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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섬진강을 찾는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가을 새벽, 섬진강을 향하는 첫 열차에 몸을 담았다. 어둠을 거치며 창 밖으로 서서히, 아주 서서히 동이 트고 있었다. 동이 트는 가을 아침 거뭇거뭇 빛을 받아 발산하는 푸른 노을이 옷을 벗고, 넓은 호남 평야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넓게 펼쳐진 황금물결 위에 비친 가을 햇빛은 그렇게 곡식들을 짙은 금빛으로 영글게 만들고, 나는 조금은 흥분된 마음으로 김용택 시인이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는 섬진강 변 마암분교를 찾아간다.

전주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남쪽으로 내려가다 운암교 밑의 종점에 짐을 풀었다. 구불구불 굽은 섬진강이 가까운 손끝에 닿아 있었다. 강을 따라 누렇게 빛이 바랜 갈대밭이 고개를 흔들며 서 있는 위엔 가을을 안은 붉은 단풍들이 산 위에 한 점, 한 점 수를 놓고 있다.

아름답다...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짙은 가을 색의 산과 강물이 흐르는, 바로 이 곳이 김용택 시인의 시의 젖줄인 '섬진강'인 것이다. 누구라도 이 아름다운 곳에 오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맑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불진 강줄기를 따라 길을 걷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물어물어 여우치 학교(마암분교)를 찾았다. 작은 분교는 남쪽을 향한 언덕배기에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서 있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었나...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나는 괜히 수업에 방해가 될까 싶어 운동장 주위를 돌며 사진을 찍다가, 성큼 다가와 '누구세요?' 하고 묻는 호기심 많은 눈초리의 아이들과 깔깔대며 이야기를 나누며 놀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학교 운동장 반대편에서 작은 체구에 까무잡잡한 얼굴의 김용택 시인이 손짓하며 아이들을 불렀다. 나는 반대편으로 달려가 시인께 인사를 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학교 급식을 얻어먹고 들불 같은 가을단풍이 타오르는 섬진강, 바로 그 강이 내다보이는 시인의 책상에서 시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인의 삶

마지막 시집을 내신 뒤로 어떻게 지내셨나요? 지금 하고 계시는 일은요?

"마지막 시집 '그 여자네 집'이 나온지가 2년이 되었고, 그 후로 산문집을 많이 냈어. 여러 권을 썼는데 글을 너무 많이 썼다는 생각이 들어(웃음), 학교 선생님으로 지금 초등학교 일 학년 두 명, 이 학년 두 명을 가르치고 있어."

종교가 있으신가요?

"종교는 없었고 지금도 없고, 하지만 성경을 무척 좋아해."

살아가면서 화두가 되는 가치나 생각들은?

"특별한 게 별로 없어(웃음), 그냥 사람이 태어나서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어. 무엇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늘 했고, 그냥 소박하게 아이들이나 잘 가르치면서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 내 시가 삶에서부터 자연스럽게 나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는 거지. 사람이 사는 것이 참 바람 같은 허망한 것이고, 그냥 생각이 특별한 생각이 있다면 사람이 태어나서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 너무 좋고 이 이상 바라는 것은 없어. 이렇게 살다 그냥 죽고 싶어."

감동을 주고 싶은 시를 쓰고 싶다는 건...

"그것은 나의 감동이야, 내 삶의 감동이겠지, 내가 감동적인 삶을 살아야 감동적인 글이 쓰여지는 것이고, 그래야 그 시에 오랜 생명력이 담겨질 수 있게 되는 것이고... 내가 쓰는 글에 사람들이 감동을 하는지는 잘 몰라도... 사람들을 위해 시를 쓰는 것은 아니야... 그저 내 삶의 충실한 표현이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시속에 '당신'이나 '그대'라는 표현의 주인공은요? 그리고 시인의 사랑에 대한 생각은...

"그건 지금의 나의 아내일 수도 있고, 지난 시절 거쳐온 다른 사람일 수도 있지. 사랑에 대해선 근본적으로 재해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사랑은 짧은 순간에 오고 길게 가는 법인데, 그것이 아픈 만큼 삶 안에서 나중에는 더 커다란 사랑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 타인에 대한 사랑을 최초로 객관화시키는 것이 연애이고, 사랑은 그런 면에서 사회적인 것이야.

