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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1살 신예진은 '희망'이라는 꽃말의 데이지를 품고 2023년 2월 26일부터 2024년 2월 25일까지, 365일동안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했습니다. 여행하며 만난 '삶의 이유를 찾는 여정'을 <너의 데이지>를 통해 풀어나갑니다. '데이지(신예진)'가 지난 1년 동안 여행하며 만난 100명의 사람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연재 기사입니다. [기자말]
송크란 축제로 4월의 방콕 거리는 물총을 든 사람들이 즐비하다. 여행자 거리로 유명한 까오산 로드는 홀딱 젖어있는 이들로 떠들석하다. 물로 모두에게 시원함을 안기는 것은 송크란 축제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교를 국교로 공인한 태국은 불상 위에 물을 뿌리는 의식을 매번 진행한다. 물이 흘러내리며 과거 불행을 씻어내고 앞으로의 행복을 바라는 상징이다. 

물과 함께 축제를 즐기는 태국에서 불과 6시간 떨어진 한국에서는 물속에 잠겨 꽃이 피지 못한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는 물결이 일고 있다. 10년 전, 세월호 참사로 진도 팽목항에서 생을 마감한 304명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애도 물결은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를 막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우리의 마음이다. 태국에서 앞으로의 행복을 바라는 물은 한국까지 닿고 있을까. 물은 삶이자 죽음을 보여준다.
  
노란색(황금빛)은 불교를 상징하는 대표 색이다. 불교를 국교로 가진 태국은 사원 곳곳에서 노란색의 꽃을 볼 수 있다. 태국 왕실을 상징하기도 한다.
▲ 정결과 축복을 의미하는 노란색의 금송화(dao rueng)가 태국 왓포사원에 놓여있다. 노란색(황금빛)은 불교를 상징하는 대표 색이다. 불교를 국교로 가진 태국은 사원 곳곳에서 노란색의 꽃을 볼 수 있다. 태국 왕실을 상징하기도 한다.
ⓒ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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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에서 밤 버스를 타고 태국으로 넘어오니, 여행자 커뮤니티인 '카우치서핑'을 통해 찾은 Jittra(이하 지트라)와 그의 가족이 나를 반긴다. 방콕에 머무는 시간 동안 그는 가족의 보금자리를 내준다. 축제가 끝나니 전날 밤의 광란의 공기는 온데간데 없고 거리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진도 팽목항 앞에서 무심하게 흘러버린 세월에 먹먹한 가슴이 방콕 거리에 투영된다. 국가 휴일을 맞아 고향에 방문하는 지트라를 따라 방콕에서 한 시간 떨어진 Nakhon Pathom으로 향한다. 

불과 한 시간 거리지만, 대도시 방콕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조그만 마을에는 간격이 멀리 떨어진 1층짜리의 주택들이 각자의 나무 농장을 갖고 있었다. 지트라의 어머니도 커다란 망고나무밭이 있다. 지트라는 거대한 망고나무들 사이로 능숙하게 망고를 따내어 내게 건넨다.

지금은 두 아들의 엄마로 바쁜 도시 생활을 보내고 있는 지트라도 어린 소녀로 이 망고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던 시절을 회상한다. 그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함께 망고를 여러 개 따 책상에 놓아 껍질을 벗기며 지트라에게 살아온 삶에 대해 들려달라 청했다. 

시골 사는 소녀가 세계를 여행하는 방법 
 
지트라의 미소는 따뜻하게 나를 감싸 편안하게 해준다. 어쩌면, 모든 부모에게서 나오는 자식을 향한 사랑이 아닐까.
▲ 지트라가 데이지를 품고 미소를 짓고 있다.  지트라의 미소는 따뜻하게 나를 감싸 편안하게 해준다. 어쩌면, 모든 부모에게서 나오는 자식을 향한 사랑이 아닐까.
ⓒ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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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집에서 몇 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마을에서 유일했던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교육적 시설이 없던 마을이기에, 학교에서도 영어 선생님이 없어 체육 선생님께 영어를 배우곤 했다. 장난감이 갖고 싶은 소녀는 바나나 잎으로 장난감을 만들기도, 밤에 불을 켤 수 없어 등을 켜고 공부하기도 했다.

