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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찾아 산티아고 11] 삶은 누구에게도 같을 순 없어 ⓒ 정효정
토산토스에서의 밤, 발의 통증이 심해졌다. 호스피탈레로 호세에게 찾아가자 그는 미지근한 소금물에 내 발을 30분 정도 담그고 있도록 했다. 모두가 자러가고 늦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수건을 가져와 내 발을 닦아주고, 정성껏 소독을 해주었다.

이제 끝났나 싶었는데 그는 어디에선가 스티로폼을 하나 가져왔다. 그 스티로폼을 내 발만큼 재단해 자른 후 가장 물집이 심한 발 앞꿈치 부분을 도려냈다. 그리고는 완성된 깔창을 반창고를 이용해 내 발에 딱 붙여줬다. 아픈 부분에 체중이 덜 실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호스피탈레로 호세가 치료해준 발 스티로폼으로 상처가 심한 부분에 부담이 가지 않게 처지해주었다 ⓒ 정효정
다음날 길을 떠나기 전, 나는 호세의 앞에서 멀쩡해졌다는 의미로 힘차게 제자리 걸음을 걸어보였다. 그는 잠시 웃은 뒤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축성을 해주었다. 스페인어를 모르지만 "좋은 순례자"라는 단어만 알아들었다. 어떤 순례자가 좋은 순례자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발을 구원해 준 그를 위해서라도 꼭 그리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언덕을 올라가자 방금 떠나온 마을의 바위산이 한눈에 보인다. 저 바위산에는 12세기에 지어진 성모마리아의 동굴성당이 있다. 보통은 잠겨있고 열쇠가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매일 오후 5시 순례자들을 위한 성당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성당 내부에는 1년에 한 번 축제에만 외출을 한다는 성모마리아가 있고, 성당 벽에는 꽃과 구름이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었다. 그 아득한 시간과 열정 앞에서 가슴이 뛰었다. 언젠가 실크로드를 여행하며 보았던 동양의 석굴사원들이 생각났다. 동쪽의 사람들이 석굴을 파고 불상을 만들 때, 서쪽의 사람들은 교회에 파고 기도를 올렸다. 진리를 위한 열정은 동서를 가로질러 변하지 않았다. 어쩌면 사람들의 마음도 그럴지 모른다.
바위산의 성모마리아 성당 12세기에 지어진 석굴 성당이다 ⓒ 정효정
중국 키질석굴 쿠처에 위치한 석굴사원 ⓒ 정효정
삶은 누구에게도 같을 수 없어

토산토스를 떠나 걷는데 아이린이 날 불렀다. 그녀는 남아공에서 온 60대 순례자다. 교직을 은퇴하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생각할 시간을 가지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이틀 후에 우리는 부르고스에 도착한다. 부르고스에서 그녀는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를 100km 남겨둔 사리온까지 가서 마저 걸을 거라고 했다.

"이제 다시 못 만날 수도 있으니까."

그녀는  남아공 순례자 사무소에서 받았다는 산티아고 배지를 내 가방에 달아주고 내게 깊은 포옹을 했다.

"여행 중에 특별한 사람을 만나면 줘야지 생각을 하고 있었어. 너는 네가 정말 특별한 사람(special girl)이라는 걸 알고 있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난 그녀를 몇 번 웃겨준 게 다였는데 이런 과분한 소리를 듣다니.

"내가 좀 특별하게 웃긴 사람(specially funny girl)이긴 하지."
"아니야, 넌 정말 특별해. 난 알 수 있어. "

양심이 어서 빨리 털어놓으라고 날 들들 볶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에게 이실직고했다. 길을 떠나 처음 해보는 고백이었다.

"아이린, 난 절대 특별한 사람이 아냐. 사실 이 길도 그냥 남자나 찾으러 걷는 거야. 여기 괜찮은 남자가 많대서..."

나는 그녀에게 전 남자친구와 어떻게 헤어졌는지, 지난 1년 동안 연애는 왜 못했는지, 어쩌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연애나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장황하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이 길에 괜찮은 남자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는데 막상 와보니 그렇지 않아서 당황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그녀는 내 이야기를 듣고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었다.

