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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에서 내려 다 본 완성된 작은 도서관 내부. 프로젝트를 설치해 놓고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과 한 달에 한 두 차례 영화를 볼 예정이다.
 다락방에서 내려 다 본 완성된 작은 도서관 내부. 프로젝트를 설치해 놓고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과 한 달에 한 두 차례 영화를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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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 죽겠구먼, 좀 쉬었다가 하믄 안 되나?"
"어제 하던 거, 마저 끝내야지."
"좀 쉬었다가 천천히 하자구."
"어느 세월에 할려구."
"거참, 또 서둘기 시작하네."

작은 도서관에 도배하던 날, 아내와 쌈박질을 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마늘이며 양파를 심기 위해 밭갈이하다가 점심 무렵이 돼서야 겨우 한숨 돌리고 있는데 아내가 전날 하다만 도배를 마저 끝내자며 성화였습니다.

"서두르긴 내가 뭘 서둘러."
"아직 밭일도 다 끝나지 않았는디, 나는 그거 지금 못혀, 힘들어서 좀 쉬어야겠어."

천장 도배 끝내놓은 아내

싸우기 전날에는 아내와 사이좋게 도배를 했었다.
 싸우기 전날에는 아내와 사이좋게 도배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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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전날까지만 해도 말끔한 도서관에서 책을 읽게 될 아이들을 기분 좋게 떠올려 가며 금실 좋은 부부처럼 사이좋게 도배를 했는데, 단 하루 만에 그 기분 좋은 평화가 와장창 깨져 나갔습니다.

"같이 하자는 내가 바보지, 그까짓 거, 나 혼자서라도 할 거야!"
"한두 시간만 참으면 되는디, 그냥 놔 두라니께! 그거 혼자서 못 혀."

작은 도서관 천장은 지붕 선을 그대로 살려 놓았기에 긴 사다리를 받쳐 놓고 올려가야 겨우 손이 닿을 정도로 아주 높다랗습니다. 아내 혼자서 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작정하면 당장 끝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질 급한 아내였기에 막무가내로 천장 도배를 시작했습니다. 결국은 다락방에 퍼질러 있던 내게 구원을 요청하게 될 것이라 여겼는데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한두 시간 만에 천장 도배를 다 끝냈던 것입니다.

고난이도의 천장 도배를 다 마친 아내에게 할 말이 없었습니다. 실실 아내의 눈치를 살펴가며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책장 짜기를 서둘러야 했습니다. 부업인 밭일은 뒤로 미뤄 놓고 말입니다.

아내의 눈치를 살펴가며 이른 아침 부터 집 짓다가 남은 자투리 목재를 이용해 대패질 사포질을 하여 책장을 짜기 시작했다.
 아내의 눈치를 살펴가며 이른 아침 부터 집 짓다가 남은 자투리 목재를 이용해 대패질 사포질을 하여 책장을 짜기 시작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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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공사할 때 모아 놓은 자투리 목재들을 한데 모아놓고 온종일 대패질에 사포질해가며 책장을 짰습니다. 혼자서 했느냐구요? 불만이 많아도 나처럼 강 건너 불구경하듯 고집스럽게 일손 놓고 있을 아내가 아니지요. 아내가 틈틈이 옆에서 거들어 주는 바람에 하루 이틀 만에 책장을 빙 둘러놓을 수 있었습니다.

"야! 다 짜 놓고 나니께 멋지다잉!"
"그러네."
"하하 나도 하믄 잘 한다니께."
"잘 하면서 왜 게으름을 피우고 그래?"
"게으름이 아니고 몸뚱아리가 말여, 아이구, 그만두자 또 싸우겠다."

