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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이후 도시농부로 살고 있는 나는 요즘 농번기를 맞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아침밥 먹기 무섭게 매일 텃밭 농장으로 출근하다시피 한다. 농막에서 작업복을 갈아입고 농장에서 자라고 있는 농작물들과 인사부터 나눈다.

아직 농장이 온통 초록으로 뒤덮일 시기는 아니지만 겨울을 이겨낸 채소와 일찍 싹을 틔운 작물들은 농장 한 편에서 봄기운을 받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최근에 가장 관심 가는 작물이 감자라서, 맨 먼저 눈인사를 건네며 감자의 성장 상태를 하나하나 살펴본다. 하루가 다르게 초록 잎 자태를 뽐내며 쑥쑥 커 올라오는 감자를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농장에서 봄기운 받아 자라는 작물들
 
감자의 싹이 흙을 뚫고 올라오고 있다.
 감자의 싹이 흙을 뚫고 올라오고 있다.
ⓒ 곽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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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장에서 작물 중에 제일 먼저 심는 것이 감자다. 감자는 3월 중순에 10여cm 정도의 깊이로 깊게 씨감자를 심는다. 감자는 덩이줄기 작물이라 씨감자에서 올라오는 흙 속의 줄기에 새로운 감자가 달리기 때문에 깊게 심지 않으면 감자가 흙 밖으로 드러나서 녹색을 띠게 된다.

그렇게 깊게 심는데도 씨감자는 싹을 틔우고 20여 일이 지나면 꾸물꾸물 흙을 뚫고 나와서 지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듯 씨감자의 싹이 흙덩이를 깨고 나온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새로운 생명의 등장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물론 감자의 싹이 올라오는 속도는 제각각이다. 날마다 초록 잎을 더하며 왕성하게 성장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이제 흙 밖으로 연한 싹을 내미는 것도 있다. 아직도 싹이 올라올 기미도 없어 썩었을 것으로 의심되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올라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3월 중순에 심은 감자의 싹과 작년 가을에 심어 겨울을 난 양파가 자라고 있다.
 3월 중순에 심은 감자의 싹과 작년 가을에 심어 겨울을 난 양파가 자라고 있다.
ⓒ 곽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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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옆의 이랑에는 겨울 추위를 꿋꿋하게 견뎌낸 양파가 자라고 있다. 지난겨울에 가끔 농장에 들러서 보니 심어 놓은 양파 모종이 줄기가 시들고 말라버린 데다, 얼어서 부풀어 오른 토양 위에 뿌리마저 드러난 모양새였다. 거의 죽었다고 포기했던 양파 모종이 파릇파릇 생기를 찾아 쭉쭉 자라나는 모습을 보니 반가우면서 고맙기도 하다.

사실 예년보다 늦게 심었던 양파 모종이라 잘 살지 어떨지 확신이 없었다. 때를 놓친 농부 탓에 애꿎은 양파만 고생시킨 게 아닌가 싶었는데...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대부분 살아남아 이렇게 선물 같은 즐거움을 주다니 미처 양파의 끈질긴 생명력을 몰라보고 섣부르게 판단한 도시농부가 미안하고 머쓱해진다.

농장 주변에는 농부의 관심을 받지 않는데도 스스로 알아서 자라는 것들도 있다. 쑥과 냉이, 쑥은 봄을 알리는 전령사처럼 농장 가장자리에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있다.

아내는 농장에 올 때마다 쑥을 찾으러 농장 주변을 살핀다. 얼마 전까지 향긋한 냉잇국과 냉이 나물로 우리집 밥상을 행복하게 했던 냉이는 이제 꽃대가 올라오고 꽃이 피어 아쉽지만 농장에서 추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농장 경사면에 심어 놓고 제대로 돌보지 않은 두릅과 머위도 새순이 올라와 도시농부의 눈을 즐겁게 한다.

작물들이 가져올 즐거움 기대하며 봄농사 채비
 
봄에 농작물의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기 위해 밭갈이를 해 놓았다.
 봄에 농작물의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기 위해 밭갈이를 해 놓았다.
ⓒ 곽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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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에는 아직 씨를 뿌리지 않고 모종을 심지 않은 작물들이 더 많다. 새로운 작물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 위해 며칠째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농작물에 양분을 공급해 줄 퇴비를 뿌리고 밭갈이를 한다. 관리기로 굳은 땅을 갈아엎어서 흙과 퇴비를 골고루 섞고, 땅을 부드럽게 하여 작물의 뿌리가 잘 내리도록 한다. 그리고 이랑을 만들어 비닐 멀칭을 함으로써 잡초 발생을 억제하고, 지온과 습기를 유지하며 흙이 굳거나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도록 한다. 이렇게 하여 작물들이 잘 자랄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밭일을 하다 보면 허리가 아프고 팔다리가 뻐근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농장에서의 땀 흘리는 작업 이후에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작물을 키우는 재미에 빠지면 오히려 심신은 건강해지는 것 같다.

농사일에 따르는 약간의 신체적 힘듦은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도시농부의 수고로움은 농장에서 자라는 작물을 보는 즐거움, 맛있는 먹거리를 수확하는 즐거움으로 충분히 보상받는다. 게다가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즐거움까지 누리는 기회도 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올봄에도 우리 농장에서 자라는 작물들이 얼마나 많은 즐거움을 가져다줄지 행복한 기대를 하면서 작물들의 보금자리를 정성 들여서 준비한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실릴 수 있습니다.


태그:#봄농사, #도시농부, #밭갈이, #텃밭작물, #농사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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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삶과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가끔 글로 표현합니다. 작은 관심과 배려가 살맛나는 따뜻한 세상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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