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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아내가 베트남 여행을 가자며 노래를 부른다. 왜 갑자기 베트남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묻지도 대꾸하지도 않았다. 2월이 다가오자 아내가 항공권을 사겠다며 동의를 구한다. 난 아이들이 아직 어리니 외국은 다음에 가고 올해는 제주도나 가자고 설득했다. 아내는 서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우리 결혼 10주년이라서 그나마 비용 적게 드는 베트남 여행을 계획했던 건데 당신이 싫다면 할 수 없지. 제주도나 가자."

아내의 어조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이 여자가 진부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눈물이라는 필살기를 시전하기 직전임을. 파블로프의 개가 침을 흘리듯 그녀는 눈물을 흘린다. 남편의 무심한 한마디에 조건화된 눈물이다.

승패가 미리 정해진 무의미한 싸움을 피하기 위해 눈빛에 영혼을 담아 아내를 바라보며 손을 잡고 사과한다. 그리고 결국 베트남행 항공권을 예매했다. 출발일은 4월 25일.

하지만 한 가지 고민거리가 생겼다. 다니는 직장의 워크숍 날짜가 연기되어 가족 여행 일정과 겹치게 된 것이다. 팀장님은 먼저 정해진 가족 여행을 미루라고 한다. 항공권이랑 숙소 위약금만 해도 얼만데. 고심 끝에 사장님께 직접 자초지종을 털어놓으니 의외로 순순히 허락하신다. 30명 남짓한 직원으로 구성된 소기업이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단서가 붙었다.

"그래, 회사보단 가족이 먼저지. 그 대신 여행하면서 가족의 비전과 철학에 대해 고민해보게. 여행이라고 그냥 놀기만 하면 되나? 회사뿐만 아니라 가족도 비전과 철학이 있어야 해."

직원들이 하나의 '비전과 철학'을 공유해야만 기업의 미래가 밝아진다는 게 사장님의 신조다. 경영학 전공자인 사장님의 이론인지, 어떤 책에서 차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전 직장에서도 경영학 전공자들을 여러 명 만나봤다. 주로 중소기업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리더십이나 창조적인 업무수행에 관한 강연을 하는 컨설턴트들이었다. '미래 지향적 기업 경영' '새로운 리더십' '창의적 업무 수행' 등에 관한 책을 집필한 사람들도 있다. 책을 썼든 그럴듯한 강연을 하든 내 눈에는 '창의'나 '혁신'을 팔아먹고 사는 장사꾼처럼 보인다.

그런 컨설턴트 내지 강사들은 어떤 면에서는 작사가 겸 작곡가인 것 같다. 그리고 주로 노동요를 만든다. 그들이 만든 노동요는 몇 개의 영단어의 첫 글자를 딴 이니셜이거나 라임이 딱딱 맞지만 꽤나 유치해서 낯간지러운 슬로건이다. 물론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노동요와는 달리 따라 불러도 흥이 나지는 않는다.

이런 부류에게 현혹된 경영자는 '혁신을 주제로 토론하고 학습한 후 그 결과를 프레젠테이션 하는 것이 곧 혁신'이라고 믿게 되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나의 사장님은 경영자이자 컨설턴트다. 아마 머릿속에서 1인 2역을 하느라 바쁘시겠지, 스스로를 설득하는 동시에 스스로에게 감화되겠지.

아무튼 그리 반갑지 않은 워크숍에서 빠지게 된 건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업무에 복귀했을 때 사장님이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지, 도대체 어떤 비전과 철학이 우리 가족에게 적합할까, 여행 중에도 이런 고민이 가끔씩 떠올랐다. 사장님에게 예의에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속에 뼈가 든 말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 잠깐의 궁리 끝에 다음과 같은 대답을 생각해냈다.

"'전 아내는 물론이고 두 아이와 같은 비전을 공유하는 게 과연 좋은 일일까 하고 반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낳은 아이들이지만 그 둘이 부모에 대한 어떤 책임이나 의무를 가진 것은 아니거든요. 아이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낳은 것도 아니고 그 애들은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그냥 세상으로 던져졌을 뿐입니다. 물론 함께 사는 동안에는 부모의 보호가 필요하겠죠. 하지만 아이를 낳은 것은 같은 목적을 지닌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해서도, 저나 아내의 신념을 공유하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두 아이가 독립할 때까지는 저희 부부도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야 할 아이들에게 부모의 꿈을 강요하는 게 그리 바람직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고 그들의 삶도 부모 인생의 연장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사장님 말씀을 듣고 고민한 덕분에 가족의 철학 대신 아버지로서 제가 가져야 할 철학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물도 주고 필요하면 바람막이도 되어 주되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자,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되 행복조차 강요하지는 말자,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 이상입니다'라고 말할 생각인데 당신 생각은 어때?" 하고 아내에게 물었다. 일종의 리허설이다.

지루한 이야기를 참고 들어준 아내가 내 손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타이른다. "당신 얘기를 듣고 마음이 뭉클했어. 이러니저러니 해도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야 정말. 맞아 당신 꿈이 어떻든 애들은 자기만의 꿈이 생기겠지. 그렇긴 한데, 그래도 사장님한테 미운털 박혀서 좋을 건 없잖아. 그냥 적당히 넘어갑시다, 여보. 원래 어느 조직이든 윗대가리는 다 그래. 나도 직장생활 해본 사람이잖아."

역시 여자는 현명하다. 이 사람과 결혼하길 잘했다. 그때 옆에서 엄마가 새로 사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아이가 한마디 거든다. "아빠 꿈은 부자 되는 거랑 영원히 사는 거잖아."

그래, 나에겐 꿈이 있었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거액(최소 200억)을 손에 넣어 경제적 자유를 얻는 것, 그리고 죽음의 숙명에서 벗어나 인류의 오랜 염원이었던 영생을 이루는 것.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난 그 꿈들을 아내나 초등학생 딸과 공유하려고 애쓴 적이 있다. (둘째인 아들은 너무 어리다.) 두 사람은 그것을 거부했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그 모든 것을 혼자 누릴 생각을 하니 조금은 우울했었지만 '아무리 가족이라도 내 꿈을 강요할 수는 없다. 운명이 우리를 갈라놓을지라도 그들의 자유의지는 존중해야겠지' 하고 마음먹고 조금 홀가분해질 수 있었다.

잠깐의 과거 회상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딸은 새로 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킥킥대고 있다. 그러다 스마트폰을 들어 아빠에게 화면을 보여준다. "아빠 카톡 대화명 진짜 잘 어울리는 걸로 바꿨어."
 
이백억 벌(천년 후에) 좀비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