사랑의 아픔 안에서 늘 사람은 더 커다란 사랑의 모습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 사랑을 통해 세상을 얻는 것이고. 사랑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르게 보이잖아? 이건 개개인에게 있어서 '혁명'이지. 어제의 것들이 오늘 새롭게 보이는 거고, 종교적으로 보면 이건 부활, 사랑은 곧 '부활'이야, 그런 면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은 위대한 거지. 사랑은 소유하는 것, 정복하는 것이 아니고 그건 사람을 피폐화 시키는 것이야.

사랑으로부터 아픔과 상처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이것들을 이겨낼 때 너무 교과서적인 말이지만 사랑의 아픈 상처가 더 큰 사랑으로 인도하는 나의 삶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런 면에서 젊은 사람들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최대한 할 수 있는 데로 정성을 다해 사랑을 하라는 말을 하고 싶어."

부인을 만나기 전에는요?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 현실적으로 결혼의 처지가 잘 맞지 않아서 많은 사람이 날 떠났지. 하지만 사랑이 끝나고 난 후에 그렇게 크게 아파했던 적은 없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체념이 앞섰고, 하지만 그 사랑을 통해서 세상을 알아가게 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지."

부인은 언제 어떻게 만나셨는지...

부인은 15년, 6년 86년인가에 만나고 아들 하나(중3) 딸 하나(초6)를 두고 있어. 아내가 처음에 우리 집에 놀러와서 처음 나를 본 순간 나와 결혼하자고 해서 결혼했어.(웃음) - 참고로 부인과 시인의 나이차는 열 살이 넘는답니다 - 안사람이나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여자는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 아름답고, 섬세하고... 부부간에는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혀. 존경하는 마음이 없고 친구라는 마음이 없으면 안 되지, 아내가 친구 같아서 친구가 별로 필요 없어.

친구들은?

"문인들은 별로 친구가 없고, 가까운 데에 안도현(지금 전주에 살고 있음)이 있고. 문인들보다 시골에 다른 쪽 사람들하고 많이 놀기도 하고 그래."

독서량이 엄청나다고 들었는데, 어떤 책들을 즐겨 읽으시고, 가장 감명 깊게 읽으신 책은 무엇인지. 혹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은

"요즘은 바빠서 책을 잘 못 읽어. 권해주고 싶은 책 하나를 고르라면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최순우. 학고재. 2000. 6)' 라는 책을 권해주고 싶어. 우리의 유물, 서화, 자연과 거기에서 파생된 우리의 예술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는 책이지."

영화를 좋아하신다고 알고 있는데, 최근에 재밌게 본 영화는?

"'공동경비구역 JSA'를 재밌게 봤어. 잘된 영화라기 보다는 배우 선택이나 의도, 편집 같은 것이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해."

시속에서 통일 문제도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최근 이뤄지고 있는 남북의 모습에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통일의 문제가 이제 현실로 다가왔으니까, 일단 감동이 되는 것이고 상호주의 다 뭐다해서 통일의 문제에 정치, 경제적인 복선들이 많이 깔려 있고,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많이 있겠지만 이것 저것 다 떠나서 북쪽에 대한 인식이 같은 하나의 핏줄이라는 인간적인 것, 情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해. 지원을 해야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 하는 정치적인 입장들은 다 '땡깡(쉬운 말로 억지주장 정도가 되겠네요.)'이고. 그런 것들을 다 떠나서 그들은 우리의 형제이고 그들이 굶고 있다는 생각에 대해 좀 더 인본적인 생각으로 다가갔으면 좋겠어."

감명 깊게 보신, 권해 주고 싶은 영화는 무엇인지?

"중국 영화 중에 장이모우 감독이 만든 영화도 참 좋고, 이란 영화 중에 '올리브 나무 사이로'라는 영화, 그리고 사람들은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희생' 이라는 영화가 참 좋아. 이창동 감독도 너무 좋고,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 그 사람이 무언가 영화철학이 있는, 영화를 잘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

환경운동에 대한 관심은 없으신지...

"다른 운동 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나는 지금 이 생활에 만족하고 있어. 그리고 특별히 지금 다른 것들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그냥 가족들하고 놀러 다니고, 아이들 키우는 지금이 좋고. 관심은 가지고 싶은데, 내 역량이 잘 안 닿는 것 같아."

그런 사랑에 대한 영감들은 어디서 얻나요, 부인에게?

