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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burn out)

19.12.15 21:28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번아웃 되셨군요..."
몇 년 동안 나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요즘 나에게 해주는 말이다.
몇 곳에 '사퇴서'를 내고, 조금 쉬어야겠다는 말을 하고 다녀서 그런듯하다.
 
마을공동체 활동을 쉬는 핑계로 둘러대는 것은 다른 곳으로 집을 옮기는 '이사'였지만, 행정명이 바뀐다거나 거리가 멀어져서 함께 하던 일들을 않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려고 들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그럼에도 요즘 나는 참여하던 모임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번아웃은 사전적으로 에너지를 소진하다, 다 타다, 가열돼 고장이 난다는 의미다. 번아웃 증후군이란 지나치게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느끼면서 무기력해지는 증상을 말한다.
 
과연 내가 지나치게 의욕적으로 몰두했던가? 성격을 보자면 나는 무엇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성격이 아니다. 요리조리 내가 할 수 있는 것인가 미리 생각하며 덤빈다. 그런 내가 최근 몇 년간 의욕이 지나쳤던가...그래서 쉬고 싶어진건가...?
이렇게 지친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보고 싶어 지난 시간을 돌이켜본다.
 
나는 아이를 낳고서야 국가와 사회문제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던 듯 하다. 둘째가 태어난 97년 IMF 사태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안 좋은 상황에 놓인 그들의 사연을 뉴스로 접하고 딱하다고 생각하고 금방 잊었다. 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저 나라가 어려우니 아이들 돌 반지를 가져가 금 모으기 사업에 동참했다. 나는 내가 속한 곳에서 일상을 잘 살려고 애를 썼고 나름 성실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나이가 중년이 될 때까지 나와 가족들 외에 다른 것들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아이들을 친정엄마께 맡기고 맞벌이를 하며 노인이 된 시어머니, 친정 부모님, 아직 어린 내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개인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가 책임져 주면 얼마나 좋을까? 남편이 사업을 시작했고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개인사업을 하는 남편이 작업장을 얻어 사용하며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건물주는 2년에 한 번씩 전세금을 올려달라 요구한다고 했다. 2009년 용산의 한 건물에서 식당을 몇 년 하다 건물주에게 쫓겨날 처지에 있던 사람들이 농성했다. 건물에 불이 났고 사람들이 죽었다. 그 사건을 '용산 참사'라 부른다. 나는 그들이 겪었던 일들이 너무 억울한 일이라는 것과 세입자인 남편도 그런 일을 겪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처구니없이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분향소에 갔다. 초,중학교에 다니는 내 아이들이 우리와 함께 사는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영상 한 편을 보았다. 쌍용자동차 사태를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많이 알고 있듯이 이 사건은 자동차를 만들던 사람들을 해고하면서 일어난 비극이다. 해고하지 말라고 시위하고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특공대를 투입해서 공장 옥상에까지 쫓아 올라가 무자비하게 방망이를 휘두르며 폭행을 하는 동영상을 보고 이 나라가 제정신인가 싶었다. 폭도로 몰아 시민을 진압하던 5·18광주 항쟁 때 모습이 떠올랐다. 이후 혼자 크레인 위에 올라가서 고공농성 하는 한진중공업 김진숙씨 얘기가 들렸고 희망버스를 타고 그들과 연대할 시민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한문 앞에서 출발하는 희망버스를 타러 갔다. 뭔가 하지 않으면 불편한 마음이 들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쌍용자동차 파업 참가자들 때문에 회사가 일하지 못해서 47억 손해가 발생했다고 한다. 법원은 그 손해배상을 파업 노동자들이 부담해야 한다고 판결했다고 한다. 노동자의 권리는 어떤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국가는 무엇을 하는 존재인가? 슬픔이 몰려왔다. 한 젊은 엄마의 제안으로 4만7천원씩 보내자는 '노란봉투 캠페인'에 참여했다. 10만 명의 국민이 모금해서 보내면 노동자들이 낼 벌금액이 채워진다고 했다. 우리 가족 네 명의 몫으로 성금을 했다. 법은 너무 어렵다고 생각되었고 노동자를 위한 나라는 있는가? 싶었다.
 
