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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공부의 신> 홈페이지 메인화면
 드라마 <공부의 신> 홈페이지 메인화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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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시청자의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꽃남 돌풍'이 재연될 조짐이란다. 주인공 김수로(강석호 변호사 분)의 카리스마 넘치는 명대사에 가슴이 벅찰 지경이라며 공감한다. 단지 첫 회분이 방영되었을 뿐인데, 시청자의 반응이 예상외로 뜨겁다.

일본 만화 <드래곤 사쿠라>를 원작으로 한 KBS 월화드라마 <공부의 신>(밤 10시 방송)이 지난 4일 첫 방송을 탔다. <최강의 입시 전설, 꼴지, 동경대 가다>는 번역본으로 잘 알려진 이야기가 새해 드라마로 만들어진 것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적도 꼴찌인데다 사고뭉치인 아이들이 개과천선하여 서울대(드라마에서는 천하대) 합격이라는 기적을 일궈낸다는 성공 스토리다.

KBS 홈페이지에서도 드라마 제작 의도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입시전쟁에다 교육열병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의 교육현실에 명쾌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며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드라마라고 자부하고 있다. 제작자가 제시하는 '명쾌한 해법'이란 효과적인 공부 방법을 터득하고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것, 곧, 효율적인 테크닉과 공부에 대한 열정만 있으면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하고, 드라마를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서울대 나와야만 세상 고칠 힘과 자격 생기나?

드라마 <공부의 신>
 드라마 <공부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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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첫 회분만으로 드라마 전체를 품평할 수는 없다. 다만 어차피 드라마일 뿐이라지만, 시청자들이 가슴에 팍 꽂힌다는 명대사가 무척 부담스럽고, 꼴찌들의 성공 스토리도 뭉클한 감동을 주기는커녕 현실과는 동떨어져 어색하고 일면 식상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꼴찌들의 극적인 성공담을 통해 시청자들은 대리만족을 얻게 될 테지만, 그러한 드라마들이 여태껏 현실의 모순을 덮는 데 악용돼 왔다는 점을 되짚어보면 뒷맛이 개운치 않다.

"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짓밟히려고 하느냐. 돈 있고 빽 있는 놈들이 판친 이 세상이 역겹다고? 그렇다면 너희가 룰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뒤에서 불평만 늘어놓는 찌질이가 아니라 이 사회의 룰을 뜯어고치는 사람이 되어라."

첫 회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손꼽히는 주인공 대사의 일부분이다. 불평만을 늘어놓기 전에 역겨운 세상을 뜯어고치는 사람이 되라는 충고에 몽니부릴 사람은 없다. 그러나 방법은 단 하나뿐이라고 잘라 말하는 부분에서는 적잖이 당황스럽다. 바로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천하대)에 합격하는 것. 찌질이로 낙인찍히지 않으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다는 거다.

과연 서울대(천하대)에 진학해야만 세상을 뜯어고칠 힘과 자격이 생기는 걸까. 청소년기 찌질이는 영원히 짓밟혀야만 하는 게 현실이라면 그게 학창시절 공부 못한 그들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 걸까. 드라마 속 대사 하나하나가 명쾌하지만, 여기에 대한 답변은 없다. 어차피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듯.

더욱이 "1년 안에 5명 이상의 천하대 합격생을 배출 시키겠다"는 주인공의 대사는 '365일 별보기 운동' 중인 일선 고등학교의 모습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지만, 자칫 그러한 왜곡된 현실을 미화할 우려가 충분하다. 여전히 '서울대 ○명 합격'이 전국 고등학교들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자 최고의 광고 문구이기 때문이다.

어처구니 없는 교육 '해법' 제시하는 <공신>

미리 짐작하건데, 드라마 속에서야 다섯 명의 아이들이 이 악문 노력 끝에 천하대에 진학하고 다른 친구들의 축하와 격려를 받는 것으로 그려질 테지만, 일선 학교의 분위기는 정반대다. 수많은 아이들이 서울대 합격은 자신과는 동떨어진 일로 여길뿐더러, 심지어 불과 몇 명뿐인 그들을 위해 학교생활 3년 내내 들러리만 섰다는 자괴감이 팽배해 있다.

