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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둘과 딸 하나가 올해로 구순이 된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했다. 작년부터 어반스케쳐가 된 여동생과 어반스케치에 관심을 보이는 남동생이 동행하는 이번 여행의 테마는 가족 어반스케쳐스다. 공항에서 시작하는 여행 스케치는 비행기 그림부터 시작하면 좋다.
 
에어버스 사의 A220-300 작업자들이 화물 적재를 끝내고 비행기를 후진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오른쪽 아래 노란색 차가 후진시키는 차 ⓒ 오창환
 
코로나로 꽁꽁 묶여있던 여행이 슬슬 풀리는 시점이라 비행기표 구하기가 어려웠지만 미리 표를 구해놨다. 그리고 공항 전경을 그리려고 일찌감치 김포공항에 도착해서 서둘러 탑승수속을 마쳤는데 우리 탑승구는 9번 게이트다. 그리고 비행기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탈 비행기는 에버버스 사의 A220-300 기종이다. 이 기종은 140여석 정도의 비교적 소형 비행기인데 연비가 매우 좋아 코로나로 항공 수요가 감소했을 때 각 항공사들이 선호한 기종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 활주로에 유난히 이 기종이 많이 보인다.

대기하던 비행기에 화물 적재가 끝나자 노란색 특수차량이 비행기 앞바퀴에 긴 봉을 대고 비행기를 밀어서 후진시키고 있다. 그러고 보니 비행기는 자력으로는 후진을 할 수가 없다. 출력을 줄여서 운행하면 전진은 가능하지만 후진은 불가능하니까 밀어서 후진을 시키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런데 우리 비행기는 왜 안 오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같이 그림을 그리던 동생이 갑자기 다급하게 소리쳤다. "오빠 우리 늦었어!!!" 알고 보니 우리가 그림을 그리던 게이트는 10번 게이트이고 우리가 탑승할 게이트는 9번 게이트였다.

화구와 펜을 가방에 쓸어 담고 뛰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요즘 제주도 가는 비행기는 풀 부킹이라 그 비행기를 놓치면 여행을 못 갈 뻔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식은땀이 났다.
 
<큰바다영> 설계는 동자복을 참고하였다고 한다. <큰바다영>이 동자복을 바라보는 것 같다. ⓒ 오창환
 
탑승으로 액땜을 한 덕인지 그 후 일정은 모두 순조로웠다. 여행지를 선택하는 것도, 날씨도, 식당을 가는 것도, 주차장 사정도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옆에서 도와주는 듯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만족했던 것이 우리가 묵었던 <큰 바다 영瀛>의 게스트 하우스였다.

이곳은 사진작가 고영일(1926~2009)을 기리기 위해 그의 가족들이 만든 사진 갤러리다. 큰 바다 영은 제주도의 옛 명칭 영주(瀛洲)에도 들어가고 고영일 작가의 이름에도 들어가는데, 이 공간이 사진 예술의 큰 바다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긴 듯하다.

사진 예술 공간 <큰 바다 영>은 건입동 주민센터 맞은편에 있는데, 제주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이 건물 바로 이웃에는 재물과 복의 신 동자복(東資輻)이 있다. 돌하르방처럼 생긴 이 미륵불은 옛 제주성의 동쪽에 있어서 동자복이라고 하고, 서쪽에도 비슷한 미륵불이 있는데 서자복이라고 불린다. 

고영일 작가는 제주도의 자연과 생활 그리고 인물을 줄기차게 찍었다. 아버지 고영일 작가님이 돌아가신 후 아들 고경대 작가는 엄청난 양의 아버지 사진을 정리하면서 아버지가 사진을 찍은 그 자리에 가서 사진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 작품들을 모아서 전시를 했는데 나도 그 전시에 갔었다. 나란히 전시된 아버지 작가의 작품과 아들 작가의 작품을 보면 말이 필요 없는 감동이 몰려온다. 어떤 풍경은 나무 하나 돌멩이 하나도 그대로인 곳이 있고, 어떤 곳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변한 곳도 있다. 세월의 흔적이 두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사실 고경대 작가가 학교 선배라서 큰 바다 영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게 되었는데, 우리가 마지막 게스트이고 앞으로 게스트 하우스는 운영하지 않는다고 한다. 가족 사진작가 갤러리에서 가족 어반스케쳐스가 묵은 것도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
 
사진예술공간 <큰바다 영> 갤러리도 검은 색 타일이고 주변 현무암도 검은 색이라서 흑백으로 그렸다. 이런 경우 하늘을 그리기가 어려운데 옅은 물감으로 자연스럽게 처리했다. 건물 코너 부분은 그라데이션으로 그려서 펜센을 넣지 않아도 된다. ⓒ 오창환
 
아침 일찍 일어나서 큰바다영 갤러리를 그리려고 길 건너편에 가서 앉았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지나가던 아저씨가 구경을 하다가 말을 붙인다.

아저씨 : "그림 잘그리시네예. 뭐 좀 한 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나 : "아, 네... 하세요."
아저씨  : "이 옆에도 선을 끄어야 안 되겠습니꺼?"
나 : "아, 이 부분은 각진 것이 아니고 둥글게 되어 있어서 채색할 때 여기를 약간 밝게 그리려고요."
아저씨 : "아 그렇습니꺼?"


그때부터 이 아저씨가 쪼그리고 않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 분은 대구에서 트럭으로 화물 배달을 왔는데 배 시간이 안 맞아 2시까지 시간을 때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동네 갈 만한 곳이 어딘지 물어보시더니, 그 자리에서 30분을 시간을 때우고 간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가끔 지나가던 사람이 말을 붙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재미있게 생각한다. 그다음 날 아침에는 동자복을 그렸는데 노인 한 분이 오셔서 차를 올린다.
 
동자복도 흑백으로 그렸다. 동자복을 모방해서 하르방을 만들었다는 설도 있고 그 반대도 있다. 싱긋 웃는 미소가 장난스럽다. 지금도 신앙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주변의 집들을 그렸다. ⓒ 오창환
 
그 광경이 흥미로워 말을 붙였더니 말을 안 하고 손사래만 친다. 혹시 말을 못 하는 분이신가 하고 혼자 생각하는데 이 분이 동자복 앞에 고개를 숙이더니 일본어로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닌가. 아직 민간에서는 동자복이 영험 있는 불상으로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다.

올라오는 날 갤러리에 그림을 기증했다. 고경대 선배가 너무 좋아하셔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림을 그려서 누구에게 주는 것도 내가 그림을 그리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다. 비싼 선물을 하는 것도 좋겠지만 내가 직접 그려서 주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그림을 판매한던 기증하던 나에게는 별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 기사 분량이 넘쳐서 가족 어반스케쳐스 이야기는 다음회로 미룹니다.
- 이 글은 브런치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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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스케쳐 어반스케쳐스고양 운영자 38갤러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