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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봄꽃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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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은 물론이고 개나리, 진달래, 목련 등 봄꽃들이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철쭉과 라일락이 치장하기 바쁘다. 

이렇게 봄의 향연과 기운이 완연한데도 좀처럼 흥이 나지 않는다. 무엇을 해도 손에 잡히지 않고 어딘가 허전하기만 하다.  
     
곰곰 생각하니 이번 국회의원 선거 때문이라는 걸 추측해 본다. 선거에 대한 엉뚱한 기대와 미몽을 헤매다 이제야 제정신이 드는 형국이다. 나도 모르게 선거에 지나치게 몰입하고 이런 모양이 알게 모르게 타인에게 비쳤던 건 아닐가 생각하니 부끄럽다.
     
사실 선거결과에 기뻐할 것도 지나치게 낙담할 것도 아닌데, 마음에 오래 남는 건 나이 들어 생긴 요상한 집착 아닌가 싶다. 나는 평소 입으로 떠드는 사람들을 경원하지만 그들이 선거로 당선된 이상 존중하고 합리적인 이유 없이 미워하지 않을 생각이다.  
    
선거를 치른 날, 투표를 할 때만 해도 개표결과를 끝까지 지켜보겠다며 밤샘을 각오했다. 그러나 평소처럼 11시쯤 잠들고 말았다. 봄을 즐기느라 몸이 고단한 것도 아니었다. 친구 말대로 하룻밤 지새기엔 예전 같지 않아서 우리들은 '어르신'이 되고 말았다. 

정말 그런지 모른다. 세상일에 간섭한다며 다가 온 봄마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즐기지도 못하는 나이가 벌써 됐다니 말이다.  
    
그런데 새벽에 깨고 보니 아뿔싸. 세상은 바뀌고 있었다. 유권자들의 뜻이 나와 내 주변 친구들이 기대했던 기존의 생각과 틀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기록적인 참패를 당했다 한다. 불통과 독선이 낳은 결과이다.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제대로 파악해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의 진영을 떠나 유권자들 다수가 포퓰리즘에 사로잡힌 게 아닌가 싶은 장면들은 또래들마저 걱정하는 대목이다. 이런 부담은 결국 미래 세대들이 떠맡을 것 아닌가.
    
나아가, 이번 선거에서 미덥지 않은 일꾼들이 유독 많다. 도덕과 윤리는 실종되고 막말을 일삼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이 두렵다.  
      
나는 이번 선거를 통해서 정치 무관심과 지나친 혐오도 문제지만 반지성 사회의 일면을 경계할 필요성을 느꼈다.
     
엊그제에는 생각이 어수선해서 머리라도 정리해 볼까 동네 이발소를 갔다. 주인과 부인이 운영하는 조그만 이발소에는 두 세명의 손님이 기다리는데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그럼 그렇지. 주인이 머리를 맡긴 손님에게 "이번 선거는 너무 조용히 치른 것 같다"면서 운을 떼었다. 그러나 아무 대꾸도 없자 주인은 입을 굳게 닫았다.
     
더 이상 선거 이야기를 하거나 듣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표정에는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 또한 의자에 앉자마자 눈을 감았다. 눈치를 채고 주인은 아무 말없이 머리를 손질했다. 가위로 머리 깎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내가 다니는 헬스장에도 선거가 끝나자 평온이 찾아왔다. 선거가 있기 전까지는 헬스장에는 선거와 투표 이야기로 가득 차고 운동은 뒷전이었다.
 
봄꽃
 봄꽃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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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끝났다.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성큼 다가온 봄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그간 눈길 한번 제대로 안 준 봄꽃들을 찾아 나설 생각이다.
     
이제는 세상 일에 한 걸음 떨어져 지켜볼 셈이다. 더 이상은 과욕이다. 나는 소중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게 온전한 삶을 사는 지혜라 여긴다.       

태그:#국회의원선거, #봄꽃, #일상, #포퓰리즘, #자영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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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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