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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강원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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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의 사진은 모두 중형 포맷의 필름을 이용해 촬영 후 직접 스캔하였으며 사이즈 조정 등 기본적인 보정만 했음을 밝힙니다. 사진 내용에서 괄호 안의 단어는 필름의 명칭입니다. - 기자 말

아우라지에서 송천을 따라 차를 타고 북쪽으로 45분 정도 달리면 대기리를 지나 안반데기에 다다른다. 고랭지 배추밭이 끝없이 펼쳐진 안반데기의 풍경도 압권이었지만,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30km를 넘게 도로의 옆구리로 끼고 달렸던 송천의 모습이었다. 대관령에서 흘러내려오는 깨끗한 물이 여울을 타고 넘어 하얗고 푸르게 흐르고 있었다.
송천과 해 (Pro400H)오후 5시경. 서쪽으로 제법 기운 해가 하얗게 빛나고, 힘차게 흐르는 송천은 그 빛을 화사하게 반사하고 있었다.ⓒ 안사을
아우라지는 골지천과 송천이 합수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어느 정도 골지천의 이름으로 더 흐르다가 정선 읍내를 만나기 전 조양강의 이름을 얻고, 가수리에서 지장천과 합수해 동강이 된다. 아우라지는 정선 땅에서 비교적 평지가 넓은 편인데, 예로부터 농산물이 남아 돌 정도로 풍성해 '여량'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아우라지 (Ektar100)아우라지 징검다리 옆에서 한 노인이 다슬기를 잡고 있다.ⓒ 안사을
기록적인 폭염과 적은 강수량으로 온 나라가 프라이팬처럼 달아올랐다. 강원도 역시 평년 기온보다 많게는 10도 가량 높은 날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깊고 큰 산은 많은 물을 저장하고 있었기에 송천은 여느 때처럼 힘차게 흘렀다.

송천을 왼편에 놓고 북쪽으로 달리다보면 오른편으로 노추산이 나온다. 노추산을 타고 송천 쪽으로 흐르는 계곡이 갑자기 직벽을 만나 송천으로 낙수해 합수한다. 그 모양새가 마치 인공폭포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비슷한 모습의 인공폭포로, 정선에 백석폭포가 있다.
오장폭포 (Pro400H)수직으로 떨어져 송천과 곧바로 합류하는 오장폭포의 모습. 노추산에서 흘러오는 물줄기.ⓒ 안사을
해가 저물어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골짜기를 돌고 돌아 흐르는 거친 수면에 노란 빛이 조금씩 물들고 있었고 옆으로 들어오는 빛줄기가 나뭇잎과 가지들을 관통할 듯 비추고 있었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의 지형 상 이렇게 도로 옆으로 계곡이 흐르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송천의 모습은 그 중 으뜸이라고 할 만큼 수량이 풍부하고 흐름이 거셌다.

강원도라고 해서 다른 곳에 비해 색다른 풍경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도 역시 차가 가는 곳에 차도가 있고, 물이 가는 곳에 물길이 있으며, 사람이 사는 곳에 집이 있다. 다만 골짜기가 조금 더 깊고, 찻길이 좁으며, 삶의 흔적보다는 물과 흙의 흔적이 더 많을 뿐이다.
힘차게 흐르는 송천 (Pro400H)예로부터 이곳 사람들은 거칠게 흐르는 송천을 '양천'이라 하고 고요히 흐르는 골지천은 '음천'이라 불었다고 한다.ⓒ 안사을
송천 옆의 송(松) (Ektar100)송천의 이름표라도 되는 듯 한 소나무 한 그루가 저녁 빛을 받으며 도로 옆에 서 있다.ⓒ 안사을
우리나라 제일의 고랭지 배추밭, 안반데기의 녹색 물결

안반은 떡메로 떡을 칠 때 밑에 받치는 도구인데, 대기리 일대의 넓은 공간이 그처럼 평평하고 오목하게 들어앉은 모양새를 가졌다고 해서 안반덕, 혹은 안반데기로 불렸다. 덕이나 데기는 언덕에 붙이는 명칭으로 강원도와 북한 쪽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안반과 떡메 오목하게 들어간 것, 평평한 것, 두 종류가 있다. 출처 : <한국의 농기구>(어문각)ⓒ 온양민속박물관
이곳은 국내 고랭지 배추밭 중에 가장 높기도 하거니와 가장 넓기도 하다. 보통은 1, 2위의 순위 다툼이 치열한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워낙 압도적으로 넓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따라 올 곳이 없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배추밭이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관광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엄청난 폭염에 '작물이 타들어가고 있으면 어떡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올라왔지만 우려와는 달리 배추들은 싱싱한 자태를 뽐내며 진한 녹색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도착한 시각은 마침 해가 고루포기산 너머로 지고 있는 중이었다.
멍에전망대에서 (Pro400H)석양빛이 스프링클러 물줄기를 노랗게 빛내고 있다.ⓒ 안사을
빛과 언덕 (Pro400H)언덕 뒤편의 해의 빛이 구름 사이로 새어나오고 있다. 고루포기산 의 서쪽 방향.ⓒ 안사을
안반데기의 일몰 (Ektar100)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오니 붉게 물든 하늘을 조금 더 볼 수 있었다.ⓒ 안사을
이곳은 밤 손님의 비율이 꽤나 높다. 별을 찍기에 적합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별을 찍고 운해가 가득한 일출 광경까지 담게 되면 일거양득. 그런데 이 날은 애초부터 촬영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대기가 좋지 않았다. 미세먼지가 뿌옇게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은 별뿐만 아니라 운해 또한 잘 생기지 않는다. 공기 중에 가득한 먼지에 수증기가 응결하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밤중에 급속히 냉각된 공기가 산을 타고 밑으로 내려가야 운해가 생기는데, 구름이나 먼지가 많이 낀 날은 일교차가 크지 않아서 운해가 생기는 조건이 되기 어렵다.

