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디지털
 디지털
ⓒ pixabay

관련사진보기

 
[디지털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공장, 디지털 팩토리] 
① 디지털 공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② 매순간 100m 달리기 수준의 노동, 이러다 큰일난다
③ 배달하다 숨진 26살 청년, 하루 뒤에 온 충격 메일


'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가 이제는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글로벌 시장경제를 주도하는 빅테크 기업들은 서로 경쟁하며 자신들의 신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AI, 메타버스, 자율주행, 증강현실(AR) 등 어느덧 우리 일상생활에 스며든 기술을 보면,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체감할 수 있다.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의 노동에 관한 논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디지털 기술을 통해 시공간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노동의 편리성이 얼마나 증가하였는지, 개인의 창의성이 증대되고, 원활한 소통의 매개체가 되는지 등 긍정적인 측면을 주목하는 관점과 디지털 기술이 '공장의 종말'과 '단순노동의 종말'을 야기하여 인간의 일자리가 대체되거나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공존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두 가지 관점과 다른 측면에서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의 노동을 얘기하고자 한다. 누군가는 창의적 노동, 누군가는 일자리의 소멸을 말하지만 디지털 기술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유형의 '디지털 공장'의 폭발과 증식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소수의 프로그래머, 기획자뿐 아니라 구글의 하청 노동자, 아마존의 창고 노동자, 페이스북의 콘텐츠 관리자, 베를린의 크라우드워커 등 디지털 팩토리의 노동자가 있다. 이 '디지털 공장'은 과거 공장들이 작동하는 방식이 상당 부분 그대로 적용되며, 여기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노동은 눈에 띄지 않는다.

산업시대 공장과 같고도 다른 디지털 세계의 '공장'들

모리츠 알텐리트는 저서 <디지털 팩토리>에서, 디지털 기술을 통해 노동을 통제하고 포섭하는 실제의 또는 가상의 공간을 '디지털 팩토리'라고 정의한다. 전통적인 공장은 콘크리트와 수많은 기계로 구성된 물리적, 실체적 공간을 의미했으며, 노동자들은 그러한 공간에 모여서 노동력을 제공했다.

반면 '디지털 팩토리'에서 노동력이 집합된 공간으로서 실체의 공장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콘텐츠를 관리하기 위해 영어가 가능한 필리핀과 인도의 노동자들이 자국에서 동원되기도 하며, 인터넷을 접속할 수 있는 곳은 어디든 블로그, SNS를 통해 기업 제품을 홍보하는 노동자들의 작업 공간이 된다.

하지만, 디지털 팩토리와 전통적인 공장은 유사점도 많다. 디지털 팩토리의 노동자들 역시 표준화되고 분업화된 업무를 반복적이고 지루하게 수행한다. 알고리즘과 디지털 기술은 노동자 훈련 시간을 줄이고, 업무를 더욱 분화하여 탈숙련화를 가속한다.

구글은 책을 스캔하기 위해 단순, 반복 작업을 수행할 하청 노동자들을 고용했고, 테슬라 역시 자율주행 기술 구현을 위해 디지털 라벨링 작업을 하는 근로자들을 고용했다. 심지어 테슬라는 이 업무를 보다 낮은 임금의 노동자로 대체하기 위해 기존 인력을 대거 해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전통적인 공장이 그러하듯 이런 업무를 하는 노동자에게는 할당량이 주어진다. 자본이 노동을 규제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것은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에도 그대로다.

다만 전통적인 공장에서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통제가 이루어졌다면,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에는 보다 교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뿐이다. 전통적 공장에서 인간의 노동력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노동력이 필요했고, 좋든 싫든 공장에서 주어지는 일감을 '수동적'이고 '안정적(기본급이 있다는 측면에서)'으로 받았기에 그 자체가 노동에 대한 통제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플랫폼 노동자들은 정해진 기본급이 있는 근로계약이 아닌 도급제 계약을 맺는다. 도급제 계약하에서는 외형상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노동의 속도와 강도가 임금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이러한 임금 형태로 노동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를 받는다. 또한 기업만이 알고 있는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그들이 선발한 '우수한 노동자'들에게 보다 양질의 일감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전체 노동자들을 통제한다. 자본은 이렇게 통제를 은폐하여 본인들이 가지는 여러 책임, 이를테면 노동 관계 법령을 회피하고자 한다. 

디지털 기술은 노골적으로 노동자를 통제하는 데 활용되기도 한다. 대형 물류센터에서는 모든 것이 전산화되어 있다. 관리자들은 노동자들의 작업량과 현재 위치, 작업 수행성과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관리할 수 있다. 첨단과 기술로 치장되었으나 결국 기존의 노무관리 방식에 '디지털'이라는 외피를 입힌 것에 불과하다.

한국의 디지털 팩토리 노동자들

한국에도 디지털 팩토리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콘텐츠 모더레이터'는 콘텐츠 플랫폼에서 유해하거나 불법적인 내용을 차단·삭제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카카오, 네이트, 아프리카tv 등 많은 국내 기업들이 콘텐츠 모더레이터들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고용하고 있다.