"그 점은 살아오면서 많은 경험 속에서 축척되어 온 것이고..."

도시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없겠네요

"도시에서 살지만, 도시에 삶을 다 던져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없고, 시골에서 밥 먹고 똥싸고 사는 게 편하지... "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글에 인상깊게 남아 있는데...

"내 삶, 시의 스승이시지. 지금도 건강하게 잘 계시고, 일도 하시면서 활달하게 잘 계셔. 늘 인간답게 살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참 세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지나온 삶을 회고한다면...

"내 삶에 대해선 뒤돌아보지도 않고, 후회도 하지 않아, 많이 살고 잘 살았다는 생각을 해. 많이 살았다는 건 내 삶의 역량보다도 이제까지 더 많은 글들을 써 왔고, 후회가 별로 없다는 거지, 또 태어나도 내가 살아온 이 삶을 살고 싶고, 아내도 만나고 싶어. 소중한 사람이니까. 내가 이런 섬진강 같은 좋은 자리에서 잘 살고 있다는 생각들에 사람들한테 미안한 생각도 들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너무 좋아. 깨끗하고 '이 탱글탱글한 놈들이...(웃음)' 아이들이 참 깨끗하고 맑고. 자다가도 아이들을 생각했을 때 '이놈들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하고 생각하고, 기분이 참 좋아.(웃음)"

글을 쓰기 시작하시면서부터, 시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계기는?

"최종학력이 고등학교인데, 그 당시에는 문학적인 체험이 별로 없었고, 그 땐 영화를 참 많이 보았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도 문학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아주 우연히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는데 시간이 날 때 월부 책장사가 책을 가져다 주었지. 그 때 처음 도스트예프스키 전집을 읽었었는데 막연하게 삶에 대한 설레임, 기대, 회의감 같은 것들이 들었어.

그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어. 그 때부터 동, 서양의 유명한 작가(서정주, 괴테, 헤세 등등)들의 책을 접하게 되었고 독서를 통해 삶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지, 그런데 책을 읽을 때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 그냥 책이 좋고 재밌고 했었지. 책을 통한 정신적인 움직임들이 많이 생겨나고, 그리고 나서 한 7, 8년쯤 지나서부터 자연스럽게 끄적거리게 되었던 것 같아.

그리고 그림도 그려지고, 글도 쓰게 되었고, 참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되었어. 책이 나의 스승이 되었지. 그리고 80년 초 격변기에 우연히 사회과학 서적을 접하게 되었고, 책방에 가서 처음 문학 계간지 같은 것들을 구해 재밌게 보다가 '창작과 비평' 책을 접하면서 다양한 지식들을 쌓게 되었고, 그 때 실천문학 잡지에 '섬진강1' 같은 습작들을 쓰게 되었어, 그 때가 81년.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되었던 것 같아."

그럼 글을 쓰기 전에 책을 읽었던 시간이 십 년 가까이 되겠네요.

"선생이 된 후부터 한 12년 정도 책을 읽었지. 그리고 그 후부터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던 거지. 35살에 처음 문단에 나갔는데, 그 때는 내 글이 시가 되는지도 잘 몰랐어, 시골에서 누구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 무렵에 글이 모아져서 우연히 창비(창작과 비평사)에 글을 보냈고, 그 때 첫 시집이 나왔던 거지."

누구나 어떤 영역에서든 영원성을 추구하는 게 사람의 삶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보면 선생님께서 시를 쓰는 일도 영원성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욕망 역시 그 점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도 있는데요

"과연 사람이 모두 그럴까. 내 시는 그냥 자연스럽게 살아오면서 나온 거고. 더 이상 특별한 인간적인 욕망은 없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모습, 자라나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아름다운 나무를 바라보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고 좋고 그래."

그럼 만약 선생님의 시를 읽어주고 또 좋아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래도 시를 쓰는 그 자체만으로 만족하실 수 있는지

"솔직히 시라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야, 시라는 것은 사람의 삶을 말해주는 것이고, 개인적으로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시라는 건 '종이떼기' 위에 단순한 글씨 몇 줄을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감동을 줄 수 있는 그것 자체가 참 아름답다, 대단하다 라는 생각을 해."

