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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산의 단풍나무는 한국 자생의 단풍나무 중 당단풍과 좁은단풍·털참단풍·고로쇠·왕고로쇠·신나무· 복자기 등 11종, 저마다의 빛깔로 깊어가는 가을을 드러낸다.ⓒ 장호철

가을이 '단풍의 계절'이라는 걸 모르는 이야 없지만 단풍을 제대로 즐기기는 쉽지 않다. 굳이 단풍을 보겠다고 길을 떠나도 때를 맞추기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로 그 걸음은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기 일쑤다. 한 열흘쯤 늦추거나 당기면 맞아떨어지겠지만, 그게 말처럼 수월치 않은 것이다.

가을과 단풍의 본좌

그간 단풍 이야기를 두어 차례 기사로 썼다. 구미 태조산 도리사(그 산사의 단풍, 이미 마음속에 불타고 있었네)와 대구 팔공산 단풍길의 단풍(그 숲길, '순정'의 단풍을 잊지 못하리)이다. 도리사 단풍은 핏빛이라는 기억을 돌이키려 두어 차례, 팔공산 단풍길은 꽤 여러 해에 걸쳐 찾았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불만족스러웠던 것일까. 나는 온 산 전체가 불타는 단풍을 보고 싶었다. 봄철 진달래 불길처럼 능선을 타오르는 고운 단풍과 더불어 산을 오르고 싶었다. 정비석이 <산정무한>에서 그린 것처럼 "만산의 색소는 홍(紅)!"이라고 경탄한 그런 단풍 말이다. 

누구는 설악산 주전골을 이야기하고, 누구는 지리산 피아골을 꼽지만, 나는 '내장산 단풍'을 오래 마음속에 품어 왔다. 내장산 단풍의 명성을 의심 없이 좇는 것은, 물론 거기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기 때문이다. 가보지 못한 곳의 명성을 논할 수 없는 탓이기도 하다.
 
단풍철이 되면 내장산을 되뇌며 보낸 세월이 10년도 넘었다. 주말은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미어터진다는 게 정설이어서 언젠가 평일을 잡아 떠나겠다고 마음먹고도 또 몇 해가 흘렀다. 올 10월 말에 피아골에 가서 단풍을 구경하긴 했으나, 아직 철이 일러 아쉽게 발길을 돌리는데, 묘하게도 자꾸 내장산이 밟히는 것이었다. 

미루기만 하다가 나이 들어 돌아다닐 기운마저 빠지면 헛일이라는 주변의 얘기에 정신이 번쩍 났다. 맞다, 까짓것 못 갈 일이 어디 있는가. 새벽 일찍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면 되지, 뭐. 기상청 단풍 정보를 참고하여 출발 날짜를 11월 11일로 잡았다. 단풍 인파가 절정에 이르렀을 주말 바로 다음 월요일을 선택한 것은 내가 숱하게 들어온 내장산 '관광의 실패'를 피해 가기 위해서였다. 

내장산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모두 비관적이었다. 내장산을 다녀온 사람들의 충고는 하나같았다. "평일이라고 주말과 다르진 않을 걸? 발 디딜 틈도 없는데 주차장에 차 대는 건 언감생심이지"에서부터 "떠밀려 다녀야 하니 산 아래 식당에서 밥 사 먹는 것도 전쟁이야. 아예, 도시락을 준비해 가라"까지 단풍 구경에 치러야 할 난관을 줄줄이 읊어댔다. 

11일 오전 6시 아내와 함께 출발하면서 내비게이션에 내장산 국립공원을 입력하자 231Km 거리에 2시간 48분이 걸린다고 떴다. 여산휴게소에 들러 간단한 식사를 하고 나서 나는 공원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주차장에 들어갈 수 없다면, 아예 정읍 시내에 주차하고 시내버스를 이용해도 좋다는 생각이었는데, 직원은 제1주차장에 차를 댈 수 있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용기백배, 쉬지 않고 달려서 제2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10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제1주차장은 만차여서 나는 차들이 막 들어오기 시작한 제2주차장에 차를 댔다. 우리는 첫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것이다. 거기서 매표소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내장사까지 2.3km를 유료 순환 버스를 타는 대신 우리는 걷기로 했다. 

