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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에 딴지걸다] 남제왕男弟王은 계체천황일까

남제왕男弟王은 모대 동성왕이다
17.02.17 16:03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일본 和歌山県와카야마현 橋本市하시모토시에 있는 隅田八幡스다하치망 신사에는 백제 무령왕이 왜왕에게 보냈다는 구리거울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보관장소인 신사의 이름인 스다하치망에다, 인물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어 인물화상경을 붙여서 스다하치망 인물화상경이라고 불리는 이 청동거울의 둘레에는 48자의 명문이 있고, 뒷면에는 9명의 인물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9명의 인물에 대해 『일본천황도래사』를 쓴 渡邊光敏는 "마상의 男弟와,  산책하는 높은 모자를 쓴 곤지와 소매가 긴 옷을 입은 곤지부인, 그리고 네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가운데 검을 들고 있는 아이가 사마와 牟大일 것 같은 인물화가 그려져 있다. 지난 일을 생각하게 하는 한 폭의 정경"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48자의 명문 癸未年八月日十大王年男弟王在意柴沙加宮時斯麻念長寿遣開中費直穢人今州利二人等取白上同二百旱作此竟에 대한 풀이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큰 줄기는 斯麻사마가 男弟王남제왕의 장수를 기원하며 거울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필자가 이 거울에 관심을 갖는 것은 '斯麻사마'가 바로 백제 무령왕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男弟王남제왕이 누구냐 하는 것인데, 통상 계체천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필자가 딴지를 걸고자 하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으로, 필자는 계체천황이 아니라 백제의 동성왕, 즉 牟大가 변신한 무열천황이라고 주장합니다.

男弟王에서의 男弟를 지금식의 한자 뜻풀이를 해서 '남동생'이라고 풀이하는데, 남동생이 아니라 그 왕의 이름입니다. 가을 7월, 軍君이 京에 들어왔다. 이미 5인의 子가 있었다[백제신찬에 말하였다. 辛丑년, 개로왕이 아우 昆支君을 내보내어 대왜에 가서 천왕을 모시게 하였다. 兄王의 수호를 닦았다.]에서 알 수 있듯이 '兄王형왕'이라고 했으니 동생이라면 '弟王제왕'이라고 하면 될 것을 남자동생과 여자동생을 구분하여 쓸 필요도 없는 고대에 굳이 '男'를 더 붙여서 남제왕으로 해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백제의 왕성인 餘는 '남을 여'이니까 男을 음독하면서 동시에 그 뜻인 '여'를 챙겨야 합니다. 弟는 일본어로 '데'로 발음되는데, '대'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男弟는 '여대'로 읽힙니다. 백제왕성인 '부여' 또는 '여'에 '대'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만 찾아내면 되는데, 바로 동성왕입니다. 

남제왕男弟王을 계체천황으로 본 데는 계체천황의 이름인 男大迹에서의 '大迹'과 男弟王에서의 '弟'를 일본식으로 발음해 보면 발음이 같다는 것이 작용한 듯한데, 大迹은 '오-도'로 발음되고, 弟'는 '오토-토'로 발음되어 둘은 발음이 다릅니다.

이로써 男弟남제는 '남동생'이 아니라 사람이름 '여대'이고, '여대'는 곧 모대, 바로 동성왕의 이름입니다. 백제본기에서 백가의 칼에 죽었다는 동성왕은 죽지 않고 일본열도로 가서 무열천황으로 변신했습니다. 503년에 마흔 셋인 무령왕은 자신보다 열 살 정도 나이가 많은 무열천황이면서 동시에 백제의 왕이기도 한 모대의 장수를 축원하면서 구리거울을 만들어 바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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