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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일(목)

배경 설명: 2025년 10월 5일부터 추석 연휴. 이제 52세가 된 비혼의 여자인 나의 하루를 기계공학 박사 출신의 전문직으로써의 삶과 함께 그려보고자 함.

다음 주가 추석이라서 일찌감치 고향에 내려와 있다. 2020년 이후로는 재택근무가 일상화되어 있어서 회사 업무 시스템을 접속할 수 있는 장소에서, 할당된 임무를 정해진 기한 내에 완료할 수만 있다면 별도의 출퇴근 관리는 하지 않는다. 마침 오래된 고향 집을 새로 지으면서 네트워크도 다시 설치한 터라, 일을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아서 일찍 내려왔다. 마침 지난 9월 말로 3년 동안 수행하던 과제의 결과 보고도 마친 터라서, 업무적으로도 여유가 생겼다. 결과 보고는 과제 참여자들이 오랜만에 대전역의 회의실에서 얼굴을 보면서 했는데, 지난여름의 진도 보고회 후 오랜만의 오프라인 미팅이었다.

재택근무의 일상화라니! 출퇴근 시간을 1분 단위로 관리하고, 점심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며 눈치를 받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세상 참 좋아졌다. 처음에 재택근무에 대해 얘기가 나온 것은 2010년 즈음이었다. 그때에도 이미, 대부분의 기업체는 회사의 전용 업무 시스템을 갖고 있었고,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은 '눈앞에 보여야'만 관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이유로, 일터의 범위를 '회사의 업무 공간 내'로 규정지어 놓았었다. 하지만, S 전자를 비롯한 거대 기업들은 주간 단위의 유연근무 제도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고, 주당 40시간의 근무 시간만 지킨다면 출퇴근 시간은 별도로 관리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속한 조직은 S사보다 늦기는 했지만 10년의 시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서, 대한민국이라는 거대 조직도 자연스럽게 재택근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관리' 체계의 운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던 베이비부머 세대가 2020년을 전후로 하여 급격하게 은퇴를 하게 된 것도, 중요한 조직 문화 변화의 요인이 되었다.

 
2025년의 대한민국 베이비 부머들의 은퇴시기가 기술적인 대전환기와 일치되고 있습니다. 2025년의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서, 지금만큼 중요한 시기가 있을까요?ⓒ 이창희
 

어쨌든, 나는 이제 거의 회사에 나가지 않고도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정기적인 미팅은 화상으로 진행하고, 중요한 과제 미팅이나 보고회, 현장에서 실험을 해야 하는 경우에만 오프라인의 작업 공간을 활용한다. 기계공학 박사라는 타이틀을 갖고 이 세계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지 30년이 넘어가고 있는 데다가, 이제는 나이도 50세를 넘어가니 체력적인 문제도 조금씩 느껴진다. 그래도, 예전에는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수행해야 하는 실험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대부분의 엔지니어링 업무가 컴퓨터를 이용한 가상 실험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체력적인 한계를 뒷받침할 수 있다. 이런 기술적인 뒷받침 때문인지, 요즘에는 각자의 분야에서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전문직 여성들도 종종 발견할 수 있어서 반갑다.

게다가, 요즘에는 분야에 관계없이 다양한 여성인력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서, 여성의 의견이 소수의 것이라며 무시되거나 외면받지 않는다. 한때는, 조직의 여성 비율을 30퍼센트 이상으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지표로 인식되면서, 상대적으로 남성들의 역차별을 우려해야 했었는데 요즘의 일터에서 비율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일하는 조직도 처음 근무하기 시작했을 때엔 여자 연구원이 3퍼센트 수준이었는데, 요즘엔 분야에 따라 40퍼센트를 훌쩍 넘어가는 곳도 많이 생겼다. 생물학이나 약학 분야에서는 여성 연구원이 60퍼센트를 넘어가기도 한다니 이제 더 이상 평등은 제약이 아니라 사회가 받아들이는 것이 유리한 문화로 정착된 것 같아서 반갑다.

2016년 베스트셀러 중에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히노 에이타로 저)라는 책이 있었다. 직장 생활에서 만나는 수많은 관계에 대한 불편함을 유쾌한 문체로 풀어낸 책이었는데, 당시의 직장생활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수많은 관계들로 인한 스트레스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요즘엔 직장이라는 조직에 소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회사에서 만날 수밖에 없던 '직장의 관계'가 주는 스트레스에서 일정 수준 거리를 둘 수 있으니 훨씬 편해졌다. 가끔 회사의 친구들을 만나고 싶을 때는 일정표를 통해 날짜를 정해서 만나면 되니까, 그것도 '관계에 의한 부담'을 덜 수 있게 된 좋은 점이다. 업무의 효율화나 관리의 느슨함이 줄 수 있는 손실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고민해왔지만, 제도가 정착되는 동안의 시행착오를 통해 손실보다는 이익이 더 크다는 것은 수치적으로 증명된 바 있다. 또한, 2015년 즈음하여 신입 직원들이 구직난에도 불구하고 3년을 못 채우고 회사를 떠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그런 문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모두가 자신이 일하고 싶은 방식으로 일할 수 있으니, 조직을 떠날 이유가 없어진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좋은'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2020년 초에는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신규 일자리의 창출에 대한 갈등이 극에 달했었다. 이제는 먼지 쌓인 단어가 되어 버렸지만 '4차 산업혁명'을 이끌던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2020년 초 단순 반복적인 인간의 일자리를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는 것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인공지능은 경험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사회 초년생들의 일자리를 크게 위협했고, 사회는 새로운 방식의 일자리 창출과 기본적인 소득의 확보를 위한 갈등을 심각하게 겪어내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2019년부터 2020년까지의 사회적인 대토론회가 없었다면,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제도의 변화가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그때 토론회에서 어떤 얘기들이 있었더라?