2012년 국정원이 대선 개입 의도로 댓글을 조작하는 공작이 있었다. 부정의를 그냥 두고 본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내 아이들에게 올 것이었다. 우리나라 안보를 위해 많은 예산을 지원받고 있는 국정원이 댓글 공작을 하고 있었다는 것에 많은 실망감을 느끼고 절망을 하게 되었다. 공무원이 어떻게! 분노가 치밀었다. 집에 앉아 온라인으로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한두 번 행동하는 것으로는 나라가 제대로 바뀌지 않을 것 같았다. 광장에 자주 나가 촛불을 들었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참사가 일어났다. 그 날 이후 나의 삶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러저러한 일로 모였던 광장의 수많은 촛불은 세월호 한 곳에 집중했다. 아이들의 무사 귀환을 기도하고, 바다에 가라앉은 배, 세월호 안에 있는 아이들을 한 명도 남기지 말고 돌려보내라 외쳤다. 내가 생각한 '국가'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속한 사회의 국가가 아이를 구하지 않고 '왜' 자식 잃은 부모를 길바닥으로 내모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저렇게 처참한 상황으로 국민을 내몰고 방치하고 정치에 이용하는지... 세월호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을 추모하며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 쓰인 피켓을 들고 촛불을 들고 행진에 참여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와 같은 어른들이 너무 자신의 삶, 자신의 가정만 돌보고 살았던 것이 문제였을까? 제 역할을 못한 시민, 공무원, 정치인, 국가가 문제인 것 아닐까?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아이가 내 아들이었을 수도 있었다. 내 자식들이 살아갈 사회는 지금과 같아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허망하게 아이들이 죽는 것은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다.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많이 찾아다니며 듣고 묻고, 외쳤다. 국회에서 세월호참사 포럼을 한다고 하면 찾아갔다. 정치인, 공무원, 교수들에게 따져 물었다. 당신들은 그동안 무엇을 했나? 나라가 이 모양이 될 때까지 사회 지식인, 지도층으로 어떤 일을 했고 무엇을 고치려 노력하며 살았냐고 질책했다.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연대하고 조직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여하고 의견을 나누고 함께 할 방법을 공부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토론회 등에 참여할수록 그동안 내가 몰랐던 우리 사회 인권단체들과 시민사회운동 단체들을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활동하기 힘든 경제적 상황에서도 버티고 있는 그들이 무척 든든했다. 마을에 그들을 강사로 초대해 함께 공부했다. 민주주의, 인권과 노동, 예산 등의 주제로 관심 주제를 넓혀 가며 공부하고 많은 주민의 참여 방안을 고민했다. 소통의 도구로 마을방송 만들기에 참여하였고 팟캐스트에 정기적으로 세월호 얘기를 전하기도 하였다.
 
세월호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려고 참여했던 마을공동체의 여러 참여 단체들, 지역 주민자치회, 마을방송, 협동조합... 그러나 내 생각과 달리 세월호 얘기만  하게 될 기회는 많이 없었다. 그들이 관심있게 추진하던 마을의 다른 문제에 많이 참여하게 되었다. 의정 모니터링단이나 마을계획, 주민자치 활동등은 주민의 참여나 조직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게 되는지 알게 해 주었다. 지역 주민에게 노란리본 나눔을 하고 뱃지를 전달하고 해마다 4월 16일 즈음에 추모문화제를 했다.
 
2019년 11월 세월호참사를 재수사하겠다고 검찰이 '특별수사단'을 만들었다. 혹시 검찰개혁을 외치는 국민의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꼼수일 수 있다. 이 말을 여러 사람에게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이곳저곳 다니며 지난 5년간처럼 세월호참사에 대해 알릴 수가 없다. 집회가 있는 광장에 나가려 해도 심장이 빠르게 뛰고... 혹시나 싶어 사람이 별로 없을 시간에 가니 조금 괜찮다. 사람이 원인인걸까? 그동안 너무도 많은 사람을 만났던 게 이유일까...? 이 마음이 뭔지 모르겠다. 그냥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

나에게 얘기해 주고 싶다.
'지금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하지만,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했는데 가만히 있어도 될까?
그래도 될까...?
 
 
 
 

태그:#번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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