전라북도 정읍시와 순창군 경계에 있는 내장산(內藏山)은 호남 지방의 5대 명산 중 하나로 1971년에 인근 백양사 지구와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산 이름이 '감출 장' 자를 쓴 '내장(內藏)'이 된 것은 산속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고 해서다. 

산홍, 수홍, 인홍... 내장산의 단풍은 다르다
 
삼국시대 백제 승려 영은이 창건한 천년 고찰 내장사 일주문이 단풍 속에 아스라하다.ⓒ 장호철
 
단풍 성수기에는 하루 10만의 인파가 몰리고 연중 100만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내장산은 500여 년 전부터 단풍 명소로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불타는 단풍터널과 도덕폭포, 금선폭포가 이루어내는 황홀경은 단풍 비경의 대명사로 손색이 없"(환경부)어 '호남의 금강'으로 불리기도 한다.  

정읍시 관내로 들어오니 가로수부터 단풍나무가 이어졌다. 여긴 가로수도 죄다 단풍나무네, 아내의 탄복도 잠깐, 매표소를 지나 내장사로 오르는 2.3km의 '단풍터널'로 들어서자, 우리는 말을 잃었다. 야자 섬유 매트가 깔린 보도를 따라 탐방객들은 화사한 단풍의 풍경으로 들어가며 연신 사진 찍기에 바빴다.

내장산 단풍은 산 자체보다는 주차장에서 내장사까지 들어가는 단풍터널이 으뜸이라 했다. 내장산 단풍잎은 여느 단풍보다 잎이 작고 얇은 당단풍(아기단풍)이어서 단풍이 잘 들며 빛깔이 곱다. 서리가 내리면 그 단풍잎은 더욱 붉어진다고 했다. 내장산 단풍을 일러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도 붉다[산홍(山紅), 수홍(水紅), 인홍(人紅)]'라고 한 까닭이다.

내장산의 단풍나무는 한국 자생의 단풍나무 중 당단풍과 좁은단풍·털참단풍·고로쇠·왕고로쇠·신나무·복자기 등 11종. 저마다의 빛깔로 깊어가는 가을을 드러낸다. 단풍나무라고 해서 모두 붉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단풍은 푸른 잎부터 노랑을 거쳐 진홍에 이르기까지 몇 가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같은 수종인데도 어떤 나무는 아직도 푸른 빛이고, 어떤 나무는 노랗게 물들고, 또 어떤 나무는 붉게 물드는 형식으로 저마다 독특한 개체 차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각각의 잎들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면서 동시에 다른 잎의 배경이 되고, 그리하여 서로의 아름다움을 받쳐주며 어우러진다. 단풍이라면 붉은 단풍을 으뜸으로 여기지만 이는 오래된 관습일 뿐이다. 붉은 단풍도 노란 단풍, 물들지 않은 푸른 잎과 어우러지면서 비로소 그 선연한 진홍을 뿜어낼 수 있다. "만산의 색소는 홍(紅)!"이라는 <산정무한>의 표현은 그 빛깔들의 수렴이라는 걸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단풍 성수기에는 하루 10만의 인파가 몰리고 연중 100만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내장산은 500여 년 전부터 단풍 명소로 널리 알려졌다.ⓒ 장호철
  
거기다 탐방객들이 입은 붉고 푸른 원색의 복장, 쉬지 않고 탐방객을 나르는 순환 버스의 노란 빛까지 어우러져 단풍터널은 밝고 활기가 넘쳤다. 2km가 넘는 길에 단풍나무 가로수는 끝없이 이어졌고, 길가에도 여러 종류의 단풍나무가 우거져 찬연한 빛의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있었다. 

산으로 오르는데도 길은 오르막이 거의 없었다. 길 왼쪽으로는 드넓은 개활지들이 나타나자 아내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슨 산길이 평지 길 같아. 길가에 저렇게 넓은 땅들은 또 뭐유? 내장산, 참 대단한 산이네."

내장산은 높은 산은 아니다. 주봉인 신선봉이 763m, 그 밖의 봉우리도 700m 내외에 그치지만, 봉우리들이 독특한 기암으로 이루어져 '호남의 금강'으로 기려져 왔다.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영은은 이 아름다운 산기슭에 천년 고찰 내장사를 창건했다. 
           