이들은 포털사이트, 동영상 플랫폼 등에서 서비스 이용자들이 글, 댓글, 동영상 등의 게시물을 등록하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하다가 매뉴얼에 따라 기준에 맞지 않는 게시물에 대한 삭제 등의 조치를 하고 사용자들에게 경고·이용정지 등의 제재를 가하는 일을 한다. 이러한 조치는 24시간 이루어진다. 실제 공장에서는 기계가 돌아가지 않는 시간도 있지만 콘텐츠 모더레이터가 일하는 디지털 팩토리는 쉬지 않고 돌아가는 셈이다.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플랫폼·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 '할말 잇 수다'에서 영화산업, 방송 프리랜서, 콘텐츠 모더레이터 등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2024.2.1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플랫폼·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 '할말 잇 수다'에서 영화산업, 방송 프리랜서, 콘텐츠 모더레이터 등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2024.2.1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사이트를 운영하는 회사는 이들을 직고용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하청업체를 통해 해당 업무를 처리한다.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에도 비정규직 문제가 남아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때로는 아예 근로계약이 아닌 '도급계약'으로 이루어져 노동법을 너무나도 쉽게 빠져나가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네이트판 모니터링 요원' 부당해고 사건(2021구합72352)에서 재택근로를 하는 콘텐츠모더레이터들이 노동자로 인정받는 유의미한 하급심 판결이 있기도 했다.

모든 도로가 공장, 배달 라이더

한국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플랫폼 노동자가 배달 라이더들이다. 외형상 라이더들은 '자발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처럼 비치지만 실상은 다르다. 회사는 라이더들의 위치정보, 실시간 이동거리, 배달 시간, 배송기록 등을 생성·관리하여 알고리즘에 사용하고, 이를 이용해 라이더에게 주문을 배정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배정 알고리즘은 전혀 공개돼 있지 않아, 라이더들은 배차 알고리즘이 어떤 방향으로 설계 되는지, 어떠한 경우에 벌칙을 받는지 등을 알 수 없다. 무작정 플랫폼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또한 회사는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달성한 라이더들에게 추가 보상을 하는 '프로모션'을 통해 라이더가 일하는 시간대, 지역 등을 교묘하게 통제한다. 결국 이들은 여느 노동자들과 같이 업무 수행과정에서 통제·관리 받으며, 종속된 채로 노동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디지털 기술을 통한 통제라는 점, 통제와 종속성이 외형상 드러나지 않고 은밀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전 위원장은 '라이더들에겐 온 도로가 공장'이라는 말을 하였는데 이는 디지털 팩토리의 핵심을 잘 나타내는 비유다. 배달 플랫폼 기업은 2년 연속 산재 신청 1위로 선정되었다. 이는 더 이상 건설·제조업에서의 산재뿐만이 아니라 디지털 자본주의의 새로운 노동환경에서 노동 안전 정책이 필요한 시점임을 시사한다.

디지털 통제와 전근대적 통제가 뒤섞인 물류센터

미국에 아마존 물류센터가 있다면 한국에는 쿠팡 물류센터가 있다. 쿠팡은 물류회사이지만 기본적으로 IT회사를 표방한다. 물류센터 내 '모든 것'은 데이터화 되어 있고 전산과 알고리즘에 따라서 처리된다. '모든 것'에는 노동자와 노동자를 관리하는 방식까지 포함된다.

알고리즘에 따른 노동 통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집품(피킹)'업무이다. 진열된 상품들 중 고객들의 주문 상품을 모아서 포장하는 이들 노동자에게는 PDA와 상품을 담을 바구니가 주어진다. PDA 화면에는 집어야 하는 물건의 위치와 사진과 개수가 나온다. 알고리즘은 최적의 루트를 제안하고 노동자는 알고리즘이 제시한 순서대로 물건을 피킹한다. 노동자가, 알고리즘이 제시한 물건의 피킹 순서보다 나은 루트가 있다고 생각해도, 자체적인 판단하에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 그저 철저히 알고리즘이 제시한 루트대로 움직여야 한다.
 
쿠팡의 블랙리스트 활용은 물류센터가 디지털 통제와 전근대적 통제가 뒤섞인 ‘디지털 팩토리’임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사진은 지난 2월 20일 열린 쿠팡 블랙리스트 규탄 인권 노동단체 긴급 기자회견.
 쿠팡의 블랙리스트 활용은 물류센터가 디지털 통제와 전근대적 통제가 뒤섞인 ‘디지털 팩토리’임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사진은 지난 2월 20일 열린 쿠팡 블랙리스트 규탄 인권 노동단체 긴급 기자회견.
ⓒ 이정민

관련사진보기

 
노동자들은 1시간당 처리 속도를 측정하는 UPH(Units Per hour)로 통제받는다. 작업 속도가 느려지면, 관리자와 면담을 하거나 방송을 통해 독촉받는다. 과거에는 한 사람의 관리자가 수십 명을 관리했다면 디지털 기술을 통해 한 사람의 관리자가 수백, 수천 노동자의 업무수행 과정을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가 하면 마켓컬리, 쿠팡 등에서 블랙리스트를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는데, 물류센터가 디지털 통제와 전근대적 통제가 뒤섞인 '디지털 팩토리'임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의 노동권을 위하여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로 오면서 산업구조가 바뀌고 노동현장도 바뀌었다지만, 여전히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공장은 건재하다. 비정규직과 노동 내 차별, 노동자 감시와 건강 문제 등은 여전하고, 여기에 더해 새로운 시대의 문젯거리가 더 생겨났을 뿐이다.

혁신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노동이 존재한다.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 디지털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권리가 새로 쓰여져야 하고, 이를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법도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도하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입니다.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4월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디지털자본주의, #디지털팩토리, #물류센터, #라이더
댓글1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와 안녕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