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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온 나라가 꽃 잔치다. 벚꽃 잔치를 벌이고 다시 영산홍 잔치를 벌인다. 꽃도 예쁘지만, 초록이 되기 전 연두의 나무는 또 얼마나 예쁜가. 어떤 화가도 그릴 수 없는 멋진 풍경이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요즘 눈이 싱그럽다.

4월에는 마치 내 청춘이 다시 돌아온 듯 공원으로 산으로 발이 아프도록 봄을 찾아 꽃 구경을 다녔다.
  
벚꽃이 지고 다시 영산홍과 초록이 4월을 아름답게 장식해 주었다.
▲ 4월의 봄 풍경 벚꽃이 지고 다시 영산홍과 초록이 4월을 아름답게 장식해 주었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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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이면 우리 집에 봄이 배달된다. 그것도 아주 먼 곳에서 온다. 비행기는 타고 오지 않지만 몇 시간을 트럭에 실려 온다. 남쪽에서 오는 봄이라서 좀 더 빨리 봄소식을 듣는다. 올해도 4월에 배달받았다.

그날도 약속이 있어서 서울에 나가서 친구들과 점심 먹고 신나게 수다 떨고 있는데 '카톡!'하고 소리가 울려서 보니 우체국에서 문자를 보냈다. 택배 문자였다. 발송인을 보니 큰 며느리 아버님이시다.

"어머, 올해도 사돈께서 봄을 배달해 주시네."

같이 있던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여주며 자랑했다.

농사 짓는 사돈이 배달해 준 두릅, 사랑이다

큰 며느리 부모님께서 고추장의 고장 순창에서 농사를 지으신다. 벼농사는 아니고 특수작물을 키우신다. 설날 즈음에 남편이 새해 인사를 드리려고 전화를 드렸더니 벌써 농사 준비를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농사를 지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이런 저런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은 들어서 안다. 힘들게 수확한 것을 보내주셔서 어떻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가장 먼저 딴 첫 수확 두릅을 보내주셨다.
▲ 사돈이 보내주신 봄 선물 가장 먼저 딴 첫 수확 두릅을 보내주셨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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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이 되면 사돈께서 처음으로 수확한 두릅을 보내주신다. 크지도 작지도 않아서 가장 맛있어 보이는 두릅이다. 사돈께서 두릅을 보내주신 후 마트에 가면 순창 두릅을 많이 볼 수 있다. 올해도 어렵게 키우신 두릅을 가장 먼저 따서 보내주셨다.
 
보기에도 봄 향기가 나는 두릅이다. 크기도 딱 좋아서 눈부터 즐겁다.
▲ 사돈이 순창에서 보내주신 두릅 보기에도 봄 향기가 나는 두릅이다. 크기도 딱 좋아서 눈부터 즐겁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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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물은 보약보다 귀하다

봄나물은 보약이라고 한다. 나도 남편도 두릅을 좋아하기에 받자마자 끝에 달려있는 가시 달린 두릅나무를 잘라내고 깨끗하게 씻어서 물에 소금을 한 숟가락 넣고 초록색으로 데쳤다.

위아래를 뒤집으며 손으로 만져보고 데쳤다. 너무 많이 익히면 맛이 없어서 알맞게 잘 데쳤다. 처음엔 실수가 많았지만, 자꾸 하다 보면 감이 오기 때문에 요즈음 실수하지 않고 잘 데친다. 퇴직하고 요리에 빠지며 거의 다시금 '주부 9단'이 된 것만 같다.
  
두릅을 데쳐서 물과 함게 얼리면 나중에 해동해도 맛있는 두릅이 된다.
▲ 냉동실에 얼려 둔두릅 두릅을 데쳐서 물과 함게 얼리면 나중에 해동해도 맛있는 두릅이 된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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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친 두릅은 반은 덜어서 지퍼백에 물과 함께 넣어서 냉동실에 보관했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해동시키면 맛이 변하지 않는다. 부모이다 보니 나중에 집에 올 아들에게도 먹이고 싶기 때문이다. 부모 마음은 똑같다. 보약처럼 귀한 것이니 당연하게 자식 생각을 하게 된다.

두릅은 대부분 데쳐서 두릅초회로 먹는다. 데친 두릅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향이 어찌나 깊은지 먹으면서 봄이 깊이 느껴진다. 두릅은 보통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두릅튀김을 해서 먹는다.

두릅튀김도 맛있다. 많으면 두릅 장아찌를 만들어 두고 오래 먹기도 한다.
  
잡곡밥을 지어 두릅 비빔밥을 만들어 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없다.
▲ 두릅 초회와 두릅 비빔밥 잡곡밥을 지어 두릅 비빔밥을 만들어 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없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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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다른 방법으로 먹고 싶었다. 방금 지은 잡곡밥에 두릅을 작게 썰어서 두릅 비빔밥을 해 먹어보았다. 냉장고에 있는 매실장아찌와 색깔 예쁘라고 파프리카도 몇 조각 썰어 넣고 달걀 프라이도 하나 넣었다. 나는 달걀노른자까지 익혀야 먹기에 완숙을 만들었지만, 달걀 반숙을 올리면 사진도 더 예쁘게 나왔을 텐데 약간 아쉽긴 하다.