"것 봐, 그러니까 네가 특별한 거야. 넌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그걸 향해 나아가잖아."
산후안 데 오르테가의 성당 12세기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이다 ⓒ 정효정
길을 걸으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대학생인 딸이 하나 있지만 평생 결혼을 해본 적은 없다고 했다.

"사실 내 인생에 라이트맨(right man)은 없었어.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 딸을 키우면서 내 인생이 불행하지는 않았어. 모든 것은 내 선택이었으니까."

The right man.  보통 '운명의 그 남자', '결혼할 남자' 정도의 의미로 쓰인다. 결혼도 안 했고, 데이트 상대도 없다는 말을 하면 " 오오, 언젠가는 라이트맨을 만날 거야"라고 말하며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면 '라이트맨을 못 만난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며 스스로를 되돌아 보게 된다.

하지만 아이린은 자신의 인생에 '라이트맨'은 없었고 '한 번도 결혼하지 않았았다'고 말한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마치 평생 한 번도 오트밀을 먹어보지 않았지만 그 맛이 궁금하지 않다는 투다. 그런 아이린을 보며 호주에서 만났던 한 언니가 떠올랐다.

그 언니는 40대까지 국내의 한 대기업을 다니다 희망퇴직을 하고 호주로 유학왔다. 미혼여성이 계속 회사를 다니기에는 눈치가 보여서 그만뒀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 언니가 들려준 결혼 관련 질문에 대한 대처법이었다.

처음 본 사람이 결혼여부를 물으면 그녀는 그냥  "한 번 갔다 왔어요"라고 대답한다고 했다. 그럼 보통 상대방은 물어본 것을 후회하며 입을 닫는단다. 그런 방법이 있다니. 그녀는 미혼인 것을 밝히느니 차라리 이혼했다고 말하는 게 낫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결혼을 안 하면 '못난 여자' 거나 '기쎈 여자'가 되거든, 그러느니 차라리 '사연 있는 여자'가 되는 게 나아. 그럼 최소한 '결혼해야 한다'는 설교는 피할 수 있으니까."
수송되는 양들 무리가 가는 데로 가기전에 내가 가는 방향이 어디인지 한번쯤은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이 길이 아닐 수도 있지 않는가 ⓒ 정효정
언론에서는 연일 비혼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하고,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결혼이 당연하게 인식된다. "왜 결혼 안 했어요?"라는 질문의 "왜"에는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안 했다는 의아함이 깃들어 있다. 결혼의 유무는 사회구성원의 완생과 미생, 정상과 비정상, 우성과 열성을 가른다.

이번 산티아고 행도, 남자를 찾으러 간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네가 드디어 결혼할 마음이 들었구나"라는 반응이 나왔다. 왜 꼭 모든 남녀관계는 깔대기처럼 결혼으로 모여야한단 말인가. 괜찮은 남자가 있다면 연애나 동거를 해도 좋지않은가. 하지만 결혼을 안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히스테리가 있을 가능성이 농후한 여성'으로 분류되기에 그런 말에 꼬박꼬박 반응하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왜 결혼을 안 했냐"라는 질문 앞에 나는 "어쩌다보니 못했어요, 어쩌죠?" 하고 못나게 웃어버리곤 했다. 최대한 자신을 낮추고 불쌍하게 보여야 공격 당할 여지가 적기 때문이다. 이게 내가 터득한 생존법이었다. 외눈박이 세상에 양눈박이가 살든, 양눈박이 세상에 외눈박이가 살든 어쨌든 내가 사는 세상에선 다른 건 틀린 것이기에. 
순례길에서 발견한 한 벽화 외눈박이 세상에 양눈박이가 있든, 양눈박이 세상에 외눈박이가 있든 어쨌든 내가 사는 세상에선 다른 건 틀린 것이다 ⓒ 정효정
그렇게 '결혼을 안 한 너는 문제가 있어'라는 손가락질 앞에 누구는 거짓말을 하고 난 못난시늉을 하며 살아남고자 하는데, 아이린은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당당히 말하는 거다. "평생 결혼하지 않았지만 인생은 괜찮았다"고. 그리고 우리가 헤어지기 전, 그녀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이렇게 말해줬다.