서울대 합격자를 몇 명이라도 더 배출하기 위해 이른바 '특별반'을 운영하는 학교마다 각종 특혜 시비로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애써 외면하고 있다. 학교의 명예를 빛낼 아이들 운운하며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는 그러한 방식이 이미 많은 이들로부터 반교육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러한 '반교육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농어촌 특별 전형 등의 방식이 아니라면 지방의 고등학교에서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에 가깝다. 이른바 '4당 5락(네 시간 자면 붙고, 다섯 시간 자면 떨어진다)'의 노력만으로 서울대 합격 여부가 갈리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면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는 거다.

입시에 영향을 미치는 변화된 환경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하면 된다'는 식의 구태의연한 교훈만 드라마의 '재미'에 실어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키고 있는 셈이다. 1년 365일 오로지 책과 씨름하고 있는 가엾은 아이들에게 좌절과 실패의 책임을 오롯이 전가하는 꼴이다.

'공부가 가장 쉬웠다'거나 '학교 공부만으로 명문대 갔다'는 식의 매우 드문 특별한 사례를 들어 우리 교육의 '해법'이라며 말하는 건 누가 뭐래도 생뚱맞다. 드라마 속 병문고등학교의 '방식'은 사교육의 수요를 학교로 모두 끌어들여 사교육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걸 암시하는데, 이는 공교롭게도 정부의 올해 교육 분야 국정 목표에 부합한다.

모름지기 교육이라면 현실보다는 이상을, 성공과 경쟁보다는 공존과 나눔을 먼저 가르쳐야 할진대, 시청자들, 곧 아이들과 학부모들 앞에서 마치 '짓밟히지 않으려면 짓밟아라'거나 '아니꼬우면 서울대 가라'는 식으로 다그쳐서는 안 된다. 서울대 합격자 수로 명문 고등학교를 구분 짓고,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학교가 쓰레기장이나 화장터 마냥 님비(NIMBY)의 대상으로 그려져서야 되겠는가.

현실 학생들에겐 시간도, 체력도, 여유도 없다

KBS 새 월화드라마 <공부의 신>
 KBS 새 월화드라마 <공부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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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에다 강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지금도 고등학교 교실은 여전히 공부 중이다. 작년 말 겨울방학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지만, 정규수업이 보충수업으로, 야간 자율학습이 주간 자율학습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입시를 향한 공부는 계속되고 있다.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들에게 방학은 이미 사라진 단어이며, 공부는 수행을 넘어 전쟁이 된 지 오래다. 그러한 그들에게 드라마 <공부의 신>은 어떻게 비칠까. 제작자의 의도처럼 꼴찌들이 끝내 천하대 가는 것을 보며 자극을 받아 더욱 열심히 공부하게 될까. 모르긴 해도,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들에겐 더 이상 공부를 이어갈 시간도, 체력도,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밤낮 구분도 없고, 방학도 사라진 그들에게 더욱 열심히 공부하라고 다그치는 건, 이제 휴일에도 명절에도 계속 학교에 나와 공부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 청소년기의 방황은 언제부턴가 죄악시됐고, 우정도, 사랑도 입시 앞에 사치가 된 지 이미 오래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 조심스럽긴 하지만, 재미로 보는 드라마에 굳이 발끈하는 이유는 우리의 교육 현실이 조금도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인공들의 작위적인 대사 한 마디, 행동 하나 하나에 울고 웃으며 호응하고 공감할까 싶어 두렵기 때문이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꼴찌들의 서울대(천하대) 합격은 분명 놀랍고도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그것이 뒤틀린 우리 교육의 해법이 결코 될 수 없을뿐더러 자칫 현실의 모순을 감추고 실패의 책임을 온전히 개인에게 떠넘기는 우를 범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TV에서 드라마 한 편 보는데도 이런 불편함을 느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태그:#공부의 신, #드래곤 사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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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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