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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맨 이병진씨. 그는 최근 지난 4년간 촬영한 사진을 모아 포토에세이 <찰나의 외면>을 출간했다.
ⓒ 오마이뉴스 조경국
까놓고 이야기해서 '포토에세이'들이 범람하고 있다. 서점에 가보면 수많은 사진책들이 넘쳐난다. 책으로 묶어 낼 만한 '꺼리'가 되는 사진에 적당히 글을 버무려 '포토에세이'로 묶어낸다. 출판사도 책 만들기 딱 좋은 아이템이리라. 그래선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포토에세이 중에서 좋은 책이 무엇인지 선뜻 고르기가 힘들어져 버렸다.

이러한 추세에 가세한 연예인들도 있다. 자신이 모델로 나온 것도 있지만 요즘엔 직접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펴내는 연예인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그런 포토에세이에는 손이 가질 않는다. 책 한 번 보지 않고 이름을 앞세워 깊이 없는 사진과 가벼운 글을 팔고 있으리라 지레 짐작한다. 이 알량한 독자의 자존심이란. 그렇게 선입견을 가지고 있으니 사진도 글도 '삐뚜루' 보인다.

그런데 서점을 휘적휘적 돌다 개그맨 이병진의 포토에세이 <찰나의 외면>을 보았다. 책 표지를 싸고 있는 띠지를 보는 순간 삐뚜루루한 마음이 슬며시 들고 일어났다. '개그맨 이병진의 사진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감성, 그리고 진지함'이라고 적힌 글은, 나같이 삐딱한 독자를 위해 미리 가볍지 않다고 선언하는 출판사의 치밀한 홍보 전략이라고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웬걸. 책을 펼쳐보니 개그맨 이병진의 '진지함'은 사실이었다.

페이지를 넘겨가다 한 장의 사진에 눈이 꽂혔다. 제목은 '무관심'. "내 주위에 상처받고 있는 사람을 모른 척 한 일이 있는가"라는 사진 설명이 붙어있고, 촬영지는 서울대공원 식물원 바닥이란다. 때가 낀 15개의 타일 중에서 하나만 모서리가 깨어져 있고 그 틈에 빗물이 고여 있다(사진은 책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개그는 빼고 '진지함'으로 보라

▲ <찰나의 외면>
ⓒ 삼호미디어
세상 역정을 담는 진중한 다큐멘터리 사진이 아닌 바에야 '진지함'으로 승부하려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달라야 함을 이 사진이 설명해 준다.

남들이 별 것 아닌 것으로 넘겨버리는 것도 다시 한 번 바라보는, 일상의 '바닥'부터 제대로 관찰할 수 있는 사진가(그가 아마추어인지 연예인인지 그런 것은 따질 필요가 없다)의 시선을 개그맨 이병진은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지난 26일 코엑스 반디앤루니스가 마련한 사인회에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그와 만났다. 글과 버무린 포토에세이 말고 아예 진지하게 사진만으로 승부해볼 생각은 없었냐고. 그의 대답은 솔직했다.

"그런 생각도 해봤지만, 사진이 부족해서 글을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진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 그럴 수준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진 설명을 덧붙였어요. 더 사진 실력이 쌓이면 그땐…."

말로 먹고 사는 개그맨이지만 자신의 사진에 대해선 꾸밈없이 담백하다. 알고 보니 그의 사력(寫歷)은 거의 10년이 다 되어간다. 1988년 서울예대 연극학과에 다닐 무렵 러시아제 똑딱이 카메라 로모를 선물받고 헤어날 수 없는 사진의 매력에 푹 빠졌다. 당시엔 단지 재미로 셔터를 눌렀지만 따지고 보면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대단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로모유저 1세대인 셈.

그리고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옆구리에 끼고 살게 된 것은 4년 전 사진작가로 활동 중인 아버지 이동천씨에게 디지털 카메라를 선물로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때부턴 잘 때도 머리맡에 카메라를 두고 잘 정도라니, 열정을 넘어 거의 사진에 대한 '집착'의 경지에 이른 셈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사진이 모자라다고 생각한다.

"20세기 사진미학의 거장이자 '결정적 순간'으로 유명한 전설적인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찰나의 거장'이라고 부릅니다. (책 제목인) '찰나의 외면'이란 제게 걸린 불운의 찰나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만큼 사진은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카메라가 멋져 보이고 탐이 나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남의 사진이 탐이 납니다." - 책 뒷표지에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요즘 장안의 화제이자 베스트셀러, 아마추어 사진계에 센세이션(?)을 몰고 온 사진집 <두나's 런던놀이>를 펴낸 영화배우 배두나씨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지는 않는지. 단순하게 '연예인-사진집'이라는 공통 분모만 생각하고 질문을 던졌다. 뒤집어 보면 '사진가' 이병진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질문일 수도 있다. 그의 대답은 배두나씨와는 '유파(流派)'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전혀 (라이벌이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나와 배두나씨는 사진에 대한 컨셉트가 다릅니다. 하지만 사진을 좋아하는 것은 공통점이 있으니까 뭔가 통하는 것이 있을 것 같은데.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함께 촬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배두나씨 라이벌로 생각해 본 적 없다"

ⓒ 오마이뉴스 조경국
그는 현재 8명의 아마추어 사진가와 함께 'NI-fam'을 꾸려 활동하고 있고, 책 제목과 동명인 싸이월드 클럽 운영자를 맡고 있다. 홈페이지인 www.leebj.com에 가면 그동안 작업해온 사진들을 찾아볼 수 있다.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동호회 활동에 대해선 많은 장점이 있지만 아무 생각없이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것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단다.

특히 비용을 들여 모델 촬영을 다니는 것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고. 얼마 전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NI-fam'의 일부 회원들이 모델을 데리고 일본까지 가서 촬영을 하고 온 것을 두고 회원들에게 진지하게 '일침'을 놓았을 정도다. 아무리 아마추어라도 자신만의 주제의식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

"아마추어든 프로든 사진을 시작했으면 자신만의 시선을 가져야 합니다. 요즘 사진 동호회에서 모델 촬영을 많이 갑니다. 아웃포커싱으로 배경을 뿌옇게 만들고 여러 사람이 거의 같은 구도로 모델만 예쁘게 찍는 것은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패션이나 인물을 자신이 계속 파고들 주제로 잡은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그런 촬영회에 나가는 것보다 빨리 자신만의 피사체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찰나를 외면했다는 그의 불운한(?) 사진을 보고 짧은 시간이나마 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슬슬 미래의 사진 이력이 궁금해진다. 사진을 좋아하지만 사진가로 전업할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다고 딱 잘라 말했지만, 그의 어린 시절 꿈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신부님'이었던 것을 보면 인간사 알 수 없는 법이다.

혹시 아나. 사진에 푹 빠진 지 4년 만에 포토에세이를 냈으니 4년쯤 후에는 더욱 짙은 농도의 사진을, '개그맨' 이병진이 아닌 '사진가' 이병진으로 만나 인터뷰할 수 있을는지.

찰나의 외면 - 이병진 포토에세이

이병진 글.사진, 삼호미디어(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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