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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7월 15일자 1면에 실린 광고
 <한겨레> 7월 15일자 1면에 실린 광고
ⓒ 청년의눈빛되어바라보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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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5일자 <한겨레> 1면에는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광고가 실렸다. "6월 1일 새벽 1시경 서울 청와대 앞 효자로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과 경찰측 간의 대치상황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생명이 위급하여 심폐소생술을 받은 사람" 혹은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을 찾는 광고였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청년의 눈빛되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대학생 김모씨가 누리꾼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 모금 활동을 통해 <한겨레>에 광고를 낸 것이다. 당시 경찰은 촛불집회 여대생 사망설을 루머로 규정하고 이를 유포한 누리꾼을 구속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4일, 경찰은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광고를 게재한 김모씨를 불구속 입건하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모금액 약 1900만원 중 1400만원을 광고비용으로 지불하고 남은 금액을 현금으로 인출하거나 신용카드 결제대금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김씨가 결제한 카드 결제대금의 일부가 유흥비였다는 점을 부각해 발표했으나 김씨가 광고비가 남은 사실을 카페에 공개했고 개인 카드로 유흥비를 쓴 것이 왜 횡령이냐고 반발하면서 논란이 뜨겁다. 또한, 경찰은 김씨에 대해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김씨의 주거지가 분명하고 도주 우려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한 상황이다.

진실은 차후에 밝혀질 일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의문점은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우리 역사 속에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는 점에서 묘하게 비교된다.

국권회복을 위해 일어난 범국민적인 모금, '국채보상운동'

 당시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된 관련 기사
 당시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된 관련 기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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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즉 1907년의 일이다. 당시 일본은 청일전쟁시부터 1906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대한제국에 1150만원의 차관을 제공했다. 일본이 차관 공세를 편 것에는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대한제국의 경제를 일본에 예속하기 위해서였고, 또 다른 하나는 식민지화 작업이었다. 이런 두 가지 목적에서 일본은 차관을 강제했고 대한제국의 빚은 늘어만 갔다.

이에 1907년 2월 중순, 대구의 광문사라는 출판사의 사장 김광제와 부사장 서상돈이 '국채보상운동'을 제창했다. 이들은 작은 실천인 '단연'(斷煙), 즉 담배를 피우지 않고 그 돈을 모아서 국가를 위해 쓰자는 주장을 펼쳤다.

"국채 1300만원은 바로 우리 대한제국의 존망에 직결되는 것으로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할 것인데, 국고로는 해결할 도리가 없으므로 2천만 인민들이 3개월 동안 흡연을 폐지하고 그 대금으로 국고를 갚아 국가의 위기를 구하자."

김광제와 서상돈은 이러한 내용을 담아 <대한매일신보>에 광고를 냈다. 서울에서는 2월 22일에 국채보상기성회가 설립되었고 이후 전국적으로 이와 관련된 단체 20여 개가 구성되었다. 이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한 이들은 다양했다.

당시 임금이었던 고종도 '단연'을 밝혔고 고급관료들도 참여했다. 민족 자본가와 지식인은 물론 유림과 상민도 마찬가지였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인력거꾼·기생·백정 등 하층민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부녀층은 각종 패물을 보내 참여했다. 마치 IMF 외환위기 당시 결혼반지까지 꺼내 금 모으기에 동참했던 것처럼 말이다.

국채보상운동을 좌절시킨 조작, '국채보상금소비사건'

 당시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경향신문>의 논설
 당시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경향신문>의 논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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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큰 위협을 느낀 일본은 국채보상운동을 무산시키기 위해 한 사건을 조작하기에 이른다. 일본이 주목한 곳은 '대한매일신보사'였다.

<대한매일신보>는 국채보상운동에 대해 주도적인 입장을 취했는데 그 중심에 양기탁과 영국인 베델이 있었다. 일본은 베델을 추방시키고자 공작을 펴 1908년 5월에 3주의 금고와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후 7월에는 "대한매일신보가 보관한 국채보상금을 베델·양기탁 두 사람이 마음대로 하여 3만원을 소비하였다"고 주장하며 양기탁을 구속했다.

이것이 바로 '국채보상금소비사건'으로써 이러한 일본의 공작에 의해 국채보상운동은 정지상태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에 맞춰서 통감부의 사주를 받은 전 국채보상지원금 총합 소장 윤웅렬이 나섰다. 그는 "보상금 중 3만원을 영국인 베델이 사취하였으므로 그 반환을 요청한다"는 반환청구서를 제출했고 일본은 이를 이용해 사람들로 하여금 국채보상운동의 지도자들을 불신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공판 결과 양기탁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국채보상운동은 분열되었다. 결국, 일본의 의도대로 운동이 끝나면서 결국 국권회복운동도 실패로 돌아갔고 우리나라는 일본에 침탈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역사는 되풀이되는가?

"총 광고모금액은 1870만원입니다. 2차 광고를 위해 470여만원을 제 개인통장에 따로 적립해 두었었습니다. 또한 한겨레측에서 광고관련 영수증이 오면 첨부하여 잔액을 소상히 공개하고 이후 제가 책임지고 이것을 추진하겠다라고 이미 약속드린 바 있습니다.

1400만원은 한겨레 측에 광고비로 이미 전달을 했고 나머지 470여만원을 오늘 오후 한겨레 계좌로 송금을 이미했습니다. 이후 제가 2차 광고를 분명 하겠다고 이미 약속드린 바와 같이 470만원 상당의 광고를 선 한겨레 입금 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많은 관심과 지지. 그리고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촛불집회 사망설과 관련해 광고비 모금을 주도한 김씨가 지난 4일 자신의 인터넷 카페에 올린 공지다. 이에 대한 반응은 인터넷상에서 두 가지로 나뉜다. 한 쪽은 모금액 횡령에 대해 강한 처벌을 바란다고 하고 또 다른 한 쪽은 철저한 진상 규명을 통해 무엇이 사실인지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현재 경찰이 내놓은 결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역사는 '국채보상운동'과 '국채보상금소비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소중한 교훈을 준 바 있다.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것인지, 정확한 사실 확인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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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유적학과 06학번 학생으로 현재는 휴학중입니다. 다음과 네이버의 커뮤니티에서 운영자나 논객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8년 네이버 1차 파워지식in에 선정된 바 있습니다. 2009년에 네이버 지식활동대 1기에 선정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가야문화권 답사를 갔다와서 연재기사를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