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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세이유궁전 중무장한 경찰들이 공공시설 곳곳의 경계릃 서고 있다. ⓒ 김민수
11월 12일, 프랑스 페르네이 볼테르에서 리옹으로 가는 중 고속도로에서 경찰로부터 검문검색을 받았다. 앞서 사흘간 프랑스와 스위스를 오가는 중에는 국경을 넘나듦에도 불구하고 여간해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국경을 넘나들 때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검문을 받았으니 일행은 운전수가 모자에 선글라스를 쓴 까닭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곳곳에 검문하는 경찰이 많았고, 우리를 검문하고 앞서 가던 경찰이 다른 차들도 검문하는 것을 보면서 '참 열심히 한다'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이것이 테러 경고 때문이었다는 것은 11월 13일, 파리 테러가 발생한 이후 알게 되었다. 이미 11월 10일 외교부에서는 프랑스 여행 중인 한국인들에게 '프랑스 대테러경보단계 최상급, 신변안전주의, 관광지, 대중교통 소매치기주의' 등을 알리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미 테러가 발생하기 전에 '대테러경보단계 최상급'이 발령되어 있었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노틀담성당 노틀담성당 내부에 프랑스 국기에 들어있는 삼색을 비추며 테러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고 있다. ⓒ 김민수
평생에 단 한 번, 큰 맘 먹고 온 프랑스 여행인데 2001년 9.11 테러에 버금가는 2015년 11.13 테러가 발생한 직후 파리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미 루브르박물관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는 대부분 폐쇄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래도 일정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오히려 테러 뒤에 더 안전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파리로 향했다.

가이드에게 테러현장이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곳을 방문하자고 했으나 많이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굳이 그런 곳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테러 이후 차분해진 파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개방되어 내부를 볼 수 있었던 노트르담 대성당 내부에는 프랑스 국기에 있는 삼색의 조명이 밝혀져 있었다. 처음엔 성당 내부에 스테인글라스의 빛도 아름다운데 원색의 네온사인이 밝혀진 이유를 몰랐었다.
파리 도시 전체에 화사한 조명은 모두 꺼졌다. 은은한 불빛에 프랑스 국기에 들어있는 삼색이 빛이 테러로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하고 있다. ⓒ 김민수
시내 곳곳의 공공건물과 놀이기구 등에도 삼색의 네온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제서야 그 빛이 프랑스 국기에 들어있는 색임을 알았고, 이번 테러로 숨진 희생자들을 위한 애도의 표시임을 알았다.

도시에는 화사한 조명이 없었고 어두웠다. 샹젤리제 거리조차도 어두컴컴했고,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설치된 조명들조차 모두 빛을 잃었다. 파리 전체가 슬픔 속에 조용히 잠겨 있었다. 관광객들 조차 신명나게 파리 시내를 활보하지 않았고 거리는 한산했다.
파리테러 테러로 숨진 친구를 추모하는 꽃 한 송이, 예술가를 꿈꿨던 젊은이도 무차별적인 테러를 피할 수 없었다. ⓒ 김민수
생 제르망 데프레 거리는 예술가들의 거리다. 그곳 창문에 붙은 시들어진 장미를 한 송이 만났다. 'Amire Merci'라는 글귀, 'Amire'는 이름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Amire 고마워'라는 뜻이다. 이번 파리 테러로 예술가를 꿈꾸던 청년이 살해를 당한 것이다.

이번 테러로 가장 많은 이들이 희생된 바타클랑 극장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 록 밴드 '이글로 오브 데스메탈' 공연이 열렸기에 젊은이들의 희생이 많았다. 그 희생된 젊은이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아니, 어찌 유망주라고만 해서 마음이 아프겠는가? 불의한 일로, 타의로 목숨을 잃은 이들은 살아남은 이들 모두의 책임인 셈이다. 나와 일면식이 없었던 사람이라도, 각자의 책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지하철역 지하철역마다 무장한 경찰들이 경계를 서고, 시민들도 구내방송에 귀를 기울이며 방송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 김민수
메트로 역시도 긴장의 연속이었다. 역마다 중무장한 경찰과 폭발물 처리반 차량이 있었고, 거리에서는 시시때때로 비상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드골공항으로 가는 길에는 반대편 열차에 폭발물설치 의심 신고가 들어와 운행이 중단되고 승객들이 모두 대피하기도 했다.

10여 분 간의 열차조사를 마친 후, 다시 열차는 정상운행되었고 파리 시민들은 방송 안내에 따라 신속하게 움직였다. 차분하면서도 거리에 줄어든 사람만큼의 공간이 두려움 같은 것으로 채워진 듯 했다.
에펠탑 18일 저녁 7시, 테러로 희생된 이들을 위한 추모를 위해 잠시 불이 밝혀졌다. 화려한 조명으로 아름답던 에펠탑은 잠시 추모의 시간 외에는 조명을 밝히지 않았다. ⓒ 김민수
그들은 다시 평화로운 일상을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낮 12시와 오후 7시에 테러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의 시간이 있었는데, 특히 정오에는 실내에 있는 이들이거나 상점이나 식당에 있는 이들도 모두 추모의 시간을 지키고 있었다.

18일 오후 7시, 조명이 꺼졌던 에펠탑에 삼색 조명이 들어왔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가랑비를 뿌렸고, 그곳에 모인 이들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추모의 시간이 끝나자 에펠탑의 조명은 다시 꺼졌다. 파리는 깊은 어둠에 빠져든 듯 희미한 조명 아래서 파리지엥들은 대화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었다.
파리테러 파리테러이후를 취재하기 위한 취재진들의 경쟁(에펠탑 광장) ⓒ 김민수
파리는 지금 외신기자들이 앞다퉈 취재를 하고 있다. 이미 파리 테러에 대한 원인 분석도 나왔고, 향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들과 이미 시리아 IS 근거지에 대한 프랑스의 보복 폭격 이야기들도 이어지고 있다.

누구나 평화를 위하지만, 평화롭게 사는 길을 멀고 험난한 듯하다. 2001년 미국의 9.11 테러 이후 전 세계인들에게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는 11.13 파리 테러를 프랑스인들이 잘 딛고 일어서기를 응원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테러들의 원인을 제공하는 문제들 역시도 심각하게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테러의 양면성 중에서 우리는 어느 한 쪽만 옳다거나 그르다고 할 수 없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보복 공격으로 IS대원뿐 아니라 민간인들이 살해당한다는 점에서 이 역시도 폭력적이다.

폭력은 더 큰 폭력을 가져올 뿐, 갈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러므로 테러는 그 어떤 명목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물론, 평화의 이름을 가장한 테러도 미화되서는 안 될 것이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파리테러, #에펠탑, #바르세이유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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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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