시를 쓰기 위해 쓰는 시들에 대한 생각은

그런데는 관심이 없어. 지어내는 시를 잘 쓰지 못해. 살아오는 인생 안에서 고난, 역경 등의 여러 가지 감정들을 지나고 나서 축적되고 정화된 인생을 가지고 쓰게 되는 것이 바로 나의 시이고, 살아온 것들이 모아지면 그 때 시를 쓰게 되는 것이고.

시적인 영향을 많이 주었던 시인은?

"외국 시인은 잘 모르겠고, 우리나라 시인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김수영, 신동엽, 백석, 이용악, 서정주, 황동규, 고은 님 등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았지. 우리나라에는 김수영, 신동엽 시인을 좋아하고 유종호, 백낙청, 김현 분들의 책을 문학을 위해서는 모두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다른 유희적 기제들의 범람으로 점점 그 설 곳을 잃고 있는 문학-시-가 현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며 시의 존재 가치와 효용성들은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본래 시에는 효용성이고 존재가치고 하는 것들이 없었어, 8,90년대에 거치면서 시가 정치적인 커다란 역할을 해왔지. 그 때 시에 대해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것이고, 그것 때문에 사실 시가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기도 했고. 이념이 떠나니까 시도 떠나는 것처럼. 오늘날에는 문화가 참으로 다양해졌고, 순간순간 변화된 모습은 없고 변화한다는 행위만 있지. 시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는 동의할 수 없어. 사람들이 시에 대한 위기는 늘, 어느 시대에나 있었고, 당연히 있어야 하고. 이럴 때일수록 정말 좋은 시를 써야지. 요즘 시는 너무 많은데 재미가 없어. 감동을 주는 따뜻한 시, 사회적 비판을 하는 시, 환경을 옹호하는 어떤 시이던 간에 시인들이 시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정제된 좋은 시를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해. 좋은 시들을 써서 시만의 작지만 그 희소적인 가치들을 살려놓아야지.

시를 쓰는 사람이나 소설가 등 문학하는 사람들의 가난한 현실을 위해 국가에서 문화영역의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전업시인들을 보면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해. 우선 벌어먹고 살아야지, 시에 대해 목숨 걸 일은 없지."

자신이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대표시, 또는 대표 시집을 꼽는다면?

"시집에 있는 것은 '그 여자네 집'에 들어있는 시들을 좋아하고, 아무래도 내 대표시는 '섬진강1'이라고 할 수 있지."

좋아하는 시인은?

"황지우를 좋아해, 시를 아는 사람이고, 시를 잘 쓰지. 현실을 잘 담아내고. 자유롭게 시를 쓰는 사람이야. 세상을 종합하는 능력이 있지. 비꼬고 야유하고 때론 진지하고 하며 자유롭게 시를 쓰는 참 머리가 좋은 사람이야."

젊은 시인들에 주목하는 시인은?

"이윤학이나 그런 시인들이 있지만 젊은 시인들 중에서 세상을 다 끌어안는 기운 찬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드문 것 같아. 장석남은 멋쟁이 시인이지, 나혜덕도 글을 잘 쓰고..."

시인의 요건, 재능이 있다면?

"시인은 대단한 사람이어야 해. 인간이어야 하고, 사심이 없어야 되고, 자기에게 엄격한 사람이어야 하고, 시인은 전인적인 사람이어야 하지. 저 (창 밖을 가리키며) 나무 같은 사람이 시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시인은 자신이 쓰는 시와 닮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데 시인으로써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 시인 역시 세상에 중요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 이상으로 남아 있어야 하지."

그럼 나무란?

"나무는 세상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만들어 내지, 아름답고... 한마디로 아름답게 꽃을 피우는 '예술'이지. 그리고 시인은 한 그루 나무 같아야 하지."

이제 갓 시를 사랑하기 시작한 시를 쓰고자 하는 욕구의 젊은 시인들에게 조언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시인의 길은 참 아름다운 길이다. 그리고 그것은 행복한 길이다' 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 그런데 거기에는 욕심이 없고 사심이 없다는 조건이 붙지. 시인의 길은 한 번 가 볼만한 멋진 길인 것 같아. 시인은 위대하고, 훌륭한, 전인적인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 세상에 대한 모든 관심들과 그것을 안을 수 있는 큰 산과 같은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