내장사는 원래 이름이 영은사(靈隱寺)로 고려 숙종 때 중창하였으나 1539년(중종 34) 내장산의 승도탁란사건(僧徒濁亂事件)이 일어나자, 중종은 내장사와 영은사가 도둑의 소굴이라 하여 절을 불태웠다. 이때까지만 해도 영은사와 내장사는 서로 다른 절이었다. 절 이름을 내장사로 고친 것은 명종 때. 그러나 이 절은 정유재란 때 전소됐다. 

내가 산을 가두나, 산이 우릴 가두는가
 
내장사 부도전 부근의 단풍. 부도전 자리는 옛 영은사가 있었던 자리라고 한다.ⓒ 장호철

이후 인조, 정조 때에 중수하고 1938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으나 한국전쟁 때 불탄 뒤에 여러 차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절집의 역사는 오래되었으나 내장사의 전각들은 백 년이 되지 않은 새로 지은 건물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우리의 단풍 구경은 내장사에서 끝났다. 내장산 자연관찰로를 한 바퀴 돌 수도 있었지만, 절집을 둘러보고 하산하기로 했다. 순환 버스를 타고 5분 만에 공원 입구까지 내려왔는데, 공원과 버스 매표소에 줄이 길게 늘어섰고, 산 아래에서부터 꾸역꾸역 탐방객들이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내장산 단풍을 일러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도 붉다[산홍(山紅), 수홍(水紅), 인홍(人紅)]’라고 했다.ⓒ 장호철

제2주차장까지 내려오면서 우리는 새벽 일찍 득달같이 달려온 우리의 선택을 치하하고 아울러 내장산 단풍 구경의 '성공'을 자축했다. 공원 입구 쪽 상가에서 점심을 사 먹고 귀갓길에 오르며 나는 아내에게 넌지시 물었고 아내는 가볍게 튕겼다.

"내장산에서 내장은 '안에 감춘다'는 뜻이야. 뭐를 감추고 있을 거 같아?"
"단풍이네, 뭘. 그런 걸 묻고 있어."

 
내장산 단풍 보러 가서 내장된 단풍을 본 사람은 하나도 없는 듯하다 내장(內藏)을 본 사람은 하나도 없는 듯하다 이미 제가 내장되었음을 짚은 사람은 하나도 없는 듯하다 지리산 철쭉 바다 세석평전(細石平田)을 보았던 임오년 늦봄 나의 일기에 네가 좀 비치는 걸 적어둔 게 있기는 하다만 이번 가을 내장산 단풍 보고 와서 나는 더욱 확실해졌다 너를 은애하는 사람이 되었다
   - 정진규, 시 '내장산 단풍' 중

정진규 시인은 내장산이 그의 몸속에 "수감"된 것으로 알고 있다가 문득 고백한다. 가을날 내장산 단풍 보러 가서 자신이 내장산에 "수감되었음"을 깨달았다고. 그렇다. 자연을 '나' 안에 지니고 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자연 속에 내장되었음을 깨달은 시인은 마침내 그를 "은애하는 사람이 되"었다. 

글쎄, 이순을 넘겨서 난생처음 내장산을 찾고 그 단풍의 빛깔에 흠뻑 취해서 돌아가지만, 나는 내장산을 마음속에 가둔지도, 내장산이 나를 가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단 한 번의 단풍 구경으로 우리가 내장산을 '은애(恩愛)'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내장산 단풍은 산 자체보다는 주차장에서 내장사까지 들어가는 단풍터널이 으뜸이라 했다.ⓒ 장호철

내장산국립공원은 내장산 단풍이 11월 초순에 절정을 맞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관습을 넘어서 중순에 접어들면서도 여전히 내장산 단풍은 붉고 아름다웠다.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아직도 물들지 않은 푸른 단풍도 적지 않다. 단풍의 '때'는 어쩌면 사람들의 판단 너머에 있을 수도 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얘기다. 서둘러 길을 떠나도 좋겠다. 적어도 이번 주말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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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기사 포함, 모두 1천여 편의 글을 썼다. 2019년 5월,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에 연재한 '친일문학 이야기'를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으로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