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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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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선언으로 '가보지 않은 길'이 열린 지금,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의 존재 이유를 묻습니다.[편집자말]
하나원의 탈북자 생활관 경기도 안성시 탈북자정착지원시설인 하나원에서 탈북자들이 생활하는 생활관.ⓒ 연합뉴스


"북쪽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에요."

지난 2010년 국가보안법 위반(고무찬양) 혐의로 법정에 선 탈북민 최아무개(40대)씨는 남한엔 표현의 자유가 없다고 단언한다. 1심에서 징역 6개월 실형을 선고받은 그는 이후 인터넷에 글을 쓰는 걸 최소화 했다. "페이스북 친구들이 올린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정도"라고 한다. 몸은 석방됐지만 입은 아직 감옥에 갇힌 셈이다. 

의심과 감시... 탈북민의 이중고

시작은 지난 2009년이었다. 우연히 탈북민들이 모여 북한생활을 이야기하는 TV프로그램을 봤다. 최씨가 기억하는 일상과 완전히 반대된 이야기였다. 북한 현실이 심각하게 왜곡·과장됐다고 느낀 그는 한 온라인 정치커뮤니티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체로 "과거 남쪽에서는 북쪽 주민들 머리에 뿔이 달렸다고 가르쳤지만, 북쪽은 남쪽 주민들을 형제자매라고 가르친다"거나 "북쪽에서는 어릴 때부터 항일혁명역사를 배우고 자란다"는 내용이었다.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의 항일운동 이력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행적을 비교한 글도 있었다.   

분명 하나원(탈북민의 정착을 돕는 통일부 소속기관)에서는 "이곳엔 언론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있다"라고 교육받았다. 그렇기에 최씨는 이런 글이 문제가 되리라 상상도 못했다. 자유게시판에 정제하지 않고 올린 '의견 표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북에서도 남쪽 옷이 좋다, 남쪽이 차를 잘 만든다는 정도의 대화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약 6개월 후 보안수사대가 들이닥쳤다. 

"출근시간이었어요. 원룸 앞에 경광등을 켠 경찰차와 스타렉스 한 대가 와있더라고요. 13명 정도가 집을 수색하고 그 자리에서 날 체포해갔어요. 이 광경을 동네사람들이 다 봤어요. 최소한 나를 연쇄살인범이나 연쇄성폭행범으로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실제 그런 범죄자들도 그런 식으로 체포합니까?"

이후 과정은 "외롭고 참담"했다. 보안수사대는 최씨가 북한과 남한을 '비교'한 대목을 특히 문제 삼았다. 양쪽을 비교함으로써 반국가단체를 고무·찬양했다는 논리였다. 한번은 조사를 담당한 수사관이 아이스크림을 사와 마주앉은 최씨에게 건넸다. 그러면서 "북에는 이런 아이스크림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황당한 기분을 표했다. "국가보안법이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구나." 최씨가 확신한 순간이었다. 

석방 후엔 일상적 감시와 자기 검열에 시달렸다. 경찰 보안과 직원이 회사에 전화해 "최OO란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보는 일이 반복돼 두 번이나 직장을 옮겼다. '보안과 경찰이 찾는 탈북민'을 직원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두려워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신변보호관이 원룸 관리인을 찾아와 그가 실제로 거주하는지, 월세는 제 때 내는지 등을 캐묻는 걸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주변 탈북민들은 "누구는 생각이 없어서 말을 안 하고 사는 줄 아느냐, 조용히 밥만 벌어먹고 살라"고 다그친다. 최씨는 "대부분의 탈북민이 그렇게 산다"라고 설명했다. 

'북한산 명태를 판다'라고 온라인에 글을 올렸다가 보안수사대로부터 소환 통보를 받은 강아무개(40대)씨도 "탈북민들이 한국에 오면 다 맘대로 할 것 같지만, 글 하나 올렸다고 공안당국의 표적이 되는 걸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국만큼 살기 좋은 나라 없다더니..."
 
2014년 탈북 후 재입북 협의로 국가보안법 처벌을 받은 권철남씨는 북송을 요구하고 있다.ⓒ 권우성

탈북민 권철남(45)씨가 국가보안법의 표적이 된 건 '농담' 때문이었다.

정확히 2016년 6월 22일 오후 2시경이었다. 보안수사대 수사관 12명이 그가 살던 임대아파트로 찾아왔다. 변기 속까지 샅샅이 수색한 그들은 권씨 팔을 뒤로 고정시킨 채 수갑을 채웠다. 탈북민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과 노동을 해도 나아지지 않는 경제 형편 속에서 '탈남'을 마음먹은 시기, 느닷없이 닥친 불행이었다. 

