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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분 바람으로 새로 생긴 드넓은 모래밭과 모래 언덕에는 바람결만이 새겨져 있었다.
▲ 이름처럼 하얀 미국 뉴멕시코주 화이트샌드 국립공원 밤새 분 바람으로 새로 생긴 드넓은 모래밭과 모래 언덕에는 바람결만이 새겨져 있었다.
ⓒ 백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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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모래위를 걷고 왔어요."
"그럼, 모래가 하얗지, 까만 모래도 있나요?"


미국 뉴멕시코주 화이트샌즈 국립공원의 모래는 이름 그대로 정말 하얬다. 하얀 모래 외 아무것도 없는 주위는 너무나도 고요했고 전날 밤새 분 바람으로 새로 생긴 드넓은 모래밭과 모래 언덕에는 바람결만이 새겨져 있었다. 우리는 그 새하얀 모래밭을 드문드문 박힌 길 표시 작대기에 의존해 걸어 나갔다. 어떤 표식은 모래밭에 파묻혀 겨우 10cm 정도만 머리를 내밀고 있기도 했다. 

바다에서 고원->분지->흰 모래언덕으로

약 2억 5천만 년 전, 현재의 화이트샌즈 국립공원 자리는 얕은 바다였다. 7천만 년 전 융기 현상으로 고원이 되었다가 1천만 년 전에는 다시 가라앉아 서쪽의 산 안드레스(San Andres)산과 동쪽의 새크라멘토(Sacramento)산을 끼고 툴라로사 분지(Tularosa Basin)가 되었다.

비가 오면 양쪽 산에 있는 석고 물질이 물에 녹아 분지로 흘러 들어왔고, 여름철 가뭄에 물이 증발하고 석고 물질만 남아 투명한 석고 수정체가 바닥에 남게 되었는데, 투명 석고는 풍화작용으로 깨지고 잘게 부서져 모래가 되어 바람에 날리며 서로 부딪히고 긁혀서 현재의 고운 하얀 모래 언덕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얀 모래 언덕은 지금도 남서쪽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의해서 날마다 이동하여 모양이 변하고 있다. 사람의 발자국이 모래를 어지럽히기 전 모래 언덕을 보면, 마치 거대한 파도가 멈춰 있는 모양새다.
 
마치 거대한 파도가 멈춰 있는 모양새다.
▲ 날마다 이동하여 모양이 변하고 있는 하얀 모래 언덕 마치 거대한 파도가 멈춰 있는 모양새다.
ⓒ 백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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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샌즈 국립공원은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석고 모래 언덕이다. 크기가 800㎢로 서울시 면적보다 더 넓다. 1920년대 지역주민들은 일찍이 석고의 천연자원 가치보다 초자연적인 하얀 모래가 지닌 관광자원의 가치를 간파하고 정부에 국가 차원의 보호를 요구했고, 하얀 모래언덕은 1933년 국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받은 후 2019년에는 국립공원이 되었다.

또한, 2차대전 시기에는 높은 산맥 사이에 자리 잡은 외부와 차단된 거대한 분지의 지리적 환경을 이용하여 미사일 기지가 되었다. 특히, 1945년에는 이곳에서 100km도 안 떨어진 곳에서 미국 최초의 핵실험이 이뤄지기도 했다. 영화 <오펜하이머>에 나오는 원자폭탄 실험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지금도 미사일 실험은 계속되고 있어, 화이트샌즈 국립공원 안의 도로는 새벽 시간 종종 폐쇄되곤 한다. 

뜨거운 햇살과 바람으로 대기가 더워지기 전인 3월 말, 텍사스와 뉴멕시코 경계에 있는 국립공원들을 방문했다. 화이트샌즈 국립공원은 첫 번째 방문지였다. 텍사스 엘파소 공항에 내리니 오후 3시가 넘었고, 우리는 2시간 거리에 있는 화이트샌즈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저녁 해가 넘어가는 시간에 맞추어 오후 6시, 국립공원에서는 레인저가 안내하는 석양 산책이 예정되어 있었다. 

마치 현실이 아닌 듯... 영화와 광고가 사랑한 곳
 
매일 오후 6시,화이트샌즈 국립공원에서는 레인저가 안내하는 석양 산책 프로그램이 있다.
▲ 화이트샌즈 국립공원 매일 오후 6시,화이트샌즈 국립공원에서는 레인저가 안내하는 석양 산책 프로그램이 있다.
ⓒ 백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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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장소에 도착하니 제법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레인저가 우선 화이트샌즈 국립공원의 역사와 자연적인 특성을 설명하였다. 대충 내용은 위에 적은 것으로 나의 영어 실력으로 반 정도 알아들은 것을 구글링으로 보충하였다. 

