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잠실 일대 아파트의 모습.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잠실 일대 아파트의 모습.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22대 총선은 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두말할 것 없이 선거 결과가 말하는 바는 윤석열 정권의 폭정과 무책임에 대한 국민 심판이다.

나빠진 승리의 질(質)

그러나 서울과 수도권의 선거 결과를 자세히 뜯어 보면 심란하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승리의 질(質)이 더 나빠진 까닭이다. 21대와 비교해서 강남권역에서 표차가 더 벌어졌고, 마포와 동작, 용산의 패배, 그리고 성남 분당에서의 패배, 개표 마지막에 가서 겨우 역전했던 수원정과 하남갑 등 경기도 곳곳에서 가까스로 이긴 지역구가 상당하다. 이유가 뭘까?

김포, 하남, 양주, 구리, 광명 등을 서울로 편입시키겠다는 윤석열 정권과 여당 '국민의힘'의 서울 메가시티 전략과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한 부동산 관련 세금의 감면, 건축한 지 30년 넘은 모든 아파트의 재건축 추진이 가능하게 하는 정책, 재개발 규제 완화 정책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22대 총선 역시 윤석열 정권과 여당의 부동산 불로소득 욕망 부추기기가 통한 것이다. 이른바 '이채양명주'에 더해 대파 논란만 없었으면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이 조장한 부동산 욕망이 더 크게 작용할 수도 있었다.

씁쓸한 건 민주당 지역구 출마자들의 부동산 공약도 국민의힘 출마자들과 매한가지였다는 점이다. 재개발・재건축이 신속하고 사업성 있게 진행되도록 돕겠다는 것, 자기 지역구 단지가 200만 호가 넘는 1기 신도시에서 가장 먼저 재건축 사업을 할 수 있는 '선도지구'로 지정되도록 하겠다는 것도 빠짐없이 들어 있다. 소선구제가 갖는 근본적인 한계도 있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유권자들은 부동산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에는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보다 국민의힘이 훨씬 유능하다고 믿고 있다는 점이다.

유권자들의 부동산 욕망, 어떻게 볼 것인가?

이 지점에서 부동산으로 엄청난 초과이익, 즉 불로소득을 누리려고 하는 유권자들의 '부동산 욕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부동산으로 불로소득을 누리려는 욕망은 사실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윤리적・도덕적으로 비난・비판할 수는 있으나 그렇게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다. 누구나, 불로소득이 생기고 그걸 보장하는 제도가 있으면 그 제도의 수혜자가 되고 싶지 피해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부동산 욕망이 특히 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국가복지가 매우 얇고 앞으로도 두터워 질 가능성이 낮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가 추진을 용이하게 해 준 재건축・재개발도 사실 따져보면 강남과 분당 일부를 제외하고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조합원이 부담해야 할 분담금의 규모가 크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희망-내가 보기엔 그 희망은 실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을 버리지 못하고 재개발・재건축에 목을 매는 까닭은 다른 대안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이 대안을 제시하고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화된 생활양식이 바로 '각자도생'이다. 다른 사람이 어찌 사는지는 내 알 바 아니고 내 재산 가치가 올라가고 그걸 통해서 큰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삶의 태도 말이다.

그러나 모든 각자도생이 사회적 문제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좋은 상품을 만들고 기술을 개발해서 더 많은 돈을 벌려는 경제활동은 사회적 문제를 초래하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 사회 전체를 이롭게 한다. 여기서 문제 삼는 것은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상태를 초래하는 각자도생의 경제활동을 말하는데, 대표적인 영역이 부동산이다.

부동산으로 초과이익을 누리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고통 받는 사람이 더 많이 생겨나고 사회적 갈등과 반목은 심해진다. 부동산에 있어서 각자도생은 사회 전체를 지옥으로 만든다. 대한민국의 합계출생률이 무려 0.7로 떨어진 것, 인구소멸이 바로 이를 말하고 있다.

먼저 개혁의 칼날을 자신에게 들이대라

그러므로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소위 개혁진보정당들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나라의 존속이 불가능하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근사한 청사진 혹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일까? 아니다.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개혁진보정당들이 개혁의 칼날을 먼저 자신에게 들이대는 것이다. 망국병인 부동산투기를 차단하고 부동산개혁을 입에 올리기 전에 국회의원 자신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뢰를 회복하는 길인데, 여기에 해당하는 제도가 바로 '고위공직자부동산백지신탁제'다. 국회의원을 포함한 선출직 공무원과 고위공직자가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에서 투기용 부동산은 백지로 신탁하게 하고, 공직을 마치면 신탁 당시의 감정가와 이자만 보장하도록 하자는 제도다. 