시인뿐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젊은이들에게 이런 말들을 해 주고 싶어,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들을 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어. 직업에 관해서도 마지 못해서 한다는 생각을 가진 불행한 사람들이 많아. 20대를 잘 살라는 말을 해 주고 싶어, 세상에 어떤 일이든 그 일을 10년간 하면 세상이 보이는데, 그것을 해야 할 때가 20대 이지. 가장 감수성이 강하고, 세상에 대한 열망도 강하고, 정열적이면서 힘도 있고, 두려움이 없는... 지금 20대에 끊임없이 30, 40대의 자신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 20대에 뭘 못하겠어, 지금 뭐~~엇에 째째하게 굴겠어."(웃음)

김용택 님은 서정적인 시의 세계와 농촌의 피폐한 환경들을 농민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독특한 시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독특한 시적 특성인데, 시속에서 드러나는 현실 인식의 변화들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신가요? 농촌 현실들이 첫 시집인 '섬진강'을 쓸 때인 80년대를 거쳐 지금까지 어떻게 변화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최근 시에서 독특한 농촌의 문제의식이 사라지고 있고 지나치게 서정의 영역에 다가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시속에서 드러나는 90년대 그리고 2000년에 대한 생각은

"내 생각이 깨어날 때가 70년대였는데, 그 때부터 농촌 문화 같은 것들이 사라져 가고 있었지, 그리고 우리가 억압받고 소외당하고 핍박당했다는 생각, 농민들은 저임금, 저고가 정책 등으로 이중, 삼중으로 손해들을 봤다는 생각을 해, 그것을 내 나름대로 강한 불만들을 가지고 썼었던 분노, 슬픔 등이 담긴 것이 시집 '섬진강'에 많이 있지. 하지만 지금도 내가 그런 것들을 반복해서 계속 쓴다면 재미가 없지. 내 생각 속에서 자연적으로 서서히 사라져 갔던 것 같아."

지금 농촌에 대한 생각은요?

"농촌은 이제 없지, 예전에 우리가 생각했던 농촌과 농사는 이제 없고, 농업만 남아있을 뿐이지. 농업에도 기계화 같은 것들이 이제 거의 다 이루어졌고, 농민들도 농사뿐만 아니라 닭도 키우고 하며 여러 가지 것들을 하고 있고. 이제 농촌, 농민 문제는 이제 정부에서 해결할 문제이고 지금 시인이 그것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말이 안 돼. 예전에 내가 '섬진강'에서 이야기했던 만큼이면 나로서는, 내가 한 일은 족하다는 생각을 해. 이제 또 다른 사람이 그런 것들을 해야지."

하지만 이제 그런 어려운 점들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엔 김용택 시인 밖에는 없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하지만 나로서는 이제 그 문제에 대한 것을 다시 시로써 다루기는 힘들지... "

초기 시속에서 혹은 산문집에서 자주 공동체 사회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셨는데, 지금도 그것을 인간 사회의 이상향으로 보시나요? 아님 또 다른 대안들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내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그것이지, 난 예전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도시라는 것은 전체적으로 볼 때, 절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 우리가 돌아갈 곳은 자연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문명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에게 가장 해로운 것이야. 이 속도, 이 광폭함 말하자면 통제불능의 도시, 천국과 지옥이 한 곳에 존재하는... 아무리 뛰어난 시인도 이 도시를 모두 말하지 못해. 그래서 도시시가 별로 없는 것이고, 결국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해. 인간사회의 이상향은 마을 단위의 공동체라고 생각해. 도시에서 살고 있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하게 하고... 황지우의 말대로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는 멸망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 있다고 생각해."

오랫동안 창작을 해오셨는데, 그런 창작의 영감들은 언제, 어떤 때 주로 찾고 계시나요?

"초가을, 초 봄, 자연의 변화들이 나의 마음을 많이 자극하는 것 같아. 그냥 생각날 때 많이 써두는 편이야."

좋은 시란?

"시적인, 사람들의 감동이 있어야겠지. 삶의 진실한 표현이 담긴, 진실해야 감동이 있는 것이니까."

다음 시집은?

"다음 시집은 두 권의 시집이 준비가 되어있는데, 내년 봄에 하나 나오게 될 거야, 그 시집의 시는 담백해졌지, 상당한 변화가 있을 거야, 일상의 이야기, 군더더기가 별로 없는 시집이 될 것 같아. 짧은 사랑 시에 관한 시집도 내년 11월 정도에 내게 될 것 같아."