13번의 조사에서 공안당국은 '위장 탈북'을 인정하라고 추궁했다. 권씨가 탈북민 친구에게 "나 간첩이라고 신고하고 포상금 받자"고 했던 우스갯소리가 '증거'로 제시됐다. 임금을 차곡차곡 모아 북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낸 돈은 '북한 보위부 충성자금'으로 의심받았다.

수사관은 '인혁당' '남로당' 같은 그가 난생 처음 들어보는 단어를 대며 추궁했다. 또 '위장 탈북을 인정하면 사회에 나갔을 때 안보 강연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회유하기도 했다.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자 결국 검찰은 간첩 혐의는 제외하고 '국가보안법 상 탈출예비' 혐의만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이 혐의 역시 권씨는 인정하지 못한다.

"다른 탈북자들은 어떻게 주장하는지 모르겠는데, 내 경우는 이쪽에서의 삶이 고달팠어요. 오로지 돈 하나만 보고 왔는데, 열심히 일하고도 임금을 떼였어요. 너무 화가 나서 작업반장을 찾아가 말싸움을 벌였는데 슬쩍 한번, 스치듯 손이 닿은 걸 폭행이라며 경찰에 연행됐어요. 내가 돈을 떼인 피해자인데... 그때 이런 나라에서는 더는 못살겠다는 생각이 확 들었어요."

이후 권씨는 북한에 있는 전처에게 500만 원을 송금하고, 900만 원을 미화 100달러로 환전해 재입북 자금을 마련했다. 여권을 신청해 발급받고 여행사에 중국 연길행 항공권 구입을 문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발권'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친구와 하나원 상담사 등에게 "마음이 아파서 북으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하소연을 했다.

이런 망설임의 기간은 '신변정리'라는 말로 공소장에 기록됐다. 법원 역시 이를 그대로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최씨는 "공항에서 잡혔거나 최소한 발권이라도 해야 탈출예비가 되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한다. 

'간첩'이라고 소문이 난 권씨는 결국 살던 도시를 떠났다. 그와 안부를 묻고 지낸 탈북민들도 잘못 엮일까봐 연락을 꺼렸다. 외롭고 단절된 시간이었다.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왔을 때 노숙인 쉼터에서 인연을 맺은 기독교 단체만이 도움을 줬다.

이후 지난해 6월 15일 권씨는 서울 종로구에 있는 유엔북한인권사무소 앞에서 '내조국 북조선으로 보내달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만큼 살기 좋은 나라가 없다"라는 중국 브로커의 말은 거짓이었고, 돌아갈 길마저 '국가보안법'에 가로막혀 억울하다는 호소였다. 그에게 지난 4년 동안의 남한 생활이 어땠는지 물어봤다. 

"솔직히 조선(북한)보다 자유가 없는 곳이다."

법이 가둔 사람들
 
"가족이 기다리는 북한으로 돌려보내주세요" 2015년 8월 3일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탈북자 김련희씨가 북한 송환을 호소하고 있다.ⓒ 권우성

국가보안법이 가둔 사람은 또 있다. 브로커에게 속아 한국행을 택했다는 김련희(48)씨는 7년째 '북송'을 공개적으로 요구중이다. 지난해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또 다시 수사망에 올랐다.

지난 2016년 4월 7일, 베트남 대사관에 망명 신청을 하러 뛰어 들어간 일(잠입·탈출)과 '다시 태어나도 북에 태어나고 싶다'고 한 공개 발언(고무·찬양) 등이 문제가 됐다. 김씨는 "어떻게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말이 법에 위반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라고 토로했다. 

지난달에는 7년 만에 여권이 발급됐다. 여권을 신청할 때는 출국금지가 해제됐다는 얘기도 들었다. 김씨는 "나를 판문점을 통해 보내긴 부담스러우니 중국을 통해 조용히 나가라는 뜻으로 알고 기대했다"고 한다.

희망은 한 달 여 만에 사라졌다. 또다시 출국금지통지서가 날아온 것이다. 그는 자신이 "7년째 강제 억류돼 있다"라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존재한 국가보안법이라는 울타리 하나만 제거한다면 이는 '코미디' 같은 일이다.  

김씨에게 적용된 국가보안법 제6조(잠입·탈출)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부터 잠입하거나 그 지역으로 탈출한 자"를 처벌한다. '국가를 위태롭게 한다'는 대목에서 그는 반문했다. 

"전 그냥 평범한 아줌마입니다. 대한민국이 저 하나 북에 보낸다고 해서 흔들리는 연약한 나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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