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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을 떠도는 고려인들(4)

죄명은 고려인이라는 이유 한가지뿐~
17.09.03 18:35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우슈토베의 고려인 강제이주당시의 숨진 이들의 무덤 녹슬어 이름도 알수없는 묘비판은 쓰러져 있기도 하고... ⓒ 전상중-직접 촬영

한국의 시월과는 다른 이지역의 기후는 아침 저녁이면 벌써 초겨울의 기온이다
처음엔 우슈토베의 바슈토베 (큰산 )라는 곳에 내려 졌는데 황량한 벌판에 아무것도 없어서 어른들이 토굴을 파고 그 위에 갈대로 임시거처를 만들어 지냈는데 이때 연로한 늙은이들과 젖먹이들이 많이 죽었다.
자료에는 젖먹이  3 분의  1 이 이때 죽었다고 기록되여 있고  토굴이 있은 위쪽을 보니 이때 숨진 고려인들의 묘비가 초기 정착지에서 불과  4-500m 거리를 두고 즐비하게 그때의 참상을 말해주는 듯 하다이런 기후속에 낯 설고 물 설은 땅 , 생활주거조건이 전혀 생소한  '바슈토베 '에 스탈린정권은 이들을 마치 쓰레기버리 듯 내다 버렸다 .
이 을씨년스러운  '바슈토베 '언덕에 나라잃은 내동포들이 힘없이 내 팽개쳐져 살았다 .
그로부터 80년이 지난 오늘 ,
나는 1937년 그때도 불어왔울 천산맥의 매서운 북풍한설을 맞으며 이곳  '우슈토베'' 언덕에 서서 그들이 당한 고초를  역사의 현장인 이곳에서 생각해본다 .

죄명은 고려인이라는 이유 하나 
이들이 당한 고초가 어디 이뿐이랴 !
그러나 , 이런것들은 외형적인 제한일뿐 . 고려인들에게 실제로는 더 많은 제약과 차별이 있었다 .
이 당시 고려인들의 법적지위는  '강제이주민 '으로서 소련내무위원회의 특별 관리 감독대상으로 공민권을 완전히 박탈당한체 신분증마져 모두 압수된 상태였고 설사 신분증을 도착지에서 새로 받았다해도 특수거주지 주민으로 분류되여  5 년동안은 허가없이 이주지를 이동할수없다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

~고려인은 특별 관리 감독 대상으로 공민권 박탈 ~
고려인들은 대학에 진학할수도 없었고 군대지원은 물론 전시중인데도 전쟁에 참가할수없었으며 언제나  "특수 거주지 주민 "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불이익을 당해야만 했다 .
"죄없는 죄인으로 , 죄명은 고려인이라는 이유하나뿐 .."
나라잃은 약소민족의 서러움이랄까 ?
그러나 ,망국의 비애를 노래하며 슬픔에 잠길 여유로움마져 이들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
이런 악조건속에서도 고려인들은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타고난 근면성으로 환경에 적응하며 이듬해봄부터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

우수토베 고려인거리에 선 기념비앞에서 그의 아들 우슈토베시내에 있는 고려인 노력영웅 '리 미하일비치' 기념비앞에선 아들인 리 블라디미르 우슈토베 벼농업회사 사장 ⓒ 전상중-직접촬영

우슈토베시내에는  '리 /레오니트 미하일비치거리"  ''윤 /세르게이거리 '같은 고려인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 .'우소토베 '지역에 처음으로 벼농사를 시작하여 고려인들의 경제생활을 윤택하게 한  노력영웅들을 기억하기 위한 것으로 고려인들이 이때부터 벼농사를 시작하므로서 이미 자가 식량을 확보했으며 원주민들의  경제생활에도 간접적으로 보탬이 되기 시작했다 .
동행한 천미하일 할아버지가 나를 안내한 곳이 바로 우쇼토베 고려인협회장 사무실이다.

그는 한국말을 모르지만 나를 반갑게 맞아주며 자기집으로 안내한다 .
놀랍게도 집안에는 개량된 온돌이 만들어져 있다 . 진주강씨라는 아내와 어머니를 소개한다 ,
그 어머니는 아직도 함경도 방언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의 집은 한국처럼 만든 온돌은 아니지만 침대에 온수파이프를 깔아 온돌과 같은 난방효과를 내게 했다 .날씨가 차다며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것이라며 나를 그곳에 앉으라고 잠시후  식사가 차려졌다 .

고려인 가정에 초대되여 차려진 식사 우슈토베고려인협회장집에 초대되여 ⓒ 전상중-직접촬영

쌀밥에 김치 .된장 .고깃국 ......!
비록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고국을 떠나 대를 이어 타국에서 살지만 100 년을 떠돌아 다녀도 고려사람임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계기였다 .
쌀을 먹어야 하는 민족 . 김치를 먹어야 하는 민족 ...
한국말은 못하지만  어쩔 수 없는 한국인 DNA를 가진 우리 동포였다.
(다음은 '고려극장'이 연재됩니다.)

덧붙이는 글 |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을 맞아 역사의 현장인 이곳 중앙아시아에서 아직도 떠돌아다니는 고려인들의 실상을 알려 한민족 정체성과 디아스포라형성에 일조하고자 이글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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