황지우 시인이 김용택 시인에게 쓴 싯귀절에 이런 문구가 있다. '세상 밖 강물소리를 듣는 형의 멍멍한 귀/ 잠시 빌려가고 싶습니다.'

세상 밖 강물소리를 듣는 시인. 참 복 받은 사람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섬진강이 흐르고 섰는 강변에 앉아 한참 동안 섬진강을 바라보았다. 이젠 남이 되어야 하는, 내 심장마저 남김없이 꺼내어 주고 싶던 사랑했던 사람, 그늘져 지쳐 있는 아버지, 가난한 어머니의 얼굴, 그 슬픈 인간의 군상들. 모든 형상들이 오버랩 되며 강물 위에 떠다니다 뭉쳐있던 모든 고뇌들이 강 속에 희석되는 느낌이 가슴에 번져 간다.

흐르는 강은 그렇게 '잠시 멈추어 쉬렴' 하며 불어오는 바람으로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세상이 멈추어 버린 듯한, 해지는 가을강의 풍경. 풍경이 만들어 내는 피안의 세계. 섬진강의 첫 얼굴은 그랬다. 세상과는 단절된 세계. 그 속에서 유유자적하게 아이들과 함께 '자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시인 김용택. 툭툭 내뱉는 듯한 농군의 말투 속에서 나는 그가 지나온 고된 세월의 견고함을 느낄 수 있었다.

시를 위한 시가 아닌, 여유로운 삶이 자연스레 내뱉은 시들을 성실히 적어내는 사람.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자기껀 먹고 살 생각을 해야지, 시만 쓴다고 뭐가 되남' 하고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시인.

"그냥 지금이 좋아, 이대로 아이들 뛰노는 것 보면서 사는 것이. 뭐 특별히 더 하고 싶은 일도 없어."

스무 해가 넘는 시간을 책과 함께 한 축복 받은 마암분교의 시인 선생님은 여느 말하기 좋아하는 도시의 소리꾼들보다 더 깊은 삶의 혜안을 지니고 있었다.

조물주는 섬진강을 만들었고, 섬진강의 아름다움은 그를 키워냈고, 그리고 그는 세상과는 단절된 아름다움 안에서 섬진강과 그 젖줄 아래 살아온 욕심 없는 사람들을 아주 자연스레 노래했던 것이었다.

섬진강 12
-아버님의 마을


세상은 별것이 아니구나.
우리가 이 땅에 나서 이 땅에 사는 것은
누구누구 대문이 아니구나.
새벽잠에 깨어
논바닥 길바닥에 깔린
서리 낀 지푸라기들을 밟으며
아버님의 마을까지 가는 동안
마을마다
몇 등씩 불빛이 살아 있고
새벽닭이 우는구나.
우리가 여기 나서 여기 사는 것
무엇무엇 때문도 아니구나.
시절이 바뀔 때마다
큰소리 떵떵 치던
면장도 지서장도 중대장도 교장도 조합장도 평통위원도
별것이 아니구나.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동경도 서울도 또 어디도
시도 철학도 길가에 개똥이구나.
아버님의 마을에 닿고
아버님은 새벽에 일어나
어머님은 헌 옷가지들을 깁더라.
두런두런 오손도손 깁더라.
아버님의 흙빛 얼굴로,
어머님의 소나무 껍질 같은 손으로
빛나는 새벽을 다듬더라.
그이들의 눈빛, 손길로 아침이 오고
우리들은 살아갈 뿐,
우리가 이 땅에 나서 이 땅에 사는 것
누구누구 무엇무엇 때문이 아니구나.
비질 한번으로 쓸려나갈
온갖 가지가지 구호와
토착화되지 않을
이 땅의 민주주의도,
우리들의 어설픈 사랑도 증오도
한낱 검불이구나.
빗자루를 만들고 남은 검불이구나 하며
나는 헐은 토방에 서서
아버님 어머님 속으로 부를 뿐
말문이 열리지 않는구나.
목이 메는구나.


기회가 된다면 먼 훗날 나도 이 섬진강변에서 뿌리를 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참 감 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는 섬진강에는 오늘도 그렇게 아름다운 가을이 열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은 그렇게 옛 농촌, 이상적인 공동체 마을의 아련한 기억들을 가슴에 담아 흐르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보며 두 번째 삶, 사랑, 그리고 시...의 글을 접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울대 인문, 문화, 예술 웹진 '미인(www.meinzine.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Copyleft by mein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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