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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도 먹고 살기 힘들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해 12월, 임기를 마치고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김진태 전 검찰총장이 쓴 책 <흘반난, 밥 먹기 어렵다> 제목을 읽는 순간 선입견처럼 다가온 느낌입니다.

'밥 먹기 어렵다'는 많은 뜻이 담겨 있는 다의적 표현으로, 흔히 신세타령을 하듯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밥 먹기 힘들다'는 말은 당장 하루 세 끼 먹고 살게 없어 힘들다는 원초적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먹고 사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저 산다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걸 나타내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소위 갑질이라는 걸 당할 때, 누군가에게 굽실거려야 할 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말할 입장이 못 될 때, 무시 당할 때,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따라야 할 때, 살다보면 맞닥뜨리게 되는 어떤 입장에서 차마 더럽고 아니꼽다는 말을 하지 못할 때 이를 대신 하는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검찰총장 책상 위에 나뒹굴던 시문 엮은 <흘반난, 밥 먹기 어렵다>

<흘반난, 밥 먹기 어렵다> (지은이 김진태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6년 5월 14일 / 값 16,000원)
 <흘반난, 밥 먹기 어렵다> (지은이 김진태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6년 5월 14일 / 값 16,000원)
ⓒ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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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반난, 밥 먹기 어렵다>(지은이 김진태, 펴낸곳 불광출판사)는 2015년 12월 30년간 몸 담고 있던 검찰을 떠난 김진태 전 검찰총장이 지은이입니다.

저자는 글머리를 통해 출판을 작심하고 쓴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습니다. 검찰을 떠나며 짐을 챙기던 중 검찰총장 재직 시 책상 위에서 뒹굴던 시문들을 모아 혹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퇴임식에 참석한 후배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이것을 알고 달라는 사람들이 있어 몇 사람의 시를 더해 엮은 것이라고 합니다.

출판을 작심하고 쓴 것이라면 출판에 따른 의도가 이렇게 반영되거나 저렇게 편집돼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평소 책상 위에 나뒹굴던 것을 모아 출판한 것이라면 책에 실린 글들이야말로 저자의 민낯 같은 생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검찰총장이라는 직이, 검찰총장이라는 자리가 한시나 읊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한량 자리는 아닐 겁니다. 그러함에도 책상 위에 시문이 나뒹굴었던 건 어쩜 하고 싶은 말, 차마 말하지 못하고 있는 말을 삭히며 마음을 다스리거나 스스로를 위로하던 숨통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같은 물이라도 처해진 입장에 따라 찾는 물이 달라집니다. 갈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벌컥벌컥 마실 수 있는 물을 찾습니다. 하지만 땀이 뻘뻘 흐르는 한낮 더위에 시달리는 사람은 풍덩 뛰어들어 더위를 식힐 수 있는 물이 최고입니다.

물만 그런 게 아닙니다. 책도 그렇고 글도 그렇습니다. 연애감정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사춘기 시절엔 순정연애 소설을 찾게 되고, 사회생활에 직면하게 되면 소위 자기 계발서 위주의 책이나 글을 찾게 됩니다.

임금님의 귀는 오직 당상관의 말만 들을 뿐이고

임금의 눈은 대궐 문 앞의 일도 보지 못한다.

탐관오리들은 백성을 해침에 꺼리는 바가 없고

간악한 신하들은 임금을 가리고도 두려움이 없다.

임금이시여, 임금이시여. 이 말씀을 들어 보세요.

막히고 가린 것을 열고 백성의 마음에 이르려면

먼저 백성의 노래와 시에서 풍자를 찾으십시오.(백거의 시 60쪽)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126편의 한시 중 백거이의 채시관(采詩官)을 번역해 놓은 글입니다. 책에서는 한시를 한글로 번역해 놓고, 시 저자(백거이)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시 배경, 시에 담겨 있는 의미까지도 쉽게 새길 수 있도록 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검찰총장 책상 위에 백거이의 시가 나뒹군 까닭은

백거이가 지은 시가 달랑 이 시 한편만 있는 건 아닐 겁니다. 책에서도 백거이는 '장한가長恨歌'로 널리 알려진 당나라 때의 시인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굳이 이 시가 적힌 쪽지가 검찰총장 책상 위에서 나뒹굴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백거이가 지은 많고 많은 시 중에서 임금에게 먼저 백성의 노래와 시에서 풍자를 찾으라고 하는 이 시가 나뒹굴고 있었던 건 어쩜 불통으로 손꼽히고 있는 작금의 권력자에게 차마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소통'을 한숨을 내쉬듯 한탄하며, '밥 먹기 살기 힘들다'는 의미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나라를 걱정하는 우국지사와

촉석루에서 다시 만났네.

차가운 연기는 담 위에 엉기고

낙엽은 긴 모래톱에 떨어지네.

우리 본래의 뜻은 서로 달라도

마음은 하나건만 이미 백발이 되었네.

그대 내일 아침 남해로 떠나가면

강산에는 어느덧 가을 깊어 가겠지.(김병연의 이별(離別) 246쪽)

책에 실린 126편의 시 중에는 최치원, 원효, 정몽주, 조광조, 이황, 이순신, 이백, 소동파, 측천무후, 두보, 이황, 조식, 임제, 김병립(김삿갓), 김정희, 황진이 등 우여곡절 많은 이들이 당시 처한 상황을 묘사하거나 세태와 민심을 담아 풍자한 시문들입니다.

현직 검찰총장 책상 위에서 나뒹굴던 시문들조차 '흘반난, 밥 먹기 어렵다'로 간추려 담아야 했다면 인생은 누구에게나 '밥 먹고 살기 힘든' 사바세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밥 먹고 살기 힘든 세상, 어쩌면 현직 검찰총장 책상 위에서 나뒹굴던 그 시문들 속에서 고달픈 삶에 위로가 돼주고 갈등하는 마음에 감로수가 달래 줄 샘물 같은 지혜의 글 한토막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덧붙이는 글 | <흘반난, 밥 먹기 어렵다> (지은이 김진태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6년 5월 14일 / 값 16,000원)



흘반난, 밥 먹기 어렵다 - 인생의 굽이마다 찾아온 옛 글 126편

김진태 지음, 성륜 그림, 불광출판사(2016)


태그:#흘반난, 밥 먹기 어렵다, #김진태,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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