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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박물관 정원 프리다가 태어나고 자란 생가, 디에고와 이혼 후 돌아와 정원을 가꾸며 상처를 보듬었으며 1940년 디에고와 재결합한 후 함께 생활한 공간이다. ⓒ CHUNG JONGIN

멕시코를 말할 때 빠트릴 수 없는 두 인물이 있다. 세계적인 화가,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다. 프리다와 디에고는 두 번 결혼하고 한 번 이혼한 부부였고, 예술적 정치적 동지였다. 그들은 서로 미친 듯이 사랑했고 지독히 증오했다.

예술적 업적이야 디에고를 못 당하지만,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은 프리다다. 그래서인지 멕시코시티에 가면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이 프리다 칼로의 얼굴이다. 프리다 칼로의 얼굴은 건물이나 버스 광고판을 비롯하여 가방, 모자, 티셔츠, 컵, 각종 장신구 등에 새겨져 어디를 가도 시야를 비껴가지 않는다. 그 얼굴은 프리다의 사진이기도 하고 자화상이기도 하다.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소도 프리다가 태어나 자라고 디에고와 이혼하고 돌아온 곳, 그리고 다시 디에고와 살다 죽은 프리다 칼로 박물관이다. 벽면이 푸른색으로 칠해져 있어 일명 '더 블루 하우스(The Blue House)'라고도 한다. 
 
프리다 칼로 박물관 박물관 입구는 관람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치고 있다. ⓒ CHUNG JONGIN
 
우리가 방문한 날이 마침 일요일이기도 했으나 프리다 박물관 입장권을 사려는 줄은 끝이 없었다. 짐작하건대 입장권을 못 사고 돌아가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멕시코시티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곳도 프리다 박물관이라 할 수 있겠다. 입장권은 주말 외국인인 경우 1만5000원 가량이고 멀티미디어 가이드 투어를 하려면 5000원, 심지어 사진을 찍으려 해도 돈을 내야 했다. 기념품도 다른 곳에 비하여 훨씬 비쌌다. 그래도 사람들은 줄을 서서 구매를 서슴지 않으니 여기서도 수요 공급의 원칙은 잘 지켜지고 있던 셈이다.
 
프리다 칼로 박물관에서 구입한 기념품 기념품으로 구입한 자석과 휴대용 거울에는 프리다의 얼굴이 가득하다. ⓒ CHUNG JONGIN
 
사실 프리다 칼로 박물관에 그녀의 작품은 별로 없다. '나의 아버지', '나의 가족', '핏빛 과즙이 넘쳐나는 수박' 등 몇 점과 병상과 관련한 스케치 몇 점이 고작이다. 하지만 멕시코 토속 식물로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 푸른색과 노란색으로 칠해진 그녀의 생활 공간, 인형이 매달려 있는 그녀의 침실, 화실, 부엌, 그녀가 입었던 그리고 그녀의 몸을 지탱해 주었던 옷과 장신구, 코르셋 등을 감상하다 보면 그녀의 정열과 극심한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프리다 칼로의 화실 프리다가 그림을 그리던 곳. 오른쪽 윗부분에 디에고의 사진이 있고 왼쪽 끝부분에 프리다의 휠체어도 보인다. ⓒ CHUNG JONGIN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 리베라의 명성에 가려 살아 생전에는 화가로서 크게 조명을 받지 못했다. 디에고의 문란한 사생활로 인한 정신적 고통과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을 강한 의지로 극복한 화가로 1970년대에는 페미니즘 운동이 일어나면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솔직하고 대담한 감정 표출과 섹슈얼리티에 후세의 페미니스트들은 열광했고 그녀의 혁명적인 세계관까지 더해져 그들의 우상이 되었다.

프리다 칼로의 침실에 가면 천장에 많은 인형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인생의 반 이상을 침대에 누워 지내야만 했던 프리다에게 인형은 친구이자 상상력과 작품 구상의 원천이었다. 그녀는 인형과 함께 천장에 매달린 거울로 자신을 보며 움직일 수 있는 손을 이용하여 수많은 자화상을 그려냈다. 

"나는 너무나 자주 혼자이기에, 또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주제이기에 나를 그린다."

디에고 리베라가 프리다 칼로를 만난 것은 1921년 유럽에서 돌아온 후 멕시코 고대 문화를 탐구하며 벽화에 열중할 때였다. 프리다는 이미 저명한 화가였던 디에고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여줬는데, 이때 디에고는 프리다의 그림을 보고, "프리다의 작품에서 예기치 않은 표현의 에너지와 인물 특성에 대한 명쾌한 묘사, 진정한 엄정함을 보았다. (…) 잔인하지만 감각적인 관찰의 힘에 의해 더욱 빛나는 생생한 관능성이 전해졌다. 나에게 이 소녀는 분명 진정한 예술가였다"라고 격찬했다고 한다. 그리고 1929년 이 둘은 결혼하였다. 
 
디에고 리베라가 그린 거대 벽화 ‘멕시코의 역사’ 1921년부터 1935년까지 그린 것으로 멕시코의 고대 문화, 스페인의 침략, 멕시코 혁명과 완성을 담고 있다. ⓒ CHUNG JONGIN
 
대통령궁 계단 삼면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디에고의 벽화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카메라에 전체를 담을 엄두조차 낼 수 없을 정도의 규모거니와 벽화를 구성하고 있는 내용은 멕시코의 역사 교과서였다.

