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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을 얼마나 잘하는가?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이크스의 연구에 의하면 처음 보는 사람끼리 대화하면서 상대방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경우는 20퍼센트 정도,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더라도 35퍼센트에 그친다고 한다. 

우리는 종종 아니 자주 타인의 마음을 읽는 것에 실패한다. 35퍼센트는 커녕 3퍼센트라도 읽어냈다면 준수할 정도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먼 타인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할 때도 있다.

신혼 때의 내가 그랬다. 지금의 남편과는 4년의 교제 끝에 결혼했는데, 사귈 때는 별다르게 싸웠던 기억이 없다. 그런데 웬걸. 잉꼬부부를 기대하고 시작한 결혼 생활의 초기에 우리는 매일같이 피 터지게 싸워댔다. 그 당시 나에게 남편은 '가장 잘 아는 사람'에서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당장 이혼이라도 할 것처럼 냉기가 흐를 때도 있었고, 화가 나서 집을 뛰어 나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대화를 포기하지 않았고,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서로에 대해 알게 되었다. 덕분에 결혼 십 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남편은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동반자이다.

그렇다고 내가 남편을 다 아는 것일까? 대답은 아니요!이며 앞으로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나는 남편을 더 이해하고 싶고, 깊은 관계를 지속해 가기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관계에 대한 이러한 나의 소망은 남편뿐만이 아닌 가족, 친구, 가까운 동료에 관해서도 동일하다. 나는 친구를, 가족을, 동료들을 더 알고 싶고 그들의 인생 깊숙이 들어가길 원한다. 

그렇다면 사람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그 관계의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

이런 내 고민에 대한 해답을 이끌어내 주는 책을 만났다. 미국의 대표적인 저널리스트이자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의 신간 <사람을 안다는 것>이다. 

당신은 빛을 주는 사람인가, 빛을 없애는 사람인가
 
<사람을 안다는 것> 표지
 <사람을 안다는 것> 표지
ⓒ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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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어떻게 하면 한 개인이 관계로 인한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지`를 심리학, 철학, 문학, 신경과학을 넘나들며 대답하려 한다. 곳곳에서 빛나는 저자의 통찰력은 40여 년을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온 저자의 저력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듯하다.

"나를 포함한 몇 세대에 걸친 사람들은 타인의 깊이와 존엄함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기본적인 도덕적 기술이 사라지면서 단절과 고립이 나타났고 잔인함이 허용되는 문화가 나타났다.

일상의 작은 만남 속에서 서로를 잘 대하지 못하는 행동이 쌓이면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끔찍한 사회적 붕괴가 초래되었다고 믿는다. 이는 문명의 거대한 실패다. 우리는 도덕적, 사회적 기술을 가르치는 방법을 재발견해야 한다. 이러한 위기는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279쪽)


저자는 책 속에서 군중을 크게 두 가지 유형의 사람으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디미니셔(Diminisher)`와 `일루미네이터(Illuminator)`다. 굳이 한국어로 바꿔보자면 `소멸시키는 사람`과 `빛을 주는 사람` 정도가 될 것 같다. 저자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을 얼마나 잘하는가?`를 기준으로 두 부류를 나누고 있다. 

디미니셔는 제 능력을 믿고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든다. 이들은 타인을 친구가 될 사람이 아니라 이용할 대상으로 본다. 고정관념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느끼게 한다. 

반면 일루미네이터는 다른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둔다. 이들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기술을 따로 훈련받았거나 스스로 깨우친 사람들이다. 관심의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비추어 그들이 스스로를 더 크고, 깊고, 존중받는 존재라고 느끼게 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디미니셔들도 일루미네이터로 변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우리 개개인이 일루미네이터로 누군가를 비추는 것을 통해,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고 그를 통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루미네이터가 되는 것, 즉 다른 사람을 온전한 모습 그대로 바라보는 일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일종의 기량이고, 구체적인 기술의 종합이며,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다. (중략) 마음의 기술은 누구나 익힐 수 있다. 이전과는 다른 의식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면 누구나 일루미네이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75쪽)

"일루미네이터는 시련을 헤쳐나가는 사람 곁을 그저 가만히 지킨다. 괴로운 사람의 고통의 깊이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발휘하는 힘을 보기 위해서, 그가 거두는 승리를 함께 축하하기 위해서 그 자리를 지킨다." (445쪽)


책에는 또한 인종과 계급 환경을 뛰어넘어 깊은 대화를 나누는 법,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법, 서로 다른 기질의 사람과 대화하는 법에 대한 실제적인 조언과 경험들이 가득 실려있다. 하나하나가 저자의 치열했던 삶을 통과한 이야기들이라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우리는 언제나 사람에게서 답을 찾는다
 
서로를 깊이 알면 우리의 세계는 어떻게 넓어질까?
 서로를 깊이 알면 우리의 세계는 어떻게 넓어질까?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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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의 대중화, AI의 눈부신 발달과 사회 구조의 변화로 어쩌면 우리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세상 속에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따뜻한 온기와, 반짝이는 눈빛을 교환할 누군가가 필요한 법. 결국 사람은 언제나 사람에게서 답을 찾는다.

어떤 사람을 동료로, 이웃으로, 연인으로, 배우자로, 친구로 삼는 것은 단순하지만 누구에게나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다가가면, 상대방도 그 진심에 대답해 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은 각자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당신이 상대방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다가간다면, 그 사람은 풀어야 하고 또 얼마든지 풀릴 수 있는 퍼즐이 아니라 결코 모든 것을 다 알아낼 수 없는 수수께끼임을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고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이다. 이때 눈빛으로 건네지는 선물은 바로 존중이다."(89쪽)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누군가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책을 읽고 나면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며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욕구가 불이 일 듯 일어나리라. 그리고 드디어 그 누군가를 만났다면, 책에서 인용된 다음의 한 구절을 마음에 되새기며 대화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 

"만약 두 사람이 똑같은 사랑을 주고받을 수 없다면, 내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리라." (W.H. 오든)

사람을 안다는 것

데이비드 브룩스 (지은이), 이경식 (옮긴이), 웅진지식하우스(2024)


태그:#사람을안다는것, #데이비드브룩스, #인문교양서,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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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영화와 미학을 공부했습니다. 번역을 하고 글을 씁니다. 번역 및 원고 의뢰 36.5.transla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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