레인저의 설명을 들으며 한 시간 정도 모래밭을 산책하니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며 모래 언덕에 앉아 지는 해를 감상했다. 해는 서쪽 산 뒤로 넘어가면서 모래 언덕과 모래밭 위로 마지막 빛줄기를 내뿜었다.
 
해는 서쪽 산 뒤로 넘어가면서 모래 언덕과 모래밭 위로 마지막 빛줄기를 내뿜었다.
▲ 서쪽으로 기우는 태양 해는 서쪽 산 뒤로 넘어가면서 모래 언덕과 모래밭 위로 마지막 빛줄기를 내뿜었다.
ⓒ 백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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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오전, 우리는 화이트샌즈 국립공원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있고 가장 긴 알칼리플랫(Alkali Flat) 트레일을 걸었다. 트레일 입구에는 사람 발자국만 여기저기 있을 뿐 길을 가리키는 뚜렷한 표식이 보이지 않았다. 끝없이 펼쳐진 넓은 하얀 모래밭과 그 뒤로 모래 언덕이 시야를 막고 있었다. 모래 미끄럼을 타기 위해 빨간색 파란색 썰매를 갖고 있는 가족들이 보였으나 트레일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영화 속 장면이 생각났다. 이때 1m 정도 되는 노란 빛의 세로 막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트레일 입구에는 사람 발자국만 여기저기 있을 뿐 길을 가리키는 뚜렷한 표식이 보이지 않았다
▲ 알칼리플랫(Alkali Flat) 트레일 입구 트레일 입구에는 사람 발자국만 여기저기 있을 뿐 길을 가리키는 뚜렷한 표식이 보이지 않았다
ⓒ 백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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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 표식은 모래 언덕이 가로 막아 하나를 만나야 다음 것이 보였으므로 유심히 살피며 찾아야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전날 보았던 유카 선인장과 사막의 식물은 간데없고 보이는 것은 구릉진 하얀 모래밭과 더욱 푸르러 보이는 하늘 그리고 우리의 그림자뿐이었다. 이곳에도 다양한 생명체가 서식한다고 했는데, 내 눈에는 우리를 비롯한 하이킹을 하고 있는 몇몇 인간만이 유일한 생명체였다. 적막했다. 바람도 잔잔했지만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며 소리를 낼 나무가 없었다.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이 모래밭을 걷고 있다.
▲ 적막한 모래밭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이 모래밭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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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걸었던 발자국과 멀리 보이는 표식을 따라 모래 속에 발을 파묻히며 모래 언덕을 넘었다. 신발 속으로 들어온 모래가 시원하고 푹신했다. 모래를 조금 집어 손으로 만져 보았다. 눈 같은 모래는 시원했으나 녹지 않고 밀가루처럼 부서졌다. 석고 모래는 일반 모래와 다르게 열을 흡수하지 않고 차단하는 성질로 내리쬐는 햇살 아래서도 뜨겁지 않고 서늘했다. 그래서인지 맨발로 지나간 발자국들을 볼 수 있었다.
 
트레일 표식은 모래 언덕이 가로 막아 하나를 만나야 다음 것이 보였고, 어떤 표식은 모래밭에 겨우 10cm 정도만 머리를 내밀고 있기도 했다.
▲ 알칼리플랫트레일의 표식 트레일 표식은 모래 언덕이 가로 막아 하나를 만나야 다음 것이 보였고, 어떤 표식은 모래밭에 겨우 10cm 정도만 머리를 내밀고 있기도 했다.
ⓒ 백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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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밭 위에서 2시간 이상을 걸었을 즈음 멀리 언덕에서 모래 미끄럼을 타는 사람들이 다시 보였다. 드디어 약 7km에 달하는 트레일이 끝나갔다.

눈처럼 흰 광활한 모래밭을 걷고 모래 언덕을 넘었다는 것 자체가 현실 세계가 아닌 꿈속에서 벌어진 일 같았다. 그래서 이곳에서 <트랜스포머>를 비롯한 10개가 넘는 영화와 많은 광고를 찍었나 보다. 독특하면서도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바람결을 간직한 하얀 모래 언덕이 펼쳐진다.
 
화이트샌즈 국립공원에서의 하이킹은 현실 세계가 아닌 꿈속에서 벌어진 일 같았다.
▲ 눈처럼 흰 광활한 모래밭 화이트샌즈 국립공원에서의 하이킹은 현실 세계가 아닌 꿈속에서 벌어진 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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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화이트샌즈국립공원, #툴라로사분지, #오펜하이머, #알칼리플랫트레일, #뉴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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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반 동안 대한민국의 이곳저곳을 쏘다니다가 다시 엘에이로 돌아왔습니다. 이곳에서도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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