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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있었다는 청자갈고. 권오학 도예가가 재현했다. 제38회 이천도자기축제장 이천시도자기명장전에서.
 고려시대에 있었다는 청자갈고. 권오학 도예가가 재현했다. 제38회 이천도자기축제장 이천시도자기명장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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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악기로 우리 도자문화를 전하는 도예가 부부가 있다. 권오학(58)·김경미(60) 도예가다. 이들 부부가 만드는 도자기악기의 종류는 다양하다. 청자장구, 청자갈고, 청자가야금, 청자대금, 청자소금, 청자해금, 청자바이올린 등. 악기의 울림통을 청자나 분청, 진사 등으로 만들고 그 외 부재료는 일반 악기와 비슷한 것을 연결한다. 청자나 분청에 악기를 접목해 도자기악기 혹은 청자장구, 분청가야금이라고도 부른다.

이들 부부가 도자기악기를 제작한 지는 어느덧 24년째다. 지난 4월 30일, 제38회 이천도자기축제가 진행 중인 예스파크(이천도자예술마을)의 '금모올요(신둔면 도자예술로99번길 44)'에서 권오학 도예가를 만났다.

"초등학생 때부터 흙 만지고 놀아... 도자기는 내 삶이었다"

- 2023년 이천시도자기명장에 선정됐다.

"감사하다. 경기 이천에서 40년 넘게 도자기업에 종사했다. 내가 걸어온 길에 발자취를 남기고 싶다는 소망으로 도전했다. 막상 도자기명장에 선정되니까 타이틀이 주는 무게를 느낀다. 아시다시피 이천은 대한민국 도자기의 명산지다. 그 명성에 걸맞게 좋은 작품을 선보이고 후배 도예가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 40년이면, 이천의 근현대 도자역사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정식으로 요장에서 일한 것을 계산해보니 40년 정도이고, 실은 도자기는 내 삶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이천시 신둔면 수광2리에서 살았다. 마을 어르신들은 우리동네를 나뭇가지라고 불렀다. 나무가 많은 동네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70년대 초반 수광리에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힌 요장도 많았다. 광주요·고려도요·한국도요·해강요 등. 이외에도 신둔면에는 굵직한 요장이 많았다. 그야말로 도자단지였다. 우리 아버님(고 권영수)은 광주요에서 근무하셨다. 광주요에서는 전국에서 도예 실력이 출중한 도예가들이 작업을 했다.

광주요는 우리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우리집 길 건너에 있었고 당시에는 회사에 울타리가 없어서 외부인 출입이 자유로웠다. 나도 어릴 적 동네 아이들과 그곳에 자주 놀러갔다. 가마 안에서 아이들과 잠 자고 놀던 때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가마에서 도자기를 꺼내면 아직 열기가 남아있어서 따듯한 토굴이나 찜질방 같았다.

동네 아이들은 이곳에서 흙으로 뭔가를 만들며 놀고 작업하는 도예인들 심부름도 하고 허드렛일도 했다. 흙을 만지는 일, 도자기 제작과정을 보고 듣는 것은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도자기 실력이 향상됐고 타 요장에서 일도 했다. 그러다가 고 김대희 도예가가 운영한 '우송(又松)도예'에서 근무했다. 8년여 동안 다기(차도구)와 다양한 도자제작 기법을 배우고 익혔다. 당시 이천 도예가들은 김 도예가를 차도구의 대가라고 불렀다."
 
권오학 도예가. 2023년도 이천시도자기명장. 이천시 신둔면 예스파크 내 금모올요에서.
 권오학 도예가. 2023년도 이천시도자기명장. 이천시 신둔면 예스파크 내 금모올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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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도예가는 1986년 신둔면 수광리에 요장을 차렸다. 창업을 한 것이다. 당시 상호명도 없이 혼자 도자기를 제작해 판매했다. 1995년 이천시도자기조합이 생기자 사업자를 등록했다. 작업은 탄력을 받았다. 다기·생활자기·청자·백자·분청·계영배 등을 전통기법으로 제작했다. 이후 도자기악기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 나무로 된 악기는 많이 봤지만, 도자기악기는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

"2000년 즈음이었다. 이천도자기 경기는 호황이었지만 우리집 경제는 어려웠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당시 이천에는 실력이 출중한 도예가가 많았다. 요장도 많았다. 그때 다른 요장과 차별화된, 우리 요장만의 독특하고 특색있는 작품을 선보여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무엇보다 지금은 더 그러하지만, 그 당시에도 청자 작업을 하시는 도예가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때 무슨 사명감이었는지, 세계가 인정한 고려청자의 맥을 이어야 하고 그러려면 청자매주병 외에 다른 작품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고민 속에서 청자만년필, 청자비녀 등이 탄생했다. 