지난번 매실액 주문할 때 함께 보내준 매실 볶음 고추장이 있었는데 한 번도 먹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매실 고추장에 참기름을 조금 넣고 통깨를 뿌려 비빔밥 위에 올렸다. 보기에도 맛있어 보여 군침이 돌았다.
  
비빔밥에는 매실 볶음 고추장을 넣고 비비면 정말 맛있는 비빔밥이 된다.
▲ 매실 볶음 고추장과 된장 비빔밥에는 매실 볶음 고추장을 넣고 비비면 정말 맛있는 비빔밥이 된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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쓱쓱 비벼서 먹는데 두릅향이 퍼지니 아, 맛있었다. 더군다나 잡곡밥이라서 밥에 들어있는 콩이랑 옥수수가 함께 씹혀 이보다 더 맛있을 수는 없었다.

그 어떤 보약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맛있다며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두릅 비빔밥이 맛있으니 두릅 비빔국수도 맛있을 것 같다. 다음에 만들어서 꼭 먹어보아야겠다.

처음 먹어보는 두릅 라면

다음 날 남은 두릅을 어떻게 먹을까 생각하다가 라면이 생각났다. 지난번 모임에서 두릅 이야기를 했더니 라면에 넣어서 먹어도 좋다고 했다. 점심에 느끼한 음식을 먹어서인지 저녁에는 매운 음식이 생각났다. 가장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매운 라면이라서 남편과 밥 대신 라면을 먹기로 했다.

사놓은 콩나물도 있어서 매운 라면에 콩나물과 두릅을 넣고 끓였다. 두릅 넣은 라면은 처음 끓여보아서 라면에 넣은 두릅이 어떤 맛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다. 데친 두릅이라서 물컹거리면 맛이 없기 때문이다.
  
매운 라면에 콩나물과 데친 두릅을 넣어 끓이니 정말 맛있었다.
▲ 두릅 라면 매운 라면에 콩나물과 데친 두릅을 넣어 끓이니 정말 맛있었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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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에 물과 수프를 넣고 끓이다가 콩나물을 먼저 넣었다. 물이 팔팔 끓을 때 라면을 넣고 끓이다가 거의 다 익었을 때 데친 두릅을 넣었다. 불을 끄고 라면 그릇에 담았다. 라면에 초록색 두릅이 들어가니 입맛이 돌았다. 남편이 한 입 먹어보더니 맛있다고 했다. 나도 맛이 궁금해 얼른 먹어보았다. 아삭아삭 두릅이 씹히는 맛이 참 좋았다. 두릅향이 입안에 퍼지며 봄이 느껴졌다.

두릅은 어른들 대부분은 다 좋아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싫어한다. 부모 마음에 보약 같은 두릅을 아이들에게 먹이고 싶다면, 우리가 한 것처럼 라면에 넣어주면 어떨까.

두릅초회에 비해서 향이 살짝 죽기에 아이들도 잘 먹을 거라고 생각한다. 콩나물을 같이 넣어주어 콩나물의 아삭한 맛과 두릅이 잘 어울렸다. 맛이 그야말로 '대박'이다.
 
라면에는 뭘 넣어도 맛있지만, 두릅과 콩나물을 넣은 라면도 정말 맛있었다.
▲ 두릅라면 라면에는 뭘 넣어도 맛있지만, 두릅과 콩나물을 넣은 라면도 정말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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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어른 둘이 살기에 실제로 아이에게 먹여보지는 못해서 아쉽다. 주말에 아이는 아니지만, 30대 중반 아들이 온다고 하니 냉동실에 넣어둔 두릅을 꺼내서 꼭 두릅 라면을 끓여서 먹여봐야겠다. 우리처럼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

이제 4월이 며칠 남지 않았다. 4월에는 발이 아프도록 꽃 구경을 다녔고, 보약이라고 하는 봄나물도 많이 먹었다. 그 덕분에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 것 같다. 특히 사돈이 보내주신 두릅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두릅뿐 아니라 그 안에 사랑이 함께 배달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보답하는 마음으로 뭐라도 보내드려야겠다.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이 있는 게 사람 사는 도리이니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고민해 봐야겠다. 4월이 가는 것이 아쉽지만, 계절의 여왕 5월도 있으니 너무 서운해하지 말아야겠다. 5월엔 5월만의 멋, 또 다른 봄이 올 거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발행될 수 있습니다.


태그:#두릅, #순창두릅, #두릅라면, #두릅비빔밥, #두릅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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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교원입니다. 등단시인이고, 에세이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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