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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사회(surveillance society)>
박정훈 시사평론가

2014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각 단체별 CCTV 설치 대수는 8,076,415대로 국가기관의 경우 71%, 개인사업체의 경우 28.6% 법인체의 경우 46.2%가 CCTV를 설치해서 운영 중 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4년 전의 자료이기 때문에 지금은 비약적으로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수도권 지역의 한 사람의 하루 평균 CCTV노출 횟수는 83회, 거리를 지날 때마다 9초에 한 번씩 CCTV에 찍히는 것으로 발표하였다(서울일보, 18.02.26).' 최근 국립중앙의료원의 의료기기 영업사원의 대리수술 문제로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자는 여론이 형성 되고 있다.

그리고 청와대 게시판엔 이와 관련된 국민청원도 올라 와 있는 상태이다. 필자는 과연 CCTV설치가 대리수술이나, 기타 문제를 해결 하는 순기능만 할 것인가에 대한 원론적인 의문이 든다.

최근 조선대학교의 이훈교수와 이원상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현재까지 발표된 CCTV의 범죄예방효과에 관한 선행연구를 종합하면 연구의 방법, CCTV의 설치장소, 대상 범죄에 따라 그 효과성이 상이하기 때문에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Cho & Park, 2017). 그러나 CCTV 설치 총량을 늘리고 주변의 조도를 높이는 경우 차량절도와 같은 범죄뿐만 아니라 시민의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잠정적인 결론에 이를 수 있다.' 라고 한다. 즉 CCTV의 범죄예방효과는 명확하지 않고, 다만, 시민들이 막연히 범죄에 대한 예방성이 높다 지각하는 것으로 밝혀 진 것 이다.

사실 무분별한 영상기록장치의 설치는 그 이점보다 더 큰 부작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그 변화의 끝을 알 수 없는 영상기록장치는 드론카메라와 웨어러블캠을 넘어서 스파이캠 등으로 변질 되어 가고 있는 점도 문제이다. 또한 전 국민이 1인 1대를 소유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스마트폰은 언제든지 영상을 기록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수많은 종류의 영상기록장치들은 우리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과 개인정보 등을 무차별적으로 기록하게 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디지털 성폭력(일명:revenge porno)도 사실 영상기록장치의 오남용 사례로 볼 수 있다.

또한, 모든 것이 감시되고 기록되는 상황 속에서 의사들이 위험성이 동반 되는 긴급한 수술이나, 고도의 기술이 필요로 하는 수술의 시도 자체를 가로 막는 현상도 불러 오게 될 것이란 예측도 할 수 있다. 즉, 쉬운 수술, 가벼운 수술만 하게 될 수도 있단 의미다. 이는 결국 환자가 그 피해를 고스란히 지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바로 기록된 영상의 해킹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의 정도는 예측조차 곤란하다. 그리고 해킹이 아닌 영상 관리자의 유출 문제도 발생 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해서 어린이집에 CCTV를 설치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비참했다. CCTV가 설치된 교실에서 그리고 CCTV를 피해 창고에서 아동학대는 발생했다. 이는 결국 수술실에서도 반복 될 수 있단 의미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CCTV 설치만을 고집하기 전에 우리사회가 구성원들의 개인의 윤리적 수준과 상대에 대한 신뢰를 높여만 한다. 그리고 일부 제도의 보완을 통해, 병원과 의료인 스스로가 자기방어를 위해 제한적인 영상을 기록하는 장치를 설치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사실 우리사회 구성원들의 윤리성은 땅에 떨어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과 윤리적 기준이 대립 할 때 자신의 이익을 선택한다.

신문지상의 재벌과 정치인들의 갑질 뿐만 아니라 마트 계산원에 대한 갑질과 콜센터의 전화상담원에 대한 갑질은 평범한 국민들의 이야기이다. 이렇게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너무나 쉽게 윤리적 기준을 버리고 있다.

이는 초중고 12년간의 교육기간 중 우리는 오직 대입을 위해서 교육 받는다. 그리고 그것은 왜곡된 성공에 대한 욕망이다.

끝으로 필자는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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