부동산에 있어서 국민 일반은 국회의원과 선출직 공무원, 고위공직자에 대한 불신이 상당하다. 이들 대다수가 일반인보다 훨씬 많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실련이 22대 총선 후보자들에 대한 재산과 관련하여 지난 3월 28일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후보자 952명이 신고한 1인당 재산 평균은 24.4억(부동산 15.7억, 증권 6.9억, 가상자산 152만 원)으로 나타났으며, 지역구 후보자 699명이 신고한 1인당 재산 평균은 32.4억(부동산 16.8억, 증권 8.2억, 가상자산 170만 원)이며, 비례대표 후보자 253명이 신고한 1인당 재산 평균은 14.9억(부동산 12.8억, 증권 3.4억, 가상자산 95만 원)이다. 2023년 기준 국민 전체 가구당 평균 재산이 5억 3천만 원인 것에 비춰보면 5배 가까이 많은데, 10배 이상, 심지어 수십 배 되는 후보자들도 상당하다.

부동산 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고위공직자는 또 어떤가. 2021년 고위공직자 398명이 신고한 재산 등록을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이들이 주택을 가장 많이 보유한 지역은 강남 3구와 마포, 용산, 성동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강남권 3개 구에 123채를 보유해 서울 전체(228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서울에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금천·강북·동대문구에 주택을 소유한 고위공직자는 한 명도 없었다(〈매일경제〉, 2021. 4. 12, "고위공직자 398명 재테크, '강남 3구 마용성'…금천·강북구는 한 채도 없다.").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공직자 부패의 온상이자 치부의 수단이었다. 부동산에 이해관계를 가진 국회의원과 선출직 공무원들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들로 인해서 정책이 왜곡되고 각종 부패가 발생해온 것을 우리는 수도 없이 겪었다. 심지어 노선이 확정된 고속도로 종점도 변경시키려 했으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고위공직자들이 부동산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신도시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도로 및 인프라 건설 여부를 결정하는 까닭에 이 '고급' 정보를 캐내기 위해 사람들이 친인척과 학연, 지연을 활용해 선을 대려고 한 예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상황에서 내놓는 부동산 정책이 신뢰받을 수 있을까? 국민은 국회의원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들은 자신의 부동산 가치가 줄어들 입법과 정책을 절대로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의 칼날을 국민 일반이 아니라 자신에게 향한다는 것은 엄청난 의의가 있다.

고위공직자부동산백지신탁제의 대상, 내용, 효과

그러면 고위공직자부동산백지신탁제에는 어떤 내용이 포함되어야 할까? 이 제도의 대상에는 공직자윤리법상 재산 공개대상자인 국무위원, 국회의원, 지자체장, 지방의원, 1급 공무원, 교육감 및 국토교통부 소속 공무원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과 대상자의 배우자 및 자녀가 포함되어야 한다. 부동산과 관련된 부처가 아니라 모든 부처의 공무원과 선출직 공무원이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따지고 보면 이들 전체가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주는 정책을 입안하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들과 선출직 공무원들이 개발계획 수립과 발표에 직간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대상자의 의무 사항엔 다음이 포함되어야 한다. 보유 부동산에 대하여 공직 취임 전에 소유 부동산이 실수요임을 입증하고, 실수요임을 입증하지 못한 부동산은 기간 안에 스스로 매각하거나 수탁 기관에 백지로 신탁하는 것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여기서 실수요 부동산은 대상자가 거주 목적이나 영업 목적으로 직접 사용하는 부동산과 선산 등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임대용 부동산은 제외해야 한다. 임대업과 고위공직 혹은 선출직 공무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혁진보정당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 급상승할 것

단언컨대 이 제도의 입법화는 한국 사회 변화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역사상 한 번도 권력층 스스로가 자신의 경제 권력을 내려놓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개혁진보를 표방하는 야당이 개원 초기부터 고위공직자부동산백지신탁제 입법화에 집중한다면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는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이고, 이것은 부동산 각자도생의 사회를 끝장낼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주택자들, 부동산 과다보유자들의 국회와 고위공직 진출이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공익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의 진입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요컨대 이 제도의 입법화는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다.

이런 까닭에 22대 국회 야당의 첫 번째 민생법안이 고위공직자부동산백지신탁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미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고위공직자부동산백지신탁제를 공약한 바 있고, '지대개혁'을 대안의 방향으로 제시했고 현재 차기 국회의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추미애 당선인도 적극 찬성할 것으로 보이며, 사회권 강화를 강조하는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도 충분히 동의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미 21대 국회에서 이 법안을 준비해온 신정훈 의원(나주화순)은 22대 총선에서도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만큼 소신이 강하다는 것이고 입법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개혁진보야당의 결단만 남은 셈이다.

태그:#부동산, #부동산백지신탁제, #22대국회, #부동산욕망, #개혁진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토지+자유연구소(landliberty.or.kr) 소장. 전 국민 주거권과 토지공개념 실현, 토지보유세를 재원으로 하는 기본소득인 토지배당제를 위한 연구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땅에서 온 기본소득, 토지배당》(2023, 공저), 《아파트 민주주의》(2020),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2018, 공저) 외 다수가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