"다른 사람들 말은 신경쓰지 않아도 돼. 어차피 삶은 누구에게도 같을 수 없거든."

그 다정한 목소리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한국에서 늘 동네북처럼 두들겨 맞는 내 자존감이 이제야 좀 숨을 쉴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상처받았다'는 말만 해도, '네가 선택한 인생에 당당하면 됐지, 왜 상처받느냐'고 타박만 들었는데...

반은 장난으로 반은 호기심으로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어쩌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게 되었을까. 어젯밤 호세가 스티로폼을 대서 만들어 준 발은 한결 걷기 편했다.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이 길에서 만나는 인연들은 내게 너무 과분하다고.

새로운 가족의 탄생
80만년 전의 인류 호모 엔티세서(Homo Antessor), 그런데 친구랑 닮아서 놀라고 말았다 ⓒ 정효정
오늘의 목적지는 아따뿌에르까(Atapuerca)다. 이 마을은 80만 년 전 살았던 호모 엔티세서(Homo Antessor)가 발굴되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넓은 해바라기밭 사이로 호모 앤티세서의 얼굴이 그려진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우리는 수염으로 덥수룩한 얼굴이 이탈리안 순례자 미첼 같다고 놀렸다.

마을에 도착해 성당으로 올라가자 작은 방갈로 같은 순례자 숙소가 있었다. 내부에는 싱크대는 있지만 조리도구는 전자렌지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카페에서 순례자 메뉴를 팔긴했지만 우리는 미첼의 버너와 코펠을 이용해 저녁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작은 마을인지라 구할 수 있는 재료는 많지 않았다. 파스타, 참치, 토마토, 양파 정도였다.

어차피 요리는 이탈리아인들이 할 거니까 마음 놓고 정원에서 쉬고 있는데 다비드가 날 부른다. 파스타를 많이 삶아야 하는데 그러기엔 미첼의 코펠이 너무 작다는 거다. 그래서 둘이 마을에 냄비를 빌리러 가기로 했다.

우리는 엄마 심부름을 가는 사이좋은 오누이처럼 노래를 부르며 마을로 내려갔다. 하지만 막상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려니 긴장된다. 다비드를 보니 그는 스페인어 '냄비'라는 단어를 잊지않기 위해 중얼중얼 외우고 있었다.
빌린 냄비를 들고 기념 사진 산티아고 길위에 사는 사람들은 처음 보는 낯선이에게 선뜻 냄비를 빌려주는 사람들이었다 ⓒ 정효정
마침내 주인 아줌마가 나왔다. 다비드가 서툰 스페인어로 냄비를 빌려줄 것을 청할 때 나는 옆에서 최대한 온화한 미소를 띄고 "우리는 냄비를 들고 도망가는 나쁜 사람들이 아니에요"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녀는 두말 않고 큰 냄비를 하나 내주었다. 그뿐 아니라 직접 딴 호두라며 호두도 한 웅큼 줬다.

숙소로 돌아오며 다비드는 환호성을 질렀다.

"맙소사. 진짜 냄비를 빌려주다니. 로마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우리는 의기양양하게 냄비를 들고 귀환했다. 그리고 저녁식사가 완성됐다. 제한된 재료를 가지고도 이탈리아인들은 늘 최고의 파스타를 만들어낸다. 테이블에 촛불을 켜고, 벽난로도 지피고, 파스타를 나누어 담고, 빈 컵에 와인을 채우고, 밥 말리의 음악을 틀었다.

"세상에. 우리 꼭 작은 가족 같잖아."

릴리가 행복한 표정으로 외쳤다. 그렇게 순례 14일째,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어느 날의 저녁식사 7명이 2.2유로씩 내서 저녁식사를 마련했다 ⓒ 정효정

덧붙이는 글 | '산티아고에 괜찮은 남자가 많다'는 말만 듣고 800km를 걸어버린 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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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