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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받으러 갈까요?" "웬 달빛?"

3월 11일. 달마산(489m)이 가고 싶어졌다. 달마산은 관음봉, 불썬봉, 도솔봉 등 영험한 봉우리로 이어지는 7km 바위 능선이 장관이다. 해남 땅 남쪽으로 쭉쭉 뻗어가는 달마산 산줄기는 땅끝으로 끝난다. 산으로는 막장이다. 그 길을 달빛 받으며 걸어보고 싶다. 오늘이 음력 2월 14일. 둥근달이 떠오르겠다.

여기저기 연락해 4명이서 해남으로 향한다. 해남읍을 지나고 한참을 내려가면 닭골재라는 재가 나온다. 이정표는 따로 없다. 천년고찰 대흥사를 품고 있는 대둔산과 아름다운 절집 미황사를 품고 있는 달마산을 나눈다. 그 위로 새로 난 4차선 13번 국도가 완도를 향해 달리고 있다. 옛 도로변에 주차를 하고 산행을 준비한다.
달마산 바람재 일몰. 산에 밤이 찾아온다.ⓒ 전용호
오늘 산행은 닭골재에서 달마산 지나고 땅끝까지 이어지는 20km 산길이다. 보통 9시간 정도 걸리는 산길이다. 산행 소요시간은 야간 산행으로 속도가 나지 않을 것을 감안하여 12시간 정도로 잡았다.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땅끝에서 일출까지 본다면 금상첨화다.

달이 떠오른다. 바다 위에 뜬 푸른 달

오후 5시 반. 산으로 오른다. 닭골재에서 바람재까지는 지정된 등산로가 아니다. 길이 거칠다. 청미래덩굴과 딸기나무 가시들이 뒤엉켜 있는 곳을 지난다. 벌목을 해서 길이 없어진 곳도 있다. 두리번거리며 길을 찾아간다. 보춘화가 피었다. 일명 춘란이라 부르는 꽃. 녹색 꽃잎이 단장하지 않고 피어서 더욱 청초하게 보이는 꽃이다. 할미꽃도 흰털을 잔뜩 부풀리며 고개를 숙이고 피었다.

해가 산을 넘어간다. 멈춰 서서 일몰을 본다. 해가 지면 밤이 온다. 일행들은 말이 없다. 조금 있으면 인적이 없는 어둠 속으로 들어갈 거라는 긴장감이 몸을 감싼다. 바람재에 선다. 바람을 맞는다. 싱그럽다. 봄기운이 느껴진다. 커다란 바위봉우리가 우뚝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달마산에서 바라본 달. 완도 위로 떴다.ⓒ 전용호
달마산에서 바라본 달. 아래로 흐르는 건 완도와 해남 사이 바다다. 달빛이 푸르다.ⓒ 전용호
바위 사이로 길이 있다. 작은 바위들을 잡고 오른다. 길은 거칠다 못해 험하다. 몸을 비틀어서 올라야 하고, 다리를 쭉 뻗어서 내려서기도 한다. 넓은 바위에 올라서니 달이 머리 위로 떴다. 3월. 아직은 차가운 달. 푸른빛이 가득하다. 건너편 완도를 사이에 두고 강처럼 바다가 흐른다. 불이 켜진 곳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달빛 부서지는 강둑에 홀로 앉아 있네~~/소리 없이 흐르는 저 강물을 바라보며~~'

인적이 없는 어두운 산길. 랜턴을 켜고 걸어가면 색다른 감흥이 온다.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일탈을 경험한다. 금지된 장난 같은 느낌. 달 밝은 밤이라 더 좋다. 달빛이 부서진다는 기분을 느낀다. 그 아래 서 있으면 온 우주의 기운이 내려오는 것 같은 짜릿한 느낌.
야간산행의 즐거움. 산정에 올라 별을 찾아보는 것도 즐겁다.ⓒ 전용호
달빛과 어울린 바위, 어둠에 숨은 암자

밤바다가 흐르고 하늘에는 달이 둥그렇게 떴다. 관음봉을 지나고 달마봉으로 오른다. 달마봉에는 돌탑이 섰다. 예전에는 불썬봉이라는 표지석이 있었는데 달마봉으로 바뀌었다. 산자락에는 미황사가 불을 밝히고 있다. 사람을 기다리는 절집이다. 집 떠나온 지 하루가 지나지 않았는데도 따뜻함이 그립다.

