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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대사관이 신축될 구 경기여고 부지. 지금은 전투경찰들의 충정 훈련장으로 바뀌었다. ⓒ 정동지역 역사경관 지키기 시민대책위
덕수궁 터(옛 경기여고)에 신축 예정인 주한 미대사관 15층 건물의 고도제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가 86년 미 대사관측과 체결한 '양해각서'에서 15층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사전에 양해해준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이 '양해각서'는 미대사관과 서울시간에 재산교환 '양해각서'임에도 불구, 미대사관측이 짓고자 하는 건물의 고도제한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어 사실상 불평등한 '양해각서'로 당시 미국측의 압력 의혹이 제기돼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 4일 국회 건설교통위원인 서상섭 한나라당 의원이 서울시에 요구해 제출 받은 자료에 의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한글, 영문 두 종류로 작성된 '서울시와 주한 미대사관간 재산교환'이라는 제목의 이 문서는 당시 염보현 관선시장의 서명이 기록되어 있으며 5개 항목의 '재산교환 관련 양해사항'이 첨부되어 있다.

▲ 86년에 서울시와 미대사관 간에 맺은 양해각서
이 항목 중 문제가 되는 4항과 5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4. 매층의 높이가 15피트인 15층 건물(안테나와 지붕위의 시설물은 15 제한에 포함되지 않음) 허가여부는 건축물의 높이가 전면도로 반대측으로부터 건축물 전면까지 수평거리의 1.5배의 높이를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서울시의 요건준수 여부에 따른다.

5. 국무성은 미국정부의 시설물 및 보안요건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서울시의 건축조례에 적합한 청사건축을 위해 4항에 언급된 건축물 고도제한을 제외한 청사 시설물의 건축 및 설계상의 세부사항에 대해 서울시 당국과 협의한다."


이 항목에 따르면 건물의 고도제한은 기본적인 사선제한만 지킨다면 다른 세부사항은 서울시의 양해를 구해 15층짜리 건물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약속한 것이다. 결국 서울시는 미대사관측이 짓고자 하는 15층짜리 대사관 건물을 사전에 약속해 놓고도 지난 16년간 국민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숨겨온 셈이다.

이와 관련 미대사관측은 오는 2006년까지 서울시 중구 정동 10-1번지 등 덕수궁 터(옛 경기여고)에 연건평 5만4976.13㎡ 규모(지하 2층 지상 15층)의 미대사관 건물을 신축·이전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미대사관측은 현 미대사관저 내부에 54가구 규모의 직원 숙소용 아파트 8층과 군인숙소 4층 등의 신축을 추진 중이다.

이에 대해 '덕수궁 미대사관 신축을 반대하는 시민모임'은 "서울시와 정부가 국가사적지와 유형문화재 등이 산재한 덕수궁을 비롯한 중구 정동 일대를 파괴하기 위해 미대사관측의 외교적인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반영, 법 개정요구를 추진하고 있는 사대적인 행태를 규탄한다"며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강찬석(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공동대표는 "미대사관측의 부당한 요구사항들의 철회는 국가주권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면서 "1984년 당시 군사 독재정권이 대미관계가 취약한 상태에서 결정한 토지교환은 취약한 정부의 상태에서 결정한 것으로 지금 잘못된 것이라면 바꿔야한다"고 촉구했다.

▲ 양해각서 내용 일부. '15층 건물'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서상섭 의원은 "현재 미대사관측이 15층짜리 미대사관 청사가 아닌 8층짜리 직원아파트에 대해 먼저 서울시에 교통영향평가, 문화재주변건축물 심의를 요청하고 건축계획을 세운 것은 고도제한에 걸리지 않는 직원아파트를 먼저 추진한 후 사전 양해를 받은 15층짜리 대사관 청사를 건축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 의원은 특히 86년 체결된 '양해각서'를 "불평등한 비합리적 각서"로 규정, 체결 당사자인 서울시와 미대사관측에 △4항, 5항이 양해각서에 포함된 이유 △4항, 5항의 포함을 요구한 사람 △서울시가 4항, 5항을 받아들인 이유 등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요구했다. 서 의원은 또 이러한 의혹을 밝히기 위해 서울시 국정감사에 염보현 전 시장 등 관계자들의 증인출석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토마스허바드 주한 미대사관은 지난달 26일 <오마이뉴스>와 가진 열린인터뷰에서 "구 경기여고 자리를 (대사관 신축) 부지로 선정했던 이유는 1986년에 한국정부가 그렇게 요청했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다른 지역을 원했는데 한국정부 측에서 거기가 비어있고, 다른 높은 건물도 주위에 있으므로 하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말 바꾸는 이명박 시장, "미대사관 신축 불허해야"

