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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는 실종된 지 오래됐고, 반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죽음을 강요하거나 고분고분 노예로 살라고 합니다. 그 속에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지난 3일 대한통운 대전물류센터 앞 야산에서 목숨을 끊은 박종태(38) 화물연대 광주지부 제1지회장의 유서는 배달기사들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노예'로 표현하고 있었다. 

 

화물노동자들은 운송물류업체의 비용절감을 이유로 개별 노동자가 사업자등록을 해, 형식적으로는 회사와 배달계약을 한 자영업자로 돼 있다. 그런데도 사측에서는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운수노조에서 탈퇴할 것을 종용해 왔다. 즉 박씨가 말한 '특수고용노동자'란 대한통운 배달기사들처럼 겉모습은 자영업자 또는 사용주지만 노동자의 기본 권리마저 행사할 수 없는 노동자들을 지칭한 것.   

 

화물연대에 따르면 이들은 아침 7시에 출근해 오전에 분류 작업을 하고 밤 9시까지 물건을 배달하며 받는 임금은 월 250만원이다. 이중 차량 유지비와 기름값, 휴대전화 요금 등에 적잖은 돈이 들어가 실제 받는 돈은 150만원에서 200만원 수준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영업자로 분류돼 산재보험 등 4대 보험 적용 등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회사 측이 76명의 택배기사들과 계약을 해지한 것은 수수료 배분액 인상 건이었다. 노조 측은 대한통운 광주지사에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건당 920원을 950원으로 30원 올려 달라고 요구했다. 화물연대 측은 양측이 지난 1월 이 같은 인상안에 구두합의했지만 사측이 지난 3월 전국적으로 수수료 40원이 인하됐다며 합의 파기를 통보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반면 대한통운 측은 인상안에 합의한 바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에 화물연대 대한통운분회 조합원들이 항의표시로 계약서에 없는 분류 작업을 거부했다. 일종의 준법투쟁이었다. 하지만 사측은 즉각 계약해지로 응수했다.

 

대한통운의 한 해고노동자는 "사측이 노조를 탈퇴하면 재계약을 받아주겠다고 말해왔다"며 "이 때문에 일부 조합원들이 기만적인 사측의 태도에 끝까지 맞서 싸워 온 것"이라고 말했다.

 

박 지회장은 사측의 계약해지에 맞서 대한통운 분회원들과 함께 대한통운 물류가 집중되는 대전지사 앞에서 재계약을 촉구하는 집회를 여는 등 복직 투쟁을 이끌어왔다. 그는 서울 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됐고, 대전 집회마저도 번번이 가로막히자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저의 죽음이 세상을 바꿀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최소한 화물연대 조직이 깨져서는 안 된다는 것, 힘없는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린 지 43일이 되도록 아무 힘도 써보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하기 위해 선택한 것입니다"

 

그는 유서를 통해 "꼭 이렇게 해야, 이런 식의 선택을 해야 되는지, 그래야 한 발짝이라도 전진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속상하고 분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측은 재계약을 하지 못한 나머지 30여명의 조합원들에 대한 조건 없는 재계약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화물연대 측은 계약 해지로 해고된 노동자들이 전원 일자리로 되돌아갈 때까지 장례를 치를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화물연대는 6일과 9일 오후 2시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에서 각각 '악덕 대한통운 규탄대회'를 열 계획이다. 고인이 된 박 지회장은 조합원들에게 남긴 유서를 통해 "기득권을 버리고 함께 힘을 모으자"고 호소했다. 부인과 두 자녀를 둔 박 지회장은 지난 2003년 화물연대에 가입한 후 광주지부 사무부장, 화물연대 중앙위원 등을 역임했다. 박씨의 빈소는 대전중앙병원 영안실에 마련돼 있다.


태그:#특수고용노동자, #화물연대, #박종태, #대한통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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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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