지 않으면 어떻게 알겠는가?

거기다가 산재법률의 해석상 입증 책임까지 노동자에게 부과하고 있다. 즉 산재사고, 산재로 인한 질병과 업무(유해물질, 위험요인 등)와의 관련성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단순한 사고뿐만 아니라 과로사, 직업병, 근골격계 질환 등을 분석하고 관련 증거서류를 정확히 준비하는 일은 숙련된 전문가가 아니면 제대로 할 수 없다.

많은 질병 사건에서 피해 노동자는 중환자이거나 '사망'한 사안이 많다. 가족으로서 산재사건을 해결하기 답답할 수밖에 없다. 노무사를 하면서 처음 맡았던 사망사건에서 사업주는 비협조적이었고, 동료들은 면담을 거부했다. 가족은 남편 업무의 세부적인 내용과 과로·스트레스 요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산재 신청 과정도 '산 넘어 산'이지만 신청한 이후에도 산재로 승인받는 것은 더욱 어렵다. 산재라는 것조차 모르는 노동자, 신청조차 방해하는 회사, 증명책임의 전가, 불합리한 운영 기준 등으로 근로복지공단이 누적 흑자에 기뻐하고 있을 동안 노동자는 오늘도 병들고 죽어가고 있다.

나의 모든 시는 산재시다
 나의 모든 시는 산재시다
ⓒ 오마이뉴스 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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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작성한 권동희 기자는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의 공인노무사입니다.



태그:#산재, #산재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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