한-미 양국은 지난 84년부터 미대사관 사용료와 이전문제에 대한 협의를 시작했다. 이어서 86년 염보현 서울시장은 당시 미대사를 만났고, 재산교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다시 90년 7월 당시 고건 서울시장과 이반 셀른 미국무성 행정담당 차관은 재산교환 계약서를 체결, 서울시가 옛 경기여고 터를 내주는 대신에 미국 정부 소유인 을지로 1가 미 문화원과 송현동 대사관 직원 숙소 일부 및 정산금 39억원을 받기로 했다.

한편 미대사관은 청사에 앞서 추진하고 있는 직원 아파트가 주차장 설치기준을 무시한 설치계획과 주택건설촉진법 등에 의해 난관에 부딪히자 관련법 개정과 예외규정 적용 등을 주장하고 있다.

▲ 구 경기여고 부지입구에 미국 대사관이 설치한 경고문구 ⓒ 정동지역 역사경관 지키기 시민대책위
이와 관련 이명박 서울시장은 선거기간 동안 "미대사관 직원숙소 건립계획과 관련하여 규정과 법을 고쳐가면서까지 짓는 것은 반대하며, 시장이 되면 문화재 보호를 고려해 처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시장은 당선 직후 "미대사관 직원숙소건립문제는 법령의 규정에 의거해 처리해야 할 사안이지 미국이라고 해서 특혜를 준다던가, 미국이라고 해서 손해를 일부러 끼치게 한다던가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 문제는 서울시보다 외교통상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을 바꿨다.

이에 대해 서상섭 의원측은 "이명박 시장이 7월 3일 토마스허바드 주한미국대사와의 면담이후 말을 바꾼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 시장의 말은 86년 서울시와 미대사관간에 체결된 양해각서 내용에 반하는 것으로 당사자인 서울시가 정부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 의원측은 또 "양해각서에 따르면 서울시는 미국과 건축 및 설계상의 세부사항에 대해 건축조례에 적합한 건물을 짓기로 하였으므로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주차장법, 주택건설촉진법, 문화재보호법 등의 관련 법규에 따라 미대사관 신축을 불허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덕수궁이 미 대사관 안마당으로 전락"

토마스 허바드 주한 미대사관은 <오마이뉴스>와의 열린인터뷰에서 "마이클 그레입스라는미국의 저명한 건축가에게 (대사관 신축 건물 설계를) 의뢰해 주변 환경을 모두 고려해서 전통적 덕수궁 돌담과 조화가 되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허바드 대사의 발언과는 달리 덕수궁 터에 신축 예정인 미대사관과 직원아파트 건물이 덕수궁과 같은 문화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서상섭 의원측은 "미대사관측이 중구청을 통해 서울시에 제출한 도면에 따르면 화려하고 튀는 외장이 주변의 덕수궁과 같은 문화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조감도의 사진에 따르면 미대사관·아파트는 덕수궁과 조화롭지 않으며 오히려 덕수궁을 앞도해, 마치 덕수궁이 미대사관·아파트의 '안마당'으로 전락했다는 느낌"이라고 주장했다.

서 의원측은 또 "두 건물은 경관 각도상 입주자들이 턱밑에서 덕수궁을 내려다보는 구조여서 시민들에게 시각적·정서적 거부감을 줄 수 있으며, 특히 덕수궁을 찾는 관광객들이 이런 느낌을 가질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불평등 '양해각서', 미국 압력 사실 밝혀야..."
[인터뷰]서상섭 한나라당 의원

▲ 한나라당 서상섭 의원
-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양해각서'는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
"이미 86년 전두환 정권 말기에 미대사관과 서울시장이 함께 서명한 양해각서를 만들었고, 15층 건물을 짓는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재산교환 양해각서에 포함될 내용이 아니라는 점에서 미국측이 어떤 압력을 넣었을 것이라는 의혹과 함께 이러한 사실을 그동안 국민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국민을 속이고 있었고, 지금에 와서 관계 법령에 저촉되는 15층 건물을 신축한다는 것은 문제가 된다."

- '양해각서'가 미국의 압력 등 불평등한 각서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당시 관선시장이 국가와 국가간의 국제문서를 독단으로 결정해 체결했다고는 볼 수 없다. 또한 양해각서의 내용에 대해 그동안 숨겨왔다. 덕수궁과 같은 민족적 자존심을 의미하는 장소에 고도제한 없이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16년전에 이미 허락을 해 줬다는 것 자체가 타당하지 않다."