또 어느 날 당시 뿌리패예술단장이 해외공연을 간다며 10cm 정도의 도자기념품을 의뢰했다. 한국문화를 전할 수 있는 기념품이어야 한다는 것도 강조했다. 처음 도자기를 접할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한데 우리 요장 도자작품의 큰 주제는 '한국의 미(美), 우리도자문화'다.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옛 문화 가운데 도자기와 접목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뿌리패예술단장과 의논한 끝에 청자와 전통장구를 접목한 청자장구를 제작해보기로 했다. 청자장구와 청자갈고(크기와 모양은 장구와 비슷하고 조이개가 양쪽에 있고 양손에 채를 잡고 치는 점이 장구와 다름)가 있었고, 1150년~1250년 고려시대에 존재했다가 사라졌다는 문헌 기록도 찾았다."

"악기모양을 잘 만든다고 해서 완성되는 게 아니었다"

- 도자기, 특히 청자는 제작 과정이 까다롭다. 악기 제작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도자기악기를 처음 시작할 때 '도자기로 악기 형태를 잘 만들고 악기에 필요한 부수적인 재료를 구입해 연결하고 조립하면 되겠지'라고 아주 쉽게 생각했다. 그런데 실패·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흙으로 악기 형태를 조금만 잘못 만들면 기물이 휘고 금이 가고 깨지고 주저앉았다. 가마에 장구모양 기물을 여러 개 넣고 불을 때면 제대로 나온 것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악기모양 도자기를 잘 만든다고 해서 악기가 완성되는 게 아니었다. 악기에 대한 지식과 정보, 재료, 악기소리, 연주자 등 알아야 할 것도 많았다. 연주용 도자기악기를 하나 완성하면 그 분야에서 명망 높은 연주자를 찾아가 연주와 조언을 부탁드렸다. 연주자와 악기제작자를 만나 의논하고 조언을 듣고 작업을 수정하면서 도자기악기를 만들었다. 긴 여정 동안 쏟은 시간과 정성, 고된 노동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고려시대에 있었다는 청자장구. 권오학 도예가가 재현했다. 이천시 신둔면 예스파크 내 금모올요에서.
 고려시대에 있었다는 청자장구. 권오학 도예가가 재현했다. 이천시 신둔면 예스파크 내 금모올요에서.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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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든 과정 속에서도 20년 넘게 도자기악기 작업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는 추억이지만, 눈물 날 일 숱하게 많았다. 악기의 부자재를 구하기 위해 전국의 공장을 수소문하다가 한 공장에 무턱대고 찾아간 일, 장마철 청자장구 울림통에 붙일 가죽에 곰팡이가 펴서 엄청난 양을 모두 버린 일 등. 그래도 우리가 좋아서 하는 작업이라 질리지 않고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도자기를 만들고 있으면 행복하다. 믿고 함께 해준 가족과 지지해주시고 찾아주시고 도와주신 분들의 힘도 크다."

- 도자기악기를 제작하면서 보람을 느낀 때도 많았을 것 같다.

"우리가 만든 도자기장구로 연주한 국악 공연을 본 적이 있다. 소리도 좋고 큰 울림이 있었다. 그때 뿌듯하고 보람을 느꼈다. 해금독주회를 관람한 분이 해금 소리가 정말 맑고 아름다웠다는 내용으로 연락을 주셨다. 우리가 제작한 붉은빛 진사해금이었다. 2008년에는 한 소프트업체에서 저희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 인사를 해주셨다. 한국을 방문한 빌 게이츠가 우리가 만든 도자기장구를 선물로 받고 감탄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외에도 다양하다."

권오학·김경미 도예가는 청자매·주병, 청자합, 분청사기 등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고 틈틈이 청자와 전통악기를 접목한 청자장구, 청자갈고, 청자가야금, 청자대금, 청자소금, 청자해금, 청자훈, 청자바이올린 등 청자악기를 만들었다. 이후 분청과 진사악기도 제작했다.

다수의 공모전과 대회에 도자기악기를 출품해 수상도 했다. 2007년 '제8회 경기도 우수관광기념품 공모전' 대상(도자장구), 2008년 '제2회 이천도자기 공모전' 대상(도자가야금), 제9회 대한민국 청자공모전(특선), 제10회 전국 우수관광기념품 공모전(특선), 제 31회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입선) 등.

다수의 전시회도 열었다. 2012년 KBS '한국의 재발견'(이천시 편)에 출연해 도자기장구 제작 과정을 소개했고, 이후 고려시대 존재한 '청자장구'와 '청자갈고'를 재현했다. 이를 계기로 KBS 'TV쇼 진품명품'에 11회 출연하고 장구를 협찬했다.

도자기가 맺어준 평생 인연... "우리가 편안할 때 좋은 작품 나와"

권오학·김경미 도예가,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도자기 선생과 제자로 시작했다. 서울에서 살던 김 도예가가 도자기를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지인이 소개해준 곳이 수광리 권 도예가의 요장이었다. 김 도예가는 1990년대 초 주말이면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이천에 왔다. 그렇게 권 도예가는 도자기를 가르치고 김 도예가는 도자기를 배우면서 사랑을 키웠고 결혼했다. 지금까지 도자작업을 하면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다고 한다.  
 