첫 번째가 인공지능에 의한 일자리 대체를 수용하는 것에 대한 '인공 지능세'를 수용하는 것에 대한 논의였고, 이렇게 확보된 추가 세금은 우선 젊은 20~30대 사회 초년생의 기본소득으로 분배하는 것에 동의했다. 이와 더불어 노인 세대를 위한 복지제도로써 공공 의료의 강화에 기반한 공동체 돌봄 서비스를 도입하였고, 이를 위한 비용 일부도 인공지능 및 확보된 빅데이터의 상업적인 활용이 필요한 경우에 대한 세금을 통해 충당할 수 있었다. 동시에 진행된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은 다양한 공동체 단위의 발전소를 만들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시켰고, 이를 통한 공동체의 수익 모델 확보는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는데 사용되었다. 물론,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지 않고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필요한 일자리를 자발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것도, 쇠퇴해가던 지역 공동체가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한 큰 변화였다. 사회의 대전환을 이끌어내기까지 극에 달했던 갈등은 지난 5년의 시간을 흘러가면서 자연스럽게 봉합되었고, 지금은 그때의 노력이 자연스럽게 정착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무척이나 행복하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우리나라 내부적인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탄생한 '초국적 대기업'은 풍부한 데이터에 기반하여, 세계에서 제일 '똑똑한' 인공지능 엔진을 공급하면서 수많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데 가장 적극적이었다. 미국의 독자적인 행보에 위기를 느낀 중국과 EU를 중심으로 한 세계 연합은 어떻게든 이런 식의 독주를 제어하고자 노력했고, EU를 선두로 인공지능 도입을 통해 발생한 이익을 '기본소득' 형태로 재분배하는 것을 제도화하였다. 당시, 미국도 국내적으로 급격한 양극화와 다양한 차별로 인한 사회적인 문제를 봉합하기 위한 제도를 도입하는데 적극적이었던 점도, 우리가 기본소득을 도입하는데 기폭제가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공공의 영역에서 관리되어야 하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어떻게 사기업으로부터 분리하는지에 대한 논의인데, 거인이 되어버린 구글의 빅데이터가 쉽게 물러서지 않고 있어서 걱정이다.

지금은 오래된 단어로 취급받지만,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던 2016년에 발간된 <노동 없는 미래>(팀 던럽 저, 비지니스맵 출판)의 부제가 떠오른다. 당시 저자는 우리의 미래를 '인류 역사상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우리는 급격한 사회 전환의 시기를 현명하게 넘어간 덕분에 '가장 인간다운' 오늘을 맞이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일터에서의 관계나 관리에 의한 스트레스가 최소화된 상태로 일할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라니… 이런 2025년을 만들어낸 우리가, 2016년의 촛불이 성공했던 봄날의 환희만큼이나 자랑스럽다.

"누나, 집에 필요한 것 없어?"
"엄마랑 장은 다 봤는데, 너희들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챙겨와."

추석 차례를 위해 집으로 오는 동생이 갑자기 모니터에 등장했다. 가족회의를 통해 차례를 꼭 고향집에서 보내지는 않아도 좋다고 협의한 후로, 종종 생전에 아빠가 가보고 싶어 하시던 금강산에서 지내곤 했는데, 올해는 연휴 전 정리해야 하는 과제 보고회가 있어서 고향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연휴가 길지는 않지만, 다른 동생들도 아이들과 함께 엄마께 인사드리러 온다고 하니 잘 되었다. 대신, 내년의 설날에는 가족 모두가 북한의 겨울을 보러 가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큰 조카가 최근 개마고원의 생태에 관심을 갖고 있어서 여행 계획은 조카에게 부탁했다. 이번 추석에 만나면 한 번 물어봐야겠다.

인간은 자기의 시간과 관심을 자기가 쓰고 싶은 방식으로 사용해야 '행복'에 가장 가까워진다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자유롭게 자신만의 학습 주제를 정하게 하는 요즘 학교의 교육 방식도 마음에 든다. (이건 다음에 한 번 자세히 써 보련다.) 2019년에 <SKY 캐슬>이라는 드라마가 굉장한 흥행을 했었는데, 요즘엔 'SKY'가 무슨 뜻인지 관심을 갖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만큼 세상이 좋아진 것이라고 믿는다.

"창희야. 엄마는 운동하러 갈 생각인데, 너도 갈래? 돌봄 서비스 기사님이 10분 후에 도착하신대."

엄마가 아래층에서 부르신다. 결과 보고서는 마무리했으니, 시스템에 업로드하고 요가하러 가야겠다. 몇 년 전에 14년간 몰던 오래된 차를, 자율 주행이 가능한 전기차로 바꿨는데 오늘은 이 아이도 휴가다. 오랜만에, 엄마의 이동을 도와주시는 기사님께 신세를 져야겠다.

45세가 되던 해, 회사를 더 다닐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을 준비해야 한다는 게 비참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다니기 힘들어하던 직장을 20년이 넘게 다니고 있다니, 나 자신이 대견하다. 그리고, 일터에서의 스트레스를 고민하지 않고도 일할 수 있는 세상을, 우리가 만들어 냈다는 것도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버티길 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