이날의 기상 상태를 고려해 까만 하늘과 선명한 별 사진은 애초에 포기하고, 그 공기 그대로를 가감없이 담아보기로 했다. 달이 능선 뒤로 넘어가고 30분 뒤에 렌즈를 연 후, 2시간 가량 모든 빛을 필름에 흡수시켰다.
안반데기의 밤 (Portra400)극축을 중심으로 별이 일주운동을 하고 있다. 간간히 오고가는 차량 불빛이 곡선으로 남았고 뿌연 박명이 풍경의 바탕을 밝혀주고 있다.ⓒ 안사을
이날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풍력발전기 날개의 방향이 바뀐다는 것이다. 가까이에 있으면 실로 엄청난 크기의 발전기인데, 렌즈를 닫기 위해 나와보니 갑자기 방향이 90도로 바뀌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발전기의 윗 부분이 돌아간 잔상을 볼 수 있다.

화려하지 않았던 일출... 일꾼들의 땀방울은 빛났다
화려하지 않은 일출 (Pro400H)통상적인 기준의 일출사진으로는 버려야 할 수준이지만 그 날의 공기를 있는 그대로 담는 것 또한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다.ⓒ 안사을
아침 운해는 역시나 없었고 지평선을 올라온 지 한참이나 지나서야 뿌연 박무 사이로 해가 살짝 고개를 내밀 뿐이었다. 그러나 아침에 필자의 가슴을 채운 광경은 따로 있었다. 바로 일하시는 분들의 힘찬 모습이었다. 오전 6시가 채 되기도 전에 어디선가 올라와 그 넓은 밭을 누비며 작물을 돌보고 계셨다.

비록 전망대가 있긴 하나 이곳은 원래부터 관광지가 아닌 농민들의 생업터인데, 카메라를 들고 풍경을 담기가 참으로 송구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오며가며 스치는 분들께 고개 숙여 인사를 하게 되었고, 그 분들은 화사한 웃음으로 화답해 주셨다.
배추밭과 사람 (Pro400H)아침햇살이 직사광선으로 내리쬐기 직전 성실한 농부의 실루엣이 아름답다.ⓒ 안사을
아침 작업 (Pro400H)여러 명의 일꾼들이 아침 작업을 하고 있다. 긴 호스로 하는 작업이라 팀워크가 필수.ⓒ 안사을
별이나 일출 촬영, 그리고 그에 필수적으로 따르게 되는 비박(bivouac, 예상치 못한 야외에서 밤을 지새는 일)에는 꼭 지켜야 할 두 가지 조건이 있다. 하나는 왔다 간 흔적을 철저히 없애는 것이고 또 하나는 다른 사람들의 동선에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다. 강렬한 태양빛에 텐트의 이슬이 마름과 동시에 신속하게 짐을 챙겨 자리를 떠났다.

미세먼지가 아직 남아 있었지만 다행히 해를 등지고 보는 쪽은 충분히 선명했다. 서두르는 와중에도 좋은 풍경이 있으면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안반데기를 떠나 속초로 향하기 전, 포지티브 필름을 끼워 몇 장의 사진을 더 기록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한국의 풍경이다.
삼색 풍경 (Provia100F)노랑, 초록, 파랑의 풍경에 하얀 붓질이 더해졌다.ⓒ 안사을
북쪽 방향 (Provia100F)'안반'이라는 어원이 참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안사을
서남쪽 방향 (Provia100F) 기록적인 폭염에도 배추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안사을
안반데기를 떠나며 좁은 길이기에 다른 차가 돌아 나갈 수 있는 위치에 잠시 정차를 하고 사진을 담는다. 트렁크에는 숙박짐과 촬영 장비가 가득하다. 로드트립의 낭만을 이곳 언덕에 조금 내려놓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안사을

덧붙이는 글 | 7월 20일부터 9박 10일간의 강원도 탐방 여정 중 25일과 26일에 취재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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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사.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