산등성이를 따라 걷는다. 하늘 아래를 걷는 기분. 주변은 어둠에 묻히고 하늘만 남았다. 그 속을 걸어간다. 거친 산길을 오르고 내린다. 빨리 갈 수 없는 길이라 저절로 여유가 생긴다. 금샘을 찾아간다. 바위벽에 구멍이 있고 그 안에 물이 고여 있다. 랜턴을 비추니 물이 맑다. 물 한 모금 마신다. 물맛이 좋다. 여운이 남는다.
달마산 문바위에 뜬 달. 바위 위로 달빛이 부서진다.ⓒ 전용호
어둠에 묻힌 도솔암. 건너편 바위들이 암자를 감싸고 있다. 밤에도 장관이다.ⓒ 전용호
문바위 앞에 선다.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바위가 달을 향하고 있다. 달을 향한 바위의 염원이 밤하늘을 뚫고 있다. 달마산 바위들은 규사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 흰 빛이다. 산은 어둠 속에서 눈이 쌓인 것 같이 하얗게 빛난다. 검은색과 흰색이 적절히 어우러져 멋진 밤 풍경을 만든다. 산은 여전히 조용하다.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도솔암 삼거리. 깊은 협곡 사이로 작은 돌계단을 오른다. 어스름한 암자가 나타난다. 한 칸짜리 암자. 요사도 없어 스님이 기거할 곳도 없다. 암자 앞으로 작은 마당을 만들었다. 마당에 쌓은 돌담. 암자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갇혔다. 경계. 돌담에 기대어 하늘을 본다. 별이 내린다. 소원이라도 빌어보려고 문틈을 엿본다. 부처는 눈을 감고 있다. 건너편 뾰족뾰족한 바위들이 장막처럼 둘러쳐 있다.

달과 이별하니 희망이 떠오른다

도솔봉주차장. 자리를 깔고 쉰다. 10여km 걸었다. 거리는 짧아도 걸은 시간은 7시간 정도 된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위험한 구간이 끝났다는 것이다. 금샘에서 떠온 물로 라면을 끓인다. 따뜻한 커피도 한잔 한다. 새벽 1시에 아무도 없는 주차장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 차가운 밤공기가 몸을 흥분시킨다.
달마산 산행. 나무 사이로 내린 달ⓒ 전용호
야간 산행 하려고 준비를 많이 했다. 쉴 때 쓰려고 비닐덮개와 캠핑용 랜턴도 가져왔다. 옷도 여벌로 가져오고, 먹을 것도 넉넉히 가져왔다. 그런데 날이 너무 좋아 돗자리 하나 펴니 모든 게 해결되었다. 간식도 자주 먹어지지 않는다. 가다 멈추면 밤 풍경을 구경하는 것으로 즐겁다.

땅끝까지는 10여km를 더 가야 한다. 이제부터는 흙길이다. 지금까지 바위투성이 길과는 전혀 다른 길이다. 완만한 산들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걷는다. 산길은 잘 정비되어 좋은데, 키큰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답답하다. 달빛이 나무 사이로 스며든다.

나무계단에 잠깐 앉았다 간다는 게 잠이 들었다. 10여분 깜박 졸았다. 달콤하다. 마지막 오르막인 땅끝전망대 계단을 오른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바다가 펼쳐진다. 동쪽바다는 붉은 빛이다. 뒤를 돌아보니 달이 바다에 내려앉았다. 달이 속삭인다. 이제 이별할 시간이라고.
땅끝전망대에서 바라본 바다. 동이 튼다. 불빛이 켜진 곳은 갈두항이다.ⓒ 전용호
땅끝전망대 월몰. 달이 바다로 내려 앉는다.ⓒ 전용호
땅끝에서 바라본 바다. 해가 떠오른다.ⓒ 전용호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뾰족한 땅끝탑 앞에 섰다. 육지의 끝자락인 갯바위에 작은 파도가 찰랑거린다. 오리들이 떼 지어 바다위로 낮게 날아간다. 아침이 밝아온다. 섬 위로 둥그런 해가 오른다. 보길도로 향하는 여객선이 요란하게 지나간다. 계단에 새긴 '희망의 시작'이라는 문구가 마음을 파고든다. 땅끝. 달빛 받으러 왔다가 희망을 안고 간다.

덧붙이는 글 | 야간 산행은 경험이 없으면 위험합니다. 경험이 많은 가이드와 동행하여야 하며,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헤드랜턴과 보조랜턴은 필수며, 밤에 기온차가 많을 경우를 대비하여 여벌의 옷을 챙겨야 합니다. 밤이라 걷는 속도가 생각했던 것보다 느리며. 체력소모가 많을 수 있습니다.

달마산은 물이 없습니다. 충분한 식수를 준비해야 하며, 중간에 샘이 있으나 찾기가 힘들고, 샘물이 없을 경우도 있습니다.

땅끝 터미널에는 슈퍼와 커피숍이 일찍 문을 엽니다. 커피숍 따뜻한 커피와 빵이 맛있었습니다. 커피숍 아저씨는 택시도 불러줍니다.

3월 18일 15:30에 시작하여 3월 19일 07:10에 마쳤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땅끝 일출을 볼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서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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