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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

[2018 편파적 콘서트 감수성 올림 여섯 번째 강연] 김명식 건축가, 유해랑 마임이스트
18.11.24 22:53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수원문화재단과 수원시평생학습관 시민기획단 나침반(이하 나침반)이 함께 하는 2018년 편파적 콘서트 감수성 올림: 아프다고 말하기/ 괜찮냐고 말걸기 여섯 번째  '공간으로 말걸기'가 11월 15일에 학습관에서 진행됐다.  11월은 가을과 겨울이 만나는 달이다. 창 밖 나무엔 짙은 낙엽이 달력엔 입동과 소설(小雪)이 적혀 있다. 매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는 달이기도 하다. 불수능으로 꽃 같은 아이들의 숙인 고개가 떠오르는 날 저녁 7시에 아픔의 공간을 성찰하는 건축가와 몸짓으로 이야기 하는 마임이스트를 만났다.

    지난 시간에는 김애란 작가의 소설 속 공간과 사람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있는 곳과 청춘들이 머무는 장소의 온도를 생각하게 했다. 사회가 품고 있는 공간의 온기가 궁금해졌다. 우리는 건축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함께 해야하는 고통 어린 공간을 철학적으로 생각한 김명식 건축가가 있다. 시민과 함께 답사한 후 쓴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여는 무대는 인형극단 '도토리'를 이끄는 유해랑의 마임이었다. 강좌를 기획하면서 강연자와 예술가의 조합에도 공을 들였다. 김사월과 시와의 기타 소리가 우리 마음을 찬찬히 열어주듯 말없는 몸짓이 아픔의 공간과 어울리길 바랬다.

          
유해랑 마임이스트의 마임 공연 마임 공연 중 하이라이트 장면 ⓒ 노성분
 
                    
     사회자의 짧은 소개 후 유해랑은 맨발로 무대에 올랐다. 검은 색 티셔츠와 바지를 입은 그는 회색 마스크를 썼다. 귀밑까지 올라오는 입모양이다. 웃는 얼굴이다. 신문을 찢어 새를 만들었다. 그리고 사람과 배를 만들었다. 배와 사람이 아래로 아래로 향한다. 마임이스트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총을 만든다. 신문지라도 자기 머리를 겨누는 모습이 위태롭다. 더이상 마스크의 표정은 웃는 얼굴이 아니다. 같은 마스크인데 우는 얼굴이다. 마스크 안의 얼굴이 그려진다. 몸짓이 보여주는 움직임이 표정을 삼킨다. 말해지지 않는 걸 본다. 먹먹해진다. 유해랑은 엉거주춤하게 섰다가 뛴다. 제자리여도 열심히 뛴다. 문을 만나지만 열지 못한다. 열어주고 싶어 답답했다. 저러다 뭔일 나지 싶다. 몇 번을 반복하고 그는 기어이 문을 연다. 그리고 꽃 모양을 만들고 마스크를 벗는다. 벗은 마스크를 들어 올려 쳐다본다. 마스크를 바닥에 가지런히 놓으면서 마임도 끝난다.
       
           
              
공연이 끝난 후 유해랑 마임이스트의 공연이 끝나고 질의응답시간 ⓒ 노성분
 
   
    짧은 질문과 답변의 시간이 이어졌다.

"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특별히 생각하신게 있나요? "
  " 고통과 소통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2~3년 전에 잔해.라는 공연을 했는데요. 유튜브에 나와요. 광주 순례를 하면서 아파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공연했어요. 소외되고 잊쳐진 사람들이요. 그 작업을 발전시켜서 준비했어요."

" 배 모양을 보면서 어떤 아픔이 떠올랐어요. 선생님은 어떤 걸 표현하고 싶으셨나요?"
" 저는 작품이 끝나고 설명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저는 A를 표현했지만, 보는 이들은 다른 것을 떠올려요. 다른 삶을 살았기 때문이죠. 제 말이 정답은 아니지만, 오늘은 작품에 대해 말할게요. 매년 10월 경에 예기출판사 사장님과 순례를 갑니다. 페스티벌에 참가하기도 하는데요. 광주에 가기 전에 안산에 갔었어요. 세월호 관련해 큰 인형(그는 인형극단을 운영한다), 대형 가면을 만들어 퍼레이드도 했어요. 그 중간에 나오는 건 먹물대신에 썼던 검은색 한지예요. 피를 상징하죠. 광장에서는 먹물을 직접 뿌렸는데, 여기서는 안 될 것 같아 한지를 찢어 저에게 뿌렸어요. 그리고 한지 찢는 소리를 녹음 한 걸 가져왔어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
      