"받아줘서 고맙다는 도서 기부자들, 백골난망입니다"

오마이 뉴스 기사를 통해 전국각지에서 들어온 고마운 책들을 일일이 기록해 놓았다.
 오마이 뉴스 기사를 통해 전국각지에서 들어온 고마운 책들을 일일이 기록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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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도서관이 따로 없었다. 열흘 만에 책장 두 칸이 비좁을 정도로 천 권이 넘는 책들이 들어왔다.
 기적의 도서관이 따로 없었다. 열흘 만에 책장 두 칸이 비좁을 정도로 천 권이 넘는 책들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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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서 한 칸 높이의 책장이 완성되자 전국 곳곳에서 책들이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전에 <오마이뉴스>에 올린 기사를(관련기사 : 아내가 또 빚내서 '사고'를 쳤습니다) 보고 수많은 분들이 40만 원에 가까운 '좋은 기사 원고료'를 넣어 주셨고, 또 다른 많은 분들이 책을 보내 주시겠노라 이메일을 보내왔던 것입니다.

한 사람이 적게는 수십 권에서 많게는 수백 권까지 보내왔습니다. 어린이 책에서부터 수준 높은 소설책에 이르기까지 수백 권의 질 좋은 책들이 속속 밀려들어 왔습니다. 어떤 분은 아이들이 볼 수 있는 과학 잡지 구독 신청까지 해주셨고, 또 어떤 분은 아주 오래된 만화 <캔디>에서부터 최근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 이르기까지 수백 권의 만화책을 보내오셨습니다. 일주일도 채 안 돼 짜 놓은 책장이 꽉 채워졌습니다. 한 마디로 감동의 물결이었습니다. 기적의 도서관이 따로 없었습니다.

작은 도서관에 오래된 만화 '캔디'에서부터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 이르기 까지 수백권의 만화책이 들어왔다.
 작은 도서관에 오래된 만화 '캔디'에서부터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 이르기 까지 수백권의 만화책이 들어왔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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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물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보내온 책들은 그냥 고마운 책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보내주신 분들 한 분 한 분의 마음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택배로 책이 들어오자마자 고마움에 대한 인사를 건네기 위해 전화를 걸었는데, 모두들 책을 받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 왔던 것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을 잘 꾸며 나가라는 등의 당부를 건네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다만 받아줘서 고맙다는 것이었습니다.

책을 보내기 위해서는 택배비를 마련하고 일일이 포장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만만치 않았을 것인데도 헌책을 보내 미안하다며 받아준 것이 오히려 고맙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세상에 태어나서 누군가를 위해 처음으로 많은 책들을 선물한다며 그 기회를 줘서 너무나 고맙다는 것이었습니다. 자비의 손길들 앞에 발우를 내밀고 어쩔줄 몰라 하는 얼치기 탁발승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책들이 들어와 작은 도서관 내부를 빙 둘러 2단, 3단 높이로 책장을 짜야 했다.
 전국 각지에서 책들이 들어와 작은 도서관 내부를 빙 둘러 2단, 3단 높이로 책장을 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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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책들이 밀려 들어와 책장을 한 칸 더 높여야 했습니다. 아내와 더 이상 다투지 않고 사이좋게 부지런히 책장을 짰습니다. 책들은 계속해서 들어왔고 두 칸으로 부족해 세 칸으로 높여야 했습니다. 책이 들어오면 보내주신 분들의 이름과 함께 그 책들을 기록해 놓았는데 지금까지 들어온 책만 해도 1000권 하고도 수백 권이 넘습니다. 우리 집에 있던 책들과 합치면 족히 2천 권은 될 것입니다.

도서관 이름은 뭐라고 지을까? 사랑방?

책상과 책상까지 완성해 놓은 작은 도서관 내부
 책상과 책상까지 완성해 놓은 작은 도서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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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의 모습이 갖춰지지 시작하자 이번에는 책상을 짰습니다. 버려진 옛 부엌 문짝을 이용해 두 개의 책상을 짰는데 하나는 중고 컴퓨터를 구해 올려놓을 예정입니다. 이미 프로젝터와 스크린은 갖춰놓고 있는데 아직 중고 컴퓨터를 구입하지 못했거든요. 컴퓨터를 돌려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볼 예정인데 그것만 갖추면 그 어느 도서관 못지않은 완벽한 시설이 갖춰지게 됩니다.

완성된 책상에 칠까지 다 끝내고 나자 아내는 작은 도서관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 모양입니다.