벽화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오른쪽 벽면은 스페인 정복 이전의 아스텍 시대를, 중앙은 스페인의 군사적 종교적 정복 과정을, 왼쪽은 노동 계급의 투쟁 과정과 승리라는 디에고의 이상향을 그리고 있다. 노동자들과 함께 있는 붉은 별과 망치가 그려진 목걸이를 한 프리다 칼로의 모습도 보인다. 

디에고의 다른 벽화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대통령궁에 있는 디에고의 벽화는 가이드의 설명이 필요하다. 대통령궁 입구에서 우연히 만난 가이드가 없었더라면 '굉장히 큰 작품이구나, 디에고의 열정이 대단하구나, 프리다 칼로의 모습도 보이네' 정도의 감상으로 그쳤을 것이다.

사실 대통령궁으로 가기 전 일행은 예술궁전에서 디에고 벽화 몇 점을 감상하였다. 예술궁전의 이층은 디에고 리베라를 비롯한 오로스코, 시케이로스 등의 벽화가 사방 벽면에 가득했으나 우리는 그저 좀 익숙한 디에고의 작품 앞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정도였다. 
 
디에고 리베라의 ‘교차로의 남자’ 운전대를 잡고 있는 노동자 오른쪽에 레닌이 보인다. ⓒ CHUNG JONGIN
 
그곳에 있는 디에고의 그림 가운데 '교차로의 남자'라는, 중심에 한 남자가 앉아 네 개의 날개를 조정하는 듯한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은 록펠러재단의 요청으로 라디오시티홀에 벽화를 제작했다가 혁명과 노동자를 찬양하는 내용에 레닌의 얼굴을 그려 넣은 것 때문에 파괴된 후 멕시코에서 다시 축소 제작한 벽화였다. 

박물관들이 즐비한 멕시코시티의 센트로 히스토리코는 일행의 숙소가 있는 알라메다 공원이 포함된 지역이다. 따라서 일행은 교통수단 없이도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를 실컷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알라메다 공원의 일요일 오후의 꿈'이 전시된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 박물관'은 숙소 바로 옆집이라 해도 될 정도로 가까웠다.
 
디에고 리베라가 그린 ‘알라메다 공원의 일요일 오후의 꿈’ 중앙에는 어린 디에고가 죽음의 여신 카트리나와 팔짱을 끼고 있고 뒤에서 프리다 칼로가 어린 디에고의 어깨를 감싸고 있다. ⓒ CHUNG JONGIN
 
'알라메다 공원의 일요일 오후의 꿈' 역시 제한된 공간인 박물관 안에서는 카메라로 전체를 잡을 수 없을 정도의 대작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대통령궁의 벽화가 멕시코의 역사를 다룬 작품이라면 '알라메다 공원의 일요일 오후의 꿈'은 역사의 중요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조우하는 그림이라 하겠다. 중앙에는 어린 디에고가 죽음의 여신 카트리나와 팔짱을 끼고 있고 뒤에서 프리다 칼로가 어린 디에고의 어깨를 감싸고 있다. 

이 그림에는 150명 이상의 인물이 등장하며 76명은 이름을 알 수 있다. 스페인 정복자 호세 코르테스, 멕시코의 독재자 디아스,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베니토 후에라스 등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과 이름을 알 수 없는 노동자, 소시민들, 심지어는 디에고의 전 부인과 딸도 등장한다. 작품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보며 그림에서 인물 찾기를 하는 놀이도 재미있었다. 
 
멕시코 국립 자치대학에 있는 올림픽 경기장 1952년에 완성한 모자이크 형태로 된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이다. 벽화는 프레스코화가 아닌 멕시코 전역에서 수집한 돌로 이루어져 있다. ⓒ CHUNG JONGIN
 
그런데 일행은 의외의 장소에서 디에고의 작품을 다시 만났다. 소치밀코를 가는 도중에 들른 멕시코 국립 자치대학 캠퍼스에 있는 1952년에 지어진 올림픽 경기장의 벽화였다. 멕시코 곳곳을 다니며 수집한 천연색 돌을 이용한 모자이크 형식으로 활짝 핀 독수리 날개 아래 아빠, 엄마가 아이를 보듬고 있는 형상이다. 
 
멕시코 국립 자치대학의 중앙 도서관 사면 벽이 모자이크 형태의 벽화로 이루어져 있다. 디에고 리베라가 아닌 후안 오고르만 작품이다. ⓒ CHUNG JONGIN
 
우남이라고도 불리는 동 대학의 가장 유명한 벽화는 중앙 도서관 네 개의 벽면을 이루고 있는 모자이크 벽화인데, 소치밀코를 안내한 가이드는 이 벽화를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이라 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디에고가 아닌 후안 오고르만 작품이다. 어쩌면 우리가 굴러가는 발음의 영어를 잘못 알아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는 사람이 디에고뿐이었으니까. 

디에고의 작품 곳곳에는 프리다가 그려져 있다. 물론 프리다의 작품에도 애증이 가득 담긴 디에고가 있다. 이 둘은 사랑하고 배신하고 떠나가기도 했으나 결국은 서로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프리다는 디에고의 주선으로 열린 멕시코에서의 첫 번째 개인전을 끝내고 생을 마감했다. 디에고도 3년 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멕시코와 세계 사람들은 죽은 그들을 사랑하고 기억한다. 그들은 '기억되는 한 존재한다'는 멕시코인들의 죽음에 대한 정의로 볼 때 영원히 살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50+ 포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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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미국 생활 후 한국의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