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사이 하얀 눈이 온세상을 덮었습니다.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24일 아침 신선한 아침바람과 눈 구경을 위해 베란다 창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 누군가가 아이들이 공놀이하는 아파트 농구장 넓은 마당 한가운데 수북이 쌓인 흰백의 세계에 가슴 에이는 글귀를 써 놓았습니다. 연일 매스컴을 통해 가슴앓이를 해야 했던 누군가가 화마 속에 숨져갔을 희생자들을 생각하면서 추위에 꽁꽁 언 손을 호호 불며 쓰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謹弔龍山(근조용산)'
슬픔을 아는지 글귀 위로 또 다시 눈이 내립니다.
이틀 밤이 지나면 우리민족의 최대명절 설날입니다. 오랫만에 만나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설렘과 부푼 가슴을 안고 양손가득 선물 꾸러미를 들고 고향을 찾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공권력에 짓밟혀 무참히 희생된 사람들의 유가족들과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모인 많은 사람들은 서울역 광장에 모여 진혼곡을 울렸습니다. 고향을 향해 떠나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무겁습니다.
혹한의 추위와 싸우며 23일 저녁 서울역 광장에서는 희생된 영혼들을 위한 추모제와 진상규명를 위해 촛불문화제가 열렸습니다. 함께 하지 못한 저는 <오마이TV> 생중계를 통해 유가족들의 목이 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들의 아픔을 고향에 가시거든 꼭 알려 주세요."
유가족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참혹한 사고가 있었던 용산 철거 현장에도 하얀 눈꽃이 피었을 것입니다. 순백의 눈 속에 그 모습이 덮였다고 하여 공권력의 만행이 가려질 수 있을까요?
이명박 정부는 설 명절이 지나면 잔혹한 진압으로 인한 비극이 잊히리라 생각하고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의 사퇴를 명절 이후로 넘겼습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일입니다. 정부는 힘없는 서민들이 소리 없이 울부짖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민족의 최대 명절 설, 가슴 아픈 유가족들에 다시 한 번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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