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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독일제 돋보기
 아버지의 독일제 돋보기
ⓒ 최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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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버지가 새 돋보기를 장만하셨다. 근시와 원시 교정이 함께 들어간 다초점 렌즈에 튼튼한 안경테까지 합해서 이십만 원을 주셨단다. 

"근사하네요. 잘 하셨어요."

아버지는 거울에 비친 당신의 모습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근데, 쓰시던 금색 안경은요?"
"어, 너무 낡아서 버렸다."

그 낡아서 버렸다는 안경은 칠십만 원짜리 독일제 안경이었다. 약 3년 전 당시, 아버지의 '플렉스(재력이나 귀중품을 과시하는 행위)'를 아들인 내게 고발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엔 짜증이 묻어 있었다. 

"너희 아버지가 제정신이 아닌가보다. 안경 하나를 칠십만 원이나 주고 샀단다. 내 돋보기는 이만 원짜린데."

아들인 내가 부부 싸움의 중재자 자격으로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무슨 안경을 칠십만 원이나 주고 사요?"
"독일제라서 그렇단다."
"독일제라도 도금을 한 것도 아닐텐데, 거기 전화번호 좀 줘보세요."
"전화는 왜?"
"납득이 되는 가격으로 팔아야지요, 따져보려고요."
"참아라, 그게 다초점이라서 그렇단다."
"참으면 바보되는 겁니다."


'바보'라니, 나도 모르게 선을 넘어버렸다. 아버지는 잠시 침묵한 뒤 말한다.

"... 내일모레면 나도 나이가 팔십인데, 내 스스로를 위해서 칠십만 원이나 쓴 게 바보스럽더라도 그냥 두면 안 될까?"

머릿속으로 내가 그 가게로 전화를 한 뒤 벌어질 일이 떠올랐다. 자식 때문에 무안해하며 사과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아... 제 생각이 짧았네요. 제가 조금 보탤테니 그 안경 쓰세요."
"됐다. 아버지도 아직 그 정도 능력은 된다."


아버지는 재작년 백내장 진단을 받고 양쪽 눈 수술을 받았다. 본래 수정체를 제거하고 인공수정체를 넣은 뒤로는 보이는 게 예전만 못하다 하신다. 또 작년엔 오른쪽 무릎에 인공관절을 넣었는데, 그 또한 본래 무릎보다 못할 게 뻔하다. 

아버지는 정말 내일모레면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아버지의 노화속도가 점점 빨라질수록 초조함이 밀려온다. 평생 자식 뒷바라지 하느라 정작 당신을 위한 것들은 병원비가 대부분이다. 

독일제든 뭐든 아버지의 눈과 무릎을 예전만큼 좋게 해준다면 칠백만 원이라도 쓰고 싶다. 지금은 그저 아버지가 더 오래 내 곁에 계시면 그것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태그:#아버지, #돋보기, #일상동화, #동화,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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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한다는 말을 믿습니다. 소시민으로서 지극히 평범한 가치를 공유하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동화작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들여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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