막내였던 그는 혼자서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단다. 그에게 다른 세계를 알려준 것은 책뿐이었다. 책이라는 세계를 접한 뒤, 그는 온종일 학교 내의 도서관을 왕래했다. 그에게 도서관의 모든 책을 읽는 건, 세계를 여행하는 방식이었다. 

책과 친구가 된 그는 방콕에 있는 쭐랑롱꼰(Chulalongkorn)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당시 태국에서 가장 인기 있던 대학이다. 마을 이장이던 아버지는 지트라가 정부를 위해 일하기를 원했고, 아버지의 바람대로 그는 정치학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은 그에게 새로운 지평이 열어주었다. 교육봉사 등의 경험을 물론, 다양한 친구를 사귀며 그는 한 번뿐인 대학 생활을 즐겼다. 

학과 내 대부분의 친구가 명품을 들고 다니며, 구내식당이 아닌 비싼 식당을 찾고, 본인의 차를 몰고 다니는 모습은 그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이와 달리, 그는 생활비를 비롯해 가족에게 보낼 돈을 벌어야 하는 형편이었다. 전화교환원을 처음으로 일을 시작한 그는 정부 부처에서도 일을 하며 생계를 벌었고, 가족에게 틈틈이 돈을 부쳤다. 

1999년, 그는 남편과 함께 회사를 차렸고, 그로부터 5년 뒤, 소중한 아들을 갖게 되었다. 엄마라는 역할은 세월을 빠르게 지나가게 했다. 어린 시절 책을 파고들던 꼬마 소녀는 두 아들의 엄마가 되어 아들에게 종종 말하곤 한다.

"너 자신에게 좋은 일을 해. 너에게, 그리고 다른 이에게 피해가 되는 어떤 것은 하지만. 너는 네가 해야 할 일을 해. 좋은 일을 하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거야."
 
지트라는 남편과 아들 둘을 둔 어머니이다. 지트라는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오늘도 삶을 살아간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국경 구분 없이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유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다.
▲ 지트라와 그의 가족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트라는 남편과 아들 둘을 둔 어머니이다. 지트라는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오늘도 삶을 살아간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국경 구분 없이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유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다.
ⓒ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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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에서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굴곡은 엄마라는 이름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엄마라는 이름 앞, 지트라는 무엇이 그를 살아오게 했을까. 삶의 이유, '너의 데이지'를 물었다.

당신의 삶의 이유, 당신의 데이지는 무엇인가요

"나의 데이지는 나의 두 아들이야. 나의 아들, 나의 가족이 각자의 삶에서 행복해지는거야. 사회가 더 나아지길 바라고, 사회를 이루는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국경 구분 없이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돌아오지 않는, 살아선 만날 수 없는 자식이어도 자녀는 영원히 모습 그대로 부모 가슴에 짙게 남아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흘렀지만, 진도 팽목항에는 지금도 그날의 상처가 남아있다. 삶의 이유인 자식을 더 이상 볼 수 없음에도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아픔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하는 가족. 그 존재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에 회한이 사무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는 얼마나 고귀한 것일까. 그래서인지 엄마인 지트라의 미소는 따뜻하게 나를 감싸 편안하게 해준다. 부모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식을 향한 사랑이 느껴져서일까.

나 또한 오늘을 살아가는 한 명의 자녀로서, 10년 전 발생한 세월호 참사의 상처를 기억하고, 그럼에도 살아가기로 한다. 나의 자식이, 아이들이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가도록 가슴에 깊이 기억하며 외친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덧붙이는 글 | 아래 링크에서 지트라 유튜브 채널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khunjittra1 https://youtube.com/@khunjittra1?si=4v_FBd4g5rXcpGAU


태그:#태국, #삶의이유, #송크란축제, #세월호10주기, #부모의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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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 1년간 떠난 21살의 45개국 여행, 그 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 <너의 데이지>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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