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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2일 오후 2시,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백산 지청천 장군 제67주기 추모제가 서울국립현충원에서 거행되었다. 행사에는 지연길 지청천기념사업회회장, 김진이 서울남부보훈지청장, 장덕수 북방민족나눔협의회 회장을 비롯해 지청천 장군의 유족, 보훈단체 관계자, 다수의 일반 내빈객이 참석했다.
 
헌충탑을 참배하는 백산지청천장군기념사업회 주요 인사들과 내빈들
 헌충탑을 참배하는 백산지청천장군기념사업회 주요 인사들과 내빈들
ⓒ 백산지청천장군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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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들은 먼저 현충탑을 참배하고, 임시정부요인묘역에 위치한 지청천 장군 묘소로 이동했다. 국민의례, 애국가 제창, 고인에 대한 경례, 예포 발사 후 결의문을 외치며 지청천 장군의 뜻과 정신을 이어받을 것을 다짐했다. 결의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나, 우리는 광복군의 독립전쟁과 살신성인의 애국정신을 계승발전시키고 이를 삶의 지표로 삼는다!
하나, 우리는 광복군 총사령부의 투철한 군인정신과 지청천장군의 광복을 위한 피끓는 표어를 영원히 기억한다!
하나, 우리는 생존해 계신 광복군 단원분들을 숭모하고 공경하며 정신적 어버이로 모신다!
하나, 우리는 국가와 민족앞에 부끄러움 없는 모습으로 일관하며, 썩은 물에 몸과 마음을 절대로 담그지 않는다!
하나, 우리는 혈족이나 친족의 결집으로 구상되지 아니하고, 온 국민적 동참과 성원으로 존립한다! 
하나, 우리는 조국의 민족적 통일을 지향하고 좌경화된 불순세력의 발호를 철저히 배척한다!
하나, 우리는 조국 광복을 도운 세계 우방국가와 선진 관계를 도모하고, 더불어 함께하는 글로벌 이데아를 실현한다!  
 
다음으로 백산 지청천 장군의 "자유일기"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1951년부터 타계 한달 전인 1956년 12월까지 육필로 쓴 자유일기에는 광복 전후 격동의 삶을 산 독립운동가의 고뇌와 함께 독립운동 시기를 회고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지청천 기념사업회는 국가보훈부의 지원을 받아 편찬한 후 금년 내에 출간할 예정임을 밝혔다.
 
1951년부터 1956년까지 지청천 장군이 육필로 쓴 일기이다.
▲ 자유일기 1951년부터 1956년까지 지청천 장군이 육필로 쓴 일기이다.
ⓒ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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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요 내빈들의 추모사가 있었다. 지연길 백산지청천장군기념사업회 회장은  "지청천 장군은 대일항쟁을 주도한 위대한 장군이었을 뿐만 아니라 독립군을 양성하고, 한국광복군을 창설한 뛰어난 행정가로서 독립 후 조국의 미래를 준비한 문무겸비의 탁월한 지도자였다. 장군님처럼 독립운동가들은 투쟁의 역사만을 가지고 있는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내다본 뛰어난 혜안을 가지고 계셨던 분들이라는 점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썩은 물에 몸 담그지 말라'는 장군님의 말씀을 명심하며 그분의 뜻과 정신을 이어가도록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김진이 서울남부보훈지청장은 "일제의 압제 속에서도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끊임없이 항일투쟁을 전개하신 지청천 장군님과 일제의 가혹한 탄압속에서도 독립을 향한 열망을 꺾지 않았던 수많은 애국선열들의 헌신은 1945년 조국 광복을 이뤄냈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의 초석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보훈부는 애국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그 숭고한 정신을 미래세대에게 계승하여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 세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 밝혔다.

장덕수 북방민족나눔협의회 회장은 "지용을 겸비하셨던 장군님은 일제강점기에는 조국 독립의 일념으로 무장 항일투쟁의 선봉에 서셨고, 광복 후에는 조국 재건과 건국의 기틀을 다진 정치가로서 평생을 나라를 위해 헌신하셨다. 장군님께서 남기신 위대한 삶과 살신성인의 정신은 민족 번영을 이뤄하하는 저희들이 영원히 간직해야할 기원"이라 말하며, "오늘 이 자리를 계기로 장군님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겨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각오를 새롭게 다질것"임을 전했다.

헌화와 분향 이후에는 지청천 장군이 작사한 "광야를 달리는 독립군"을 합창하였다. 1920년 지청천 장군이 신흥무관학교 생도 300여 명을 인솔하고 북만주로 이동할 당시 부르던 노래를 내빈 모두가 합창하며 갖은 고난 속에서도 나라와 겨례의 광복을 위해 항쟁에 나섰던 그들의 결연한 의지와 애국심을 가슴 깊이 느꼈다.
 
지청천 장군이 작사한 노래로 1980년대에는 저항가요로서 불리기도 했다.
▲ 광야를 달리는 독립군 지청천 장군이 작사한 노래로 1980년대에는 저항가요로서 불리기도 했다.
ⓒ 백산지청천장군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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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유족 대표로 지청천 장군의 손자인 지상철씨가 나와 '자유일기'의 1951년 3월 1일 내용을 소개하며 독립운동가로서의 애국심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등 정치가로서 지닌 사상에 대해 전했고, 마지막으로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며 모든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김인석 백산지청천기념사업회사무총장은 "지청천 장군은 일본 육군사관학교 졸업생으로서 누릴 수 있었던 화려한 미래를 포기하고 독립운동이라는 험난한 길을 선택하신 분"이라 말하며, "'무장투쟁가'의 면모뿐만 아니라 '삼본주의' 등의 사상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노력한 '행정가'이자 '정치가'로서의 면모 역시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시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백산 지청천 장군 제67주기 추모제
 백산 지청천 장군 제67주기 추모제
ⓒ 백산지청천장군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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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일부 사진은 지청천장군기념사업회에서 제공받았습니다.


태그:#지청천, #지청천장군, #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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