김명식 건축가가 나치에 의해 희생된 동성애자 추모비를 설명하고 있다. ⓒ 노성분
 
    김명식 건축가는 이탈리아에서 도시와 건축, 공간에 관하여 공부하고 2014년에 귀국했다. 책『철학적으로 도시 읽기』(2014년) 와 오늘 주제인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을 썼다. 그는 강연 시작과 끝을 시로 장식했다. 첫 시는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유명한 유치환의 '깃발'이었다. 2015년 광화문 광장에서 휘날리는 비닐의 영상을 보여줬다. 그는 이 장면을 보고 유치환의 시가 떠올랐다고 했다. 시와 철학, 건축 모두 응시하는 공통점이 있다. 이야기 나눌 첫 공간은 세월호 추모 공간이다. 옛 시청 건물인 서울도서관 3층에는 <4·16 세월호 참사 기억-별이 되다>기억 공간이 있다. 오랫동안 애도하고 함께 기억해야 할 아픔이 노란 빛의 공간을 채웠다. 단원고 故 이보미 양과 김장훈의 듀엣 '거위의 꿈' 노래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두 번째 공간은  영국 맨체스터에 있는 <제국전쟁박물관 북관>이다. 파괴와 재생의 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건축물로 다니엘 리베스킨드가 설계했다. 전쟁으로 파괴된 지구의 대지, 대기, 바다가 겹쳐져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와 반대로 김명식 건축가가 영상으로 보여준 내부의 모습은 전쟁의 위험성을 감각적으로 느끼게 한다. 박물관의 한 공간에 들어가면 탱크와 비행기를 대치시켜 배치해 놓았다. 들어오는 이로 하여금 전쟁이 시작되는 느낌을 준다고 했다. 전쟁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경각심도 함께.  이 곳에는 전쟁기간의 여성의 일상도 전시한 공간이 있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 사용되었던 무기, 전술, 역사만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이 아니다.  부각되지 않았던  여성들의 희생은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이유 중 하다. 북관에서 파티가 열리기도 한다. 고통의 기억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경험이 있었나?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다음 공간은 베를린에 있는 유대인학살기념비다. 분단 시절 베를린 장벽 무인지대였고 히틀러의 벙커와 나치기관이 있던 장소다. 축구장 2개 정도가 되는 넓이에 크기가 다른 벽돌같은 비석들이 2711개가 있다. 하늘에서 본다면 파도가 이는 형상을 연상시킨다. 수도 한 복판에 공동묘지 같은 공간이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시민들이다. 일상으로 들어간 추모는 역사 반성의 강한 의지 표현이기도 하다. 기념비와 가까운 곳에 나치에 의해 희생된 동성애자 집시 추모비도 있다. 우리에게도 오래 기억해야할 아픔들이 많다. 고통의 공간은 어디에 있는 게 좋은지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 나라의 애도 문화가 있다. 죽은 이를 기리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 만약에 추모의 공간에서도 생일 파티를 할 수있다면 그래도 우리는 그 공간을 혐오할까? 독일인의 시민력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아보고 싶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내부 ⓒ 노성분
 
     이번엔 우리 나라다. 마포에 있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다. 주택가 안에 위치해 있다. 2층짜리 주택을 리모델링했다. 김명식 건축가는 박물관 일층에서 이층으로 올라가는 공간을 주목했다. 골조 마감제를 오픈 시켜 햇빛이 들어온다. 및이 들어와 반사해 벽을 할퀴어놓은 느낌을 준다. 위안부 할머니의 삶이 은유적으로 표현된 공간이라고 말했다. 제주도의 4·3평화공원 사진이 보인다. 건축가가 갔다온 경험을 말했다. 여름이었는데 바람이 강했다. 기념비와 위령 제단으로 가슴이 무거웠다고 한다. 43사건을 알면 먹먹해지는 건 당연하다. 김명식 건축가는 독일의 유태인학살 기념비를 말했다. 아픈 공간에 와서 편히 쉬기도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주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은 처음 나왔던 세월호 기념 공간이다. 팽목항에서 4.1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기억의 숲>과 <기억의 벽>이 있다. 오드리 오드리 햅번 가족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기억이 숲에는 새 생명이 자라고 있다.

" 건축가님이 추천하는 우리나라의 추모 공간은 어딜까요?
"지난 주말에 서울도서관에 다녀왔어요. 아까 말한 3층에 있는 세월호 추모공간도 봤어요. 이 곳을 추천해요. 교통편도 좋아요.
  고통의 공간을 균형있게 보존한 곳은 서대문형무소의 여옥사예요. 책에도 나와있는데요. 고통의 공간이 잘 보존되어 있으면서 현대적 기술을 이용해 세련되게 그 공간의 의미를 알게 해놓았어요. 나머지는 책에 나온 공간을 가보시라고 하고 싶네요."
"공통질문이기도 한데요. 시도 좋아하시는 것 같고 감수성을 유지하는 방법은요?"
" 민망합니다만, 저는 시골에서 자랐어요. 바닷가랑도 가까웠어요. 그 때의 경험이 몸에 밴 것 같아요."

   강의를 듣고 나니 독일 베를린에 가고 싶어졌다. 유태인학살 기념비 사이를 걷고 싶다. 그 먼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가봐야 겠다. 빛이 반사 된 벽돌의 모양이 마음에 남는다. 총 9회 중 세 번의 강연이 남았다. 모두 공동체를 찾는 시간이다. 조금은 더 가깝게 우리 옆을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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