- 미대사관은 청사 신축 강행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데.
"현재 서울시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독립국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법률적 저촉이 되는 내용을 담은 '양해각서'를 미국이 계속 요구할 경우 국민적 여론에 호소해 막아야 한다. 강압적이고 비합법적인 과정을 통해 일방적으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는 것이 증명되고, 국민들에게 이런 것에 대한 동의의 과정을 거쳐 반대여론이 형성되면 미국도 강행하기 어렵다."

-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이명박 서울시장의 형)이 서울시에 자료를 요청한 서 의원에게 압력을 가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나는 그런 얘기 들어본 적 없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명박 시장 개인의 문제도 아니고, 한나라당에서 어렵게 배출한 서울시장을 흔들 의도도 없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16년간 알려지지 않았던 불평등한 '양해각서'를 드러내놓고 국민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는 나의 활동이 (이명박 시장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한편 서상섭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가 '양해각서'를 제출해 달라는 우리의 요구를 계속 거부하던 중 이상득 의원실의 한 보좌관이 '이상득 의원이 이명박 시장의 형님'이라는 말과 함께 의원실로 전화를 걸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 보좌관은 '서울시 공보관으로부터 '양해각서'에 대한 서상섭 의원의 자료 협조건으로 전화를 받았다'면서 우리 의원실에 '양해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 최경준 기자

덧붙이는 글 | 다음은 9일 '덕수궁 터 미대사관 아파트 신축반대 시민모임'에서 이 보도와 관련하며 낸 '논평' 전문이다.

미 대사관 건립에 관한 재산교환 '양해각서' 공개에 대해 

우리는 1986년 서울시와 미국대사관이 체결한 재산교환 양해각서의 내용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미국이 그동안 전 국민적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덕수궁 터에 미국대사관과 아파트 신축을 자신감 있게 추진해 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양해각서는 재산교환 차원을 넘어 문화유적지에 15층 높이의 건물 신축을 보장함으로써 오늘날 덕수궁 터에 미대사관과 아파트가 신축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일반국민들은 건축법이 바뀌면 온갖 불편을 감수하며 설계를 변경하는 마당에 미국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미국의 필요대로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약속을 해준 것이다. 그것도 우리의 문화유적지 덕수궁 터 위에 말이다.

우리는 먼저, 서울시와 미국대사관이 이런 굴욕적인 양해각서를 체결하게 된 배경이 궁금해진다. 미국의 요구와 압력 때문인지 아니면 서울시의 사대적 발상에 의한 과잉 친절 때문이었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또한 덕수궁 터를 내어줄 때 어떤 검토를 거쳤는지 밝혀야 한다. 이번에 공개된 양해각서는 불평등하고 굴욕적인 한미관계의 단면을 들어내는 문서로서 이것이 체결되는 전 과정과 관련 자료를 국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이와 같은 사건이 또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 시민모임이 재산교환양해각서의 공개를 요구했음에도 관련법을 어기면서까지 공개를 미루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서울시는 분명히 밝혀야 한다. 1986년 이 불평등한 각서가 체결될 때처럼 미국의 요구 때문인지 아니면 미국의 입장을 고려한 과잉 친절 때문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오늘날도 그 당시와 같이 미국의 이해를 최우선시하는 외교관행이 반복되고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서울시는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지 말고 결자해지의 자세로 대체부지를 마련하여 미국과 협상하라.

서울시는 양해각서의 내용과 관련하여 해명자료까지 내면서 애매한 표현으로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하고 있다. 양해각서 원문과 비교 해보면 누구나 서울시의 주장이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서울시가 대체부지 선정과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네 번째, 미국은 덕수궁 터에 대사관과 아파트 신축계획을 즉각 철회하고 새로운 대체부지를 마련 검토해야 한다. 왜냐하면 덕수궁 터의 미대사관과 아파트 신축계획은 불평등하고 왜곡된 한미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제 새로운 동반자적 관계를 위해서라도 과거의 잔재들은 깨끗이 청산해야만 한다.

다섯 번째, 이번 국정감사에서 덕수궁 터 미대사관 신축이 계획이 추진되기까지의 과정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길 기대해본다. 또한 서울시와 정부당국으로부터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대체 부지를 마련하고 미국에게 대체부지로의 이전을 요구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덕수궁 터 미국대사관 아파트 신축 문제는 한미관계의 어제와 오늘을 담고 그대로 담고 있다.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가에 따라 한미관계의 내일도 결정될 것이다.

덕수궁 터 미대사관 아파트 신축 반대 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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