"도서관 이름을 뭐라 짓지?"
"이름이 필요하겠어? 아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들어온 책들이니께, <오마이뉴스> 도서관이라고 이름 지을까?. 그건 좀 거시기 하지 잉?"
"그냥 책 사랑방으로 할까? 아니 그것도 좀 그러네."
"사랑방? 그것이 괜찮긴 하네."

작은 도서관은 사랑방이나 다름없습니다. 작은 도서관이 그럴듯한 모양새로 갖춰지자 동네 아이들뿐만 아니라 더러 동네 아줌마들도 놀러 와 수다를 떨거나 책을 봅니다. 주로 만화책에 손이 많이 갑니다. 어떤 아줌마는 어린 기억을 되살리면서 오래된 만화 <캔디>를 빌려 가기도 했습니다.

우리집으로 캠핑왔다가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순천 '평화학교' 아이
 우리집으로 캠핑왔다가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순천 '평화학교'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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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왔다가 작은 도서관에 텐트를 치고 책을 보는 '평화학교'아이들
 캠핑왔다가 작은 도서관에 텐트를 치고 책을 보는 '평화학교'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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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가 <오마이뉴스> 10주년 기념 한라산 등반을 간 사이에 순천 '평화학교' 아이들이 우르르 놀러 와 하룻밤을 묵었다 갔는데 바닷가에서 놀다가 집으로 들어오면 도서관에서 책을 보았다고 합니다. 아내가 찍어 놓은 사진을 보았는데 녀석들이 도서관에다가 텐트까지 치고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먼 곳에서부터 손님들이 찾아오면 도서관에서 차를 마십니다. 차를 마시다가 적당히 눈길 둘 데 없으면 책장으로 눈길을 돌립니다. 눈길을 돌리다가 은근슬쩍 책을 꺼내 책장을 넘겨봅니다. 그 어떤 경전이든 단 한 줄만 읽어도 선한 마음이 생기듯이 책 제목이나 책장만 넘겨보아도 기분이 좋은 모양입니다.

"거봐, 빚내서 지었지만 채워지잖아"

텅 비었던 작은 도서관에 책들이 채워지기 시작할 무렵 아내가 말했습니다.

"빚내서 지었지만, 거봐, 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어쩐 일여, 나보고는 그런 말 좀 제발 하지 말라고 해놓고."

'거봐, 비우니까 채워지잖아'는 우리 가족의 시골살이를 담아낸 책 제목입니다. 그 말은 내가 소박하게 사느니 어쩌니 해가며 사이비 교주처럼 툭하면 내뱉던 말이었습니다. 충남 공주에서의 시골살이에 지쳐 있을 무렵 아내는 제발 그런 말 좀 하지 말라며 한동안 그 말을 죽어라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작은 도서관을 통해 그 말이 아내의 입에서 툭 튀어나왔던 것입니다.

작은 도서관에서는 저만치 바다를 볼수 있다.
 작은 도서관에서는 저만치 바다를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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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말대로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비워 놨으니 채워야 할 것이 많았습니다. 애초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아무런 도움도 책임감도 없이 짓게 된 작은 도서관이었습니다. 그 작은 도서관을 책으로 채워주신 고마운 손길들이 쏠리게 되자 우리 부부도 모르는 사이에 그 어떤 책임감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아내는 요즘 도화면에 있는 지역아동센터에 나가 그림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분과 상의해 동네 아이들은 물론이고 그곳 아이들과 더불어 작은 도서관에 모여 한 달에 한두 차례 영화를 보기로 했고, 멀리 타국에서 낯선 한국 땅에 들어와 힘들게 다문화 가정을 꾸려 나가는 분들의 사랑방으로 꾸며 나갈 기분 좋은 계획표를 짜내고 있습니다. 나 역시 작은 도서관에 프로젝터를 설치해 놓고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뒹굴어 가며 큰 부담 없이 영상물 만드는 재미에 빠져 볼까 합니다.

작은 도서관에 놀러온 동네 아이들
 작은 도서관에 놀러온 동네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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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작은 도서관을 위해 원고료를 넣어주신 분들과 책을 보내 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고마운 말씀 올립니다.



태그:#작은 도서관, #도배와 부부싸움, #책장짜기, #고마운 책들, #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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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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