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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어 '탕진잼' - 웃픈 청년들의 자화상

만원도 과소비, 웃픈 현실을 대변하는 신조어
16.12.02 01:27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은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의 온갖 풍파에 치여 말리기 위해 빨랫줄에 걸린 오징어처럼 오도 가도 못하고 그저 이리저리 흔들리며 감정마저 빡빡이 건조되고 있는 현실이다. 취업을 관장하는 '갑'들이나 거짓을 입에 물고 국민을 농간하는 정치인들에게 언젠가 북북 찢겨 질겅질겅 씹힐 것만 같은 '오징어포' 미래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가시밭길을 걸으며 차라리 모든 사실들을 외면하여 상처받은 자신을 지키는 것이 최선일 수밖에 없는 비극적 현실이 이 나라의 기둥, 청년의 영혼에 아프게 물들었다. 2014년 후반기에 만들어진 신조어 '탕진잼'으로 현 청년들의 이 헛헛한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자료: 10월 탕진잼을 언급한 트위터 92개, 블로그 포스트 약 1200개)

1. 탕진과 재미의 역설적 만남
본래 '탕진'은 자신의 재산을 헛되이 쓴다는 의미로 부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재미'는 즐겁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탕진잼'은 긍-부정어의 역설적 합성어이다. 역설적 단어들은 풍자적 희극적 의미를 함축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웃픈'이란 단어가 그 예로 볼 수 있다. 슬픈 상황을 웃으며 넘기는 풍자적 의미를 함축하는 것 같이 탕진잼은 마냥 즐거운 상태를 나타내지 않고 돈을 헛되이 쓰는 자신에 해학적 의미를 가미하는 양상을 보인다. '헛되이 돈을 쓰지만 난 그런 사치를 즐긴다'라는 뜻의 저의는 도대체 무엇일까?

2. 키워드 분석

탕진잼의 워드클라우드 ⓒ 유광훈

사람들이 '탕진잼'을 어떤 상황에서 사용하며 이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가를 확인해보자. 위의 '탕진잼' 워드 클라우드를 찬찬히 읽어보면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귀엽고, 예쁜, 작은 물건들 여행, 맛집, 화장품 등이 보인다. 다이소, 만원 등 재미있게도 탕진이란 단어의 대상이 저렴하고 소소한 물건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본래 '탕진'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헛되이 써버린다는 뜻인데 이는 현재 '탕진잼'의 '탕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3. N포 세대에게는 만원도 사치와 탕진
단어간 거리를 코사인으로 분석하는 대응분석. 단어간 각도가 밀접할 수록 같이 쓰이는 단어이다. ⓒ 유광훈

위는 탕진잼을 언급한 글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 10개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각 단어의 의미가 어떻게 분류되어 표현되는지 알 수 있다.

1분면: 낭비
2분면: 여행, 탕진
3분면: 만원, 오늘, 지르, 쇼핑
4분면: 진짜, 탕진잼

현재 청년들은 만 원짜리 쇼핑과 소소한 여행을 즐기며 이를 낭비라고 칭하며 탕진하고 있다고 자신의 소비 형태를 비하하는 동시에 그런 사치가 즐겁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몸을 때려 웃음을 주는 슬랩스틱 개그와 비슷하다. 탕진잼은 가학적 유머 같은 양상을 보인다.

위 대응 분석을 통해 우린 자신의 모든 것을 헛되이 다 소진해 버린다는 본래 의미의 탕진과 탕진잼의 탕진은 소비 규모 면에서 차이가 크게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현재 N포세대의 청년들이 집이나 땅과 같은 자본을 위한 생산적 소비는 고사하고 부질없는 일회성 소비의 사이클을 인지하고 있는 동시에, 이와 같은 상황을 벗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현재의 즐거움을 참기 위해 발버둥 치기 보단 미래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현재의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단면을 보여준다. 이야말로 창창한 미래 가능성을 담보로 세상을 향해 활력적으로 달려나가야 할 청년들에겐 너무 가슴 아픈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만 원 남짓의 소소한 물건을 소비하는 이 작은 행위가, 사회악으로 근절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낭비벽-탕진과 그 의미를 나란히 한다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허나 티끌이라도 모아 미래 자본을 구축해야 한다는 사실을 직면하면 이와 같은 작은 소비도 한없이 적은 월급을 생각할 때 헛되이 탕진하는 못된 소비가 되는 것이다.

4. '웃픈' 못된 소비 '탕진잼' 분석
상위단어 40개의 연결망 그래프. 크기는 빈도, 거리는 연관성, 중심부는 단어간 연결중심 단어이다. ⓒ 유광훈

위 연결망 그래프는 상위단어 40개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탕진잼은 주말에 주로 일어나고 만원 남짓의 소소한 소비이며 일상과 관련된 예쁜 물건을 쇼핑하거나 맛집여행할 때 일어난다.

우리는 위 분석을 통해 소소한 소비가 현실의 벽 앞에선 한없이 참회해야 하는 못된 소비인 '탕진'으로 해석됨을 확인하였다. 허나 이를 마냥 죄의식으로 안고 근절하기 위해 애쓰는 것 보다 자신의 억압된 욕망을 해결할 충동적 과소비를 꿈꾸며 현실에서 소소하게나마 다이소에서 해소하려는 현대 청년들의 해학적 면모를 볼 수 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과 불안을 마치 먹기 싫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두꺼운 알약처럼 덤덤히 삼키는 동시에, 원하는 물건을 모두 속시원히 사버려 해소하고 싶은 마음을 소소한 소비로 대리만족하려는 현대의 '탕진잼'은 온갖 풍파로 지쳐버린 청년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정말 '웃프'지만 착한 소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제 탕진잼이 아닌 '성장잼', '풍족잼'과 같이 안전한 미래를 꾸려나가며 남까지 생각할 수 있는 풍족한 미래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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