산화분청 둥근항아리, <고향산천>. 이 작품에 사용한 덧붙임 기법은 특허를 받았다. 금모올요에서.
 산화분청 둥근항아리, <고향산천>. 이 작품에 사용한 덧붙임 기법은 특허를 받았다. 금모올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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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화분청고향산천 둥근 항아리 작품은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온다.

"이 작품은 가난했으나 훈훈하고 정겨웠던 내 유년 시절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각박하고 고독한 현대를 살아가는 누군가가 이 작품을 보며 잠시나마 추억여행을 하고 옛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위로받고 힐링한다면 더없이 행복하겠다'라는 소망에서 비롯했다.

이 작품에는 물레, 조각, 회화, 퇴화 기법 등 우리 옛 도자선인들이 하던 모든 도자기법이 들어있다. 새로운 기법도 시도했다. 기물을 매끄럽게 작업하는 방식이 아닌 흙을 계속 덧붙여가며 작업해 돌출효과와 입체감을 살렸다. 이 작품에 사용한 덧붙임 기법은 특허를 받았다. 이 작품은 보는 이의 위치와 감정 상태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묘한 매력이 있다고들 평한다."

- 이천도자기축제장에 외국인도 많이 보인다. 외국인은 주로 어떤 작품을 찾나?

"우리 요장에서 인기있는 작품은 청자 작품과 분청 작품이다. 특히 일본인의 청자 사랑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아시다시피 상감청자는 중국에서 들어왔으나 고려인은 이것에 우리나라의 상감기법을 적용했고 아름다운 비취색을 만들어냈다. 청자는 천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인이 찾는다.

안타까운 일은 청자작업을 하는 도예가의 연세가 많거나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 도예가들은 현대의 트렌드에 따라, 또 소비자의 선호에 맞춰 작업한다. 배움을 시도하는 젊은이들은 옛 도자방식은 지루하고 힘들다고 한다. 전통작품을 구매하려는 이도 드물다. 나도 이런 상황에 공감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지 어느 경지에 이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문화예술품, 도자문화의 가치와 소중함 등에 대한 교육이 절실한 때다."

- 작품이 편안해 보인다. 예술품에는 작가가 들어있다고들 한다.

"공감한다. 처음엔 그것을 몰랐다. 수년 간 도자작업을 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부부가 한 공간에서 작업을 하다보면 다양한 일이 있다. 둘이 다투거나 조바심을 내거나 욕심이 앞선 날 가마문을 열었는데 좋은 작품이 안 나왔다. 우리가 평안하고 행복한 날에는 좋은 작품이 나왔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도자기에 작가의 마음이 투영된다는 사실, 우리 삶이 녹아있다는 사실을. 요즘은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사이좋게 지낸다. 도자 작품은 작가의 그림자 같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몸소 보여주는 스승 같을 때도 있다."
 
금모올요의 <보릿고개>. 제 38회 이천도자기축제장의 현대도자공모전에서.
 금모올요의 <보릿고개>. 제 38회 이천도자기축제장의 현대도자공모전에서.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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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제작하신 도자기악기로 콘서트를 열어도 좋을 것 같다.

"아주 좋은 생각이다. 우리가 제작한 도자악기로 콘서트를 여는 게 꿈이다. 우리 작업장 옆 마당에서요. 기회가 된다면 이천도자기축제, 혹은 다른 행사 때도 도자기악기로 공연을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대한민국 이천에 가면 도자기악기 연주회를 볼 수 있대'라고 하면서 이천을 방문하시는 분이 많아지는, 그런 소망도 갖는다.

권오학 도예가에게 요즘 어떤 작품을 하느냐고 여쭸다. 기존에 해온 청자, 분청, 백자작품과 도자악기를 계속 하면서 전통주를 담는 도자기술병도 제작한다고 했다. 전주 이강주, 한산 소곡주, 담양 추성주, 금산 인삼주 등. 

요즘 술을 마신 후 그 병은 버리는데 이 병은 관상용이나 장식용 등으로 재사용한다고 한다. 우리 옛 선인들도 그러했다. 전통주를 도자기병에 담으면 더욱 고급스럽다. 어떤 물건이든 도자기에 담으면 그 품격이 올라간다. 두 작가는 여전히 우리 옛 선인들이 하던 방식을 찾아내고 그것을 도자기에 접목한 작품을 선보였다. 우리 도자문화를 알리고 있었다. 그래서 두 분이 귀하고 멋졌다.

한편, 인터뷰가 끝난 며칠 후 권오학 도예가가 좋은 소식을 전해왔다. 지난 6일까지 진행된 제38회 이천도자기축제 '현대작가공모전'에서 권 도예가의 <보릿고개> 분청작품이 관람객 현장 투표 결과 1등에 선정됐다는 소식이었다. 이 공모전에는 친환경을 주제로 한 이천 도예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됐다.

태그:#제38회이천시도자기축제, #금모올요, #전승도자, #예스파크, #청자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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